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홍콩스케치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를 상상하며 홍콩을 찾았지만 홍콩의 밤하늘은 서너 개의 별이 떠 있을 뿐 소곤대는 별은 없었다. 곧 별이 모두 내려와 빌딩 외벽에 붙어버린 것을 알았다. 단 두개도 같은 모양이 없는 빌딩과 아파트들이 밤이 되니 관광객들 앞에서 마치 역할을 맡은 출연 배우들처럼 끊임없이 색을 바꾸어가며 반짝이는데 입을 다물고 볼 수 가 없었다. 하늘의 별이 아파트나 빌딩에 붙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빅토리아 산정에서 홍콩의 야경을 보았을 때는 그 높은 아파트마다 1층부터 꼭대기까지 끊임없이 빛으로 그라데이션 효과를 내어 보는 사람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더니, 산을 내려 올 때는 팩트림을 타고 45도 각도로 뒤로 앉은 채로 내려와 몸이 뒤로 넘어지는 것 같다가 멈출 무렵에는 아파트가 45도 각도로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순간 관광객들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몸을 젖혀 아파트를 피했다. 멀쩡한 아파트를 보고 재미있게 웃었다. 착시효과 였나 보다. 배를 타고 바다 위에서 야경을 볼 때도 그 높은 건물이 끊임없이 새해 인사. 크리스마스 인사, 환영 인사로 깜빡여 할 말을 잊었다. 도시를 예쁘게 꾸미기 위하여 아파트나 건물에 조명장치를 하여, 그래서 그것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낸 외화를 향한 그들의 노력이 필사적으로 보였다. 늦은 밤 이층 무개차를 타고 빌딩 숲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건물들이 하는 인사를 받고 있자니 우리 일행은 큰 접대를 받고 있는 이웃나라 귀빈이 된 착각에 빠졌다, "세상에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집을 치장해서 돈 받고 보여주는 나라도 있네." 일행 중 한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맞아."하고 웃었지만 바다를 가운데 두고 늘어선 빌딩들이 만들어 내는 휘황찬란한 빛의 쇼는 환상 그 자체였다. 홍콩에온 보람을 반은 건진다는 백만불짜리 홍콩의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홍콩은 낭만의 도시였지만 막상 공항에 내려 땅을 밟아보니 홍콩은 거대한 시장으로 닥아 왔다. 천혜의 경관은 없지만 보여주려고 애쓰는 도시, 좁아터질 것 같은 땅이지만 함께 사려고 지혜를 짜 내는 도시, 동양과 서양을 모두 보듬으며 필요한 것을 골라 이용하는 여유를 가진 도시, 동양에 있으면서 동양이 아닌, 그러나 서양은 더욱 아닌 도시로 느껴졌다. '여기서는 결혼했다고 여자보고 밥하라고 하면 큰일 나요."가이드가 하는 말을 듣고 홍콩의 여자들을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여자들을 예우해서가 아니라 서민들의 집이 그다지 넓지 않아 집안에 안방이나 주방을 꾸밀 수 없으니 밥을 할 수 없다는 걸 금방 알았다. 8층높이 여덟 평 아파트에 에리베이터가 없다니 누가 무거운 장보따리를 들고 오르내리며 밥을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대부분이 맞벌이라는데... 그러나 이건 서민들의 이야기다. 어느 갑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시가 9백 억짜리 4층 저택에 부인 네 명을 층별로 두고 산다고도 했다. 이곳은 이렇게 빈부의 차이가 극심하고 부자들의 재력과 씀씀이가 시민 저항을 받지 않는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엄청난 재벌의 총수는 한 번씩 유괴되는 것을 각오하고 유괴되면 몸 값을 흥정하여 서로들 적정선에서 주고 받고 풀어 주어서 그것이 범죄같지 않고 돈 있는 사람이 돈 좀 쓰게하는 풍속처럼 되어있다고 햇다.물론 신체 손상은 전혀 없고. 홍콩은 산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도시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산은 기기묘묘한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진 우리의 산과는 달리 겨우 푸른색으로 덮이기만 한 민둥산으로 울창하지 않아서 산으로서의 매력이 없었다. 화강암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은 산에 다 집을 짓는 일을 매우 잘 한다. 산등성이에 쭉쭉 뻗은 고층 아파트를 빽빽하게 짓고 저택을 지어 굽이굽이 산모퉁이를 돌아 겨우 편도1차선도로만 내어 이용하고 있었다.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았을 때 영국인들이 해적을 감시하기 위하여 산등성이에 집을 지어 거주한 이래 영국인들이 거주하던 집을 현지의 재력가들이 차례로 인수하면서 살게 되었고 산으로 높이 올라 갈수록 집값이 비싸고 유명인사들이 즐겨 산다고 하니 지구촌 사람들의 가치관도 각양각색이다. 산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는 놀라울 뿐이었다. 우리네 같으면 일조권이니 조망권이니 하며 다툼도 있겠건만 그들은 잘도 참아내고 있었다. 