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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권(鍾離權:漢鍾離라고도 함),장과로(張果老:張果의 존칭),한상자(韓湘子:韓湘의 존칭),이철괴(李鐵拐:鐵拐
李라고도 함),조국구(曹國舅),여동빈(呂洞賓:呂祖라고도 함),남채화(藍菜和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여장을 한 남자로 보는 설이 일반적임),하선고(何仙姑:이름은 瓊)의 두 여선(女仙)을 합친 8명을 말한다.
종리권은 한(漢)나라 사람이고, 이철괴는 시대 불명이며, 조국구는 송(宋)나라, 나머지는 모두 당(唐)나라 사람
이다.
여동빈 呂洞賓 八仙之四 팔대선인 중 한명
여동빈, 서기 750년경의 학자이자 은자인 그는 팔선의 수장격인 종리권으로 부터 도교의 비밀을 배우고 나이
50에 신선이 되었다. 그는 이발사의 수호 성자이며, 병자들이 숭앙하였다. 오른 손에 그는 도가의 먼지 털이를
들고 있는데 그의 문장인 검을 보통의 등에 가로 차고 있다. 그는 열 차례에 걸쳐 계속 유혹을 받았지만 잘 극복
하여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검을 하사 받았다. 그 검을 차고 그는 곳곳을 여행하면서 용을 베고, 400년 이상이나
세상 여러 가지 형태의 악을 제거하였다.
일반적으로 신인[神人]이나 선인[仙人]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인간 의 존재들이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몸체에 도[道]의 완성을 이루어 늙지도 않고 영원히 죽지도 않는다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관념
아래 하늘을 날고 높은 산에 살고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신선들의 이야기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팔선[八仙]중에 여동빈[呂洞賓]이라고 합니다. 그는 당나라 시대 사람
으로 당시 대대로 명문가의 집안에 태어났으나 수려한 용모에 탁월한 글 재능에도 과거 급제에 세 번씩이나
낙방하고서 마흔 일곱 살 때 실의 속에 각지를 떠돌며 방랑 생활을 하던 중 팔선 중 한사람인 종리권[鐘離權]
이라는 도인[道人]만나 도[道]와 인연을 寬� 되었다 합니다. 그 후 여 동빈은 예순 여덟살때에 도[道]의 수련을
끝내고 득도하여 천하를 주유하며 경이한 행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여 동빈은 하산을 하여 각처를 돌며 여러 가지 기이한일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의 호북성[湖北省]에는 시내
를 관통하는 강물위에는 큰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다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다리에서 한 부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너무 가련하게 보여서 지나는 사람마다 한 두 푼씩 던져 주었다.
그런데 허름한 도복을 걸친 어떤 도사가 지나다가 그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돈이 많으신데 나에게도 좀 나눠
주십시오.' '도사님이 갖고 싶은 만큼 가져가십시오.' 도사는 동냥그릇에 담긴 동전을 모두 쏟았다.
그 부인은 본 듯 만 듯 하여 전혀 불쾌한 기색도 없었다. 이틀 뒤, 도사는 부인에게 다시 와서는 돈을 달라고 했다.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도사는 동전을 모두 털어갔다. 며칠 지난 후 날이 어두워 질 무렵에 그 구걸하는 부인
이 막 자리를 거두려고 하는데 전에 그 허름한 도사가 다시 와서 돈을 달라고 말했다. 부인은 '다는 안 되고 조금
은 남겨 놓으세요.' '아니오. 나는 전부 가져가야겠습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부인은 완강히 거절했다.
'몇 푼은 남겨 놓아야 늙은 시어머니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지난번엔 두 번이나 전부 가져갔는데 그때는 아무
소리도 없었잖습니까?' '그때는 도사님께서 일찍 오셨기에 다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땐 아직 구걸할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해가 저물어 나도 돌아가야 하기에 다 드릴수가 없습니다.'
'부인은 어렵게 구걸한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왜 나에게 다 주었습니까?' '그야 원래 그 돈이 내 돈이 아니지요.
남이 나에게 베푼 것이니 저도 남에게 베푸는 것이 마땅하지요. 더구나 도사님들은 선심으로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니 당연하지요.' '부인께서는 여기에 매일 나오시는지요?' '아닙니다. 다음 날 먹을 양식이 없을
때면 잠깐씩 나와 앉아 있습니다. 구걸하여서 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지만 저는 그런 생각 없습니다.' '집에는
누가 계시는 지요?' '남편은 병으로 죽었지요. 재가 전생에 착한 일을 한 적이 없는지 자식도 없고, 늙은신 시어
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도사는 속으로 정말 착하고 현명한 며느리라 생각했다.
그 부인은 덤덤하게 말을 마치자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도사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일어서서 걷지를 못하십니까?' '도사님 저는 오래전부터 반신불수의 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기어서
이 다리까지 왔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보다는 늙으신 시어머니가 계서서.' '이처럼 착한 며느리가 이처럼 고생
을 하다니! 부인, 내가 비록 가난한 도사이지만 약간의 돈이 있습니다. 아마 시어머니와 오랫동안 먹고 살 수
있으니 드리겠습니다.' '도사님! 그 돈이 어디 도사님 돈이겠어요?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착한 분을 누군들
버릴 수 있겠습니까?' 도사는 부인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나시오.' 가난한 부인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잡았다.
