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을 한옥마을의 양사재에서 보냈다. 전주에 오면 꼭 이 마을의 오래된 한옥민박집에서 묵곤 하는데 버선코마냥 오똑하고 날렵한 곡선을 가진 검은 기와지붕 아래서보내는 시간은 꽤나 운치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로망을 곁들이자면 묵는 방에는 옛날식 구들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월이 됐어도 밤에는 다소 한기가 드는지라 장작을 방구들 아래 아궁이에 넣고 불을 땐 방이 참으로 반갑다. 한옥마을에는 한옥생활체험관을 비롯해 승광재와 양사재, 학인당, 동락원, 소담원 등 10여 곳의 한옥 숙소가 있다. 한옥 숙소마다 다례체험이나 판소리, 한지 만들기, 전통예절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니 아이들과 함께라면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면 좋겠다. 여러 한옥체험 시설 중 양사재는 전주의 옛 향교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던 아담하고 정갈한 한옥민박집으로 한때 시인 이병기 선생이 머무르며 다작한 곳이기도 하다. 두어 평 남짓의 손바닥만 한 방에는 실상 별다른 시설이나 꾸밈이 없다. 청결함이 느껴지는 풀 먹인 이부자리와 벽에 걸린 옷걸이 용 대나무 하나가 세간의 전부이다. 그럼에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앞뒤로 활짝 열어 놓아 바람 길을 낸 한옥 창문 때문이다. 정원을 향한 앞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나른한 볕 내리쬐는 소담한 정원과 나지막한 돌담이 눈에 들어오고 뒷문을 열면 바람에 댕강이는 풍경 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와 마음을 간질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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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온돌에서의 숙면 후 맞는 산뜻한 아침은 부엌에서 내오는 아침상을 받으며 시작된다. 대단할 것은 없으나 주인장의 소박한 손맛이 느껴지는 밥상이다. 오후 2시 한옥마을 오목대 아래 위치한 관광안내소 앞에 서 있었다. 전주한옥마을에서는 주말은 하루 세 번, 평일은 매일 오후 2시에 해설사와 함께 골목길을 걷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날 모인 여행자는 서울에서 왔다는 친구사이의 젊은 여자 둘,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우고 대전에서 여행 온 엄마들 둘, 중년의 커플 등 모두 여섯 명이었다. 안내소에서 나눠준 ‘뚜벅이지도’ 한 장을 손에 들고 그들 틈에 꼈다. 한옥마을 자체가 그리 넓지는 않아 지도를 참고하며 발길 닿는 대로 산책해도 좋지만 아무래도 전문해설사가 함께라면 이 마을에 얽힌 좀 더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터다. 누군가와 만나면 한 명은 비켜서야 지날 수 있는 좁고 긴 골목길을 누비는 일은 흥미롭다. 올망졸망 늘어선 크고 작은 공방들을 들여다보고 전통한지원에 들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랑하는 전주한지의 생산과정을 엿보거나 몇몇 이름난 한옥의 내부를 슬쩍 들여다보고 알지 못했던 역사의 뒷이야기를 듣노라면 마치 그때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그 중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 선생이 거주하는 승광재에서 한옥생활체험관까지 이어지는 골목이 마음에 든다. 구불구불 끝이 보이지 않는 좁고 긴 골목길 안에 고여 있는 시간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근사하다. 길은 어느새 수령 600년이 훌쩍 넘은 은행나무가 우뚝 선 은행로와 연결되고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인 최명희문학관과 교동아트센터, 부채문화관과 경기전길을 지나 전동성당 앞으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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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더욱 멋지게 빛나는 붉은 벽돌의 전동성당은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완성해 준다. 1914년 준공된 호남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서울의 명동성당과 같은 모양으로 설계됐으나 이곳 한옥마을과 주변의 분위기에 어우러 지도록 뾰족한 첨탑 대신 둥그런 지붕을얹은 독특한 모양으로 완성됐다. 한옥마을의 메인 로드 중 하나인 은행로의 졸졸 물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걷는 일도 여유롭기만 하다. 오래전 그 자리에 있다 사라진 실개천을 새롭게 복원해 오밀조밀 물길을 만들어냈다. 길 따라 걷다 보면 바람 한 줄기의 작은 속삭임도 애틋한 추억 한 자락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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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한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한옥마을 내의 부채문화관에 들러 청신(淸新)한 바람 일으키는 전주의 부채를 만나더라도, 경기전 옆에 위치한 전주목판서화체험관에 들러 용비어천가와 훈민정음 등 한국을 대표하는 목판인쇄본의 복원 과정을 관람할 때도 그랬다. 