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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8분 음표입니다.
만년필의 세계에 빠진 이후로 봄 가을 두 번의 펜쇼에 꼭 참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26 봄펜쇼에서는 감사하게도 '안알록'님께서 '데스크를 취재하는 데스크'를 열어주셨습니다.
2026년 봄 서울 펜쇼의 열기는 여느 때보다 뜨거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밀도 높은 에너지를 뿜어낸 곳은 단연 '개인 참가 데스크' 구역이었습니다.
매끈하게 뽑혀 나온 브랜드 제품들 사이에서 제작자의 손때와 다정한 시선이 머문 이 공간은 문구 애호가들에게 단순한 쇼핑 그 이상의 정서적 충족감을 선사했습니다.
그 현장의 생생한 기록 첫 번째, '형아'님의 데스크입니다.
[현장 취재] "'형아'님의 책상을 선물 받은 기분", 2026 봄 펜쇼 '형아'님 데스크
2026년 봄 서울 펜쇼의 수많은 데스크 중에서도 유독 방문객들이 숨을 죽이며 낮은 목소리로 감탄을 내뱉던 곳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잉크와 만년필들이 즐비한 부스 사이에서,
진솔한 시간이 쌓인 필사 노트와 손끝의 다정함이 묻어나는 뜨개 소품들이 자리한 '형아'님의 데스크입니다.
<사각거림의 기록을 읽는 즐거움>
보통의 부스들이 펜을 직접 써보는 체험에 집중했다면, 이곳은 '형아'님이 오랜 시간 채워온 필사 노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감상의 장이었습니다.
종이 위를 지나간 펜촉의 궤적, 잉크의 농담, 그리고 그 곁을 정성스럽게 채운 세밀한 그림들은 방문객들에게 "정말 손으로 쓴 것이 맞냐"는 감탄을 들었습니다.
'형아'님의 열정은 화려한 언변이 아닌 잉크가 번진 종이 한 장 한 장의 두께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책상 위로 내려앉은 포근한 조각들>
기록의 공간 곁에는 그 여백을 포근하게 채워줄 뜨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책상 한구석에서 필사를 지켜봐 줄 것만 같은 귀여운 뜨개 하늘다람쥐는 문구류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마스코트였습니다.
'형아'님의 섬세한 손길로 완성된 하늘다람쥐는 만년필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의 손가락에도 찰싹 붙어있고는 했습니다.
손날이나 찻잔 아래 놓일 눈 발자국 코스터는 겨울날 산책을 나간 개의 발자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습니다.
수제 소품답게 문양이나 마감이 조금씩 달라, 방문객들은 저마다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 하나'를 고르느라 신중한 모습이었습니다.
<"취향은 거미줄처럼", '형아'님과의 질의응답>
Q: 오늘 데스크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친한 분들의 가방 보관소를 자처했습니다.(웃음) 제가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데스크를 열었어요.
작년 가을 펜쇼에 처음으로 참관객이 아닌 데스크로 참가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던 경험이 무척이나 기억에 남았습니다.
필사 노트 뒤에 남겨주신 방명록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필사를 할 때마다 작년 가을 펜쇼의 추억이 떠올라요. 이번에도 많은 분들의 손글씨로 채워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이 분야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첫 순간'을 기억하시는지? 그때의 기분은?
A: 제가 필사를 시작한 시기는 대학원생 때였습니다. 저는 공부가 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SNS 아이디도 공부노잼으로 지었고요.
원래는 악필이었는데 서점에서 글씨 교정책을 사서 보면서 연습했어요. 또 그림 연습도 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글씨만 쓰기보다는 그림이 같이 있으면 보기에도 좋고 읽기에도 좋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결과물이 점점 제 마음에 들게 나오고, 그걸 보면 또 다른 페이지를 구상할 원동력이 되었어요. 그때 필사에 매료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생업이나 본업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필사와 뜨개'여야 했는지?
A: 학창 시절에는 공부만 많이 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취미가 독서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울림을 주었던 구절을 필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년필을 잡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릴 땐 어머니의 영향으로 집에 딥펜이 있었어요. 그러나 말씀 드렸다시피 워낙 악필이었다보니 쓸 엄두도 못내고 있었습니다.
