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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령 작가] 연하남이 연상녀를 사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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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아."
"요녀석이! 너 자꾸 누나라고 안하지?"
"왜, 누나라고 불렀으면 좋겠어?"
"당연한 걸 왜 물어!
쪼끄만한 게 누나한테 까불고 있어!"
그러자 남자는 키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여자를 내려다 보더니
허리를 숙여 여자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대고 마주한다.
"내가 쪼끄만 하다고?
이제 그 말 할 때는 지난 거 아닌가?"
남자의 말에 흠칫 놀라면서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는 여자.
"너, 너 누나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못생긴 얼굴 저리 안치워?!"
그러자 여자의 턱을 엄지와 검지로 붙잡고는
다시 자신의 쪽으로
원 위치 시키는 남자.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내 몇 번을 말하냐.
이제 그만 좀 튕기라고 이 여자야.
난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그리고 여자에게 짧은 입맞춤을 하고는 속삭이듯 말한다.
"사랑해. 박성은."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연상녀를
짝사랑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옆집누나부터 과외누나,
교생쌤, 편의점 알바누나부터 술집알바누님까지...
그런데 대부분 짝사랑의 대상은 외모가 뛰어났거나
몸매가 좋은 등
뭐다른 쪽의 매력적인 여성이었을 것이다.
난 지금 남자가 지극히 평범한 연상녀를
사랑할 때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여자들.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턴
어린 남자애들에게 잘 대해 주어라.
미래에 니 남편이 될 수도 있다.
뭐, 아니면 말고...
오늘은 일요일이라 출근하지 않았기에 집안에서
떡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난 서든에 열중하고 있다.
저녁때가 되서야 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수 있었고
하루종일 그러고 있으니 허리가 너무 아팠고
먹은게 컵라면 하나가
전부였었기에 난 다시 집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아... 씻기 귀찮다..."
난 또 한번 머리를 벅벅 긁으며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제꼈고
불을 키는 순간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와... 사람이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거구나."
훌렁훌렁 옷을 벗어 화장실 밖으로 던진 뒤
무심코 샤워기를 틀었다.
"앗뜨뜨뜨뜨.....?!!!"
이 집은 온수도 정말 잘나오네.
어떻게 이렇게 바로 나오지?
덖분에 찜닭될 뻔 했네.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뒤 장을 보러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컵라면이랑 햇 반좀 많이 사다 놔야지.
3분 카레도 사야 되나?
엘리베이터가 우리층에 멈추고 문이 스르르 열리는데
또 그 여자였다.
옆집 여자.
그녀도 장을 보고 왔는지 먹을 거리와
식재료가 든 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있다.
대충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있던 그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낑낑대며 봉투를 들고
뒤뚱거리며 나를 지나가려 한다.
쯧쯧... 패션센스하고는...
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지나치는데 내 왼쪽 무릎에 그녀의 봉투가
부딪치더니 갑자기 뜯어지며 와르르 내용물들이 쏟아진다.
"어...!"
"엇..."
그녀는 바닥에 나뒹구는 물건들을 뜯어진 봉투와
다른 봉투에 나눠담기 시작했고
나는 그냥 가기도 뭣하고 해서 같이 쭈그려 앉아
물건 담는 것을 도왔다.
"아니, 괜찮은데..."
그녀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주섬주섬 물건 줍는걸 도왔다.
물건을 다 담고 나자 여자가 일어서며 내게 인사한다.
"정말 감사해요. 옆집으로 이사 오셨나 봐요?"
"아, 네. 어제 이사왔어요."
"네~. 말투가 이쪽분 아니시네?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이요."
"저도 서울에서 왔는데! 앞으로 인사하면서 지내요."
내게 미소를 짓는 그녀.
와...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쁘다.
웃지 않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평범한 얼굴이 웃을 때 이렇게 될 수가 있는가.
"아... 네."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물건들을 현관문 앞으로 끌어다 놓기 시작했다.
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1층을 누른 뒤
문이 닫히기 전에
현관문을 열어둔 채 낑낑대며
집안으로 봉투들을 옮기는 여자를 보앗다.
귀엽네.
"엥?!"
내가 뭔 생각을 하는거야.
저 여자가 어디가 예쁘다고.
정신차리자~~~~~!!!
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벽에 머리를 쾅쾅 박고 있는데 3층에서 커플이 타면서
그런 나를 보더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속닥거린다.
나 미친 거 아니거든요? 쳇...
그 여자가 예뻐보였다니...
내가 아주 잠시 미쳤었나보다.
다음날.
8시까지 출근이라 6시 반쯤에 일어나 대충 씻고 준비한뒤
7시쯤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때 옆집 문도 열리면서 그
녀가 나온다.