그리고 이산 안중영 선생의 목판 작품을 이용해 목판화를 찍어보고 채색하는 체험 중에도, 반기문 사무총장의 UN 내 주거공간과 게스트하우스의 인테리어를 담당한 공방촌 ‘지담’의 공예 작품과의 만남에서도 공통 분모는 바로 전주한지였다. 전주한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바다. 한지는 ‘백지’라고도 불렸는데 ‘흰 백(白)’자뿐 아니라 ‘일백 백(百)’자를 쓰기도 했단다. 이는 닥나무 가지에서부터 시작해 한 장의 한지가 만들어질 때까지 손이 백 번 간다고 해 붙여진 것이다. 전주에서 만들어지는 한지와 더불어 이웃하는 완주에서도 속 깊은 한지의 역사와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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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역사의 고려 한지를 재현해 생산하는, 소양면 신원리에 들어앉은 대승한지마을이 그 무대이다. 대승한지마을은 완주군이 전국 최고의 한지 생산지로 명성을 날렸던 소양면 3개 마을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1만 3,420㎡ (4,000평) 부지에 전통한지 제조 체험관, 전시장, 닥나무 건조처리장 등을 조성한 곳이다. 마을 일대에는 1930년대 일본강점기 시대에 전주와 완주 지역에서 제조된 한지를 모아 전국 곳곳으로 판매했던 동양산업사 (한지조합)와 당시 한지를 만드는 초지공들의 숙소인 줄방, 한지 공장인 지소(紙所) 등 복원한지공장 등의 유적이 복원돼 있는데, 지소 안에서는 곽교만 씨가 종이 뜨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30년동안 한지를 만들어 왔다는 그는 마침 전통 방식의 외발 기법으로 커다란 나무통 안에 물과 함께 섞여 있는 닥섬유를 촘촘한 망에 거르며 종이를 떠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진지하고도 완숙한 손놀림이 마치 춤을 추는 듯 했다. 떠낸 종이는 비로 쓸어가며 말리는 건조과정과 마무리 가공처리인 도침(다듬이질하듯 종이를 두드리는 방법)의 과정을 거쳐비로소 한지로 태어난다. ‘한지는 오래된 미래’라고 설명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 동안 빛 고운 한지의 색상과 은은한 향에 빠져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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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절정에 이르는 4월의 전주는 온통 영화, 영화 이야기뿐이다. 한옥마을의 고즈넉함에 취해봤다면 4월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선 북적이는 전주의 청춘들과 어울려 본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오래된 건물을 새로 단장해 운영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을 비롯해 전통적인 영화관인 전주시네마타운, 디지털독립영화관 등 대여섯 개의 극장이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 포진해 있다. 2000년 시작돼 올해로 13번째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오는 4월 26일부터 9일간 열린다. 자유, 독립, 소통이라는 슬로건이 보여주듯 전주영화제는 기술이나 미학적인 면에서 주류영화들이 보여 오던 형태와는 다른 파격적이고 대안적인 영화로 관객과 소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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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의 핵심 프로젝트인 ‘디지털 삼인삼색 2012’(영화제가 선정한 세 명의 감독에게 작품 당 5,000만 원의 제작비를 지원해 30분 분량의 디지털 영화를 제작하게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필리핀 라야 마틴, 스리랑카의 비묵티 자야순다라, 중국의 잉량 감독의 작품이 공개된다. 젊은 작가를 위한 특별전에는 스페인 카탈루냐 영화의 젊은 피 알베르트 세라 감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영화제 기간에는 국내외 유명 감독과 배우와의 만남이 마련되고 거리에서는 끊임없는 공연과 전시, 이벤트가 펼쳐진다. 영화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전주 여행을 하면서 한 번쯤고소한 냄새 풍기는 팝콘 한 봉지 사 들고 오래된 영화관에 스며들어 마음 촉촉해지는 영화 한 편을 감상해 보는 일도 괜찮겠지 싶다. 한옥마을의 그것과는 또 다른, 골목골목 있는 듯 없는 듯 숨은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이 즐겁고 요리조리 숨은 담벼락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첫댓글 전주 한옥마을은 한번 쯤 다녀 와야 할듯 합니다....
기회가되면 한번 가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