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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아발다라보경
(楞伽阿跋多羅寶經)
송(宋)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최윤옥 번역
능가아발다라보경 제4권-3
4.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에 대해 말씀하신 품[一切佛語心品]
[0508b09] 爾時,大慧菩薩摩訶薩復白佛言:「世尊!一切外道,皆起無常妄想。世尊亦說一切行無常,是生滅法。此義云何?爲邪爲正?爲有幾種無常?」
이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외도들이 다 무상(無常)이라는 망상을 일으키는데, 세존께서도 역시‘모든 행(行)은 무상하니, 이것이 생멸법(生滅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뜻은 무엇입니까? 그릇된 것입니까, 바른 것입니까? 몇 종류의 무상이 있습니까?”
[0508b12] 佛告大慧:「一切外道有七種無常,非我法也。何等爲七?彼有說言,作已而捨,是名無常。有說形處壞,是名無常。有說卽色是無常。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외도에는 일곱 종류의 무상이 있으니, 이는 내가 설한 법이 아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그들은‘만들고 나서 버리니, 이것을 무상이라고 한다’고 말하고, 또‘형처(形處)가 무너지니 이를 무상이라고 한다’고 말하고,‘바로 물질[色]이 곧 무상이다’고 말한다.
有說色轉變中間,是名無常。無間自之散壞,如乳酪等轉變,中間不可見,無常毀壞,一切性轉。有說性無常。有說性無性無常。有說一切法不生無常,入一切法。
‘물질이 전변(轉變)하는 중간을 무상이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틈이 없이 스스로 흩어지고 무너지는 것이 마치 우유와 낙(酪) 등과 같아서 전변하는 중간은 볼 수 없으나, 무상하여 모든 성품을 무너뜨리고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또‘성품이 무상하다’고 말하고,‘성품[性]과 성품 없음[無性]이 무상하다’고 말하며,‘모든 법은 생기지 않으므로 무상하여 모든 법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大慧!性無性無常者,謂四大及所造自相壞。四大自性不可得,不生。彼不生無常者,非常無常。
대혜야,‘성품과 성품 없음이 무상하다’는 것은 4대(大)와 4대로 만들어진 것들은 자상(自相)이 무너지고, 4대의 자성(自性)은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생기지 않으므로 무상하다’는 것은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다.
一切法有無不生,分析乃至微塵不可見,是不生義非生,是名不生無常相。若不覺此者,墮一切外道生無常義。
모든 법은 있든 없든 생기지 않으므로 미진(微塵)까지 쪼개어도 볼 수가 없다. 이것은 생기지 않는다는 이치이며 생긴다는 것이 아니다. 이를‘생기지 않으므로 무상한 모습’이라고 한다. 만일 이를 깨닫지 못하면 모든 외도에 떨어져 무상하다는 뜻을 일으킨다.
大慧!性無常者,是自心妄想,非常無常性。所以者何?謂無常自性不壞。
대혜야,‘성품이 무상하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망상이니, 영원한 성품도 아니고 무상한 성품도 아니다. 왜냐하면 무상(無常)의 자성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大慧!此是一切性無性無常事。除無常,無有能令一切法性無性者。
대혜야, 이것이 바로 모든 성품과 성품 없음이 무상한 일[無常事]이라는 것이다. 무상을 제외하고는 모든 법의 성품을 성품이 없게 하는 것은 없다.
如杖瓦石,破壞諸物。現見各各不異,是性無常事,非作所作有差別。此是無常,此是事。
마치 몽둥이나 기와나 돌로 모든 물건을 깨뜨릴지라도 현전(現前)에서 각각 다르지 않음을 보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성품의 무상한 일’이다. 짓는 자와 지어진 것에 차별이 있는 것이 무상(無常)이고 이것이 사(事)라는 게 아니다.
作所作無異者,一切性常,無因性。
‘짓는 자와 지어진 것에 다름이 없다’는 것은 모든 성품이 영원하여 인성(因性)이 없다는 것이다.