홍콩의 건물은 대게 50층 이상 78층 정도의 주상 복합 아파트이고 대부분 구름위에 있으며 이들 건축물사이의 거리는 편도1차선 차도와 약간의 인도뿐이었다. 일조권도 조망권도 포기하며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하나 하나의 모양은 마치 한 줄로 주욱 갉아 먹은 옥수수자루처럼 생겼고 중심 시가지의 모양은 쟁반에 긴 옥수수를 세로로 가득 세워 놓은 것 같다. 가이드는 우리나라가 홍콩의 이러한 주상 복합 아파트를 도입해 가서 서울에 보급했고 청마대교를 본따서 우리의 영종대교를 건설했다고 했다. 중심가는 더욱 심했다. 건물들이 이마를 맞대고, 등을 맞대고, 어깨를 겨눈 듯 서 있는데 조그만 틈만 있으면 1미터의 공간도 두지 않고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다. 하늘을 뚫을 것처럼 높은 건물들을 흡사 우리네가 단층건물 짓듯이 하고 있었다. "이 쪽 건물에서 창문을 열면 저 쪽이 다 보이는 것 아닌가요?" 라고 물었더니 서로 창문을 열지 않으며 저렇게 창문처럼 보여도 열 수 있는 창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환기는 어떻게 하나가 의문이었지만 건물이나 식당, 버스 등의 환기는 문을 열기보다 환풍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좁은 길에서도 자동차의 경적소리나 교통체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며 음주운전이나 자동차 사고가 없다는 것이다. 경찰력 최고, 치안 최고, 교통법규지키기 최고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기사들이 아주 어렵게 면허증을 따서 모두 베스트 드라이버라서 그렇다고 했다. 어디선가 항상 건물이 탄생중인 도시, 밀림처럼 고층이 많은 도시, 밤풍경이 기가 막히게 화려한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사치스럽고 빠릿빠릿할 것 같지만 너무도 수수하고 꾸밈이 없고 진득하여서 또 놀랐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한 줄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웃지도 않고 화나지도 않은 무표정의 얼굴로 앉아있었다. 왜소한 체격의 그들을 보니 아름다운 도시의 시민으로 살고 있지만 비싼 물가로 살기가 고달파 보인다. 이 도시에서 30여평의 아파트가 십칠 억원 된다니 집 장만이 현실로 되는 서민이 얼마나 될까.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 죽어서도 그들은 누울 땅이 없어서 비스듬히 선 채로 매장한다고 했다. 그래서 강시는 콩콩 뛴다나. 발이저려서. 서민들의 소박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식당에서 생후 한달을 기념하는 파티에 온 가족들이 집에서 입는 차림으로 머리를 감지도, 빗지도 않은 모양새로 초대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머리를 자주 감으면 복이 나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부터 그 곳이 물이 부족한데서 오는 문화일거라고 생각한다. 홍콩은 섬이니까. 그들이 생각하는 복이나 소원은 돈, 로또당첨, 도박, 경매에서 일확천금을 얻는 일등 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을 꿈꾸며 주로 황대선 도교사원을 자주 찾아서 공을 들인다고 한다. 능력에 맞게 음식을 준비하여 뜰에다 신문지를 펴고 그 위에 차려놓고 그 앞에 꿇어앉아서 긴 향을 한 웅큼 쥐고 수없이 절을 하다가 향로에 꽂았다. 향냄새가 많이 날수록 소원성취가 된다고 믿는다니 일을 해서 집을 사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그들이 일확천금을 바라면서 기도를 하는모습은 근엄하였고 말 할 수 없이 정성스럽게 절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서로 몸을 부대끼며 사원의 뜰에서 장시간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은 매우 춥다해도 영상 5-7도의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이다. 마침 우리가 현지에 갔을 때는 쌀쌀했는데 어깨를 움추려 흔들면서 추위를 이기는 가이드가 무슨 큰 뉴스인양 전해 주었다. “요즘은 정말 많이 춥네요. 어제는 영상8도여서 동사자가 두 명 있었습니다. 저번에는 영하 2도에 동사자가 사십명이 있었고요.” 우리는 영상8도에서 사람이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커다란 소리로 웃고 말았다. 우리는 무도 얼지 않는데. 이름도 아름다운 홍콩은 자동차로 두 시간만 돌면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좁다는 말이다. 그러니 산을 개발할 수밖에 없나보다.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산에 설치된 야외 에스컬레터를 두 차례나 연거푸 타고 걷고, 또 에스커레이터를 연거푸 두 번 탔으니 . 산등성이 이동을 야외 에스컬레이터로 했다는 말이 된다. 그들은 산을 우리네 평지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책락콕 공항은 하루4천5백만 이용객에 게이트가 80개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공항으로 세계 비즈니스경쟁1위의 도시지만 풍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효를 근본으로 하며 일류학교를 선호하고 건강을 위한 음식 투자, 혐오식품을 즐긴다는 것 등이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 "그럼 개고기도 먹나요?"