나를 발견한 그녀가 미소를 짓더니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내게 먼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확실히 미소는 정말 예쁜 여자다.
왜 웃는 게 예쁜 여자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지 알것같다.
"아, 네. 출근하시나봐요?"
"네. 옆집분은 학교 가시나봐요?"
"아니요. 저도 출근합니다."
그러자 놀란 듯한 그녀.
"정말요? 아직 되게 어려보이시는데?"
"좀 빨리 취업을 했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며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고
난 그녀가 27살이고
직업이 인문계고등학교 교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안보였는데 이 여자 꽤 동안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차례로 내렸고 통로 앞에서
그녀가 내게 말한다.
"괜찮으시면 제 차로 태워다 드릴까요?
직장이 저랑 같은 방향인 것 같은데."
뭐야, 이 여자 차도 있어? 역시 성인은 다르구나.
근데 뭔가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난 거절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왜요? 출근시간이라 버스 안에 사람도 많을 텐데.
같이 가요."
내 생각을 알아차린 건진 모르겠지만
또 한번 미소 짓는 그녀때문에
난 거기에 이끌려 그녀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달리는 차안.
운전을 하는 그녀와 안전벨트를 한 채 옆에서
괜히 쭈뼛거리고 있는 나.
"19살이면 아직 애기네.
근데 벌써부터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 하면 힘들진 않아요?"
"18살 때부터 취업나가면서 하던 일이라 괜찮아요."
"8살 차이나니까 말 놔도 되나? 요?"
작게 미소를 흘리면서 장난스레 말하는 그녀.
그래 뭐... 8살이면 거의 이모뻘이지. 아닌가?
"네, 뭐..."
"그래. 19살이면 한창 놀고 싶을 나이고
부모님 사랑 받으면서 클 나이인데
이렇게 일찍 돈도 벌고 기특하다야."
"다른 애들이 놀 때 똑같이 놀면 다른
애들이 굶주릴 때 똑같이 굶주려야 하니까요."
"글쎄... 그래도 애는 애 다워야 하지 않을까?
순수하게 말야."
"대한민국은 순수하게 산다고 다 해결되는 나라가 아니니까요."
"그런가? 아, 이 쪽 여기 맞지?"
"네. 여기서 세워주세요."
괜히 불편했던 나 였기에 최대한 빨리 내리고 싶었다.
난 재빨리 내린 뒤 허리를 숙여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일 열심히 하고! 항상 조심하고!"
"네. 그쪽도 운전 조심하세요."
"그쪽이라니. 좀 듣기 거북한 걸?
앞으론 선생님이라고 불러."
"옆집분이 제 선생님은 아니지 않나요...?"
그러자 살짝 뾰루퉁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
"내가 학교가면 너만한 애들이 수두룩 하네요.
이민규씨!"
어라?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내가 말했던가?
"제 이름은 어떻게...?"
"명찰에 씌여 있잖아요."
"아..."
우리 회사 작업복 명찰을 본 건가 보다.
"내 이름은 박성은이니까 앞으로 박성은 선생님~!
하고 불러."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는 그녀.
뭔가...
저 미소만 평생 보고 산다면 평생 나쁜 짓 같은 건 안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잠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알았어. 그럼 그냥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 됬지?"
"아, 네."
"그럼, 화이팅!"
작은 손으로 주먹을 쥔 채 내게 흔들어보이더니
다시 운전을 해
멀리 사라지는 그녀의 차를 난 멍하니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내가 정말 제 정신이 아닌가보다.
왜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드는거지?
저 여자는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닌데.
내 키 182니까 키는 충분히 됬고.
얼굴도 이 정도면 괜찮고.
성격은 좋으니까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이건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아 몰라. 제발 좀 정신차리자.
이민규! 일단 저 여자는 아니야. 저 여자는 안되!
아~~~. 나도 빨리 차 사고 싶다.
난 터벅터벅 회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퇴근길.
"수고하셨습니다!"
난 팀장님께 인사를 드린 뒤 옷을 갈아입고
회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냈구나.
이제 11월달이라 그런지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아주아주 자극적인 향기가
내 코를 간지럽힌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난 인간의 3대 본능 중의 하나인 식욕을 주체를
하지 못하고 마구 흥분해서 날뛰는 배를 부여잡고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앗??!! 이것은???!!!!
다름아닌 치킨냄새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남녀노소할 것없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바로 그 치킨!!!!
바로 '땡땡치킨' 이다.
꼴깍. 난 군침을 삼키며 나도 모르게 치킨집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난 치킨 한마리를 손에 든 채 콧노래를 부르면서
다시 집을 향해
발길을 되돌렸다.