大慧!一切性無性有因,非凡愚所知,非因不相似事生。
대혜야, 모든 성품과 성품 없음에는 인(因)이 있으나, 이는 어리석은 범부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슷하지 않은 것들이 인이 되어서 사(事)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若生者,一切性悉皆無常。是不相似事。作所作無有別異。而悉見有異。若性無常者,墮作因性相。
만일 생긴다면 모든 성품은 다 무상할 것이다. 비슷하지 않은 것과 사(事)가 짓는 자 와 지어진 것이 되지만 따로 다른 것이 없는데 모두들 다른 것이 있다고 본다. 만일 성품이 무상하다면 짓는 인[作因]의 성품과 상(相)에 떨어진다.
若墮者一切性不究竟。一切性作因相墮者,自無常應無常。無常無常故,一切性不無常,應是常。
만일 떨어진다면 모든 성품이 구경(究竟)이 아닐 것이며, 모든 성품이 짓는 인[作因]의 상(相)에 떨어진다면 무상 자체가 무상해야만 할 것이니, 무상도 무상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품이 무상하지 않다면 반드시 이것은 상(常)이어야 한다.
若無常入一切性者,應墮三世。彼過去色與壞俱,未來不生,色不生故,現在色與壞相俱。
만일 무상이 모든 성에 들어간다면 반드시 3세에 떨어질 것이다. 저 과거의 물질이 무너졌으므로 미래에 생기지 않을 것이며, 물질이 생기지 않으므로 현재의 물질도 무너지는 모습과 함께할 것이다.
色者,四大積集差別。四大及造色自性不壞,離異不異故。一切外道一切四大不壞,一切三有四大及造色,在所知有生滅。
물질이란 4대(大)가 모여진 차별이나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의 자성(自性)은 무너지지 않으니, 다르거나 다르지 않은 것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모든 외도의 4대는 무너지지 않으므로, 모든 3유(有)의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이 가는 곳마다 생기는 것과 없어지는 것이 있음을 안다.
離四大造色,一切外道於何所思惟無常?四大不生,自性相不壞故。離始造無常者,非四大。復有異四大,各各異相。自相故,非差別可得,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을 벗어나면, 모든 외도가 어느 것을 무상(無常)하다고 생각하겠느냐? 4대는 생겨나지 않으니 자성의 모습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만든 자[始造]를 벗어나면, 무상이란 4대 안에 다시 다른 4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각각 다른 모습의 제 모습이니, 차별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彼無差別。斯等不更造,二方便不作,當知是無常。彼形處壞無常者,謂四大及造色不壞,至竟不壞。
저것이 차별이 없으므로 이것들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으니, 두 가지 방편을 짓지 않는다. 이것이 무상인 줄을 알아야 한다. 저‘형처(形處)가 무너져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이 무너지지 않아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大慧!竟者,分析乃至微塵觀察壞。四大及造色形處異見長短不可得,非四大。
대혜야,‘마지막까지’라 함은 쪼개어 미진이 되기까지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이 무너지는 것을 관찰하면 형처(形處)가 다르게 보이거나, 길고 짧은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니, 이는 4대가 아니다.
四大不壞,形處壞現。墮在數論。色卽無常者,謂色卽是無常。彼則形處無常,非四大。若四大無常者,非俗數言說。
4대는 무너지지 않는다. 형처가 무너지는 것이 나타나면 수론(數論)에 치우치게 된다.‘물질이 무상하다’는 것은 물질이 곧 무상한 것을 말한다. 저것은 형처(形處)가 무상한 것이지 4대가 무상한 것이 아니다. 만약 4대가 무상하다고 하면 세속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世俗言說非性者,則墮世論。見一切性,但有言說,不見自相生。轉變無常者。謂色異性現,非四大。
세속의 말로는‘성품이 아니다[非性]’라고 하는 것이니, 이는 세론(世論)에 떨어진다. 모든 성품을 보면 단지 말만 있을 뿐인데, 자기 모습이 전변(轉變)하여 무상한 것을 생기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는 물질이 성품과 다른 것으로 나타나므로 4대가 아니라고 한다.
