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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알곡 되어 곳간으로
Text Mt 13,24-30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1. 현대적 의미에서의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던 청교도들이 가을 수확 후 드린 감사절이 그 효시입니다. 하지만 그 추수감사절은 청교도들이 새롭게 제정했다기보다는 구약성경의 수장절 혹은 초막절 그리고 장막절을 재현한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수장절은 추수를 한 후 창고에 저장한다는 의미의 이름이고, 초막절과 장막절은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수확하며 사는 때에도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며 장막에 기거하던 때에 돌봐주시던 하나님을 잊지 말고 감사하며 섬기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그 의미가 현대적으로 다시 제정된 것이 추수감사절인 것입니다.
그리고 추수하여 창고에 저장한다는 ‘수장’의 의미는 종말의 날과 최후의 심판을 거쳐 영생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연관을 갖습니다. 성경은 추수를 단순히 농업적 이미지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결산의 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추수는 하나님이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며, 동시에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욜3,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는 하나님께서 낫을 대어 추수하듯이, 세상의 악행에 대한 심판을 행하실 것을 예고합니다. 렘 51,3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 마당과 같은지라 멀지 않아 추수 때가 이르리라 하시도다”도 바벨론의 심판을 추수의 때로 묘사하며, 악한 세력이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선언합니다. 호 6,11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도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은 다음 주일인 왕국주일 직전 주일입니다. 오늘 추수절은 하나님께 감사 예물을 드리면서 새로운 주님의 왕국에 들어갈 알곡으로 최종 확정을 받는 날로도 지키는 큰 절기의 날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추수감사절에 본문 말씀 마13,24-30을 통하여, 한 해 동안 얻은 알곡을 드리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알곡으로서 하나님께 드려져,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주님의 왕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소망이 풍성하게 임하기를 기대합니다.
2. 24-30절 본문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해석은 41-43에 예수님께서 직접 해석하신 것이 나와 있습니다. 24-26절을 먼저 봅니다.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본문은 좋은 씨를 밭에 뿌렸는데 결실할 즈음에 밭에 나가 보니 좋은 씨에서 발아하여 자란 곡식들 사이에 곡식이 아닌 가라지도 나 있는 것이 보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가라지는 밭 주인의 원수가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에 좋은 씨를 뿌린 밭에다 몰래 덧뿌려서 난 것이었습니다.
좋은 씨에서 발아하여 정상적으로 결실하는 ‘곡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을 의미하며, 그 ‘곡식’은 추수 때까지 잘 영글면 ‘알곡’이 되고 추수되어 창고에 저장됩니다. ‘가라지’가 좋은 씨에서 난 곡식과 한 밭에 있었다는 것은 입고 있는 겉옷(형식)은 비슷하지만 절대로 알곡이 될 수 없는 형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가라지는 쭉정이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쭉정이는 곡식과 같은 씨앗이지만 영글지 못한 것이지만 가라지는 씨 자체가 곡식과는 다른 종류입니다. 씨앗 자체가 다른 종류이기 때문에 아무리 비슷한 모양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가라지는 절대로 곡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밭에 있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현실입니다. 또한, 주인이신 주님께서 심으시고 알곡이 되길 기대하시는 곡식인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심지 아니하고 주님의 원수인 사탄이 심은 가라지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마3,12과 눅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에는 가라지와는 달리 곡식이지만 영글지 못한 곡식인 쭉정이도 밭에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라지와 쭉정이와 곡식이 모두 세상이라는 하나의 밭에 심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알곡으로 영근 곡식만 추수를 거쳐 곡간에 저장이 됩니다. 제대로 영글지 못한 쭉정이와 종이 다른 가라지는 추수를 거쳐 불사르게 됩니다. 알곡은 신실한 믿음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알곡은 무게감과 가치를 지니며 모아져 하나님의 나라인 곡식 창고에 들입니다. 가라지는 형식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거나 거짓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상징합니다. 쭉정이는 껍데기만 있고 속이 비어 있어 무익하며, 바람에 날리거나 불에 태워질 운명입니다.(시1,4 눅3,17)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곧 있을 추수를 대비하여야 합니다. 믿음을 점검하여 믿음의 진위를 파악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하나님을 순종하며 주님의 선한 일에 열심히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은 주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름을 받아 교회 안으로 오신 분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복음을 믿고 복음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가라지로 남아 있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믿고 자신의 영혼과 삶을 모두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성결하게 하여 경건하게 살고, 이웃을 사랑하여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도 살아야 합니다. 가라지와 쭉정이의 길을 가는 사람이 많을지라도 알곡의 길로 가는 성도가 되십시다.