"본능적으로 느껴졌어~. 넌 나의 치킨이 된다는 걸~.
처음 니 냄새를 맡았던 순간 찰나의 전율을 잊지 못해~.
워~어. 워어어어~어. 워어어어~."
되도 않는 노래를 부르면서 못추는 셔플까지 밟아가며
혼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치킨을 포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 들떠있는 나였다.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 좀 해볼까?"
오피스텔 앞에 도착해 통로 비번을 누르려는데
그때 아주 낯익은 차 한대가 스르르 들어온다.
아반떼 MD.
주차장으로 들어가다 말고 내 앞에 멈추는 차.
그리고 차창이 스르르 내려가며
누군가가 내게 미소를 짓는다.
"어? 민규야, 이제 퇴근한 거야?"
그녀다.
"아, 네."
"나 저기서 오는데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너 춤 되게 잘 추더라?"
"네?"
뭐야, 설마 다 본거야? 오메... 이럴수가!!
"그래,뭐. 그 나이땐 한창 끼부릴 때니까!
기다려. 같이 올라가."
"아... 네."
난 그녀가 나의 만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지켜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절망감이 들었다.
그녀가 주차를 끝내고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걸어온다.
"비맞은 중 마냥 뭐라고 궁시렁 대는 거야?"
"아니에요... 근데, 어디부터 어디까지 보신 거에요?"
통로 비번키를 열고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그녀가 말한다.
"응? 그게 어디서부터지... 너 방방뛰기 시작할 때부턴가?"
젠장. 처음부터 다 보셨네. 이런~!!!!!
치킨집에서 나오자마자 좋아서 미친듯이 방방 뛰었으니
할말이 없네.
"네..."
"손에 든 건 뭐야? 치킨이네?"
"네."
"오... 나도 치킨 좋은데."
"네?"
"나도 치킨 먹을 줄 아는데."
그리곤 내게 헤헤~. 하고 웃어보이는 그녀.
이런. 위기다.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내 치킨이 위험하다는 걸 난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럼 같이 드실래요...?"
난 설마하고 그냥 예의상 던진 말인데
그 혹시나가 역시나 였다.
"정말?!"
"네. 뭐..."
"그래. 그럼 너네집 가자."
"네... 네?!"
그녀의 말에 난 무심코 대답했다가 놀라고 말았다.
외간남자집에 아무렇지 않게 발을 들여놓는
여자가 어디있단 말인가.
아무리 8살 차이라지만 난 엄연한 남잔데.
"왜, 안돼?"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러자 내 눈빛을 읽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말한다.
"너 이사왔는데 집들이 온 사람 있어?"
"아니요..."
"그럼 내가 일빠네? 좋아! 집들이 하는 셈치고 가자고!"
엘리베이터가 우리층에 도착하고
그녀가 먼저 내리면서 내게 말한다.
"나 씻고 너네집으로 건너갈 테니까 기다려."
"네..."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서고 그녀집 현관문이
닫히려는 찰나에 다시 문이 열린다.
"치킨 먹지말고 기다려!!"
그녀는 고개만 빼꼼 내밀더니
그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집안으로 사라진다.
나 참...
난 치킨 봉투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외출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은 뒤
재빨리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건 왜 또 여기 있는 거야!!
난 내 보물 잡지들을 마구 쓸어 모은 뒤
침대밑으로 밀어넣고 컴퓨터 의자위에
쌓아 놓은 빨래감들을 한꺼번에
들어서 옷장안에 쑤셔넣고 문을 닫았다.
가만. 근데 왜 내가 지금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 거지?
그 여자한테 잘 보일 필요가 있는가?
난 그런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난 샤워를 끝내고 머리를 말리고 있고
거의 다 말렸을 무렵 우리집 벨이 울린다.
"누구세요?"
"누구긴 나지. 박성은 선생님!"
철컥.
내가 문을 열어주자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따다다단딴~. 따다다단~."
여러분들. 예전에 TV에서 방송했었던
러브하우스 기억 하시는가?
그녀가 그 노래를 부르면서 양손에 캔 맥주 하나씩을 들고는
집안으로 들어선다.
급하게 씻고 나온 듯.
머리는 말리다가 만 것처럼 물기가 흥건하다.
얼굴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는 지 약간 붉게 물들어 있다.
오... 화장 안한거랑 크게 별 차이가 없다.
아니, 평소에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검정 트레이닝 바지에 흰티를 걸친 그녀는 집안을 둘러보더니
"오~~~. 깔끔한데 보기와는 다른 걸?"
