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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Deep purple-April
아래/Simon & Garfunkel-April Come She Will(N.Y Central Park Live)
4월은 잔인한 달-Deep purple 불후의 연주곡 April
응답하라 1973!
4월입니다. 지독한 한파와 유례없는 폭설로 몸을 떨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의 4분의 1이나 지난 4월이라니요. 헐! 세월 참 빠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T.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서사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이라고 읊었습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렸다(이하 생략)
라틴어로 싹이 튼다는 뜻을 가진 April. 동토 속에서 이제나저제나 때를 노리고 있던 식물들의 씨앗과 뿌리들이 일제히 땅을 뚫고 나와 잔인할 만큼 치열한 생존경쟁을 시작한다는 뜻일까요? 그러나 저에겐 4월이 아니라,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1973년, 고2 때 그것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낙원동의 8월이 잔인했던 달로 기억됩니다. 응답하라, 1973!
고백하건데, 고등학교 시절 전 결코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이제야 밝히지만 모범은커녕 문제학생 축에 끼었던 과거를 가진 몸입니다. 1973년 8월, 여름방학 중이었지만 우린 등교를 해야 했습니다. 국‧영‧수 위주의 보충수업 때문이었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보충 수업료도 받지 않고 시행한 이 제도에 대해 학생들이 고마워할 것으로 여겼겠지만 원, 천만의 말씀입니다. 달랑 천정에 달린 선풍기 2개가 전부인 냉방시설로는 8월의 무더위 속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엔 애당초 무리였으며, 고마워하기는커녕 우리는 시간만 축내게 한 학교 당국을 원망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렇게 갑갑한 교실에서 짜증만 부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노는 데 일가견이 있는 한 녀석이 슬슬 선동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 뜨거운 날씨에 갑갑한 교실에서 청춘을 보내서야 되겠냐면서요. 이는 곧 계절에 대한 모독이요, 피 끓는 청춘에 대한 무례 행위라며 게거품을 내물었습니다. 이어 모 여고 학생들과 미팅 약속을 잡았다는 산뜻한 소식을 전하면서, 내일 오후엔 점심을 먹자마자 월장하자는 겁니다. 마침 다음날 오후 수업은 영어, 영어 선생님은 이미 교탁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분으로서 학생들이 엎드려 잠을 자건 말건 상관 않고 칠판에다 빽빽하게 예문을 써놓고 ‘쿨’하게 나가버리는 ‘귀차니스트’였습니다. 당연히 출석 체크 따위는 하지 않는 분이었지요.
이튿날, 저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들은 각자 미리 준비해 둔 사복으로 갈아입고는 기어이 학교 담을 넘습니다. 그런데 미팅 장소가 문제였습니다. 그 이름도 거룩한 ‘낙원분식’이 청춘남녀들이 주로 서로 수작을 주고받던 유명한 장소였었는데, 선동자 친구는 우리를 종로2가 YMCA 뒷골목이자, 학생들의 A급 우범지역인 한 음악다방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게 아닙니까? 섬뜩했지만, 이제 와서 발뺌하기가 그렇고 해서 그냥 따라 들어갔습니다.
바야흐로 시대는 유신의 절정기,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는 예서 논외로 하고… 70년대 중반은 가히 문화의 암흑기라 할 만 했으며, 가요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요는 물론이고 외국 음악까지 싸잡아 검열의 잣대를 들이댔고, 그 결과 체제비판적인 낌새나 그와 비슷한 단어 한 구절만 나오더라도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리듬이 일본풍이라 하여 이미자 님의 ‘동백아가씨’까지 금지곡 대열에 오르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팝송에서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팝 음악의 거작이라고 칭송받는 수많은 곡들이 당시엔 대부분 금지곡으로 묶여 전파를 탈 수 없었습니다. 반전운동가이기도 했던 밥 딜런Bob Dylan의 ‘Blowin’in the Wind‘, CCR의 'Who'll stop the rain?' 등은 월남전을 반대하는 노래라고 하여 금지되었고, 많은 락 밴드들의 음악이 긴 머리와 거친 연주 태도가 우리 정서를 해친다고 하여 전파를 탈 수 없었습니다.
약간만이라도 체제비판적인 내용을 담거나, ‘F’로 시작되는 욕설이 나오는 등 조금이라도 불순한 끼가 보이는 노래에는 가차 없이 ‘금지곡’이란 주홍글씨를 새겨 넣었습니다. 따라서 ‘최동욱 쇼’로 대표되던 당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팝송이라고는 그저 ‘Yesterday once more' 유類의 달달하고 서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었고, 락 음악에 목마른 대중들은 대안으로 음악다방에서 그 갈증을 해소하곤 하던 때였습니다.
