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달다가 300자를 돌파할 기세여서 그냥 답글로 써 봅니다.
축구장에 가서 재미있게 즐기려면.. 글쎄요, 제가 경기장에 갈 때는 항상 "대본이 없는 드라마를 보러 가는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경기장에 가서, 막장의 끝을 달리는 암울한 경기를 보고 올 수도 있고, 몇일만 지나도 기억 안 나는 아무 감흥 안 남는 무미건조한 경기를 볼 수도 있고, 몇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경기를 보고 올 수도 있죠.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이런 몇 경기가 기억에 남네요.
친구와 처음 프로축구를 보러 경기장에 갔을 때, 늘 TV로만 보던 게으른 자세 (잠시 딴짓 해도 무슨 일 있으면 리플레이 해줌) 로 경기를 관전하다 그먄 골 장면을 못 보고 "혹시 리플레이 안 나오나" 전광판만 하염없이 보던 기억..
대전이 단 1승만 한 02년 시즌, 처음 전북 경기를 보러 대전 경기장에 갔다가 전북이 그 1승을 바치는걸 보고 있던 기억 -_-
전주에서 있던 전북 대 수원 (당시 조윤환 vs 김호) 경기에서 후반 종반까지 대략 3:1로 이기고 있었으나 어? 어? 하는 사이 추가시간에 역전골까지 얻어맞고 4:3으로 진 기억.. (당시엔 경기 후 집에 올 때 까지 뇌가 녹은 기분이었음) -_-;
..주로 우울한 기억이 남는군요 하하 -_-;;
기본적으로 경기를 즐기고 싶으시면, 현재 팀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오늘 경기장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와 같은 궁금증만 갖기 시작해도 굉장히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경기장에 가서 경기 보고 돌아오면, 그날 하루 경기장에서 22명이 열심히 공 차고 뛰어다니고 골 넣고 끝! 이지만.. 간단하게 현재 팀이 몇위, 요새 팀 분위기는 어떤지, 최근 팀에 누가 잘 뛰었는지, 오늘 맞이하는 상대방은 어느 정도의 팀이고 누가 무서운 놈인지.. 정도만 알고 가도 하루의 이벤트가 아닌 1년 내내.. 그리고 팀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지는 (어떻게 전개될 지 아무도 모르는) 줄거리의 한 자락을 가서 보고 오는 의미가 있죠.
요약하자면, 팀이 잘 하냐 못 하냐도 관계가 있지만, 사실 경기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느냐는 본인이 얼마나 그 팀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팀 상황/분위기를 알기 위해) 최근 팀 기사 한두개만 찾아보시고,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나나" 정도만의 궁금증만 갖고 가시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결과가 "진짜 재미있었다.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가 될지 "내가 이거 보자고 2시간 넘게 이 지랄 하고 있었나"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만 :-D 사실 저는 그것도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기의 향방과는 별개로, 늘 도시에서 좁은 곳만 바라보며 살다 가끔 한 번씩 선선한 저녁에 눈 앞에 탁 트인 넓은 그라운드를 보는 것도 상당히 신선한 기분이 들게 해 줍니다.
간단하게 경기장 가실 때의 몇 가지 팁이라면..
- 마실거 준비. 물론 배고픔이 예상된다면 간단한 간식거리 챙기는 것도 좋습니다만.. 왜인지 목은 항상 마르더군요. 계속 "@$!$#!%%" 라고 선수들에게 희망사항/저주/칭찬 을 하면서 봐서 그런지;
- 티슈 준비. 경기장 의자 앉는 부분 및 등받이는 대부분 먼지가 잘 앉아 있습니다.
- 여유있게 (경기 시작 30분 전 정도) 도착해서 표 사고 들어가야 보통은 출전 선수 소개 등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선수 소개 안 봐도 필드에서의 위차나 몸놀림만 봐도 대충 누군지 알게 되지만.. 선발 출전은 누구고 대기 명단에는 누가 있는지만 알아도 경기 전개 뱡항을 짐작하고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것저것 썼습니다만, 사실 사람마다 경기를 준비하고 즐기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몇 번 가시다 보면 (그리고 계속 가고 싶은 기분이 느껴진다면) 아마 스스로 즐기는 방법을 깨달으실겁니다.
첫댓글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