如金,作莊嚴具,轉變現,非金性壞,但莊嚴具處所壞。如是餘性轉變等,亦如是。
마치 금으로 장엄구(莊嚴具)를 만들어 모습이 변해 나타나면, 이는 금의 성품이 파괴된 것이 아니고 단지 장엄구로 모양만 변한 것과 같다. 처소(處所)가 파괴되는 것도 이와 같다. 나머지 성품이 전변되는 것 등도 역시 이와 같다.
如是等種種外道無常見妄想。火燒四大時,自相不燒。各各自相相壞者,四大造色應斷。
이와 같은 등의 온갖 외도의 무상하다는 견해는 망상이다, 불이 4대를 태울 때 자상(自相)은 타지 않는다. 각각의 자상이 서로 무너진다면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은 반드시 끊어져야 할 것이다.
大慧!我法起非常非無常。所以者何?謂外性不決定故。惟說三有微心,不說種種相有生有滅。
대혜야, 내가 설한 법은 일어나되[起],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다. 왜냐하면 바깥 경계의 성품은 결정(決定)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3유(有)와 미세한 마음만 말할 뿐, 갖가지 모습의 생김과 없어짐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四大合會差別,四大及造色,故妄想二種事攝所攝。知二種妄想,離外性無性二種見,覺自心現量。妄想者,思想作行生,非不作行。離心性無性妄想,
4대가 화합하는데 차별이 있으니, 4대와 4대로 만들어진 물질이기 때문이다. 망상에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두 가지가 망상인 줄을 알고, 바깥 경계의 성품이 있다거나 성품이 없다는 두 가지 견해를 벗어나 자심 현량의 망상인 줄 깨닫는 자는, 생각해서 행(行)을 지어 행을 짓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성품이 있다거나 성품이 없다는 망상을 벗어난다.
世間出世間上上一切法,非常非無常。不覺自心現量,墮二邊惡見相續。一切外道不覺自妄想,此凡夫無有根本,謂世間、出世間上上法,從說妄想生,非凡愚所覺。」
세간과 출세간에서 가장 높은 모든 법이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어서 자심의 현량인 줄 깨닫지 못하고, 두 극단에 떨어져 악한 견해가 끊임없이 계속되는데도 모든 외도들은 자기의 망상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범부가 근본이 없어 세간과 출세간의 가장 높은 법이라고 하며 말에 따라 망상을 일으키는 것이니, 어리석은 범부가 깨달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0509a08]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遠離於始造, 及與形處異,
性與色無常, 外道愚妄想。
諸性無有壞, 大大自性住,
外道無常想, 沒在種種見。
彼諸外道等, 無若生若滅,
大大性自常, 何謂無常想?
一切唯心量, 二種心流轉,
攝受及所攝, 無有我我所。
梵天爲樹根, 枝條普周遍,
如是我所說, 惟是彼心量。」
이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처음 만든 자를 멀리 벗어나고
또한 형처(形處)가 다르다며
성품과 물질이 무상하다고 하니
이는 외도의 어리석은 망상이다.
모든 성품이란 무너짐이 없는 것
크고 큰 자성(自性)이 머무르는데
외도는 무상하다고 생각하며
온갖 견해에 빠진다.
저 모든 외도들
없다고 하고 생긴다거나 없어진다고 하는데
크고 큰 성품은 스스로 영원하니
무엇을 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것은 오직 심량(心量)이니
두 가지 마음이 유전(流轉)하며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것일 뿐
나[我]도 나의 것[我所]도 없다.
범천(梵天)이 뿌리가 되어
가지가 되어 두루 덮듯이
내가 말한 것도 이와 같아
오직 저 심량(心量)일 뿐이다.
