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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비평]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의 연극성을 살린 공연예술 축제 – 제16회 품앗이 공연예술축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2024. 9. 12. 15:35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의 연극성을 살린 공연예술 축제
– 제16회 품앗이 공연예술축제
김성희(연극평론가)
경기도 화성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열리는 품앗이 공연예술축제는 올해로 16년째를 맞았다. 지역축제가 고유한 정체성과 지역성을 가지고 십여 년 동안 관객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내며 성장해 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더욱이 이 축제를 한 극단과 예술가가 중심이 되어 이만큼 다양하고 풍성하게 키워온 점은 공연축제 경영의 성공 사례로 꼽을 만하다. 민들레극단의 송인현 예술감독은 자신의 고향인 화성 이화뱅곳마을에 여러 작은 극장들, 야외극장을 지었다. 물론 지자체의 지원이 뒷받침해서 가능해졌지만 논과 고추밭, 풀숲이 있는 농촌마을에 주민들과 멀리서 찾아오는 관객들을 겨냥한 지역축제의 그림을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축제의 특성과 비일상성의 경험
올해 축제는 8월 23일(금요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필자는 24일 아침에 사당역에서 시외버스와 택시를 타고 민들레마을에 당도했다. 시간도 꽤 걸리고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지만 막상 도착하니 화창한 하늘과 초록의 숲길, 논과 고추밭 같은 자연이 맞아주어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폭염이 한창이었지만 집행부 스태프들이 헌신적으로 관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었고, 아기자기한 실내극장(사랑채극장, 별극장), 테라스극장, 잔디마당, 넝쿨극장 등 이색적인 야외 퍼포먼스 공간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어 매력적이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점도 축제의 활기와 즐거움으로 흡인하는 요소였다.
거창, 공주 등 숲이나 산 같은 자연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예술축제들이 꽤 있는데, 품앗이 공연축제는 그 축제들과는 다른 특유의 개성과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자연 공간에서 벌어지는 축제들은 모두 관객에게 자연친화적이고 비일상성의 경험을 안겨준다. 품앗이 축제는 나름의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축제이다. 한계라면 민들레극단이 단독으로 기획해서 축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는 점, 축제가 벌어지는 전체 공간이 비교적 협소하다는 점,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접근성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송인현 예술감독은 오랫동안 가족극, 전통연희적 퍼포먼스를 해온 경험에다 폭넓은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해외 극단까지 초청하는 등 축제 프로그램의 외연을 넓혔다. 또 민들레연극마을의 작은 규모와 어린이 관객을 고려하여 프로그램 구성을 소규모 퍼포먼스 위주로 기획했다. 한 두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퍼포먼스나 연극, 공연시간이 20분, 30분, 40분, 1시간 등 짧은 공연들이 주류를 이룬다. 짧은 공연시간과 오브제극, 인형극, 탈춤극, 클라운마임극, 체험놀이 등으로 구성되어 어린 아이들이 즐길 수 있게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연극마을이 비교적 협소하고 극장들에 이르는 동선이 짧아서 관객들은 여러 공연들을 돌아가며 볼 수 있고, 비는 시간에 잔디마당에서 벌어지는 무료 퍼포먼스들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축제의 장점은 연극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실내극장과 야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르와 성격의 공연들을 향유할 수 있는 점이라 하겠다. 공연도 연극만이 아니라 오브제극, 인형극, 풀피리체험놀이, 코믹광대극, 클래식 연주, 전통연희 퍼포먼스, 합창 등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여러 장르의 퍼포먼스로 구성해서 종일 축제에 젖어들게 만들고 있다. 연극마을의 작은 규모, 가족적인 분위기가 부모, 어린이 관객들에게 다양한 퍼포먼스를 많이 즐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주최 측은 ‘작지만 강한 축제’라고 일컫는 듯하다. 한편 농촌마을 안에 위치한 장소성을 활용하여 지역주민들이 참여하고 공유하는 축제로 만들어나간 것도 긍정적인 점이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마련한 식사를 관객에게 제공한다든지, 지역 농산품 판매와 민박 제공 등 지역주민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축제가 주민과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을 주제로 한 공연 프로그램
이번 축제는 2편의 국외초청작과 국내초청작 7편, 방정환 프로젝트의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극장에서 공연된 <Woods>는 캐나다 극단 Puzzle Theatre의 40분짜리 오브제 넌버벌인형극이다. 직사각형의 탁자 위엔 벌거벗은 마른 나무가 서 있고 양쪽 가장자리엔 마른 나무 둥치나 가지들이 쌓여 있다. 두 명의 남녀 배우가 마른 가지를 집어 들어 움직일 때 그 나뭇가지나 둥치들은 놀랍게도 동물이나 벌레, 괴물 등 여러 기이한 존재로 변모하여 서로 겨루고 쟁투하고 뽐내는 인형이 된다. 탁자 위에 세워진 마른 나무에 초록 잎이 피어나고, 그 잎을 떼어내려고 코믹하게 움직이는 나뭇가지 생명체들이 벌이는 인형극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유, 인간과 동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생태계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이 오브제극은 인위성을 최대한 배제한 날것 그대로의 다양한 형상의 마른 나뭇가지나 둥치로 생명체를 형상화하고, 관객이 상상으로 채워가는 서사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주었다.
