『비 내리는 영동교』(작사 정은이, 작곡 남국인)는 1985년 발매 된
「주현미」의 1집 정규 앨범 타이틀 곡입니다.
「주현미」(1961년생, 광주 태생)는 중국인 혼혈 3세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한의사(중의사)였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한약재 사업을 하였고, 그녀는 자연스레 의학을 접하게 됩니다.
초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자신의 국적이 대만임을 처음 알게
되었고, '한성 화교 소학교'로 진학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중국어를 몰랐기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그녀는 '한성화교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중앙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합니다.
「주현미」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75년에 아버지의 지인(知人)인
작곡가 '정종택'에게 노래 레슨을 받다가 '정종택'의 제의에 의해
처음으로 기념 음반 "고향의 품에"를 녹음했으며, 중앙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1년 MBC 강변 가요제에 약학대 음악 그룹
'진생 라딕스'의 보컬로 출전하여 입상한 바 있습니다.
1984년, 약학대를 졸업하고 약사 면허증을 취득하였으며, 서울
중구 남산 주위에 '한울 약국'을 개업하여 약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약사로 활동할 당시 고객에게 주로 민간요법을 처방하여 그다지
높은 수입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약사로 활동하던 당시 작곡가 '정종택'의 권유로 가수/작곡가
'김준규' 와 함께 메들리 음반 "쌍쌍 파티"를 녹음하였고, 이 음반의
히트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1985년에 데뷔 곡 『비 내리는 영동교』를 타이틀 곡으로 정규 1집
앨범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가수에 데뷔하며, 국내 최초 약사 가수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시 가수의 직업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
하여 데뷔 후에도 약 9개월 간은 자신의 약국을 운영했습니다.
첫 앨범의 『비 내리는 영동교』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신인상까지 받았지만, 가수의 길이 오래가지 못할 것 이라 생각
하였으나, 예상과 달리 1986년 "눈물의 부르스",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방송국 10대 가수상과 최우수 가수상을
차지하며 하며 정통 트로트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1980년대
대한민국가요계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등극하여 김수희, 심수봉과
함께 당시 여성 트로트 계 빅3로 불렸습니다.
1988년 2월 14일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이자 Rock
그룹 '엑시트'의 보컬이었던 '임동신'과 결혼하였고 1989년도에
비로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습니다.
'임동신'은 결혼 후 자신의 활동을 접고, 「주현미」의 매니저로 활동
합니다. 「주현미」는 그런 남편을 고마워한다는 표현을 수시로 합니다.
결혼 후 더욱 승승장구하여 결혼식을 올린 1988년에 「KBS 가요대상」
을 비롯한 주요 가요 부문 상들을 휩 쓸으며 1990년, 아시아 가수로서
처음으로 국제 가요제 연맹(FIDOF)에서 시상 하는 「디스턴트 어코스」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91에 발표한 11집에서는 작곡가 '이호섭'이 전곡을 작사하였는데,
그중 남편이자 매니저, 프로듀서 였던 '임동신'이 임기석이란 이름
으로 작곡한 "추억으로 가는 당신"이 히트했습니다.
잠시 활동이 주춤하던 1994년부터는 가정 생활에 충실하면서 음반
취입을 하지 않았을 뿐, 7년간 가요 무대나 여러 방송프로그램과 일반
공연 같은 것에도 꾸준히 참석해 여러 노래를 불렀습니다.
(인천아이러브색소폰클럽대표 윤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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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그 사람은 모를 거야 모르실 거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하염 없이 걷고 있네 밤 비 내리는 영동교
잊어야지 하면서도 못 잊는 것은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
밤 비 내리는 영동교를 헤매 도는 이 마음
그 사람은 모를 거야 모르실 거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아픔에 젖어
하염 없이 헤매이네 밤 비 내리는 영동교
생각 말자 하면서도 생각하는 건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