얼굴이 약간의 고통스런 표정이었으나 곧 바로 평온을 다시 찾은 듯 차분한 얼굴로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그 얼굴엔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듯 엄숙함이 있었다. '여기 그대로 서 계세요. 내가 물을 한 모금 떠다 드리겠습
니다.' 도사는 급히 다리 아래로 내려가 그릇에 물을 떠 들고 왔다. '부인, 이 물을 마시면 모든 병이 다 나을 것입
니다.' 그 부인이 꿀꺽꿀꺽 물을 다 마시자, 다시 도사는 말했다. '자 나를 따라 걸어 보십시오.' 부인은 도사가
시키는 대로 한 발자욱 씩 걸었다.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인은 눈물을 줄줄 흘리
면서 걸음을 떼어 놓고 있었다. 도사는 부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허리에서 자루를 하나 풀어 놓으며 말했다. '이 자루 속에 든 돈은 모두 부인 것입니다.' 부인은 무릎을
꿇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없이 했다. 그리고 도사의 존호를 물었다. 도포를 잡고 매달리며 이름을 알려 달라는데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여 동빈 입니다.' 그 부인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할 때 이미 여 동빈의 종적은 간 데 없었다. 어느날
시장 거리에 한 도사가 나타났다. 짚신에 도복을 입은 그는 등에 칼을 메고, 손에는 먼지 떨이개 같은 불진을
들어 차림새를 보아서는 결코 거지가 아닌데도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구걸하는 도사
를 불쌍히 여겨 한두 푼씩 조그만 항아리 안에 던져 주었다. 그 도사의 동냥 항아리는 밥그릇보다도 더 작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적선하는 사람이 많아 그 작은 항아리는 벌써 동전이 가득 찼어야 했다. 도사는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항아리는 계속 비어 있는 듯 했다.
행인들도 이상해서 도사를 둘러싸고 너도나도 한두 푼씩 동전을 넣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조그만 돌맹이를
집어넣으며 떠들썩 했다. 그때 어떤 화상이 어린 동자승과 함께 짐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짐수레에 가득 찬 것은
시주로 모은 절에 쓸 돈이었다. 그 스님은 '가득 찰 수 없는 조그만 항아리' 때문에 떠드는 사람들을 제치고,
'저 것은 분명히 눈 속임수야! 한 자루의 돈이면 저 항아리 백개는 채울수 있지.' 중얼거리며 그 도사에게 엄숙하
게 말했다. '여보게 도우여, 그것은 요사한 눈속임이요. 어찌 그 조그만 항아리를 다 채우지 못하셨습니까?'
스님은 도사의 속임수를 파헤쳐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 주고 싶었다.
그는 수레에서 동전 한 자루를 갖다놓고 항아리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이고
끝이 없이 채워지지 않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한 자루 더, 한 자루 더 하다가 끝내는 한 수레
의 동전이 작은 항아리 속으로 사라졌다. '요술이야. 이건 정말 요사한 속임수야!' 그 화상은 펄펄 뛰며 소리치며,
도사를 움켜쥐고 관가에 가서 옳고 그른 것을 따지자고 억지를 부렸다. 도사는 '서둘지 마시오. 내 곧 돌려주겠
소.' 하고 종이쪽을 작은 항아리 속에 집어넣으면서 '빨리 내 오너라'하고 말했다. 그러나 한동안 아무 기척이
없었다. 화상은 더욱 조급하게 재촉을 해 댔다.
도사는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내가 들어가서 찾아 봐야 겠소!' 하고는 조그만 항아리를 길 가운데 놓고 도포자락
을 휘저으며 항아리를 향하여 펄쩍 뛰었다. 그러자 도사는 새끼 손가락만큼 작아지더니 그대로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 소리나 움직임이 없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 하고 있으나 그 화상은 거렁뱅이 도사에게 완전
히 속았다고 분통해하며 더 참지 못하고 커다란 몽둥이로 항아리를 힘껏 내리쳤다.
항아리는 박살이 났으나 도사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만 거기에는 아까 집어넣은 종이 쪽지만이 남아 있었다.
'진실은 언제나 진실 그대로인데, 진실을 보고도 깨닫지 못 하는구나. 웃으면서 다시 만날 것이니 동평으로
오시오.' 그 화상은 종이 쪽지를 한 번 훑어 보고는 화는 화대로 나고 잘 알지도 못하겠고 빈 수레를 타고 가다
보니
동평이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화상은 빈 수레에서 내려 앞을 주시하며 빨리 걸었다. 그런데 저 앞에 아까 그
거렁뱅이 도사가 앉아 있었다. 화상이 다가가자 도사가 말을 했다. '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이요.' '내 돈이나
돌려주신다면---.' 그러자 도사는 손을 내 저으면서 말했다.
'저 수레에 이미 있을꺼요' 마침 어린 동자승이 '대사님, 돈이 여기 그냥 있어요!' 하고 소리쳤다.
화상은 깜짝 놀라며 '제발 도사님의 존함이나 ---.' '나는 여동빈이라 합니다, 내 생각으론 화상과 내가 인연이
있어 이 속된 세상 벗어날 방법이나 말해 주려 했는데 돈 냄새를 뿌리치지 못하니 우리 인연은 이미 끝났소!'