고단한 학창 시절의 탈출구로 웹툰, 그중에서도 생활툰을 자주 봤었는데요, 작가님이 실생활에서 만년필을 쓰시고 차를 마시고 하는 분이셨어서 그분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습니다.
Q: '그 정도면 됐지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들을 정도로 공을 들였던 때가 있나요?
A: 저는 웬만한 건 넘어가는 사람이라 대강 생략하고 간소화해서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말하다보니 하나 생각난 게 있습니다.
(펀칭된 작은 종이 잉크 차트를 가리키며) 이렇게 시필 차트를 만들기 전에는 전시 노트의 잉크 시필 차트(*위 사진 참고)로 만들었는데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노트에 병목샷을 찍을 때엔 잉크가 너무 잘 쏟아지는 것도 문제였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쉬운 펀칭된 잉크 차트를 우선적으로 제작했지만, 노트 한 권을 잉크 발색으로 채우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전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고집이라면 고집이겠네요.
Q: 슬럼프가 왔을 때, 혹은 '현생'과 '취미'가 충돌할 때 어떻게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시는지?
A: 충돌할 때 많죠. 많지만 저는 마음이 이끄는대로 그때마다 하고 싶은 걸 합니다. 차 마시면서 만년필로 책 구절 필사를 하고, 그러다 보면 가사도 쓰고, 뮤지컬도 보고, 만년필 소품을 만들기 위해 뜨개도 하고... 식물도 키우네요.
취미는 문어발처럼 다 연결되어 있어요. '취미 부자'이시라면 다들 공감하실 텐데, 정말 진짜 긴박하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대부분 당연하게도 취미가 이깁니다.
매우 위급하고 다급한 사안이라 오늘 당장 하지 않으면 제가 힘들어지지 않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말이죠....
Q: 취미 생활 중 얻은 것과 기꺼이 포기한 것이 있다면?
A: 얻은 것은 행복입니다. 제가 만든 것을 누군가에게 나누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 그 에너지가 저에게까지 전해집니다. 새 집을 찾아간 뜨개 소품들 역시 잘 쓰고 있다는 후기를 보내주시면 제가 만든 것이 다른 분들에게 알차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뿌듯해요.
잃은 것은... 기꺼이나 자발적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손목 건강이 아닐까요. 뜨개 하늘다람쥐처럼 작은 소품은 한 마리를 뜨는데 열다섯 시간이 걸립니다. 실에 맞춰 바늘도 얇은 걸 쓰다보니 콧수가 많아져서 손목에 무리가 가요. 필사 역시 복잡한 그림이 있을 경우 한 페이지에 몇 시간씩 걸리고요.
그럼에도 제 손끝에서 탄생한 것들을 보며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할 힘이 생깁니다.
Q: '필사'의 진정한 매력은?
A: 제가 공들여 필사하던 페이지가 망한 기념으로(?) SNS에서 '망한 필사 대회'를 열었던 적이 있어요. 노트의 절반이 물에 젖어 잉크가 번져버린 사진이 압도적 1위를 했었죠.(*해당 사진 글 말미 참고) 공들인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진 광경이었지만, 수많은 분들이 감탄하고 웃어주셨습니다. 말하자면 '순간의 예술이 매우 훌륭한 방식으로 작용한 찰나'였거든요. 저 역시 그 사진만 보면 지금도 탄식과 함께 웃음이 나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어떤 실패는 누군가에게 예상치 못한 웃음이 되고, '망했다'고 여겨지는 결과물조차 하나의 유쾌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걸요. 취미에 너무 깊이 상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후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완벽한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기록하는 과정의 즐거움이며, 설령 물에 젖어 번진 잉크 자국일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기록이 되니까요.
Q: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을 들려주세요.
A: 일과 취미 사이의 균형 유지가 목표입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를 위한 시간을 내기란 생각보다 어려워요.
전에는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을 취미 활동에 투자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기 전 삼십 분도 안 되는 잠깐이 고작입니다. 며칠을 거를 때도 있고요.
지금은 뮤지컬 <위키드> 필사를 하는 중인데 아직 1막의 절반도 끝내지 못했습니다. 취미 활동을 지속하려면 체력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근 운동을 다시 시작할 계획을 짜고 있어요. 취미를 계속하려는 여러분들... 체력을 기르세요... 운동을 하세요....
