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뻰또
우리 형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부르는 이름
엄마라는 이름 대신
아버지라는 이름을 먼저 배웠고
허물어진 계절만 안고 살아온 아버지는
새벽별을 볶아 만든 뻔또를
잠든 우리 머리맡에 놓아두시고
동트기 전 어둠을 걸어 붕어빵 장사를
하러 나가셨습니다
정작 자신은
팔다 남은 붕어빵 몇 조각으로
하루 끼니를 떼우면서 말이죠.
쓰러져 울기보다
괜찮은 척 사는 게
내 자식들에겐 나은 일임을 아셔서인지
리어카에 밤새 재운 밀가루 반죽 통에
아직 귀가하지 못한 달과 별을 나란히 싣고
금 간 하루 땡볕에 녹슨 몸을 내맡기러
걸어 나가는 잔주름 핀 얼굴엔
늘 미소가 그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늘 학교를 마친 우리 형제는
집보다 아버지가 있는 붕어빵 포장마차로
향했고 밀가루와 허드렛일 대신
책과 연필을 쥐여주며
“너거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데이”
“아버지 도와 드릴랍미더”
“ 아버지처럼 붕어빵 장수가 될끼가
너거들은 공부 열심히 해가꼬
더 큰 일을 해야제“
사과 궤짝을 붙여 만든 책상에 앉아 있는
우리를 내려다보며 보름달보다
더 커진 미소를 그리고 계셨던 아버지는
일상을 지나다 지쳐 잠든 우리들의 입에
금방 구운 붕어빵을 반으로 잘라
사랑의 입김 호호 불어 입에 넣어주시며
늘 묻곤 하셨답니다
“누구 새낀데 이리 이삐노?”
“아버지 새끼 예”
저녁 어둠을 따라
손님들의 발길도 끊어질 무렵이면
새벽을 깨워 나온 아버지는
붕어빵틀을 돌리는 집개를 꼭 쥔 채
세상과 싸우다 지쳐 꾸벅꾸벅 졸고 계셨고
부쩍 늘어난 주름과 흰머리를 보며
아버지라는 자리가 있어
우리가 있다는 걸 알아가던 우리는
어깨동무한 꼬마별들이 놓아진
하늘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의 그림자를 서로 먼저 밟겠다고
실랑이하는 우리 모습을 보며
밤마실 나온 달님처럼 싱긋이 미소 짓고 계신
아버지 머리 위로 하늘이 허락한 밤비는
그렇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 살살 뽑아라..
아프다“
“아버지예 인자 안되겠심미더”
“와?”
“인자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많심더“
아들들이 뽑아주는 흰머리에
같은 색깔의 하얀 웃음을 매달던 그 행복마저
점점 멀어지는 걸 안타까워하시다
잠든 아버지를 위해
우린 노란 달을 지우다 남은
까만 물감으로 하얀 머리에 칠을 하며
봄·여름·가을·겨울 늘 그 자리에 계셨던
내 아버지를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행님아...
배고픈데 아버진 왜 이리 안 오노?“
운동회날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옹기종기 모여
김밥을 먹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만 있던 우리 눈에
“너거들 많이 기다맀제
김밥 싸 왔다 우리도 퍼떡 먹자“
“이기 뭔 김밥임미꺼?“
뻰또 안에서 터져있는 김밥을 보며
울음을 터트리는 동생에게 미안해진 아버지는
“너거 엄마가 있었으면 이쁘게
말아줬을 긴데...“
“아임미더..
이렇게 흔들면 더 맛난 비빔밥 된다
아임미꺼...“
그날 밤
아버지는 힘든 세상살이의 한 수단으로
밤이면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셔도 슬펐을
엄마가 계신 하늘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 사발에
주절주절 세월을 잊어가는 게
내일을 살아갈 밑천을 만드시고 계셨다는 걸
몰랐던 동생과 나는
“형님아….
고기 묵고 싶어 죽겠다
아버지 몰래 저 돼지저금통 찢어가
고기 한 번 사 먹자“
“배고프면 부엌에 가서
팔다 남은 붕어빵 묵어라.“
“변소 가서 똥 누면 인자 붕어가 나오더라”
“쉿 조용히 해라. 아버지 깬다
저건 우리 대학 보낼끼라고
한 푼 두 푼 모으시는 아버지한테
목숨줄보다 더 귀한기다“
“ 붕어빵 팔아가 무슨 대학 가겠노“
동생과 나는
그 돼지저금통을 들고 아버지 몰래
대문 밖으로 나가려다
눈 감고 그 말을 다 듣고 계셨던 아버지가
노려보고 있는 모습에 놀라
골목길 밖으로 도망치다 넘어진
우리 머리 위로 겹쳐오는
햇살을 등진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
집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 형제에게
“둘 다 손바닥 내밀어라“
손바닥이 불이 나게 맞을 생각에
울음이 먼저 터져 나온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고 계시던 아버지는
내민 손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안 다쳤나?”
품에 안긴 우리에게
가장 큰 세상은 아버지 품이란 걸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이 참에 우리도 고기 한번 묵자“
“아버지 예
... 거기서 거기 아님미꺼?"
“아이다….
오늘만은 고기서 고기다“
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우리들에겐 꿈이 되었던
아버지의 양손에 매달려 고깃집으로
걸어가던 그때가
그리움으로만
남은 지금 나지막이 불러봅니다
아버지 라는 그 이름을...
“아버지예 ...
우리 둘 다 합격했심더“
힘든 세상을
그 큰 등으로 막아주시던 아버지는
세상에 주어진 도리에 따라
어느새 노인이 되어계셨고
그말에
쏟을 수 있는 눈물을 다 쏟은 채로
울먹이시던 아버지는
“임자 보고 있나..
내 인자 당신 곁으로 가도 돠겠제?“
라는
마지막 흐느낌을 남겨 둔 채
엄마가 계신 히늘나라로 떠나시던
그날을 되새기면서
저도
이제 아버지가 되어
당신이 걸어갔던 그 길을 걸어가며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고서야
하늘에 별이 있었다는 것을….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첫댓글 가슴이 찌~ㅇ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