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Date 2020. 7. 5
Text Dtr 16,9-12
(9)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1. 어느덧 7월 첫 주일이 됐습니다. 코로나19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몸도 마음도 심령도 많이 힘들 줄로 압니다. 그런데 시50,23에서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라는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후반기를 시작하는 첫 주일인 2020년 맥추감사절주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와 복이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꼭 우리 성도들에게도 임하게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먼저, 9-10a절 말씀입니다.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달력은 니산월부터 시작되는데 니산월은 바벨론식 이름(느2,1 에3,7)이고 가나안식 옛 이름은 아빕월(출13,4 출23,15 출34,18 신16,1)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빕월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일곱 주를 센다는 것은 첫 수확한 보리를 드리는 초실절로부터 7주간을 지내는 것을 말하고 이 칠칠절은 맥추절, 오순절과 같은 시기의 절기입니다.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하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때가 초실절에 해당되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다음 10일 후, 즉 성령강림절이 오순절, 칠칠절, 맥추절 시기라 이해하면 딱 맞습니다.
어쨌든 맥추절은 봄 농사 수확을 한 후 지키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감사절입니다. 한 해 농사를 다 마치고 하는 감사절이 수장절 혹은 추수절인 것을 감안하면 맥추절은 처음부터 감사하라는 것이고 추수절은 마지막에도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절기입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실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하라” “시종일관 감사하며 살아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5,18)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를 뿌릴 수 없다.'는 노르웨이 속담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를 초청하는 초대장과 같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였습니까? 그렇다하더라도 미움, 원망, 원한을 품으면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망합니다. 마음에 미움과 원한을 품은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미움과 원망 대신 감사를 품으면 불행한 상황도 행복하게 결말을 맺을 수 있고 절망적인 상황이 복된 상황으로 바뀌는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봄의 초실절부터 가을의 수장절까지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진행하며 감사로 끝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아니라 어떤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원망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처음 말씀드렸던 시50,23에 뭐라고 했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니 망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승리하게 하시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과 좀더 편한 곳에서 말씀을 전하시려고 조금씩 조금씩 마을 외관으로 가다보니 빈 들판에 와 있었습니다. 남자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3일 내내 집에도 안 가고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따라다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때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서야 거기는 빈 들판이요, 며칠이나 굶어 기진할 정도가 된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음식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인 상태였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도시락을 주님께 내밀었는데 주님은 그 음식을 놓고 축사를 했습니다. '축사' 라는 말은 영어로 'Give Thanks', 감사기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감사기도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가능성 1도 안 되던 그 상황이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6,12)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감사의 능력입니다. 잃어버린 것에 눈을 돌릴 때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잃은 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슬퍼하지 말고 주신 것들을 보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빌4,6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완벽한 대응책은 ‘감사’입니다. 코로나19의 어려움을 감사로 이겨내는 기적이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3. 다음 10b-11절입니다.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따라서 하시겠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감사하고 이웃과 함께 감사하라”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감사하고 물질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자원하여 복을 받은 만큼, 힘껏,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즉 성전에서 감사하고, 이웃에게는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도록 감사하라는 것이 이 말씀입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인생은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이 안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감사거리를 찾아서라도 감사하십시오.
지난 반년 동안에는 감사할 것이 없다고요? 잘 살펴보십시오. 어쩌면 감사거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똑같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두명의 정탐꾼이었지만 열 명은 보고 온 땅을 악평하여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민13,32)이라고 하였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반대로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민14,7)이라 평가했습니다. 그들의 차이는 땅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아니라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던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는지는 그 사람의 감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매사를 세상적인 눈으로만 보고 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합니다.
여러분, 복을 받은 만큼, 힘껏, 감사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1년의 절반을 은혜 중에 살게 하신데 대한 감사입니다. 지난 반 면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아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이 일은 좋은 일, 저 일은 나쁜 일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중단하고 다 좋은 일이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감사한데 저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고도 하지 마십시오. 함께 거주하고 있는 자녀와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 등 모든 사람이 감사할 사람인 것이 옳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눅17,12-19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서 열명의 나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들 모두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애걸합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는 말을 듣고 가던 이 나환자들은 모두 병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의 사마리아인만이 가던 길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8)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감사는, 먼저는,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아홉 명의 사람들은 감사를 하지 못했을까요? 물론 그들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감사하지 못한 것은 감사를 미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예수님 만나면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감사를 미루면 어떻게 됩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감사와 감격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게 되면 은혜를 잊게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는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생각하면 모든 일이 감사할 일입니다. 믿음으로 생각하면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감사한 사람들입니다. 혹시 감사를 잊었습니까? 지금, 오늘, 즉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감사하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분들이 되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4. 마지막 12절입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힘은 은혜를 기억하는데서 나옵니다. 지옥에 갈 운명에서 천국백성이 된 일, 세상의 우상과 미신과 악습과 어리석음의 종살이를 하던 것에서 벗어나 진리로 말미암은 자유인이 된 일, 허무와 절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사는 보람 있는 인생이 된 일을 생각하면, 당장의 고생은 내일의 기쁨이 되는 것을 알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백해무익한 것 같은 사람, 절망만 가져다주는 사람, 손해만 끼치는 사람, 내 인생에 태클만 거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그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과거의 내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 아닙니까? 바울사도는 그 박해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자신은 그들보다 더 심한 ‘죄인 중의 괴수’였음을 떠올리며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할 수 있는 힘은 구원의 감격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51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면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