화상이 아무리 돈 냄새에 젖었지만 그래도 그 유명한 여동빈을 모르랴만, 화상이 급히 꿇어 않으며 머리를 조아
렸다.그러나 여동빈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呂洞賓
道敎八仙之一。이름 名巖,자字 洞賓,자호自號「순양자 純陽子」。당경조부인 唐京兆府(현재의 섬서성
장안현 今陝西省長安縣)人。회시에를 거쳐 진사에 올라 현령이 되었다曾以進士授縣令。그의 모친의 출생지
他的母親要生他的時候,屋裏異香撲鼻,空中仙樂陣陣,一隻白鶴自天而下,非如他母親的帳中就消失。
生下呂洞賓果然氣度不凡,自小聰明過人,日記萬言,過目成誦,出口成章,長大後「身長八尺二寸,喜頂華陽巾,
衣黃欄杉,系一白+匕條+革(木제거),狀類張子房,二十不娶。」當在襁褓時,馬祖見到就說:「此兒骨相不凡,
自市風塵物處。他時遇盧則居,見鍾則手+口,留心記取。」
後來呂洞賓游廬山,遇火龍眞人,傳授天遁劍法。六十四歲時,游長安,在酒肆遇見一位羽士靑一白袍,在牆壁
上題詩,呂洞賓見他狀貌奇古,詩意飄逸,問他姓名。羽士說:「我是雲房先生。居於終南山鶴嶺,니想足+艮
我一起去口+馬 ? 」呂洞賓凡心未已,沒有答應。這位雲房先生就是「鍾離權」。
到了晩上,鍾離權和呂洞賓一同留宿在酒肆中。雲房先生獨自爲他做飯,這時呂洞賓睡著了,他夢見自己狀元
及第,官場得意,子孫滿堂,極盡榮華。忽然獲重罪,家産被沒收,妻離子散,到老後了然一身,窮苦僚(人대신
水)倒,獨自站在風雪中發手+斗,剛要嘆息,突然夢醒,鍾離權的飯還沒熟,於是鍾離權題詩一首「黃良猶未熟,
一夢到華肴。」呂洞賓驚道:「難道先生知道我的夢 ? 」鍾離權道:「니剛才的夢,生沆(모자제거)萬態,榮辱
千端,五十歲如一刹那口+牙 ! 得到的不値得歡喜,失去的也不値得悲,人生就像一場夢。」於是呂洞賓下決心
和鍾離權學道,幷經「十試」的考驗,鍾離權授他道法。呂洞賓有了道術和天遁劍法,斬妖除害爲民造福。
呂洞賓被全眞敎奉爲北方五祖之一(王玄甫,鍾離權,呂洞賓,劉操,王重陽),世稱呂祖、純陽祖師,
呂洞賓在八仙中最爲出名,有關他的傳說흔多。
출처 : [기타] http://www.muhupin.x-y.net/cj128.htm
여동빈(呂洞賓)
여동빈(呂洞賓)은 이름은 경(琼)이고 자는 백옥(伯玉)이었으며 또 소선(紹先)이라고도 했는데, 출가 후에 암(岩)
으로 개명하고 자를 동빈(洞賓)이라 했으며 자호는 ‘순양자(純陽子)’였다.
여동빈은 만당(晩唐) 때 관서하(關西河) 중부(中府) 승낙현(承樂縣: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영락현(永樂縣)) 사람
이다. 현 안에는 만수궁(萬壽宮)이 있는데 그가 예전에 살던 옛 거주지라고 전해진다. 그는 정원(貞元) 12년(서기
797년) 4월 14일에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고 크고 난 후에는 풍채가 당당하였으나 두 번 경성에 들어가 시험에 응시하여 모두 낙방
하고는 한종리(漢鍾離)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선인을 두루 찾아 도를 배웠다. 또 다른 말이 있는데, 여동빈이
64세에 진사로 급제하여 현령을 두 번 역임하고 후에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며 한종리를 만나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해에 한종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는 천성적으로 총명하여 속세를 초탈하여 신선이 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다만 노력을 기울여도 최고 절정에 이르지 못하면 설사 선인을 두루 찾는 방법은 배울
수 있으나 진정으로 신선이 되기는 매우 힘들다.
이렇게 하자, 내가 우선 너에게 점철성금(点鐵成金: 손가락을 무쇠에 살짝 대어 금을 만드는 것), 화선위은(化船爲
銀: 납을 은으로 변화시키는 것)의 도술을 가르쳐 주겠다.
네가 이러한 도술로 세상의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어라. 이렇게 하면 빠르게 공덕이 쌓이게 되고 네 공이
완전히 차게 되면 내가 다시 와서 너를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 신선이 되겠다. 어떠하냐?”
여동빈은 생각을 좀 해보고 물었다. “제가 선생님의 도술을 가지고 점철성금과 화선위은을 행하여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물론 아주 좋지만, 이렇게 변화된 금과 은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려집니까?”
한종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들은 다시 원래의 철과 납으로 되돌려질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건 3천년 이후에나 있을 일이니까.” 여동빈은 이 말을 듣고 오히려 고개를 크게 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배우지 않겠습니다. 3천년 후에 이 금은을 얻은 사람들이 손해 보지 않게 말이에요.” 한종리는 이
말을 듣고 하하 웃으며 매우 칭찬했다. “너의 마음씨가 이렇게 선량하니 득도하여 신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많구나.”
후에 여동빈은 또 청계선인(淸溪仙人) 정사원(鄭思遠), 태화선인(太華仙人) 시호부(施胡浮)와 화룡진인(火龍眞人)
의 가르침을 받아 마침내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다.
여동빈은 도장(道裝)을 입고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다. 그는 선량하고 정직하며 시원스럽고 유머가 있었으며,
특별히 고명한 의사와도 같았고 학식이 풍부한 문인과도 같았다.
그는 탁월한 솜씨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고 의심스럽고 판단이 어려운 내과질병을 치유할 수 있었으며,
요괴를 굴복시켜 평민백성들을 도와주었고, 집권자들을 조롱하여 부호들의 악행을 징벌했으며, 정기를 보살펴
추악한 행위를 막았다.
그는 심지어 하늘의 규율을 두려워 하지 않고 서왕모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보통 이러한 몇 가지 말들이
전해지며 민간에 떠도는 전설은 더욱 많은데, 그 중에 일부 이야기에는 그의 교만하고 잘난 체 하는 등의 단점
을 선의로 비평함으로써 이 ‘신선’이 ‘인간적인 성질’을 아주 많이 지니고 있게 하여 더욱 활발하고 생동감 있음
을 드러내게 하는 것도 있다.