[0509a20] 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惟願爲說一切菩薩、聲聞、緣覺滅正受次第相續。若善於滅正受次第相續相者,我及餘菩薩終不妄捨滅正受樂門,不墮一切聲聞、緣覺、外道愚癡。」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모든 보살과 성문과 연각이 멸정수(滅正受)에 이르고 상속하는 차례를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멸정수의 상속하는 차례를 잘 알면 저를 비롯한 나머지 보살들은 끝내 멸정수의 즐거움이라는 문(門)을 망령되게 버리지 않을 것이며, 모든 성문이나 연각이나 외도의 어리석음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0509a24] 佛告大慧:「諦聽,諦聽!善思念之,當爲汝說。」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를 위해 말하겠다.”
[0509a25] 大慧白佛言:「世尊!惟願爲說。」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0509a25] 佛告大慧:「六地起菩薩摩訶薩及聲聞、緣覺,入滅正受。第七地菩薩摩訶薩,念念正受,離一切性自性相正受,非聲聞、緣覺。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6지(地)에서 보살마하살과 성문과 연각이 멸정수에 들기 시작한다. 제7지의 보살마하살은 생각마다 정수(正受)에 들어서 모든 성자성(性自性)의 모습을 벗어나는 정수에 드니, 성문이나 연각과는 다르다.
諸聲聞、緣覺,墮有行,攝所攝相滅正受,是故七地非念正受。得一切法無差別相,非分得種種相性,覺一切法善不善性相正受,是故七地無善念正受。
모든 성문과 연각은 있다는 생각에 치우쳐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행하며 멸정수에 든다. 그러므로 7지는 염정수(念正受)가 아니니, 모든 법의 차별 없는 모습을 얻는 것은 그 분(分)이 아니어서 모든 상성(相性)을 얻고, 일체법선불선성상정수(一切法善不善性相正受)를 깨달을 뿐이다. 그러므로 7지는 선념정수(善念正受)가 없다.
大慧!八地菩薩及聲聞、緣覺,心、意、意識妄想相滅。初地乃至七地菩薩摩訶薩,觀三界心、意、意識量,離我我所,自妄想修,墮外性種種相。
대혜야, 8지 보살과 성문과 연각은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의 망상된 모습이 없어진다. 초지(初地)에서 7지에 이르는 보살마하살은 삼계가 심ㆍ의ㆍ의식의 양(量)임을 관찰하고 나와 나의 것을 벗어나지만, 자기 망상을 닦아 바깥 경계의 성품이라는 온갖 모습에 떨어진다.
愚夫二種自心,攝所攝,向無知,不覺無始過惡,虛僞習氣所薰。
어리석은 범부는 두 가지 자기 마음 즉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으므로, 무지(無知)로 향하면서 끝없는 옛날부터 허물과 악과 거짓된 습기에 의해 훈습된 것인 줄 깨닫지 못한다.
大慧!八地菩薩摩訶薩、聲聞、緣覺涅槃。菩薩者,三昧覺所持,是故三昧門樂,不般涅槃。若不持者,如來地不滿足,棄捨一切爲衆生事,佛種則斷,諸佛世尊爲示如來不可思議無量功德。聲聞、緣覺三昧門,得樂所牽故,作涅槃想。
대혜야, 8지 보살마하살은 성문과 연각의 열반이니, 보살이란 삼매각(三昧覺)의 보호를 받으므로, 삼매문(三昧門)을 즐기고 열반에는 들지 않는다. 만일 보호받지 않는다면, 여래지(如來地)를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중생을 위한 모든 일을 버릴 것이므로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리라. 모든 부처님 세존이 여래의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공덕을 보여 주는데도 성문과 연각은 삼매문에서 얻은 즐거움에 이끌려 열반이라는 생각을 한다.