별극장에서 공연된 <Maati Katha(Earth Stories)는 인도 극단 Trom Arts Trust의 65분짜리 오브제극이다. 탁자 하나가 있고, 그 아래엔 커다란 진흙 덩이가 놓여 있다. 남녀 2인극인데, 여배우가 무대에서 극을 이끌어간다. 여배우는 진흙을 들어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델타지역의 삼각지를 상징하는 듯) 탁자 위에 다양한 동물들을 빚어 세운다. 퍼포머는 바구니 모양의 배에 실려 있는 사람들, 코끼리, 호랑이, 여신 등의 인형들을 하나하나 내리고 그들을 움직이면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와 신화를 대화로, 노래로 풀어나간다. 진흙으로 즉석에서 인형들을 빚고 새로운 무대를 만들고 인형을 채색하기도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순더반 지역의 독특한 문화, 역사, 신화를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상당히 흥미로운 공연이었지만, 대화나 노래, 이야기를 다 제대로 알아듣긴 힘들었다. 한국인 조력자도 무대 한 편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공연 시작 전에 대략적인 내용 소개를 해주었더라면 내용 전달이 더 원활했을 것 같다. 공연시간도 예정보다 20분 정도 늘어난 부분도 다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었다.
국내 초청작 중 <점쟁이 곽씨>(문화놀이터 도채비)는 배우와 고수로 이루어진 2인극이다. 점쟁이가 관객을 상대로 점에 대해, 신령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객을 무대에 끌어들여 참여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점을 치고 운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연행 방식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어 흥미를 끌어내지 못했다. 제주에서 온 극단인 만큼 제주의 신화나 역사, 문화, 신들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갔더라면 더 호응을 받았을 듯 싶었다.
넝쿨로 이루어진 터널, 넝쿨극장에서의 <풀피리 놀자>(김충근)는 풀피리 연주를 들려주고 가르쳐 주기도 하고 풀잎 나뭇잎들로 얼굴을 만들어보기도 하는 등 어린이 관객이 자연의 생명력과 신비를 느끼게 하는 체험 퍼포먼스였다.
야외 잔디마당에서 벌어진 코믹 광대극 <넌센스>(클라운쏭 프러덕션, 송정배)는 연령에 상관없이 많은 관객의 호응을 받았다. 서커스 광대 분장을 한 배우의 익살스러운 마임, 외발자전거 타기, 저글링, 곡예 등으로 한껏 축제의 흥을 북돋았다. 해가 질 무렵 잔디마당에서 열린 <한혜열 x 윤호근 듀오 콘서트>는 그랜드피아노 연주(윤호근)와 베이스 바리톤 한혜열의 노래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몇 곡과 한국 가곡들을 들려주었다. 연주 전에 있었던 윤호근의 해설은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여서 관객들이 음악 감상에 더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해가 지려 할 즈음 하늘을 쳐다보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듣는 수준 높은 성악과 피아노 연주는 이 축제가 연극이나 퍼포먼스의 경계를 넘어서 예술 전반에 열려 있음을 느끼게 했다.
음악 공연이 끝난 후 어두워진 잔디마당에 조명이 켜지고 전통연희극 <똥벼락>(송인현 연출, 출연 송인현, 장항석, 김경희)이 공연되었다. 김부자네 집 머슴 돌쇠가 30년 새경으로 받은 돌밭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똥을 모으고, 김부자와 갈등하는 이야기로, 전통연희와 춤, 장단이 흥겹게 어우러진 국악 가족극이다. 흙과 곡식, 생명, 배설된 똥이 선순환하는 이야기로 이 축제의 주제인 ‘자연’과 잘 맞아떨어지는 내용이다. 극단 민들레의 대표작 중 하나로 오랫동안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신명나는 춤, 관객과의 흥겨운 댓거리, 장단 등 친숙한 전통연희극의 흥과 해질 무렵 야외라는 시간성과 장소성이 어우러져 축제의 하이라이트 역할을 했다.
방정환 동화를 재구성한 방정환 프로젝트
품앗이 축제 속 또 하나의 축제는 어린이를 위해 특화된 ‘방정환 프로젝트’ 작품들이다. 방정환의 동화들을 예술가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각색, 구성해서 관객에게 다채롭고 색다른 관극체험을 준다.