하고 일행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잘 먹지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소문 없이 먹어요. 여기는요. 어린 개를 죽여 눌린 것을 좋아하고 선 물 로 주면 아주 좋아해요. 광동지방은 온갖 요리가 다 있어서 세계의 내로라하는 미식가들이 많이 찾아 오며 날아다니 것은 비행기, 땅에 것은 자동차, 물에 것은 잠수함만 빼고는 다 아 먹어요. 아, 참. 빨래도 빼고요." 도심을 지나다가 가이드가 학교를 가리켰다. 운동장은 농구 코드장을 그린 것이 전부였다. 우리나라의 8학군과 비교되는 이곳은 70년의 전통을 가진 천주교 학교로서 이 학교에 입학하려면 1년 전에 입학원서를 내야하고 서류심사로 부모가 이 학교 출신인가. 부모가 이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가, 부모의 종교가 같은 종교인가를 보고 인터뷰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유치원생도 국, 영, 수, 상식, 성경, 쓰기, 듣기, 음악, 체육을 A, B, C로 평가하여 이것을 초등학교 입학원서에 기록하고 초등학생은 6시에 기상하여 7시에 학교 가다가 가게에서 아침을 사먹고 학교 가서 5시에 귀가하고, 유급제도가 있어 국어, 수학, 영어가 평균점 이하이면 진급을 못한다니 우리나라보다 더 괴로운 유아기 아동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명문 시립학교의 입학 인터뷰 내용은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 가정부가 몇이냐, 무슨 차를 타고 등교하냐,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냐를 묻는다니 소문내고 부자만 뽑겠다는 말이다. 홍콩은 쇼핑의 천국이라 했으니 홍콩에서 쇼핑을 뺄 수 없다. 야시장쇼핑과 면세점 쇼핑,짝퉁 쇼핑으로 나누어지는데 요사이는 정부차원에서 짝퉁 가게에 제재를 가하여 짝퉁의 맛은 볼 수 없었다. 면세점의 명품관에서는 관세가 없어 약간 싼 편이라고 했지만 내 경제력으론느 윈도우 쇼핑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크기의 매장과 물량에 놀랐다. 이곳이 다이아몬드의 집산지, 천연진주의 집산지, 황금의 집산지 보석의 세팅기술 세게 최고라는 가이드의 말이 맞다면, 그리고 저 많은 물건들이 도매로 다른 국가에 팔려 나간다면 홍콩은 국제도시임이 틀림없다. “뉴 스타일”이라며 막 진열되는 명품들을 보면서 ‘새 상품이 빨리 나오고, 관세가 없어 값이 다소 싸며, 상품의 종류가 다양하다.’ 이렇게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나니 홍콩을 쇼핑의 천국이라고 하는 말이 이해가 갔다. 맞는 결론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사람 부대끼는 재미는 야시장에서 있었다. 사람 빼고는 모두 가짜라는 야시장은 정말 재미있었다. 가짜를 가짜라 하고 싸게 파는데 얼마나 재미있는 공간인가? 옷, 그릇, 다기, 시계, 핀, 가발 장난감을 비롯해 없는 게 없다. 나는 발이 아프도록 오르내리며 구경을 했다. 명품과 거의 같게 만든 시계가 2달러이니 속은 들 어떤가. 나도 시계하나를 2불 주고 현지 시각에 맞추어 샀다. 가격을 생각하면 원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데 참으로 이상하다. 도대체 재료비와 인건비가 어떻게 되길래 2달러에 팔고도 남는 것이 있는가. 더구나 홍콩은 자녀 말고는 현지 생산이 아무것도 없다 했으니 야시장 모든 물건이 수입이란 말인데.
1997년 7월 1일 영국에서부터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은 무역항으로의 위치만 좋을 뿐 천혜의 자연이라 불릴 만한 명소는 없는 것 같았다. 인공적으로 개발한 관광지도 우리 눈에는 별 것 아니었고 명소라고 안내한 해양공원관광지도 우리의 산하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다만 그래도 무언가 보여주기 위해 만들고, 살고 있는 집을 꾸며서 야경으로 연출하는 그들의 노력이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심천이 경제 특구로 지정되면서 눈부신 개발로 공해가 일어나 밤하늘의 별을 잃어버린 도시. 세계 제일의 무역항이 되고 비즈니스경쟁 도시 1위로 성장하면서 출입하는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외화에 신경을 쓰는 도시. 100년간 영국이 지배하며 뿌리내린 서양제도를 이용하여 살면서 그 위에 자신들의 혈통에 맞는 문화를 접목해가며 열악한 환경이나마 순응하고 적응하며 꾸미고 다듬고 만들어 가면서 보여주려고 애쓰는 도시, 빈부의 격차를 인정하면서 홍콩과 구룡 반도 사이에 펼쳐진 호수처럼 물결 잔잔한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 순진한 시민들이 사는 곳. 그래서 복잡하지만 따뜻하여 이웃 같은 외국. 2박 3일간 내가 본 홍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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