大慧!我分部七地,善修心、意、意識相,善修我我所,攝受人法無我,生滅自共相,善四無礙,決定力三昧門,地次第相續,入道品法。
대혜야, 내가 나눈 7지는 심ㆍ의ㆍ의식의 모습을 잘 닦고, 나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들,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 생멸하는 것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잘 닦아 4무애(無碍)의 확고한 힘을 가진 삼매문에 능통해 지위가 차례로 상속하고 도품법(道品法)에 들어가는 것이다.
不令菩薩摩訶薩不覺自共相,不善七地,墮外道邪徑,故立地次第。
보살마하살이 자상과 공상을 깨닫지 못하거나 7지를 잘 알지 못하여 외도의 그릇된 길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위를 차례로 세운 것이다.
大慧!彼實無有若生若滅,除自心現量。所謂地次第相續,及三界種種行,愚夫所不覺。愚夫所不覺者,謂我及諸佛說地次第相續,及說三界種種行。
대혜야, 저것이 실은 생멸이 없는 것이니, 자심(自心)의 현량(現量)일 뿐이다. 차례로 상속하는 지위와 삼계의 온갖 행을 어리석은 범부는 깨달을 수 없다. 어리석은 범부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은, 나와 모든 부처가 말한 지위의 차례와 상속과 그리고 삼계의 갖가지 행을 말한다.
[0509b21] 「復次,大慧!聲聞、緣覺、第八菩薩地,滅三昧樂門醉所醉,不善自心現量,自共相習氣所障。墮人法無我法攝受見,妄想涅槃想,非寂滅智慧覺。
또 대혜야, 성문이나 연각이나 제8 보살지(菩薩地)에서는 멸삼매(滅三昧)의 즐거움이라는 술에 취해 자심의 현량임을 능통하지 못하고, 자상과 공상의 습기에 가리며, 인(人)과 법(法)이 무아(無我)여서 모두 법에 포섭된다는 견해에 떨어져 망상으로 열반이라는 생각을 하니, 적멸한 지혜의 깨달음이 아니다.
大慧!菩薩者,見滅三昧門樂,本願哀愍,大悲成就,知分別十無盡句,不妄想涅槃想。彼已涅槃妄想不生故,離攝所攝妄想。覺了自心現量,一切諸法妄想不生。不墮心、意、意識,外性自性相計著妄想。
대혜야, 보살이란 멸삼매문(滅三昧門)의 즐거움을 보고도 본원(本願)으로 불쌍히 여겨 커다란 자비심을 성취해 10무진구(無盡句)를 분별해 알며, 망상으로 열반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미 열반이라는 망상이 생기지 않는 까닭에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망상을 벗어난다. 자심의 현량을 명료하게 깨달아 모든 법에 대해 망상이 생기지 않으므로 심ㆍ의ㆍ의식으로 바깥 경계의 성자성(性自性)의 모습에 계착하는 망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非佛法因不生,隨智慧生,得如來自覺地。如人夢中方便度水,未度而覺。覺已思惟,爲正爲邪?非正非邪。
불법(佛法)의 인(因)이 아니면 지혜가 생기지 않으니, 지혜를 따라야 여래의 자각지(自覺地)에 태어날 수 있다. 마치 사람이 꿈에서 방편(方便)으로 물을 건너다가 미처 건너기 전에 깨어나서‘바른 방편인가, 그릇된 방편인가’를 생각하지만 바른 것도 아니고 그릇된 것도 아닌 것과 같다.
餘無始見聞覺識因想,種種習氣,種種形處,墮有無想,心、意、意識夢現。
그 밖에 끝없는 옛날부터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의 인(因)이 되는 것은 생각이므로, 온갖 습기와 온갖 형처가 생각이 있고 없는 데 따라, 심ㆍ의ㆍ의식의 꿈에 나타난다.
大慧!如是菩薩摩訶薩,於第八菩薩地,見妄想生。從初地轉進至第七地,見一切法如幻等,方便度攝所攝心妄想,行已,作佛法方便,未得者令得。
대혜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제8 보살지에서 망상이 생기는 것을 본다. 초지(初地)에서 점점 나아가 제7지(地)에 이를 때까지는‘모든 법은 환(幻)과 같다’는 등의 방편을 알아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마음의 망상의 행을 건넌다. 그러고 나서 불법(佛法)의 방편을 써서 얻지 못한 사람을 얻게 한다.