여동빈은 철괴리(鐵拐李)처럼 조롱박 하나를 가지고 다닌다. 그는 또 자웅검(雌雄劍)이라 불리는 양날 검을
등에 지고 다녔다.
여동빈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요괴를 베고 악질 토호를 제거하였고 또 선단(仙丹)과 영약을 이용하여 수많은
백성들에게 병을 치료해 주어 그를 ‘여신의(呂神醫)’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명성은 갈수록 커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朱)씨 성을 가진 의사가 있었는데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대단해 어떤 병자가 그를 ‘주신의(朱神醫)’
라고 불렀다.
이날 한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왔는데, 계속해서 신음소리를 내며 마치 큰 병이 있는 것 같았다.
주(朱)의사는 상냥한 얼굴로 그를 앉히고 맥을 짚었다.
어, 이상하다. 맥박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강약이 매우 적당했다. 설태를 보아도 유난히 상태가
좋았다.
주의사는 그의 눈빛이 형형하여 생기가 있고 오른쪽 눈썹과 오른쪽 눈 아래에 각각 검은 점 하나가 있음을
관찰했다. 아, 이제 알겠다. 그는 보통사람이 아니고 바로 신선 여동빈이구나.
주의사는 일어나 공손히 말했다.
“환영합니다. 당신은 명성이 자자하신 여신의 여동빈이시군요. 부디 여산의 진면목을 보여 주시고 많이 가르침
을 주십시오.”
상대방은 계면쩍어하며 흰 수염을 한번 만지더니 원래 모습을 드러냈다. 아, 관자놀이가 넓고 머리카락이 검고
윤기가 나며 두 눈썹이 비스듬히 날아올라 살쩍으로 들어가고 봉안의 광채는 사람을 비추니 조금도 틀림이
없이 바로 사방에 이름을 날리는 여동빈이로구나!
주의사가 마침 겸허하게 가르침을 청하려 하는데 여동빈이 선수를 쳐 입을 열었다.
“주의사, 기왕에 당신이 신의라고 하니 의술이 분명 고명하겠지요. 내가 특별히 와서 당신과 능력을 겨뤄보려고
하오.”
“그건……저는 보통 사람인데, 선생님과는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걸요. 겨룰 수 없어요!”
“아니오. 겸손 떨 거 없지.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오늘 꼭 겨루지 않으면 안돼.”
그의 말투가 너무 거만하고 방자하여 오히려 주의사로 하여금 약간의 불복감이 일게 했다. 겨룰 테면 겨루지
뭐. 단지 의사의 덕성과 의술을 겨루는 것일 뿐인데 이기고 지고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하는 일은 어쨌든 좋은 일이 아닌가.
여동빈이 말했다. “저쪽에 인가가 하나 있는데 여섯 살 된 아들이 급병에 걸려 죽은 지 얼마 안 되는데, 당신이
가서 그 아이를 살려낼 수 있겠는가?”
주의사가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일부러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시 한번 궁리를
해본 다음에 웃으며 반문했다.
“여신의, 당신은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단 말씀이오?”
“나야 당연히 살릴 수 있지. 아주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면 나도 할 수 있소.”
“당신도 할 수 있다? 그거 아주 잘됐군!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가서 그 애의 상반신을 살릴 테니 당신은
이어서 그의 하반신을 살리는 거야. 하하하……” 그는 웃으면서 주의사를 이끌고 갔다.
조금 뒤에 두 사람이 그 인가에 들어갔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여동빈은 속으로 이미 생각해 놓은 게 있었으므로 조롱박 속에서 한웅큼의 선단을 쏟아내어 가장 좋은 것 세
알을 골라 방금 죽은 아이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선단은 역시 영험하여 조금 지나니 아이가 두 눈을 뜨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여동빈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이제 당신 솜씨를 볼 때가 됐군!”
주의사는 초조함을 가라앉히고 가지고 온 환약 세 알을 쏟아 매우 자연스럽게 여동빈의 손에 쥐어 주었다.
“내 대신 좀 들고 있어요. 내가 가서 끓인 물을 따라 올 테니.”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는 다투어 말했다.
“끓인 물은 집 안에 있어요. 저희가 가서 따라 올게요.”
주의사는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제가 할게요. 제가요.”
여동빈은 손아귀의 환약을 보고 남몰래 비웃었다. ‘네가 이런 물건을 믿고 어디에 쓰려고? 흥, 정말 코미디군!’
조금 지나서 주의사가 물을 한 그릇 받쳐 들고 와서 여동빈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제 환약을 조금만 더 들고
계세요. 물이 너무 뜨거워서 제가 좀 불어서 식혀야겠어요.”
“좋소, 식히구려. 내가 들고 있으면 그만이지.”
주의사는 불고 또 불어 불을 좀 먹어보고는 또 다시 한참을 불어 식히더니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서 여동빈의 손에서 환약을 가지고 가 아이에게 먹였다.
엇, 역시 조금 지나니 아이의 두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들에 나가 펄쩍펄쩍 뛰었다.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는 매우 놀라고 기뻐 끊임없이 말했다.
“정말로 신선이시군요! 두 분 신선어른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 여동빈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의사가 그의 손을 끌고 거리로 나가자 그때서야 그가 슬그머니 물었다.
“당신……당신도 신선이오?”
