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역삼동의 허허벌판인 시절, 한옥집 단칸방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셔서 엄마를 만나 나와 내동생을 두었습니다. 부모님은 신혼 초부터 과일 장사를 시작하셔서 저희 남매를 기르셨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과일장로 가게를 하셔서 강남의 전세, 빌라, 아파트등을 2년을 주기로 이사를 하다가 제가 고3이 되던 때 문정동으로 주택을 마련하여 지금의 집을 만났습니다.
가족은 나에게 큰 힘이자 위로입니다. 가족이 없다면 난 외로웠을 것입니다. 가족.... 아버지는 과일장사를 접으시고 지금은 개별용달, 어머니는 은행청소일은 하십니다. 우리 남매는 어느덧 자라서 각자 직장생활도 하고 있습니다. 전... 아픕니다. 하지만 엄마의 식이요법과 가족들의 지지 아래 항상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애쓰시는 부모님이 감사합니다.
사춘기 이후 저는 철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고생하는 것을 외면한 채 늘 놀러만 다니고 겉돌기만 했습니다. 20대 때는 저의 방황은 극에 다다릅니다. 밤에 환청과 환시... 친구들을 미워함... 엄마와의 싸움, 현실 불만족... 그 자체였습니다. 약 16년간에 투병생활... 가족들의 지지.. 전 지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직장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어머니께 이젠 조금 이나나 용돈도 드립니다. 내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현실... 더 나아지는... 오랜 기다림 속의 현실이 감사합니다. 약을 먹지만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늘 현재를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제가 장애인이 된지 12년째 되는 해입니다. 나의 장애는 정신장애, 조현병입니다. 요새 매스컴에서 흔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현병... 저는 장애인이 되고 나서 직업 재활의 성공 사례로 회사에서 몇 번 인터뷰에 응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정신장애 당사자가 되면서 약물훈련, 스트레스관리, 직업재활 등의 교육을 처음 받은 것은 2006년도 “어우러기”라는 송파정신장애인사회복귀시설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고, 여러 가지 사연들이 많았지만 다시 만나서 지금까지 1년 6개월간을 교제해오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저는 아침일찍 일어나서 일찍 자는 습관이 생겼고, 약을 꾸준이 먹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 곳에서 취업을 위해 6개월간의 훈련을 종결되었습니다. 그 뒤에 저의 사회 생활을 녹록치 않았습니다. 국비지원으로 직업전문학교를 두 곳이나 다녔지만, 이것도 취업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2009년도 즈음, 저는 성모정신장애인사회복귀시설에서 비버직업전문학교 사무과정을 듣게 됩니다. 그 곳에서 수료는 못하지만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수업들 들었습니다. 훗날 제가 2012년 1월, 지금의 회사에 사무보조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근로자의 날을 맞이할지 9년째 되어갑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회사에 못나갔습니다. 매년 근로자의 날마다 상품권과 휴가가 주어졌었습니다. 참 기쁘고 감사한 회사입니다. 제가 직업재활시설에서 하는 일은 기증자 응대, 기부금 영수증 전산입력입니다. 하는 일이 전화를 받고 전산만 입력하는 것 같지만 이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기증자님께 기증 가능 품목 안내와 컴플레인을 응대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기증가능품목도 애매한 경우가 많고, 기증자님의 컴플레인도 다양해서 고객응대가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올해부터는 회사에서 저에게 근로지원인 선생님을 붙여주셔서 일이 더 어렵지 않게 도와주셨습니다. 저의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생각해주시고 배려해주셨습니다.
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회사 사회복지사님께 저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그럴 때마다 회사는 저의 입장에서 개선할 부분을 논의해주십니다. 이것이 일반기업과 저희 회사의 차이점 같습니다. 장애인에게 맞는 일자리를 계획하고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 저는 이런 점이 우리 회사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친환경적인, 중고물품 재활용 아이디어까지~ 회사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니 저희 회사의 자랑을 그만 하겠습니다. 전 우리 회사에서 정년 퇴직할 때 까지 다니고... 저의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 미래를 위하여 앞으로 전진 또 전진하렵니다.
저는 처음에 제 자신이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훈련과 과정을 거치면서 저에 대한 병식이 생겼습니다. 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그리고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가 내 자신의 대한 과욕과 망상 때문이었 던 것입니다.
전 2008년도에 장애인을 등록, 사회에서 여러 가지 혜택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통비 무료, 전기세, 가스세 등 할인, 이동통신료 할인, 직업재활시설 취업 등... 나라에서 주는 혜택이 참 감사합니다. 또 지금은 장애인분들과 꽃꽂이 기능경기대회에 출전 준비를 하였고, 최근에 2020년 6월 25일 장애인지방기능경기대회 훼훼장식 서울 쪽에서 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나랑 다른 장애인 분들이지만 이렇게 만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난 장애인이 된 게 재수 없어서 된 게 아니라, 이것도 다 하늘의 뜻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장애인 분들을 만나게 해주시니 이것도 감사합니다. 나의 장애인으로서 미래의 삶이 기대되고 흥미 진진한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해미님 늘 응원합니다~^^
행복한 나날되세요~!
재기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바쁘실텐데 제글도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혜미님 대단하시군요 정말 용기 있는 도전에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겠습니다
응원합니다 ~♡
웃는해미님 참으로 멋진분이십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아들도 해미씨처럼만 인생을 살아가주길 매일 매일 기도합니다
힘내세요~ 저도 어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병원도 다녀오시고, 교회도 데리고 다니시고, 산도 다니시고, 하시다가.... 자립적으로 무언가 하게끔 노력많이 하셨었어요. ㅠㅠ
웃는 해미님 참 멋지십니다. 행복한 나날 되시길 빕니다. 우리 아들도 해미님 처럼 잘 극복하기를 매일매일 기도합니다.
제딸이 나이 먹어가서 조바심이 나는데 좋은 기운 받고 희망을 가져보네요.
제 아들도 해미님처럼 당당히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수 있겠다는 희망의 메세지에 용기를 내어봅니다.
너무 멋지세요.
우리딸도 멋지게 성공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