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차림 하고 주님께 경배하여라(시편 29,2)
Adorate Dominum in atrio sancto eius.
Worship the LORD in the splendor of His holiness.
“거룩한 차림 하고 주님께 경배드려라”(시편 29,2) 다윗 왕은 예루살렘 성전(聖殿) 건축을 준비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소명을 상기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떠나서 올 때 광야에서 야훼 하느님께 경배드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계약의 백성이 탄생하였고, 광야의 순례가 시작되었으며, 약속의 땅을 향한 행진은 처음부터 경배(adoratio)라는 고귀하고 영예로운 목적을 지향하였습니다. 파스카의 목적은 경배였고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도 경배에 있습니다.
‘사제들의 나라’요, ‘거룩한 민족’을 불러모으신(탈출 19,6) 주님께서 모세에게 “너의 형 아론이 입을 거룩한 옷을 영광스럽고 장엄하게 만들어라.”(탈출 28,2) 하고 이르셨습니다. 노예 차림은 이제 제의 차림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유와 해방은 기쁨과 권능의 띠를 두르게 해주었습니다. 지상의 장막에서 구약의 사제들이 영광스럽고 장엄한 제의를 입었다면 천상의 성전에서 신약의 사제들은 얼마나 더 아름답고 거룩한 차림이겠습니까?
과연 세례 때 축성 성유로 이마에 날인을 받은 모든 신자들은 ‘살아있는 돌’로서 새로운 계약의 영적인 성전을 이룹니다. 곧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을 이룹니다.(1베드 2,4-5) 영적인 거룩함의 눈부신 광채를 아름답게 두르는 단장은 육신을 치장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1베드 3,4)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님의 사목 교서 권고에 따라 우리는 두 해의 말씀의 해와 두 해의 친교의 해를 지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새겨 듣고 친교의 영 안에서 성찬을 나누는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다시 앞으로 두 해의 전례의 해를 지낼 것입니다. 말씀과 성찬 친교의 식탁에 거룩한 차림 하고 모여서 경배드리는 순례를 계속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전례는 전례의 외형이 주는 장엄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웅장한 건축과 조각, 성화와 성음악이 어우러진다면 분명 황홀한 장관일 테지만, 전례가 요구하는 거룩한 차림은 차라리 전례를 거행하는 기도손의 아름다움에서 옵니다. 대영광송에 울려퍼지는 하늘과 땅의 대화처럼 하늘 위로 오르는 분향 같은 흠숭과 땅 아래로 내리는 햇살 같은 은총이 전례적 인간(homo liturgicus)의 아름다움을 경건하게 모은 기도손에 번쩍 비추며 드러냅니다. 하늘을 이고 땅을 디딘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거룩함을 입을 때 비로소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전례에서 평신도의 능동적인 참여(participatio actuosa)는 독서와 보편지향기도, 빵과 포도주의 예물봉헌에서 탁월하게 드러납니다. 아울러 전례적 환호와 응답을 외치고, 성가를 부르고, 봉헌과 성체 행렬을 하며, 앉고 서고,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눈으로 응시하고 귀를 기울이고, 마침내 성체를 받아 모시며 고요한 침묵 안에 잠기고, 거룩한 현존 앞에 온몸과 혼을 고스란히 내어맡기는 일련의 전례 행위들로 이루어집니다. 이때 발산되는 거룩한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신비체다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을 이루는 전례공동체는 지체들을 끊임없이 불러모으고 파견합니다. 이렇게 일상을 성화함으로써 영적 제헌예물을 마련하는 것이고,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vora)는 모토처럼 거룩한 차림 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사랑과 봉사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으신 한 줄기 빛은 세상 안에서 거룩함을 빛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 신앙인은 세상이라는 제단 위에 선 신약의 사제들로서 우주 위에서 드리는 미사를 혼신을 다해 거행합니다. 희년을 맞으면서 하느님 백성의 전례적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온세상의 정의와 평화에 스며들어 전쟁과 분쟁을 종식시키고 자유와 해방의 신명나는 어깨춤으로 하느님 대전을 장식하기를 희망합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성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천주교 대구대교구 이동성당
본당주임사제 천지만 베드로
첫댓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