“저요? 제가 무슨 신선이겠습니까. 방금 제가 당신에게 제 환약을 들고 있으라고 부탁한 것은 이 보통의 환약이
당신의 손바닥에서 선기(仙氣)를 좀 묻히게 하기 위해서였고, 또 시간이 좀 길어지자 당신의 그 선단의 효험이
자연스럽게 점차 아이의 하반신까지 옮겨 간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의지한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인간의 의사가 이렇게 총명하고 기지가 있으며 또 이렇게 겸손하고 솔직하다니, 여동빈의 하얀 얼굴이 붉어
졌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신선도 단점이 있는 것을 면하기 어려우나 고칠 수만 있으면
그래도 존경스럽고 친근한 것이다.
출생일화
여동빈의 본명은 경(?)이고, 자(字)는 백옥(伯玉)이며 또 다른 이름은 소선(紹先)이다. 출가 이후에는 이름을
암(岩)으로 고쳤고, 자는 동빈(洞賓)이다. 그는 당나라 후대, 관서 하중부 낙현사람이다. 현재 지명은 산서성
영락현이며, 그곳에 그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만수궁(萬壽宮)을 세웠다.
그는 당나라 덕종 정원(貞元) 12년(797년) 4월 14일에 출생했다고 한다.
그의 모친이 여동빈을 낳을 때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자주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며 한 마리 선학
(仙鶴)이 하늘에서 날아 내려와 침상으로 날아들다가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마조 도일(馬祖 道一)의 미래 예견
여동빈은 태어나면서부터 관상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한다. 즉 양쪽 눈썹이 길고 비스듬히 구레나룻과
이어졌고, 봉황의 눈매에 광채가 나며, 코는 높고 단정하며 왼쪽 눈썹과 왼쪽 눈 아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이렇게 기이한 조짐을 갖고 태어난 이 아이를 매우 총애하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교롭게도 불교 선종 6조 혜능대사의 손(孫)제자인 마조화상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동빈의 부친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와서 마조대사에게 보이면서 아이의 앞날을 물었다. 마조대사가 동빈
의 운명을 점쳐본 후 “이 아이는 풍모가 맑고 기이하며, 골상 또한 평범하지 않으니, 풍진을 벗어난 뛰어난
인물이다. 아이가 성장한 후 우여즉거(遇廬則居, 여를 만나면 머물고)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 종을 만나면
두드려라)하라면서 이 여덟 자를 평생 꼭 기억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나중에 마조대사가 예언한 그
여덟 자의 의미처럼 동빈은 과연 여산(廬山)에서 수행하였고, 종리권(鍾籬權)을 만나 도를 배웠다고 한다.
*마조 도일(馬祖 道一) : 당나라때 승려로 750년 전후로 활약하였으며 속성은 마(馬)씨, 통칭 마조도일, 사천성
출신으로 19세 때 출가하여 선종 6조 혜능 문하의 남악 회양(南岳 懷讓)의 법을 이었다. 강서성 홍주를 중심
으로 교화하였기 때문에 그 일파를 홍주종(洪州宗)이라고도 한다.
널리 알려진 문하생이 백장, 대매, 남천 등이며 남악의 종풍이 일시에 융성하였으며, 후일 임제종(臨濟宗)으로
발전하였다. 마조 천하라 하여 마조의 선풍이 온 세상을 덮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선(禪)을 실천하는 새로운
선종이 이 무렵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동빈의 젊은 시절, 두 차례 과거시험 낙방
여동빈은 어린 시절에 총명이 남달라 하루에 글자 만 자를 암송하고 말이 입에서 나오면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성장한 후 신장은 8척 2촌에 목덜미는 기다랗고 이마는 넓었으며, 봉(황)의 눈과 광채가 나는 눈썹에 행동거지
는 당당했다고 한다.
성격은 소박하였으나 말주변이 없었으며, 언사가 능숙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성년이 되어 김씨를 아내로 맞아
자녀 넷을 두었다. 당나라 무종(회창) 연간에 여동빈은 두 차례나 장안에 가서 과거를 보았으나 두 번 다 낙방
하였다고 한다.
장안 술집에서 선인 종리권을 만남
여동빈이 두 번째로 장안에 가서 과거에 응시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6세였다. 과거에 낙방하고 낙심한
가슴속에 쌓인 울적한 그 심정은 보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 울적한 마음을 풀기 위해
발길이 가는대로 걷다가 어느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자작하면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심정은 마치
바람 따라 거리를 떠도는 가을 낙엽처럼 의지할 바 없이 쓸쓸하였다.
바로 이때 술집으로 긴 수염에 빼어난 눈썹, 안색이 붉으레하게 빛나는 도사복장을 한 노인이 걸어 들어와
여동빈의 맞은 편 빈자리에 앉았다. 세간의 다툼이 없는 듯 사리사욕이 없고, 온화함이 넘치는 듯한 그 노인의
풍모는 여동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마주하여 술잔을 권하면서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선인 종리권 즉석에서 시를 짓다
술잔을 돌리면서 서로의 심사를 한마디씩 토로한 후, 풍채 좋은 노인은 돌연 시심이 크게 일어난 듯 술집
종업원을 불러 붓과 먹을 가져오게 하였다. 노인은 즉석에서 시를 읊으면서 붓을 들어 술집 벽 위에 다음과
같이 써내려 갔다.
坐臥常携酒一壺
좌와상휴주일호
不敎雙眼識皇都
불교쌍안식황도
乾坤許大無名姓
건곤허대무명성
疏散人間一丈夫
소산인간일장부
앉으나 누우나 언제나 한 호로의 술을 가지고 다녔고
두 눈으로는 황도(세상일)의 일을 모르도록 했다네
하늘과 땅은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이
한낱 인간세상을 떠도는 한 사내일 뿐일세.
