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9
집 공급해 세입자·집주인·정부 모두 이익 보는 구조
주택 매매시장이 좀 진정되는 듯하더니 전세가가 폭등하고 매물이 없어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그런데 전세가가 쉼 없이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 2월에서 2018년 3월까지의 110개월 중 105개월간 서울 아파트 전세가 지수가 올랐다. 특히 2015년까지는 매매시장이 침체해 ‘하우스푸어’ 문제가 골칫거리였지만, 전세는 강한 상승세였다.
당시 집값은 계속 하락한다는 전망이 퍼졌다. 집주인들은 미래의 자본이득을 기대하고 당장 들어오는 돈이 없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세입자들 역시 집값이 내려갈 것 같으니 집을 사기보다 전세를 선호했다.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었으니 전세가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도 월세 매물은 많이 나왔고, 많은 중산층 무주택자에게 집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한 특집기사 제목처럼 “누가 집 사나, 전세 살면 되지”였다. 자가든 임차든 자신에게 맞는 대안을 스스로 선택했으므로 전세난이 정치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지 않았다.
전세가가 오르고 매물이 없다는 점은 같지만, 과거와 현재의 전세난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번 전세난의 특징은 매매가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전세가가 급등하며, 전세뿐 아니라 월세 매물도 줄었다는 점이다. 혹자는 저금리가 전세난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10년 전이나 5년 전이나 계속 저금리였는데 왜 지금 갑자기 전세난을 유발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또 박근혜 정부 때의 금융규제 완화나 공급 감소를 지목하기도 하지만, 정부가 출범한 지 3년 6개월이 넘는 시점에서 전 정부를 탓하기는 낯 뜨겁다. 현재의 어려움은 전적으로 이 정부의 책임이다. 주택공급을 등한시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반시장적인 정책을 쏟아내 주택시장 생태계를 심하게 교란했다는 점이다.
현 정부 주택시장 생태계 교란해
그래픽=최종윤
주택시장은 지역별·유형별·규모별·가격대별 하위시장들로 나뉘지만, 이 하위시장들이 전후좌우로 연결되는 복잡한 그물망이다. 소비자들은 주택시장 여기저기를 탐색하고, 자가·전세·월세 등 점유형태도 달리하면서 각자의 능력과 필요에 맞는 보금자리를 꾸린다. 여기에 임대주택 공급자나 주택 개발사업자들의 활동이 또 다른 변수들로 개재된다. 이 복잡한 그물망이 약 2000만 호의 주택과 거의 같은 수의 가구가 서로 짝을 찾아가는 주택 생태계이다. 시장에 가해지는 외부 충격들은 주택 생태계를 흔들어 기존의 균형을 깨뜨린다. 생태계를 크게 흔들어 놓으면, 그 파장과 반작용이 중첩되므로 언제 새로운 균형에 도달할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새로운 균형이 어떤 모습일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주택시장 생태계가 자연 생태계와 유사하다.
이런 주택시장 특성을 무시한 결과 정부의 주택대책들이 두더지 잡기가 되어 버렸다. 분양가 상한제를 하니까 로또판이 벌어지고,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니 신축 아파트 가격이 한없이 오른다. 주택대출을 막으니 현금 부자만 이익을 보고, 비싼 집 팔라고 세금을 올린 결과 살지도 팔지도 못하는 고령 은퇴자들이 눈물을 흘린다.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는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함에 따라 매물이 출회되지 않고, 집주인들은 4년 치 전세를 미리 올리거나 아예 임대시장을 떠난다. 다주택자는 너무 오르는 세금을 내기 위해 임대료를 올려야 한다.
전세난은 전세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는 물론,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고가주택에 대한 금융제한, 재건축 규제가 모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계약갱신청구권이 전셋집의 공급과 수요를 같은 수만큼 줄이므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주장은 이 점에서 틀렸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고 시장의 혼란이 가라앉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으며, 새로운 균형이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예컨대, 7·10 대책의 여파로 연말까지 최대 50만개의 임대주택 등록이 말소된다. 그중 상당수는 임대시장에서 퇴장할 것이다.
