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을에서 집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가고 있으면서
유튜브에서 아름다운 사인 공연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사인은 아마추어 배우들이 선호하는 작품입니다
약 13년전 제가 일산에 살때 저는 아마추어 연극 극단 배우였습니다.
공연 첫 작품이 아를다운 사인이였고 저는 유화이 역을 맡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작품에 애정이 있습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10배는 더 잘할털데
첫장면이 떠오르죠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행동으로 관객은 상황을 이해해야 됩니다.
등장하여 창문을 열죠 그리고 큰숨을 한번쉬고
시체들 앞에 섭니다
첫대사 여섯구의 시체가 있습니다. 묘하게도 모두 자살한 여자들입니다.
지금생각해도 짜릿하죠
이런 내용으로 저의 배우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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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는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 앉아 있습니다.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짚은 초록의 풍경을 보다가 스마트폰을 켰는데, 알고리즘이 무심하게 영상 하나를 띄워주더군요. 바로 연극 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마추어 극단이나 대학 연극반 배우들이 정말 사랑하고 선호하는 명작 중 하나죠.
사실 영상 속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니, 제 가슴 한구석이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 제가 일산에 살던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아마추어 연극 극단의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 첫 무대, 첫 무대의 주인공으로 맡았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었고, 제가 연기했던 인물이 바로 부검의 유화이 역이었습니다.
첫사랑이 오래 기억에 남듯, 유독 이 작품에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지금 다시 무대에 서서 그 역할을 하라고 하면 그때보다 10배는 더 잘할 수 있을 텐데하는 미련 섞인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특히 그 첫 장면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아주 짜릿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무대 위 공간에는 그 어떤 소품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저라는 배우의 미세한 행동과 눈빛만으로 관객들에게 이곳이 어디인지, 어떤 상황인지를 이해시켜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주어지죠.
고요한 무대 위로 등장해서, 암전 속에서 창문을 스르륵 여는 흉내를 냅니다. 그리고 밤공기를 마시듯 큰 숨을 깊게 한 번 쉬고, 차가운 부검대 위에 누워있는 시체들 앞에 섭니다.
이어지는 저의 첫 대사.
"여섯 구의 시체가 있습니다. 묘하게도 모두 자살한 여자들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몸에 전율이 돋는 순간입니다. 오늘 밤은 버스 안에서 저를 진정한 '배우'로 만들어주었던 이 특별한 작품, 장진 감독의 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장진 감독이 쓴 아름다운 사인은 제목부터 참 아이러니합니다. '아름다운 죽음의 이유'라는 뜻이죠. 과연 죽음에 아름다운 이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의 공간은 시체안치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부검의 '유화이'는 어느 날 한꺼번에 들어온 여인 6명의 시신을 부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6명의 여성은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르지만 전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가장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설정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부검의 유화이가 혼자 남은 안치실, 갑자기 죽은 여인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무너지며, 죽은 자들이 자신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숨겨진 사연, 즉 '사인(死因)'을 유화이에게 털어놓는 것이죠.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지친 여성, 사회적 멸시와 가난에 벼랑 끝으로 몰린 여성, 사랑에 배신당하고 상처받은 영혼...
그들이 털어놓는 사연들은 결코 거창한 정치적 이슈나 거대한 비극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길가나 이웃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너무나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슬픔이자 아픔이었습니다.
그 억울하고 슬픈 이야기들을 들으며 유화이는 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마지막 길을 따뜻하게 위로해 줍니다.
그렇다면 장진 감독은 왜 하필 시체안치실이라는 음침한 공간과 '자살한 여성들'이라는 비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 대본을 썼을까요?
장진 특유의 유머와 기발한 언어유희가 작품 구석구석에 녹아있지만, 그 블랙코미디의 껍질을 한 겹만 벗겨내 보면 아주 묵직한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소외된 자들의 목숨 건 항변'입니다. 살아있을 때는 그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약자로서, 혹은 한 가정의 희생자로서 그들의 목숨과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당했죠.
장진 감독은 이들이 죽어서야 비로소 마음 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역설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죽어서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는 이 비극적인 설정이야말로, 당시 사회가 약자들에게 얼마나 냉혹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둘째는, '삶에 대한 역설적인 찬가'입니다. 죽은 자들의 입을 통해 죽음의 이유를 들려주지만,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러니 살아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들의 비극을 통해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내 곁에 있는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말하고 싶었던 거죠.
13년 전, 무대 위에서 빈 공간에 창문을 열고 첫 대사를 뱉던 그 순간의 떨림이 여전히 제 손끝에 남아있습니다.
그때는 부검의 유화이라는 인물을 연기해 내는 것에만 급급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삶의 여러 굽이를 지나온 지금 다시 바라보는 아름다운 사인은 저에게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그 죽은 여인들의 사연을 다시 보게 되니, 그들의 아픔이 훨씬 더 깊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거나, 타인의 슬픔을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곤 하지 않나요?
오늘 , 집으로 내려가는 이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과연 내 이웃의, 내 가족의 마음속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주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장진 감독이 말한 '아름다운 사인'이란, 죽음의 이유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들의 슬픈 사연을 끝까지 들어주고 눈물을 닦아준 그 '공감의 순간'이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잊지 못할 인생의 첫 무대나, 가슴 속에 깊이 박힌 연극 한 편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추억 속 작품 이야기가 있으면 댓글로 편하게 나누어 주세요.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나무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놀이의 영웅이라는 연극을 공연했었던것도 지금도 눈에 선한게 생각납니다.
그때는 연극에 대한것도 진심이였는에 이 깡산촌으로 오고나서 저의 배우 생활도 끝이 났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