大慧!此是菩薩涅槃方便不懷,離心、意、意識,得無生法忍。大慧!於第一義無次第相續,說無所有妄想寂滅法。」
대혜야, 이것이 곧 보살의 열반이니, 방편이라는 생각을 품지 않고 심ㆍ의ㆍ의식을 벗어나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대혜야, 제일의(第一義)에는 상속하는 차례가 없으니, 모든 망상이 없는 것을 적멸한 법이라고 한다.”
[0509c10]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心量無所有, 此住及佛地,
去來及現在, 三世諸佛說。
心量地第七, 無所有第八,
二地名爲住, 佛地名最勝。
自覺智及淨, 此則是我地,
自在最勝處, 淸淨妙莊嚴。
照曜如盛火, 光明悉遍至,
熾炎不壞目, 周輪化三有。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심량(心量)이 없는 것
여기에 머물면 불지(佛地)에 이른다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
3세의 모든 부처님이 말한다.
심량의 지위는 제7지이고
소유(所有)가 없는 것은 제8지이니
두 지위를 주(住)라 하고
불지(佛地)를 최승(最勝)이라 한다.
스스로 깨닫는 지혜와 깨끗함
이것이 곧 나의 자리이니
자재(自在)하고 가장 훌륭한 곳
청정하고 묘하게 장엄하였다.
왕성한 불꽃처럼 밝게 비치니
광명이 모든 곳에 두루 이르며
타오르는 불꽃 눈을 상하게 하지 않고
두루 돌며 3유(有)를 교화하네.
化現在三有, 或有先時化,
於彼演說乘, 皆是如來地。
十地則爲初, 初則爲八地,
第九則爲七, 七亦復爲八;
第二爲第三, 第四爲第五,
第三爲第六, 無所有何次。」
현재의 3유를 교화시키고
혹 과거에도 교화해
거기에서 승(乘)을 연설하니
모두 이 여래지(如來地)이다.
10지가 곧 초지(初地)가 되고
초지가 곧 8지가 되며
제9지가 곧 7지가 되고
7지 역시 다시 8지가 된다.
제2지가 제3지가 되고
제4지가 제5지가 되며
제3지가 제6지가 되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무슨 차례 있겠는가.
[0509c25] 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如來、應供、等正覺,爲常無常?」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영원합니까[常], 무상합니까[無常]?”
[0509c26] 佛告大慧:「如來、應供、等正覺,非常非無常。謂二俱有過。常者,有作主過。常者,一切外道說作者。無所作,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니, 둘 다 허물이 있다. 상(常)에는 짓는 자[作者]가 있다는 허물이 있다. 상이란 모든 외도가 ‘짓는 자[作者]는 만들어진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是故如來常非常,非作常有過故。若如來無常者,有作無常過。陰所相,相無性,陰壞則應斷,而如來不斷。
그러므로 여래는 상(常)이기도 하고 비상(非常)이기도 하니, 짓는 자는 항상 있다는 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여래가 무상하다면 짓는 자가 무상하다는 허물이 있다. 음(陰)은 형상과 형상이 나타내는 것의 본성이 없으므로 음이 무너지면 끝나야 할 것이나, 여래는 끝나지 않는다.
大慧!一切所作皆無常,如瓶衣等,一切皆無常過。一切智衆具方便應無義,以所作故。一切所作皆應是如來,無差別因性故。是故,大慧!如來非常非無常。
대혜야, 모든 지어진 것[所作]은 무상하여 병(甁)이나 옷[衣] 등과 같다고 하면, 모두 다 영원하다[常]는 허물은 없다. 그러나 일체지(一切智)의 여러 가지 방편에는 의(義)가 없다는 허물이 있으니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며, 모든 지어진 것[所作]은 반드시 이 여래이어야 할 것이니 차별된 인성(因性)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혜야, 여래는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다.