정책 되돌리지 않으려 무리수 거듭
전세가가 한없이 오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전세난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오른 가격이 유지되고, 월세 계약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것이다. 2015년 기준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 비중은 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0%보다 낮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전세제도의 존재이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송인호 박사가 2010년 기준으로 주택 점유형태별 중위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 비중을 연구한 결과, 전세가 6%로 가장 낮았고 자가가 9.4%, 월세가 16.3%로 가장 높았다. 전세와 월세 부담 차이가 무려 10%포인트에 달한다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 전세제도는 세입자·집주인·정부 모두에게 좋은 제도였다. 세입자는 월세 부담 없이 집을 빌려 썼고, 집주인은 적은 돈으로 집을 사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었다. 정부는 수백만호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수고를 덜었다. 그러나 ‘빵’과 ‘주택’이 다른 줄 몰랐던 우격다짐 주택정책들의 여파로 전세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다. 집주인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월세로 전환하면서 임대료를 대폭 올리거나 아예 주택임대에서 손을 뗄 것이다. 세입자들은 부담스러운 월세를 매달 내게 되고, 정부는 민간임대 주택이 줄어드는 만큼 예산과 금융지원을 늘려야 한다.
한번 내놓은 정책을 되돌리지 않으려고 더 큰 무리수를 두곤 하는 정부의 성향으로 볼 때,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임대차법 개정에 앞장서길 기대하기 어렵다. 설사 임대차법을 크게 수정한다고 해도 훼손된 주택시장 생태계가 금방 회복되기 어렵다는 게 더 큰 고민이다. 11·19 전세대책이 나왔지만, 정부의 공급 호수는 민간에서 사라지는 물량에 비해 코끼리 비스킷일 뿐이다. 결국 내년에도 전세난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세가가 오를 뿐 아니라 전세제도 자체가 퇴출당하면서, 이제는 세입자·집주인·정부 모두 월세 세상을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손재영 /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중앙일보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세의 경제학
전세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부동산 임대차 제도로 조선 시대 말기에 돈을 빌려준 사람이 채권확보를 위해 채무자의 주택을 점유하던 관습에서 발전된 것이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전세제도를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조건이 아니고서는 전세의 경제적 합리성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전세제도의 첫 번째 조건은, 주택금융의 낮은 발전 단계다. 만약 금융기관들이 주택담보 대출을 쉽게 해 준다면, 집주인이 굳이 전세를 통해 목돈을 조달할 필요가 없다. 공식 금융기관의 문턱이 높아서 주택 소유자가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울 때 전세가 효용을 갖는다.
두 번째 조건은, 꾸준한 주택가격 상승이다. 전세 보증금을 활용한 이자 등의 소득이 월세를 대신하는 집주인의 수입이다. 그런데 보증금이 집값의 50%라고 가정하면,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이자를 받는 것이 전세 놓는 것 보다 두 배 이득이다. 집주인이 일견 손해 보는 듯한 거래를 하는 이유는 집값이 오를 때 거둘 수 있는 시세차익 때문이다.
만약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면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아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세입자는 보증금의 기회비용만 포기할 뿐이지만, 자가 거주자는 매매가의 기회비용에 덧붙여 감가상각·세금 등을 모두 부담하기 때문이다. 양자의 주거비 부담이 같아지는 균형에 도달하려면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은 수준에서 정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전세를 들려고 하고, 전세가가 계속 오르게 된다.
실제 주택시장에서 거의 언제나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높게 형성되는 이유는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항상 강남 아파트보다 높은 것은 강남 아파트값의 상승 기대가 더 높은 것을 반영한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5년까지 전세가율이 높아진 것은 집값이 오르기 힘들 것이란 당시의 전망을 반영한다. 그때 서울 강북의 전세가율이 거의 80%에 육박하자 전세시대가 저물었다는 진단이 많이 나왔지만, 다시 집값이 오르면서 전세가율이 내렸다.
현재 전세가가 급등하면서 전세가율이 다시 높아질 전망이지만, 이는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정책 실패의 탓이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