Q: 펜쇼를 보러 오는 분들께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A: 만년필 하세요, 잉크 하세요. 그리고 만년필이 처음이시라면 통장 한도는 꼭 걸어놓으세요.
처음부터 고가의 만년필을 다수 들이게 되면 필감이 취향에 맞지 않을 경우 그대로 이 분야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 부분만 조심하시면 만년필은 오래 갈 수 있는 취미입니다.
저도 통장의 출혈이 큰 만년필을 여럿 써봤는데 지금은 소유성(*플래티넘의 대표적 입문 만년필)이 가장 잘 맞아서 소유성으로만 필사를 합니다. 이것저것 써보시고 다른 분들 것도 빌려서 써보시면서 천천히 차곡차곡 내 취향을 찾아나가는 것을 추천드려요.
[기자의 소감] 기록이 머문 자리, 사람이 남긴 온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형아'님의 부스에서 데리고 온 뜨개 하늘다람쥐가 손가락 위 소중히 얹혀있었습니다.
흔히들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글을 쓰고 뜨개질을 하는 행위를 효율성 없는 느린 일이라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잉크가 번진 자국조차 순간의 예술로 승화시킨 '망한 필사 대회'의 에피소드처럼, 우리가 취미에 몰두하는 이유는 완벽한 결과물을 내기 위함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괴롭히던 소음으로부터 잠시 도망쳐 내가 선택한 잉크와 실의 궤적 안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함에 가깝습니다.
열다섯 시간을 꼬박 채워 탄생한 뜨개 하늘다람쥐의 보들보들한 촉감, 그리고 소유성 만년필 한 자루로 묵묵히 채워 내려간 필사 노트의 두께는 '형아'님이 세상과 소통하는 그만의 다정한 방식이었습니다.
"통장 한도는 걸어두라"는 현실적인 조언 뒤 "천천히 내 취향을 찾아가라"는 따뜻한 격려를 덧붙이는 모습에서, 문구라는 취미가 주는 진정한 행복의 원천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형아'님의 책상을 선물 받은 것 같았던 그 짧은 머무름 끝에 제 수첩에도 새로운 문장 하나가 적혔습니다.
"망쳐도 괜찮다. 기록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찾자."
2026년 봄, 서울 펜쇼 '형아'님의 데스크는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기록의 힘을 믿는 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시금 펜을 쥐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어가는 작은 쉼터였습니다.
가을 펜쇼에서는 또 어떤 이들의 '방명록'이 '형아'님의 필사 노트를 채우게 될까요. 벌써부터 손끝이 간질거리는 설렘이 차오릅니다.
여러분, 기록을 멈추지 마세요. 그리고 형아님의 당부처럼, 이 즐거움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건강합시다!
*'형아'님의 데스크 컨펌글과 후기는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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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심층 취재의 매력이 있네요. '형아' 님 데스크에서 타이핑 친 것 같은 멋진 글씨의 작품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형아' 님이라는 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되니 더 좋네요. 내적 친밀감 또 혼자 급상승~!저도 위키드 뮤지컬 좋아하는데~!😆
8분 음표 님 덕이에요. 심층 취재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와주시는분들 덕분에 즐거운 펜쇼되었습니다. 가을엔 1막까진 채워서 가져가는걸 목표로 해볼게요...! ㅎㅎ 즐거운 취미생활되세요
감사합니다~!! 저도 형아님 필사 노트를 (원 주인의 허락 없이) 가방 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일시적 도적이 되었어요 :)
즐거운 펜쇼 되셨길 바랍니다!
우와 고맙습니다. 저도 여러개 한 번에 올리려고 아직 정리중인데 먼저 올려주셌네요. 관심있는 데스크를 직접 취재해주셔서 그런지 애정이 느껴집니다ㅎㅎ
가을 펜쇼에 형아님 데스크에 더 많은 분들 오실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래 일정이 어제까지여서 많이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에요...ㅠㅠ
즐거운 펜쇼 되셨길 바라요! 가을에도 형아님 부스 들러주세요 :D
@8분 음표 소개글 보고 형아님에 더 관심 생겼어요. 역시 사람을 알면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나봐요. 가을에는 형아님 데스크 노트부터 방문해서 노트 살 거에요^^
@안알록 정말 재주 많은 취미 부자시랍니다~!! 가을에는 노트도 내달라고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