하면서 내게 씽긋 웃어보인다.
아... 제발. 날 보면서 그렇게 웃지 마시랑께요.
"보기엔 제가 어떤데요?"
"음... 뭔가 어두침침한게 잘 어울릴 거 같네."
"에..."
약간 벙쪄있는 나를 지나쳐
그녀가 식탁위에 캔맥주를 내려놓더니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치킨봉투를 열었다.
"오~~~. 정말 안먹고 기다리고 있었네?"
"먹지말라면서요."
"어이구, 이뻐라~~~."
내 뺨을 살짝 꼬집는 그녀의 손을 난 슬쩍 떼어낸 뒤
캔맥주를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저건 뭐에요? 한 개는 제 껀가요?"
그러자 그녀가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 가듯이
캔맥주들을 재빨리 자기쪽으로 끌어당긴다.
"떽! 어디 미성년자가! 나쁜 것만 배워가지고!!"
나 참...
"네, 네. 먹을 생각도 없었거덩요?"
"너는 이 콜라나 마시렴, 아가야."
치킨 봉투안에서 콜라를 꺼내 내 쪽으로 밀어주는 그녀.
에휴... 그냥 나 혼자 먹으면 이런 스트레스도 안받을 텐데.
하필 그때 마주칠 게 뭐람?
"우와~.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닭이냐... 잘먹을게!"
"네, 네... 많이 드세요."
정말이다.
그녀는 내가 남자라는 걸 아예 신경쓰지 않는 듯
정말 폭풍 흡입을 하며 먹방을 찍고 있었다.
난 2조각을 먹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열심히 먹던 그녀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왜 안 먹어?"
"아... 먹고 있어요."
내가 19년 동안 살아오면서 당신처럼 내숭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여잔 처음입니다.
"왜, 맥주 먹고 싶어서 그래?"
"아니에요."
"에이... 그렇구나?"
"아니라니까요."
"마셔볼래?"
그녀가 다른 캔맥주 하나를 따더니 내게 내민다.
입가엔 치킨 기름과 양념을 묻힌 채 동글동글한 큰 눈으로
천진난만하게 나를 보고 있는데 정말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아... 뭔가 귀엽다. 이 여자.
"네... 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한테 술을 멕여도 되는 겁니까?"
난 나도 모르게 맥주를 받아 들 뻔 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런 나를 보더니
맥주를 식탁위에 내려 놓는다.
"치... 언제는 내가니 선생님은 아니라며?"
"제 선생님은 아니라도 그쪽은 교사고
저는 아직 학생 신분이거든요?"
"알았어알았어. 이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치킨을 먹기 시작하는 그녀.
하아... 위험해.
내가 미쳐가는 건가. 이 여자가 어디가 예쁘다고.
난 정말 맛있게 치킨을 먹는 그녀의 옆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확실히 동안은 맞다.
피부도 깨끗한 편이고 하얗고...
가만 보니 그렇게 못생긴 것도 아니다.
근데 그렇다고 예쁜 얼굴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는 거지?
그렇게 우리집에서 함께 치킨을 먹은 뒤로는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매번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님."
난 그녀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어차피 나 출근길인데 뭘~. 일 열심히 하고!
조심하고!"
"옙!"
그렇다. 어느새 출근도 우린 함께 하고 있었다.
최근 며칠 동안 난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생각보다
기대이상으로 괜찮은 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직업이 교사다 보니 지적이고
아는 게 많았지만 말투는 영락없는 어린 소녀였다.
뭐랄까... 개념이 없는 게 아니라 어리버리하다고 해야 되나?
지성을 겸비하고 있지만 성격은 어리버리한 여자라니.
이것도 뭔가 매력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찌됬건 난 지금 그녀와 예전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퇴근길.
아... 버스 한 번 놓쳐서 그 다음 것 타고 오느라 좀 늦었다.
성은이 누나는 벌써 집에 갔겠지?
터덜터덜 집을 향해 가고 있는데 오피스텔 건물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아이씨. 아 그냥 상관하지 말고 가던 길 가시라니까요. 네?!"
응? 짜증스러운 듯한 남자아이 목소리다.
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보니 골목길에서 내 나이 또래의
껄렁해 보이는 고등학생 남자애들 세명이 서 있다.
그리고...
"누나?"
그녀였다.
그녀가 잔뜩 화가 난 듯 그 남자애들 앞에 서 있다.
남자애들 손가락 사이엔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가 끼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대충 상황은 짐작이 간다.
그녀가 말한다.
"너네 지금 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 게 잘하는 짓이라는 거니?"
그러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투덜거리듯 말한다.
