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의 시 한편 • 6>
6. 이면우,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中 「거미」
------------------------------------------------
거미 /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 2001)
-------------------------------------------------
<시 감상>
아테네 학당(확대)-출처:다음백과 철학적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나는 이 시를 보면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이 떠오른다. 시에서 화자가 젊은 나이였다면 거미줄을 떼어버리는 행위(즉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플라톤)를 했을 텐데, 화자는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다 보니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즉 땅을 가리키는 모습-아리스토텔레스)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 이 철학자들은 모두 이상을 중시 여긴다. 거기에다가 관념론자이다. 따라서 이 시와 그림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어디 있으랴. 그리하여 이 그림이 떠오르는 게 아닐까 싶다.
거미에 대한 시가 참으로 많지만, 애처롭지 않게, 삶을 다독이는 시이다.
<시집 감상>
시인은 스승으로 자연을 모시고 있는 듯하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은 머리가 아닌 몸을 쓰면서 살아가듯 시인도 몸을 쓰면서 살고, 몸으로 시를 쓰고 있다. 그러기에 인간사에 일어나는 일도 짐짓 자연 속의 일로 둔갑된다. <두더지> <버스 잠깐 신호등에 걸리다> <봄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어젯밤 아무 일 없었다> <여름 도시> 등등…….
(배세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