여동빈은 시를 음미해 보고는 노인의 시풍이 표일하고 호방함을 깊이 찬탄하였다. 여동빈은 두 손을 맞잡고
가슴까지 올려 절을 하고난 후 노인에게 물었다. “비록 하늘과 땅이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다고 하였지만,
후배인 저로서는 도장께서도 칭호가 있을 것 같아 묻자옵니다. 도장의 성명 삼자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노인은 두 눈에 미소를 띠면서 “나의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은 권(權)이요.”라고 하였다.
여동빈은 ‘종리(鍾離)’ 두 글자를 듣자, 마음속에 마치 종이 울리듯 옛날 부모님이 늘 말씀하셨던 ‘마조(馬祖)
선사의 예언’이 떠올랐다. 즉 “우여즉거(遇廬則居)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하라” (廬를 만나면 머물고, 鍾을
만나면 두드려라) 문 앞에 앉은 이 기이한 노인이 내가 마땅히 두드려야 하는 종(鍾)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여동빈, 선인 종리권에게 詩로 화답하다
여동빈은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예언이 적중하는 상황을 만나자 순간 멍하였다. 이때 종리 노인이 술잔을 들며
“자, 우리 술 한 잔 합시다.”하면서 술을 권한다. 술을 마신 후 종리 노인은 “자네도 시 한수 짓는 게 어떠한가?”
하였다. 여동빈도 술 한 잔을 마시자 시심이 샘솟듯 올라와 붓을 들고 술집 벽 위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生在儒家遇太平
생재유가우태평
懸纓垂帶布衣輕
현영수대포의경
誰能世上爭名利
수능세상쟁명리
欲侍玉皇歸上淸
욕시옥황귀상청
유가 집안에 태어나 태평시대를 만났건만
갓 끈을 걸어두고 허리띠를 벗어 놓았으니 삼베옷이 가볍다(벼슬하지 않은 포의를 비유)
누가 세상과 더불어 명예와 이익을 다투겠는가?
옥황상제를 모시러 상청경으로 되돌아갈까 한다.
종리권은 여동빈의 시를 한참 물끄러미 쳐다본 후 크게 기뻐하면서 “공자는 이미 도를 향하는 마음이 있는데,
나를 따라 세상을 버리고 입산하지 않겠소?”하였다. 여동빈은 머리를 흔들며 다만 집안에 아내와 자식을 생각
하고는 아무래도 속세를 떠나기가 어려운 듯이 말하였다.
종리권은 여동빈을 한번 척 보고는 그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본 듯이 몸을 일으키면서 “ 그대와 나는 곧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지금은 우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당신은 여기 적혀있는 이 여관의 주소로 나를
찾아오라.”고 말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⑤선인 종리권과 종남산으로 입산
종남산 학정봉 동굴에서 수련하다
사제의 예가 끝난 후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의 손을 끌고서 장안교외로 갔다. 그곳에서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하여 종남(終南)산 학정(鶴頂)봉 위의 동굴 밖에 도착했다. 동굴에 들어가니 햇빛이 비추어 들어오는데 포근
하기가 봄날과 같았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큰 반석 위에 마주앉아 원화주(元和酒)를 석잔 마시고 있는데, 비취빛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은 사람이 구름을 밟고 기이한 향기를 풍기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선인 종리권에게 봉래산 천지회
모임에 같이 가자고 초대한다. 종리권은 수련서인 현결(玄訣)을 남겨놓고, 자주색 구름을 타고 하늘 저 멀리로
사라졌다. 며칠이 지난 후 종리권이 동굴로 되돌아 왔을 때 여동빈은 스승이 남겨놓고 간 현결(玄訣)을 숙독
해서 경지가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스승과 이별 - 십년 후 동정호에서 만나기로 약속
스승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동안 청계선인 정사원과 태화선인 시호부가 선인 종리권을 만나러 왔다. 여동빈은
두 분의 선인에게 절을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새들이 다투어 울고 시절이
호시절이라 선인 종리권은 흥에 겨워 시를 읊조렸다.
春氣塞空花露滴 춘기색공화로적
朝陽拍海岳雲歸 조양박해악운귀
봄기운이 공중에 가득하고 꽃에 이슬이 맺혀 떨어지는데
아침 해가 바다에서 솟아오르니 산 구름이 흩沮測囑�
스승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이 시를 동굴 입구에 새겨 놓으라고 했다. 이어서 종리권이 여동빈에게 “나는
하늘의 옥황상제를 배알하러 가려고 한다. 너는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십 년 후 동정호 악양루
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영보부법(靈寶符法)이라는 도가 비전의 수련서를 주고, 삼원삼보(三元三寶)에 관한 설법을 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두 명의 천사가 금첩(황금으로 만든 초대장)을 받들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하늘에서 봉황과 난새가 출현하고 선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인 종리권은 두 천사와 함께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갔다.
스승 종리권이 떠난 후 여동빈은 동굴에서 몇 년을 머물렀다. 수련을 한 동굴이 거대한 암석 가운데 있어 여동빈
은 동굴을 집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름을 경(瓊)에서 암(岩)으로 고치고 자(字)를 동빈(洞賓: 동굴속의 손님)
이라 하였다. 또 동빈은 이곳에서 도가의 진전(眞傳)을 모두 얻었고, 수도하여 몸속에 음의 기운(塵陰)을 모두
몰아내었으며, 순양(純陽: 순수한 양의 기운)만 몸에 남아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고 하였다.
십년 후 악양루에서 스승과 해후
종남산 학정봉 동굴을 나온 후 동빈은 누런 모자에 도사복장을 하고 호(號)를 회도인(回道人)이라 바꾸었다.