3. 다음, 27-29절을 보겠습니다. “(27)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본문의 가라지는 악한 자인 마귀의 아들들입니다. 비록 그들은 마귀의 이름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게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지배하며, 그는 그들 안에서 역사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을 행하지 않으며, 남에게 해독을 끼칩니다. 그들 자신들에게는 무익하며, ‘좋은 씨’에게는 시험과 박해로 해로움을 줍니다. 그들은 정원에 있는 잡초로서, 좋은 식물들과 같이 동일한 비와 햇빛, 그리고 흙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좋은 것이라고는 도무지 없습니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라 했습니다. 즉 마귀는 그리스도와 모든 선한 것, 선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극악무도한 원수이며, 또한 모든 선한 사람의 위로와 행복에 대한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는 세상 밭에 원수로서 이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라지를 거기에 뿌리고 있습니다. 악한 영이 된 이래로 마귀는 열심히 악을 조장하여 왔으며, 그리스도를 방해하는 것이 그 주요 임무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역은 자신을 영벌에 들어가게 하고, 자신이 망쳐놓은 인간이 자신의 세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혼돈과 무질서와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있던 세상을 평화와 평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곳으로 바뀌게 하기 때문입니다.
추수 때는 사탄 세상이 종말을 고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라지를 뽑을까요?’ 하고 묻는 당신의 종들에게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들을 제거하다가 곡식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이 자지 않고 지내는 방법은 없습니다. 잘 수밖에 없습니다. 잘 때 원수가 밭에 가라지를 뿌리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가 교회 안에 있는 거짓과 외식을 일삼는 자들을 완전히 차단 할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하지만, 곡식은 가라지 때문에 불편을 겪을 수는 있지만 망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곡식은 알곡으로 영글 때까지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귀는 가라지를 심으러 올 때 ‘빛의 천사’로 가장을 하기 때문(고후11,13-14 “(13)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이며, ‘싹이 나고 결실 할 때’(26절)까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큰 죄악들이 오랫동안 그럴듯해 보이는 신앙고백의 가면 속에 숨어 있어서 어느 정도 형체를 드러낼 때까지는 그것들을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곡식이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곡식은 그 불편을 기도와 말씀 묵상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겨내면서 알곡으로 영글게 됩니다. 오류가 생기고 추문이 일어나고, 이단 사교가 자라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종들에게는 큰 불행의 사태이며, 주님의 밭에서 이러한 잡초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곧 쇠락하게 될 것을 알고 곡식은 인내해야 합니다. 눅21,19은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히12,1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인내를 요청합니다.
여러분, 추수 때까지 불편을 겪으며 인내하셔야 합니다. 추수 때까지 불편을 기도로 이겨내셔야 합니다. 추수 때까지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은밀한 유혹들을 구분하면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추수 때까지 모든 도전들을 이겨내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강력하게 요청하셔야 합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처럼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넘어질 수 있으므로 오직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를 간구해야 함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추수 때까지입니다. 부디 다 이겨내고 알곡으로 창고에 들어가는 복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4. 30절 말씀을 나눌 차례가 됐습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추수 때는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기 위해 단으로 묶어놓고 알곡으로 영근 곡식들은 주님의 곳간에 넣는 날입니다. 하나는 영벌에 처하고, 하나는 영생에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함께 자라다가 추수 때에는 영원히 분리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세워지는 최후의 심판과 알곡들이 주님의 새 왕국에서 살기 시작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날이 추수 때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애써 가꾸었던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처럼 최후의 심판이 있는 날이며 동시에 새 세상이 시작되는 그날에는 우리 자신들이 모두 알곡으로서 드려지는 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그날을 소망하시기를 권면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그날까지의 길을 기쁘게 달려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니까 저기 결승선이 아련하게나마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알곡과 쭉정이, 가라지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상태를 돌아보게 하는 경고와 격려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며, 최후의 심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에는 알곡으로 하나님의 곡간에 들여지는 복된 삶이 되도록 경건과 성실로 나아가기를 결심하여야 하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심판을 두려워하기보다 감사와 준비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돌아보고, 우리의 신앙과 삶을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한 해 동안 주신 복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삶은 알곡으로 살아가는 준비가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며 사는 삶은 심판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추수 때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매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요15,4-5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러분, 추수감사절은 우리가 주어진 시간 안에서 무엇을 심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갈6,7-8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지금, 오늘의 신앙과 행동이 심판의 결과를 결정짓는 씨앗입니다. 그래서 현재를 은혜로 살고 열매를 나누는 섬김의 삶으로 사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우리의 영적 열매를 점검하고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는 기회입니다. 심판의 날을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비결은 알곡이 되는 것이 최고의 비결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알곡으로 주님께 드려지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