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장 25-38절. 처녀 총각 결혼에 대하여, 요약설교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론’에 관한 교훈인데, 1-7절은 총론격이고, 8-9절은 각론1 (독신 생활론), 10-24절은 각론2 (이혼론), 25-38절은 각론3 (처녀 결혼론), 39-40절은 각론4 (과부 재혼론)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각론3 (25-38절: 처녀 결혼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6. 처녀 결혼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5절.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1. ‘대하여는’은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질문한 내용들에 대한 답변 형식이 문구입니다(NIV-SB).
‘처녀’(παρθένος)는 ① 일반적인 처녀를 가리키기도 하고, ② 약혼하고 동거하기 이전의 남녀(fiancee)를 가리키기도 하고, ③ 젊은 과부를 가리키기도 하고, ④ 정신적 결혼 관계에 있는 여자를 가리키기도 합니다(Linguistic Key).
36-38절에 비추어보면, 좁은 의미에서는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의 남녀(fiancee)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리상 결혼하지 않은 일반 처녀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2.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계명’(επιταγη)은 지상에 계셨던 주님께서 직접 언급하셨던 말씀(an expressed command)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25절 이하의 교훈은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은 아니나,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교훈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독신생활이 타고난 자라야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26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1. ‘임박한 환난’(ἐνεστῶσαν ἀνάγκην)이란 문자적으로는 ‘현재적 필요’(present necessity)란 뜻으로서, 현재 당하고 있는 위기 상황(present crisis-NIV)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 절은 박해와 기근을 당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으로 적용하여 처녀의 독신주의를 주장함은 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NIV-SB. p.1743. Blomberg. p.151).
Blomberg 같은 유명한 학자는 ‘임박한 환란’을 그리스도인 각자가 자신의 죽을 날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데 늘 갖추어야 할 응급한 마음의 자세(sense of urgency to serving the Lord)를 가리킨다고도 했습니다.
2000년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는 ‘독신주의’가 유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나, 인류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특별한 뜻에서 ‘독신생활’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가 ‘독신주의’라고 하면서, 독신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4장 1절에는, “말세에 악령에 미혹된 사람들이 혼인을 금하라고 할 터이나, 혼인은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27절.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1. 결혼은 법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매였다, 놓였다’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28절. 그러나,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1. 본 절의 ‘처녀’도 25절의 처녀와 같은 단어로서, <정혼하고 동거하기 이전의 처녀>(betrothed woman: fiancee)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본 절은 환난 때에 가족을 돌보려면 더 큰 고난을 당한다는 의미이지, 보통 때에 ‘남편과 자녀를 돌보는 육신적 봉사가 고통스러운 짐이기 때문에 결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지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선교적 희생과 봉사를 위해서라도,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하게 여기라.
29절.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1. ‘그 때가 단축하여지다’(the time is shortened)는 말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짧아진다’(The time for doing the Lord's work has become increasingly short)는 말입니다.
즉, ‘세월이 유수와 같다’(life is fleeting)는 말입니다.
이처럼 세월이 유수와 같으므로, 성도들은 ‘인생살이에 초연한 자세를 갖고, 너무 세상사에 몰입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세상사’란 ① 가정생활, ② 희로애락의 감정(30절, 우는 자들, 기쁜 자들), ③ 경제생활(30-31절, 매매하는 자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 ④ 향락생활(33-34절, 어찌 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30절.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31절.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1. ‘이 세상의 외형’(τὸ σχῆμα τοῦ κόσμου τούτου: the form of the world this)이란 ‘하늘나라의 참 모양’(μορφή τοῦ οὐρανοῦ)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유행(fashion)처럼 사라져갈 이 세상의 자원들과 기회(world's resources and its opportunity)를 가리킵니다(Bruce by Linguistic Key).
32절.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1. 너희가 염려 없기를 바라노라.
여기서 ‘염려’란 유행처럼 사라져갈 ① 이 세상의 가정생활, ② 희로애락의 감정, ③ 경제생활, ④ 향락생활에 대해서 초연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마음 쓰는 것을 가리킵니다.
33절.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1. 이것은 장가간 남자와 시집간 여자가 결혼생활에 초연하지 못하고, 염려한 경우를 가리킵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μεριμνᾷ)는 금언적 현재(gnomic present)로서, 일반적으로 결혼생활자는 배우자의 일을 염려한다는 것이지, 그리스도인 결혼생활자가 모두 다 배우자의 일만 염려하고 주님의 일을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독신자가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하고 주의 일에 무관심할 수가 있고, 결혼생활 하는 그리스도인이 협력하여 더욱 주님의 일을 잘 할 수도 있습니다(cf. SMT. Funk by Linguistic Key).
34절.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절.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1. 바울이 금언적인 교훈을 들어서 독신생활을 권장하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결혼 환경(marriage circumstance)에 관한 것이므로, “각자의 형편에 따라, 결혼생활이 신앙생활에 유리한 수단이 되면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독신생활이 신앙생활에 유리하면 독신생활을 하라는 것이지, 율법주의나 금욕주의적인 입장에서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반드시 독신생활을 해야 한다고 짐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6절.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1. 36-38절은 역본에 따라서 번역이 다릅니다.
‘자기의 처녀 딸’이 원문에는 ‘자기의 처녀’(παρθενον αυτου)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자기 처녀’(his virgin-약혼한 여인: betrothed woman)를 가리키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AV. NEB, NIV).
따라서, 36-38절에 나오는 ‘처녀’는 약혼했으나 아직 동거하지 않은 여인(fiancee)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1:18. 요셉과 정혼했으나 동거하기 이전의 마리아처럼.
그러므로 ‘원하는 대로 하라’는 약혼하고 아직 동거하지 않는 남녀에게 ‘동거생활을 하라’는 의미입니다(NIV-SB. p.1743).
37절.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1. 본 절은 ‘약혼녀란 한국적 개념의 약혼녀가 아니고, 법적인 혼인관계가 성립했으나, 아직 동거하지 않은 유대적 개념의 약혼녀를 가리킵니다.>
38절.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오늘 성경 본문을 근거로 처녀 독신주의를 주장하는 것을 잘못임을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고(창 1:28),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창 2:18).
그리고 혼인을 귀히 여기라고 하셨고(히 13:3), 말세에는 악령에게 미혹 된 이단들이 혼인을 금하라고 할 것이고 했습니다(딤전 4:1).
그리고 중세시대 천주교에서 독신주의를 주창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본문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또 번역상의 문제가 있어서 많은 처녀들이 결혼을 거부하거나 뒤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압니다.
아무쪼록 성경 본문을 올바로 이해하여 귀중하고 복된 결혼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