"아니, 우리가 담배로 그쪽한테 피해준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쪽은 우리 학교쌤도 아니면서 왜그래요?"
저거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다.
내가 저 말을 할 때도 저렇게 싸가지 없어보였는가?
"아니, 난 교사로서 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걸
바로 잡을 의무가 있어.
빨리 담배 안꺼?"
그러자 우두머리 옆에 있던 놈이 담배를 바닥에
획 던지면서 말한다.
"아~ 나 이 X발. 보자 보자하니까 븅신호구로 보이나..."
새끼들이.
"야!"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며 그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일제히 내 쪽을 향해 돌려지는 시선.
난 빠르게 다가가 그녀 옆에 서서 말했다.
"뭐야, 박성은. 무슨 일이야?"
응?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 버렸다.
"뭐?"
그러자 놀란 듯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
에잇. 이왕 이렇게 된 거 갈데까지 한 번 가 보자!
"지금 뭐하는 거냐고.
어쩐지 집에도 없더라니.
빨리 집에 안들어가고 여기서 뭐하는 건데?"
"민규 너 지금 무슨..."
"됬고. 야, 늬들 뭐야?"
난 목소리를 쫙 깔고 눈에 힘을 꽉 준 채 그놈들에게 말했다.
이거... 갑자기 셋이서 달려들면 어떡하지?
신나게 얻어 터질 텐데.
나 이러다 이거 새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난 지금 교복이 아니라 회사 작업복을 걸치고 있으니
적어도 놈들보단 나이가 많아 보일 거다.
내 말에 멈칫하던 놈들 중에 한 놈이 말한다.
"그러는 형씨는 누구신대요..?"
"나?"
난 내 옆에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한 번 스윽 내려다 본 뒤
그녀의 어깨를 감싸 내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나, 이 여자 남자친구다."
에...?!"
그러자 놈들뿐만 아니라 성은이 누나까지 놀라서 날 다그친다.
"야, 민규 너..."
난 그녀에게 눈빛으로 조용히 하라고 인상을 한번 쓰고
다시 그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이제 좀 사라져 줄래? 얘들아?"
그러자 남자아이들이 슬금슬금 뒤로 내빼더니
후다닥 사라진다.
휴우... 계획대로 잘 되서 다행이다.
생각보다 독한 놈들은 아니었어.
독한 놈들이었으면 누나보는 앞에서 개 맞듯이 맞을 뻔 했네.
"괜찮아요?"
내 말에 그녀가 날 확 밀어내더니
얼굴이 빨개진 채 가자미눈을 하고는 날 올려다 본다.
"너 방금 그게 무슨 짓이야?!"
"누나 구해주는 짓이요?"
"누, 누가 구해달래?! 니가 왜 내 남자친구야?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그래?!"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요?
구해주니까 괜히 쪽팔려서 그래요?"
"누, 누구 얼굴이 빨개?! 내가 현아냐?! 빨갛개?!"
"헐... 설마 방금 그거 지금 개그친 거임?"
"시, 시끄러. 쪼그만 게 까불고 있어..."
"헤헤헤... 알았어요. 얼른 집에 가요."
그렇게 난 꽥꽥거리는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안.
난 멍하니 층수가 올라가는 걸 올려다 보고 있는데
그녀가 뭐라고 말한다.
"고ㅁ..."
"네?"
"고맙다고..."
"아..."
허허허...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저도 사실... 무서웠어요.
걔네들이 혹시나 갑자기 확 달려들지는 않을까 하고요.
근데 누나는 여잔데 그 상황이 나보다
더 무서웠을 거 아니에요."
날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가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귀여운 것..."
"네?"
"으이그~~~. 요 귀여운 것~~~!!"
"아아아아아~~~!!!"
갑자기 내 양 볼을 붙잡고는 옆으로 잡아당기는 그녀.
뭐야 이게!!!
"아, 아퍼요. 누나!"
"짜식. 의외로 남자다운 구석이 있는 걸?"
"그럼 제가 여잔가요? 이래뵈도 저 상남자거든요?"
"어이구~~~. 그러세요~~~?"
우리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그녀가 먼저 내리고
내가 따라 내리는데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는다.
"귀여운 것. 맘에 들었쓰~!!"
그리고 현관 비번키를 열고는
내게 윙크를 한번 날리더니 집안으로 사라진다.
윙크는 또 뭐야... 에휴...
뭐 어찌됬든 그녀에게 아무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미소가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라도 생겼다면
왠지 내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때 내 배에서 굶주렸다는 신호가 온다.
"아 배고파... 치킨이나 사달라고 할걸 그랬나?"
타이밍을 놓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나도 비번 키를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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