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다소 끼어있기는 했지만 대통령들의 조각상을 올려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적당히 구름이 있으니 이리저리 이동을 하며 올려다보기에 더 좋을 듯싶었다. 어제 이미 아들과 정면에서 실컷 올려다보았으므로 오늘을 산 아래로 나 있는 트래킹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트래킹 길은 조각상 앞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길을 가능 도중 어디에서도 대통령의 조각상이 다양한 각도로 올려다보였다.
그 중 몇 곳은 특정 대통령만을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다. 아들과 얼마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가 쉬면서 그때마다 다른 각도의 조각상을 사진에 담으며 그곳에 전시된 그림과 내용을 읽어보았다. 물론 내 영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므로 아들이 번역을 해주었다.
러시 모어 산 정상은 온통 그 네 사람만의 땅이었다.
이분들이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고 위대한 민주국가의 탄생을 위하여 헌신한 조지 워싱턴,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안했고,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해 국토를 넓힌 토머스 제퍼슨,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로 미연방을 살렸고, 모든 인간의 자유를 지킨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서부의 자연보호에 공헌이 컸고 파나마 운하 구축 등 미국의 위치를 세상을 초월하는 크기로 그 위풍을 과시하고 있다.
조각할 당시엔 다이너마이트로 깎아 내고 로프에 매달려 못과 망치로 다듬질을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작업 과정을 사진으로 보니 난공사도 이런 난공사가 없겠다 싶었다.
조각상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동안 줄곧 부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았다. 우리는 정부가 수립된 지 거의 백년이 다 되어가도 여전히 서로를 부정하고 헐뜯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아예 대통령이 앞장서서 초대 대통령과 그 역사를 부정한다.
그것이야말로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편 가르기에 열중하느라 세상은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세계에서 드물게 앞선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가 박한 나라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인하대학교 교정에 하나 남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도 쓰러뜨렸다.
그는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인하대학교 설립자이다. 앞선 자들을 무시하고 내가 설 자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그런 기준은 명백히 진영논리다. 초대대통령은 이미 친일분자가 된지 오래다. 박정희 대통령도 친일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역사가 없다. 우리의 대통령 역사는 후손들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서로 헐뜯는 역사인 듯하다.
대통령에 의해 역사 해석이 달라지는 희한한 나라다. 대통령이 얼마나 역사 공부를 많이 했는지 모르겠지만 학자들도 모두 꿀 먹은 벙어리다. 그런 상황이니 학교교육이 의미를 잃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이 곧 법이기 때문인 모양이다. 제일 딱한 사람들이 역사학자가 아닐까 싶다. 분명 역사는 하나일 텐데 말이다.
제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국민이 부흥할 리가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의 여러 주장들을 보면 우리의 역사보다 북한의 역사가 더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역사 바깥에서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사람 같아 섬뜩하다. 그래도 나라가 온전한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