회(回)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口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암암리에 여(呂)자로 姓이 여(呂씨, 여동빈)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부터 동빈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천하를 노닐면서 사해를 집으로 삼았다. 스승 종리권과 만날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동빈은 동정호로 갔다. 악양루에 올라 10년만에 스승 종리권과 해후하였다. 종리권은 동빈을 데리고
자기의 스승 고죽진군(苦竹眞君)을 알현하였다. 고죽진군은 동빈에게 도가의 비전인 일월교병지법(日月交幷
之法)을 전수하였다.
여산에서 천둔검법을 배우다
그 후 동빈은 스승과 사조와 헤어진 후 양자강 하류 지역에 있는 천하명산 여산(廬山)에 놀러갔다가 화룡진인
(火龍眞人)을 만나 수련하게 되었다. 이 여산이야말로 일찍이 마조대사가 예언한 우여즉거(遇廬則居:여를
만나면 머문다)가 아닌가? 동빈은 여산에서 화룡진인에게서 천둔검법(天遁劍法)의 진수를 배웠다.
이때부터 동빈이 강호상에 노닐 때 항상 몸에 보검을 차고 다녔다. 선인 여동빈은 이 칼로 수많은 요마(妖魔)를
제거하고 허다한 공덕을 쌓았으므로 항상 등에 칼을 찬 모습으로 신선도(神仙圖)에 등장한다.
⑥황룡선사와 법력을 겨루다
구름 따라 무창 황룡산에 오르다
하루는 여동빈이 구름 따라 노니면서 무창 황룡산으로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중 절위에 자주색 구름이 가득
덮여 있어 이인(異人)이 있음을 알고 문득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황룡선사가 마침
법당에서 설법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여동빈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 무리들 속에 묻혀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다. 황”오늘 여기에 법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늙은 중은 설법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여동빈, 황룡선사와 선문답을 하다
여동빈은 곧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 군중 속에서 나와 예를 취하면서 말하였다.
“화상에게 묻겠습니다.
一粒粟中藏世界 일립속중장세계
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半升金當內煮山川 반승당내자산천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는 이 한 마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황룡선사가 껄껄 웃으며 여동빈을 가리키면서 “원래 당신은 시체 같은 죽지 않은 귀신이구나!” 여동빈 또한
노여움을 띠지 않은 채 눈썹을 펴면서 말하였다. “화상은 내가 늙어도 죽지 않는 것을 조롱하지 말라.
나의 호주머니 안에는 장생불사의 약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황룡선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饒究經得八萬劫 요니경득팔만겁
당신이 설사 팔만 겁을 지내왔더라도
難免一朝落空亡 난면일조락공망
하루아침에 공망에 떨어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여동빈, 황룡선사와 법력을 겨루다
여동빈은 황룡선사가 기지와 총명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황룡선사의 법력이 얼마나 고명한가를 시험해보고
싶어서 등에 차고 있는 보검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이 검은 내가 휴대하고 다니는 신령한 보검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능히 되는데 검을 칼집에서 나오라고 하면 곧 빠져 나오고, 칼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곧 들어
간다. 선사께서는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황룡선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비록 영물이지� 그것이 도력 있는 사람의 명령을 들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당신이 먼저 한번 시험해 보시오.”하였다. 여동빈은 보검한테 칼집에서 나오라고 외치자 그 검은 칼집에서
스스로 나와 은빛을 뿌리며 절 대웅전 기둥으로 날아가 검 끝이 똑바로 나무로 깎은 용의 눈에 박혔다.
황룡선사가 가볍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기둥에 박힌 보검을 가리키며 말하
였다. “내가 보건대 네가 이 검을 능히 칼집에서 끄집어낼 수는 있으나 다시 꼽을 수는 없다.”
여동빈이 잠시 놀라다가 큰소리로 웃으면서 보검을 보면서 “칼집으로 들어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보검은 기둥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검은 여동빈이 여산에서 검술을 배우고 하산한 후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그 신령스럽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여동빈이 그 황룡선사의 도와 법이 높고 깊음에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절하여 사과하면서 불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황룡선사는 여동빈의 마음이 진심과 성의 있음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당신은 이미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고 또 어떻게 한 알의 조 알 속에 세계를 감출 수 있는가를 듣지 않았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 뜻은 즉 먼저
마음속에 아무런 물건(욕심)이 없어야만 능히 삼라만상을 둘러싸 안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여동빈은 황룡
선사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오도송을 지었다.
⑦‘신선이 된 후 다시 세상에 출현하다’
황룡선사의 가르침에 오도송을 짓다
황룡선사의 ‘먼저 마음속에는 물건(욕)이 없어야만(先要心中無物) 바야흐로 삼라만상을 싸안을 수 있다(方能包
羅萬象)’는 한마디에 크게 깨달은 여동빈은 즉석에서 오도송을 지었다.
棄却瓢囊擊碎琴 기각표낭격쇄금
從今不戀汞中金 종금불연홍중금
自從一見黃龍後 자종일견황룡후
始覺當年錯用心 시각당년착용심
하나있는 표주박 주머니도 버리고, 거문고도 깨뜨려 버렸다.
이제부터 불사약(금단)에 더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네
이제 황룡선사를 한번 만나본 후
비로소 그 당시 마음 잘못 쓴 것을 깨달았다네
여동빈은 낭랑히 오도송을 읊으면서 황룡선사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표연히 떠나갔다.
여동빈, 신선이 되어 올라가다
여동빈은 세상에서 백여세까지 지내다가 무창 황학루 3층 누각 위에서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 한다.