[0510a05] 「復次,大慧!如來非如虛空常。如虛空常者,自覺聖智衆具無義過。大慧!譬如虛空,非常非無常。離常無常、一異、俱不俱、常無常過,故不可說。是故如來非常。
또 대혜야, 여래는 허공과 같은 상이 아니다. 허공과 같은 상이라면, 자각성지(自覺聖智)의 여러 가닥이 의(義)가 없다는 허물이 있다. 대혜야, 이는 마치 허공이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 것과 같아, 상과 무상, 같음과 다름, 함께함과 함께하지 않음을 벗어나니, 상이라거나 무상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으며 따라서 여래는 상이 아니다.
[0510a09] 「復次,大慧!若如來無生常者,如兔馬等角。以無生常故,方便無義。以無生常過故。如來非常。
또 대혜야, 만약 여래가 생김이 없어서 상이라면, 이는 마치 토끼나 말 등의 뿔과 같을 것이니, 생김이 없어서 상이기 때문에 방편에 의(義)가 없는 허물이 된다. 생김이 없으므로 상이라는 허물이 있기 때문에, 여래는 상이 아니다.
[0510a11] 「復次,大慧!更有餘事知如來常。所以者何?謂無間所得智常,故如來常。大慧!若如來出世,若不出世,法畢定住。聲聞、緣覺、諸佛如來,無間住,不住虛空,亦非愚夫之所覺知。大慧!如來所得智,是般若所熏。
또 대혜야, 다시 다른 일이 있어 여래가 상인 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얻은 지혜가 영원한 까닭에 여래는 상이다. 대혜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건 세상에 출현하지 않건 간에 법은 끝내 일정하게 머물며, 성문이나 연각이나 모든 부처님 여래는 무간(無間)에 머물지 허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어리석은 범부가 깨달을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대혜야, 여래가 얻은 지혜는 곧 반야(般若)로 훈습된 것이다.
大慧!如來非心、意、意識、彼諸陰、界、入處所熏。大慧!一切三有,皆是不實妄想所生;如來不從不實虛妄想生。
대혜야, 여래는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이나 저 모든 음(陰)ㆍ계(界)ㆍ입처(入處)에 의해 훈습된 것이 아니다. 대혜야, 모든 3유는 다 진실하지 않은 망상(妄想)으로 생긴 것이나, 여래는 진실하지 않고 헛된 망상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大慧!以二法故,有常無常,非不二。不二者寂靜,一切法無二生相故。是故如來、應供、等正覺,非常非無常。
대혜야, 두 가지 법 때문에 상과 무상이 있으니, 불이(不二)가 아니다. 불이란 적정(寂靜)이니, 모든 법의 두 가지 생기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다.
大慧!乃至言說分別生,則有常無常過。分別覺滅者,則離愚夫常無常見,寂靜慧者,永離常無常,非常無常熏。」
대혜야, 말로써 분별이 생기므로 곧 상과 무상이라는 허물이 있으니, 분별각(分別覺)이 없어지면 어리석은 사람의 상이라거나 무상이라는 견해를 벗어난다. 적정한 지혜[慧]는 영원히 상과 무상을 벗어나니 상이나 무상에 훈습되는 것이 아니다.”
[0510a23]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衆具無義者, 生常無常過,
若無分別覺, 永離常無常。
從其所立宗, 則有衆雜義,
等觀自心量, 言說不可得。」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구무의(衆具無義)란
생(生)함이 상(常)이건 무상(無常)이건 허물이라는 말이니
분별각(分別覺)이 없다면
영원히 상과 무상을 벗어나리라.
그 세운 종(宗)에 따라
여러 많은 뜻이 있게 되니
자심의 현량을 평등하게 보라.
말로는 얻을 수 없느니라.
[출처]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제4권-3|작성자 byuns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