생전 처음 접한 음악다방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신천지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좀 노는 듯 보이는 미팅 상대 여학생들은 왜 그리도 성숙해 보이던지요. 볼륨을 있는 대로 다 올려놓은 음악 소리 때문에 쿵쾅거리는 제 가슴의 진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황홀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일탈의 대가는 그리 오래지않아 쓰나미처럼 들이닥쳤습니다. 공연장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즈음이었습니다. 뒤에서 ‘쌔한’ 느낌이 들더니 누군가가 덥석 제 허리띠를 잡아챘습니다. 돌아보니 몇몇 경찰관과 지도부 교사로 보이는 건장한 사복 차림의 어른들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당시 각 학교 지도부 교사들은 하교 후 당번을 정해 극장, 주점, 심지어 분식집 등 우범(?) 지역을 배회하다가 청소년 범법자(?)들을 잡아다 해당학교에 통보하곤 했습니다. 분식센터와 극장, 음악다방, 주점이 늘어서 있던 낙원동이 우리에겐 낙원이었지만, 그 양반들은 범법자들의 출몰지역으로 여겼습니다.
현장에서 꼼짝없이 체포된 우리는 인근 파출소로 끌려갔고, 온갖 수모와 꿀밤세례를 겪으면서 학교와 반, 이름을 댄 후에야 풀려났습니다. 학교에서 닥친 후폭풍에 관한 이야기는 상상에 맡기고 생략합니다.
어쨌거나 이 후에도 우리는 더러 눈을 피해 그 다방을 애용하곤 했는데, 다행이 이한 번도 걸리진 않았습니다. 학교 졸업하던 날, 친구들이랑 몰려가서 문을 닫을 때까지 맘껏 음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4월의 초순, 문득 당시 그 음악다방에서 처음 듣고 엄청난 충격과 함께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딥퍼플의 명곡 ‘April’이 딱 떠오릅니다.
Deep Purple 내한공연(2010년)
Highway star, Smoke on the water, Fools, Hush, Hey Joe 등 많은 명곡들로 팬들을 즐겁게 했던 영국 출신의 락 밴드 딥퍼플Deep Purple, 대표적인 하드 락 밴드로서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와 함께 헤비메탈의 선구자로 지금까지도 추앙 받고 있는 전설적인 그룹이지요. 1967년에 처음 결성된 이후, 여러 멤버들이 들락거렸지만 대체로 이안 길런(보컬), 리치 블랙모어(기타), 존 로드(오르간), 로저 글로버(베이스), 이언 페이스(드럼)로 팀이 구성되었을 때 가장 화려했다는 평입니다.
많은 이들이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제프백Jeff Beck, 지미페이지Jimmy Page 등 3대 기타리스트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연주 실력을 가진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를 이 그룹의 대표주자로 꼽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모두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모인 집합체였지만, 존 로드Jon Douglas Lord의 장엄한 오르간 연주야말로 딥퍼플을 더욱 화려하게 한 요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결성에서부터 201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떠나지 않고 그룹을 지켜온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딥퍼플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르가니스트로서 바흐의 열혈 추종자이기도 했던 그는 딥퍼플의 음악에 바흐의 푸가 등을 자주 도입하였고,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클로스오버의 선도자로서 딥퍼플의 음악이 바로크 락 또는 클래식 락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는 데에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딥퍼플이 유명 오케스트라와 수많은 협연을 가지게 된 것도 다 그의 클래식 음악적소양의 결과입니다. ‘필하모니 헝가리’와 협연한 솔로 앨범 ‘사라방드Sarabande’, ‘로열 리버풀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더럼 콘체르토Durham Concerto‘ 등 그는 딥퍼플 밴드를 끝까지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락과 클래식의 접목을 시도했던 아티스트였습니다. 몇 년 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두 명의 객원보컬과 함께 서울 아트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과 병마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 2012년 71세의 나이로 지병인 췌장암 투병과 폐색전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제 존 로드의 오르간 연주가 일품인 딥퍼플의 명 연주곡 April을 들어볼 차례입니다. 클래식 코드와 연주 요소를 많이 도입한 곡이기에, 이 곡을 감상하노라면 라흐마니노프나 바흐에서처럼 장엄함까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April을 굳이 연주곡이라 표현한 이유는 무려 12분에 가까운 곡 중에서 ‘April is a cruel time'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보컬은 마무리 부분에서 그것도 2-3분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4월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 사이먼과 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도 함께 올립니다. 이 노래는 사실 4월과는 별로 관계없는 노래이지만 제목에 April이 들어 있다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4월에 자주 소개되는 편입니다. 즐감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참, 대단하십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작가인지 음악 평론가인지 모를 정도인 표 형님의 문장력과 박식함에 탄복했습니다.
글을 읽노라니 어느덧 그 당시의 시대상에 푹 파묻히며
고개를 주~욱 내밀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으니까요.
다재다능한 표를 재발견하고 확인해서 기쁘고 반갑네.
이 카페가 아니었으면 먼 옛날의 모습으로만 남아있을걸 이렇게 매일 만나니 넘 좋구나...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하고.
언젠가 선조님들 문집도 만들고
또 살아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모아
카페안에 별도로 인터넷북 모양으로 디자인해서 인터넷문집 하나 만들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