신선이 된 후 여동빈은 걸핏하면 인간 세상에 나타났다고 한다. 역대로 그가 인간 세상에 와서 놀다가 세상과
사람을 제도한 전설이 너무 많아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중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여동빈, 200여년 후 송(宋)나라 때 악양루에 출현
宋 경력 4년(1044년), 등자경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나 파릉군 태수가 되었다. 부임한 다음해 그가 다스리던
파릉군은 정치를 잘하여 백가지 폐단이 바로 서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때 등자경은 당나라 때 연국공 장열
(張說)이 세웠던 악양루가 낡아 보수를 하였다. 악양루 보수가 끝난 날 큰 잔치를 열었다. 연회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등자경은 문득 이름만 적힌 명첩 하나를 받았다. 그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고 다만 ‘화주(華州)
도사가 삼가 문후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등태수는 사람을 보내 그 도사를 악양루 위로 올라오게 하였다. 얼굴을 보니 긴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웠고 등
뒤에는 장검을 메고 있는데 그 모습이 청수하고 기이한 도사였다. 도사는 누각 위로 올라와 등태수와 마주하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호쾌하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좌중을 압도하였다.
악양루 중창 경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술에 취한 후 각자 붓을 들고 시와 글을 짓기 시작했다.
화주도사 또한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朝游東海暮蒼梧 조유동해모창오
袖裏靑蛇膽氣粗 수리청사담기조
三醉岳陽人不識 삼취악양인불식
郞吟飛過洞庭湖 랑음비과동정호
아침에 동해에서 놀다가 저물어 창오군(광서성)으로 간다
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
악양루에서 크게 세 번 취했으나 사람들은 내가 여동빈인 것을 모르는데
낭랑히 시를 읊으면서 동정호를 날아서 지나갔다
등자경은 화주도사의 시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그 자리에 있던 화공에게 화주도사의 취한 모습을
급히 그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등태수는 친히 예를 취하면서 나아가 화주도사에게 성명을 물었다. 화주도사는
이미 모든 것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성은 ‘여’요 이름은 ‘암’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마치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작별을 고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등자경과 그 자리에 있던 문사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그 도사가 당나라 때의 유명한 도사 여동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일화를 기리기 위해 이 악양루 우측에는 삼취정(三醉亭)이 세워져 있다. 이 삼취정은 청나라 건륭 40년
(1775년)에 세워졌고, 그곳에는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모양의 여동빈 상과 그가 쓴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⑧‘중생들이여, 수행에 힘쓰라!’
이무기를 단검으로 만들다
앞에서 나온 詩 ‘수리청사담기조’(袖裏靑蛇膽氣粗: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
하다)에서 청사(靑蛇)와 관련하여 고사가 전해져 온다. 일찍이 파릉현(현재 악양) 성 남쪽 백학산에는 큰 호수가
두 개 있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이무기가 있어 민간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여동빈이
법술로 이무기를 다스려 단검으로 만들어 항상 소매 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여동빈 점쟁이로 변신
남송 때 비릉시에는 점을 잘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메고 몸에는 누런 도복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 지명(知名)선생이라 하였다. 비릉군 태수 호도는 지명선생이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지명선생을 청해서 점을 쳤다. 지명선생이 ‘당신의 수명은 매우 길고, 곧 당신의 관직에 변동이 있다. 변동 시기
는 청명절 전 5일 또는 청명 후 7일이다.’고 하였다. 고을 태수 호도는 청명 5일 전에 과연 그가 자리를 바꾸어
형문군 태수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청명 후 7일이 되자 정식으로 이동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호도는 지명선생의 신기막측한 점술에 탄복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으나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호도는 후에 형문군 태수가 된 후 친구한테 남경의 석각에 새겨진 여동빈 상을 탁본한 그림을 받았다. 지명선생
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때서야 지명(知名) 두 글자 중에는 지(知)자에 ‘口’, 명(名)자에 ‘口’가 있어 두 구(口)자
를 합한즉 ‘여(呂)’자가 아닌가? 호도는 그가 친히 겪은 이일을 자기 문집에 남겨 놓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여동빈이 하루는 구름 따라 북방으로 갔다. 하루는 거지 한 명이 길바닥에서 굶주려 아사 직전까지 간 것을
보았다.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불쌍한 중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여동빈은 법술을 사용해서
거지를 구해냈다.
그 자리에서 돌을 금으로 만들어 거지에게 주어 살아가도록 하였다. 뜻밖에 황금을 얻은 거지는 기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곧 그 거지는 욕심이 발동하여 여동빈에게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달라고 하였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니!
또 한번은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
했다. 다만 한 노파만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여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
하고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 우물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속의 술을 팔아 일년 후에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은 그 노파 집에
갔는데 마침 노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이 ‘당신들 집은 지난 일년 동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하고 물었다. 그 노파의
아들은 ‘좋기는 좋은데 단지 돼지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고 하였다. 여동빈이 탄식하면서 ‘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하면서 손을 들어 우물 속의 쌀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갔다.
노파가 외출에서 돌아와서야 우물속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 여동빈은 구름처럼 천지(天地)를 내 집으로 삼아 운유(雲遊)하였다 한다.
여동빈과 얽힌 이야기는 끝이 없으나 이 정도로 그칠까 한다.
중생들이여, 시간을 아껴 수행하라
여동빈은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헛되이 죽음으로 가는 것은 경계한 듯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후학을 경계하게 하였다.
순양여조시(純陽呂祖詩)
人身難得道難明 인신난득도난명
塑此人心訪道根 진차인심방도근
此身不向今生度 차신불향금생도
再等何時度此身 재등하신도차신
순양자 여동빈 조사가 이르시기를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
사람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
이 인간의 몸 받기가 정녕 어려운데 중생들이여, 정법을 만나 수행을 통해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시라! 간절히
희망하면서 신선 여동빈 편을 마칩니다. 다음 호부터는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는 장과로 편입니다.
관 종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html?no=1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