사랑채극장에서 공연된 <금시계>(둥당애, 강나루 출연)는 전국을 돌며 강당에 서서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던 방정환처럼 배우가 이야기꾼으로 등장한다. 어린이날의 유래 등을 이야기하고 나서, 작은 탁자 무대 위에 인형과 오브제 등을 활용, 입체적으로 극화해 나가는 일인 오브제극이다. 옛 시대를 재현하는 전통 한복을 입은 인형들, 그림 등이 정겹고, 다역을 하는 배우의 연기는 극적 서사와 감동, 교훈을 잘 담아냈다. 이야기꾼, 인형 조종자, 배우인 강나루의 다채로운 연기가 30분 동안 관객들을 흡인했다.
야외무대인 테라스극장에서 공연된 <4월 그믐날 밤>(극단 진아언니, 이진아 출연)은 한명의 여배우가 20분간 이끌어가는 노래극이다. 내용은 봄을 맞이할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꽃샘추위가 등장해서 꽃을 얼어붙게 하는 심술을 부리다가 추위가 물러가고 새날, 새봄이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이 연극은 공간이 만들어내는 연극성과 함께 진행되었다. 하루 종일 폭염이었는데 이 공연이 펼쳐지는 작은 언덕의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연기 공간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에서는 노란 나뭇잎들이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빗방울도 잠깐 떨어지다가 바로 개었다. 연극의 내용에 조응하는 듯한 자연의 변화였다. 야외극장의 공간성이 배우 못지 않게 중요한 연극적 역할을 한 공연이었다. 배우 이진아는 꽃샘추위가 왔다가 사월 그믐날밤 물러가고 봄꽃들이 피어나는 과정을 다정한 언니가 들려주는 듯한 편안한 이야기방식과 노래로, 단순한 소도구들로 형상화했다.
자연과 어우러진 작은 규모의 공간과 작은 축제
품앗이 공연예술축제는 농촌마을이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나지막하고 작은 극장들, 나무 아래, 넝쿨 속, 수풀 속 야외극장, 잔디마당 등에서 펼쳐진다. 때문에 공연도 대체로 1, 2명 정도가 연행하는 소규모 작품들로 구성했다. 또 어린이 동반 가족극으로 컨셉을 잡은 만큼 20분에서 1시간 정도의 비교적 짧은 공연들로 기획되었다. 접근성이 좋은 지역은 아니다보니 관객이 하루 일정으로 소풍 나온 기분으로 최대한 많은 공연들을 두루 보고 갈 수 있도록 각 극장들의 공연 시간을 조정한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산이나 숲 속에서 열리는 거창, 공주 등의 축제가 대체로 대형 공연을 지향한다면, 품앗이 축제는 어린이 위주 가족극, 아기자기한 공간 규모에 걸맞는 소형극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전통연희적 공연, 생태적 공연, 음악 공연, 마임, 오브제극, 이야기·노래극, 체험놀이 등 다양한 장르의 다채로운 공연들로 구성해서 하루 종일 관극하는 관객들이 지루할 틈 없게 구성하여 축제를 즐기게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외국 공연의 경우 대사나 서사가 있는 작품일 경우 사전에 내용 소개가 있던지, 아니면 프로젝터로 자막을 띄운다든지 하는 절차가 필요해 보였다.
공연장과 주변 시설 문제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에 축제가 열리는데 공연장의 냉방 시설이 아주 미흡했다. 낡은 에어컨 한 대, 천장의 선풍기 정도로는 무더위를 몰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냉방 시설 등 인프라 문제는 축제를 공동 주관하는 화성문화재단이나 화성시 같은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또, 밤에 축제 장소를 떠나 이동하는 길에도 전등 설치가 필요해 보인다. 농촌동네여서 밤이 되자 주변이 아주 캄캄해졌는데 주차장으로 가는 길, 또 큰 길로 나가기 위해 걷는 좁은 시골길이 너무 어두웠다. 축제는 공연 중심의 서비스만이 아니라 관객이 축제 장소를 이동하고 떠날 때까지 안전과 편안을 위한 서비스 제공에도 노력해야 한다.
🟠 공연정보
전통예술 제16회 품앗이 공연예술축제
공연단체 : 극단민들레
장르 : 전통예술
기간 : 2024.08.23.~08.25.
장소 : 민들레 연극마을
주관 : 이화뱅곳마을, 민들레연극마을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극단 민들레 어린이를 중심으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연극을 만들면서
미래로 이어지는 예술 지향 민들레연극마을을 운영하며 품앗이공연예술축제, 아시아TYA레지던스,
지역 문화개발 등 연극의 사회적 가치 실천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성희(연극평론가)
연극 비평과 한국연극사 관련 글을 쓰고 있다. 평론집으로 <연극의 사회학, 희곡의 해석학> <한국연극과 일상의 미학> 등이 있고, 저서로 <연극의 세계> <한국 동시대 극작가들> <연극으로 사유하는 한국신화>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의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은 예술가, 예술단체, 공간, 매개, 플랫폼 등 예술생태계 내 핵심적인 역
[출처] [예술비평]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의 연극성을 살린 공연예술 축제 – 제16회 품앗이 공연예술축제|작성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