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절이는 습관을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기록이 너무 귀하기 때문이다. 야채나 과일(다시 말해 소중한 비타민)을 절여서 보존하는 방법은 다른 형태의 보존과는 달리 특정한 유행이나 인기를 얻은 시기도 딱히 없었다. 사실 음식을 취급하는 데 있어서 온갖 상상력이 모두 동원되었지만 절이는 방식은 그다지 일반적인 관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은 예외다. 미극은 '피클'이란 말을 특별히 오이피클이란 뜻으로 쓰는 나라이고, 오이피클도 약 50가지 종류가 있어서 처리 과정과 맛과 자르는 방법에 따라 다른 상품이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 '피클'은 믿기 힘들 만큼 복합적인 식품으로 변했다. 피클로프 런치미트가 좋은 예다! 미국에선 하루에 230만 킬로그램이라는 어머어마한 양의 피클이 소비되고 있다. 피클회사 '피클패커스인터내셔널'은 오이의 표면에 1제곱인치당 오돌토돌한 돌기가 적어도 일곱 개는 되어야 완벽한 피클이라고 인정한다.
기원전 2000년 경에 이집트인과 수메르인들이 발효법을 처음 발견했다는 데는 대체로 학계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발효법을 이용해 과일과 야채, 특히 오이를 오래 보존할 수 있었다. 오이는 인도에서부터 티그리스 계곡으로 소개되었다. 약 1,500년 뒤에 로마인들은 소금으로 음식을 보존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이 모든 기술이 결합하여 이른바 오늘날의 피클을 탄생시켰다. 즉 야채를 소금물에 담그거나 마른 소금과 섞은 후 초산에 보존하는 방식이다.
고대 기록에서 피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구약성서에는 오이에 대한 기록이 몇 군데 나온ㄷ.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여호와가 내려주었다는 기적의 음식)를 먹으면서 탄식한다. "이집트에 있을 때엔 생선도 많이 먹고 오이와 멜론과 부추, 양파, 마늘도 실컷 먹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와 클레오파트라, 티베리우스도 '양념하여 보관한 오이'를 먹은 것으로 플리니우스는 기록하고 있다. 줄리어스 시저는 절인 오이를 그의 군대 식량에 포함시켰고, 고대 해양 상인들의 식량을 담당했던 자도 로마인에게 배워 오이피클을 배에 실었다. 피클은 오랜 항해에서 오는 괴혈병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이는 나폴레옹 전쟁 때도 프랑스군 식량으로 등장한다. 그렇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 식량으로 또다시 오이가 사용되었다는 건 좀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오이 소비량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피클이 다시 영국 귀족의 식탁에 오른 것은 13세기였다. 피클은 존 왕의 성찬에 당당히 올랐다. 피클이 음식 보존 기능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클은 심심할 수밖에 없는 음식에 톡 쏘는 맛을 더해주었다. 저베스 마컴이 <영국의 주부>를 쓴 1615년에 이르면 피클의 범위는 오이뿐만 아니라, 샘파이어(미나리과의 식물), 아스파라거스, 양파에까지 확대되었다. 이것들은 대부분 '살라트'로 쓰였는데, 마컴은 군주의 식타겡 올리는 정성들인 이 메뉴도 소개했다. 살라트는 아몬드, 건포도, 케이퍼, 올리브, 까치밥나무, 레드세이지, 시금치 등을 설탕과 섞은 것으로 접시에 담아 식초와 오일과 설탕을 조금 더 친다. 그 위에 얇게 썬 오렌지와 레몬으로 덮는다. 이러한 살라트에는 절인 꽃이 빠지면 안 된다. 마컴은 증류한 식초에 담가 그 색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조언한다.
소금은 과거 신분 사회에선 아무나 쉽게 구할 수 없는 비싼 물건이었고, 포도식초도 북유럽의 일반 가정에선 구경조차 하기 힘든 사치품이었다. 이런 곳에서 음식을 절이는 전통이 발달하고 있었다면, 그 과정에 포함된 주요 보존 성분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겨울 저장 식품을 마련해야 하는 주부들이 사용한 소금은 비싸고 정제된 식용 소금이 아니었다. 영국의 가정에서 쓰는 건 부르제뇌프 만에서 나온 천일염으로 거칠고 불순물 투성이인 검은 소금이었다. 나중엔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에서 나온 것을 썼다. 거친 소금으로는 깨끗한 피클을 만들 수 없지만 음식을 보존하기엔 알맞았다. 또한 포도의 신 과즙을 구하기 힘든 사람들은 식초를 만들 때, 햇볕에 발효시킨 강한 에일 맥주나 능금을 썩힌 다음 나무망치로 두들겨 걸쭉하게 만든 후 담홍색 장미잎과 함께 커다란 통에 넣어 보관했다.
그렇다면 피클은 정확히 어떤 것일까? 피클, 처트니, 렐리시(달고 시게 초절임한 열매채소를 다져서 만든 양념류)란 용어를 헷갈리게 한 건 영국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농민들에게 없어선 안 되었던 브랜스톤 피클은 피클이 아니라 처트니였다. 그리고 처트니는 세월이 훨씬 지난 후에야 유럽으로 건너갔다. 피클은 맨소금이나 소금물에 먼저 담갔다가 꺼내서 5퍼센트라는 아주 묽은 식초산에 보존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방법은 지난 몇 세기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조금씩 상품화되었지만 이런 피클은 너무 시어서 입을 오므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다.
뭐라해도 좋은 피클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여전히 가정뿐이며, 공들인 피클 찬장을 갖고 있는 주부들이야말로 살림살이의 중추를 이루는 귀한 존재다. 정돈이 잘된 찬장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절로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깔끔하게 재워놓은 항아리에 이름표를 붙이고 꼼꼼하게 날짜까지 적어놓은 것을 보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더 매력적인 일은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화의 찬장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러면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피클을 알 수가 있고, 물론 몇 가지 아이디어는 슬쩍하여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춥고 음습한 겨울 저녁, 식탁에 특히 예기치 않은 손님이 왔을 때 찬장을 쳐다보며 무얼 대접할까 고민하는 주부는 생각만 해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언니와 함께 워체스터샤이어 시골구석에서 옛날식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1년 내내 우리가 손님에게 내놓는 메뉴의 중요한 부분은 모두 피클 저장고에서 나온다. 무, 로켓(겨자과의 식물) 꼬투리, 한련씨는 양고기 고명으로 쓰이고, 당근과 샐러리 살라트는 절인 돼지고기와 함께, 단단한 작은 양파는 빵과 치즈와 함께 제공하고, 달콤한 서양자두 피클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는다. 체리피클은 차게 양념한 고기와 훈제 오리가슴살과 아주 잘 어울리고, 가을 들판에서 딴 버섯은 훈제 뱀장어와 잘 맞고, 호두와 겨자무는 냉동 쇠고기엔 없어선 안 된다. 더욱이 절인 문어와 오징어는 혼합한 보르되브르(식욕을 돋우기 위해 식사 전에 나오는 간단한 요리)의 일부가 된다. 어린 비트 뿌리와 붉은 양배추는 농민들의 입맛을 돋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중략)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