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얘들아, 엄마가 간식으로 준비해놓은 7개의 블루베리를 2학년 다인이와 동생이 나누어 먹어야 해.
다인이가 동생보다 집에 먼저 도착했는데 어떻게 동생과 나눠먹을지 생각을 하고 있어.
어떻게 나누어 먹을까?
- 3개와 반씩 나누어 먹어요.
-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또 그것 말고 다르게 나눠먹을 수는 없을까?
- 3개씩 먹고 한 개는 엄마가 먹으면 안돼요?
아이들의 대답을 듣자 교실에서 간식 시간에 애매하게 남은 것은 잘라서 나누어 먹거나, 선심쓰듯(!) 선생님을 주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도 때마다 아이들끼리 싸우는게 성가셔서 정확히 반을 나누어주기도 했었으니까요.^^;
둘이서만 나누어 먹을 방법이 있는지 거듭 물어보니,
아이들이 예상외로 '어렵게' 생각을 하더니
"누나가 누나니까 더 많이 먹어요" 합니다.
7=4+3
혹시 다인이라는 이름을 써서인 것인지, 아이들은 동생이 유치원에서 우느라 점심을 못 먹었다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누나를 더 주었습니다. (얘들아 참 고맙구나^^;)
동생을 하나 더 주겠다고(7=3+4) 한 명이 더 답한 뒤로 그것 말고 또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이 때 저는 참 놀랐습니다.
'정확히 나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걸까?
'공정한 것'은 무엇일까?
교실에서 아이들을 대했던 저의 몇가지 모습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사랑을 표현할 연줄이 없는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보았습니다.
9개의 쿠키를 동생과 언니가 나누어 먹습니다. 이번에는 동생이 학교에서 먼저 집으로 와서 언니와 나누어 먹을 고민을 하지요.
한 아이가 9=4+5 라고 씁니다.
그리고선 동생 4개, 언니는 5개를 주면서
언니는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들었을테니 한 개를 더 주자고 합니다.
9=4+5
저는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는 동생이 나누어 준 것을 보고 고마워서 한 개를 다시 동생을 주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9=5+4
이 순간 아이들에게서 깊은 만족감이 떠오릅니다.
이 때부터 아이들이 더듬더듬 사고를 하기 시작합니다.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어떤 방법이 모두에게 '진정한' 만족을 가져올까?
아이들은 동생, 언니, 놀러온 언니의 친구
세 사람에게 간식을 나누어 줍니다.
10=3+3+4
10=4+3+3
10=0+0+10
10=6+2+2
동생과 언니가 3개, 언니 친구가 손님이니까 4개 주었는데 언니가 나중에 친구에게 한 개 더 주기도 합니다.
10=3+2+5
이젠 동생 친구에 일 마치고 돌아온 엄마까지 같이 나눠 먹습니다.
10=2+2+2+2+2
10=1+1+2+2+4
여러가지 방법들이 쏟아져나옵니다.
숫자 식 뒤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숫자가 더 이상 건조한 개념이 아니라 사랑을 담는 의지의 도구가 됩니다.
그냥 컴퓨터 기계처럼 풀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어떤 의도와 이야기를 품고 비로소 '살아있는 나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아이들의 과정을 보면서,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어 먹지 못하는 '불공평'해보이는 상황이야말로 실은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게 할 기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저 개인적으로도 수학에 대한 어려운 감정들이 씻어지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참말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첫댓글 아이들이 그런 착하고 고운 마음을 꼭 간직했으면 좋겠네요.
아니 마음만이 아니라 삶으로도요.
지금이야 숫자놀이에 불과하겠지만.. 점점 더 사랑을 삶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
더하기에서
나누어줌과 사랑이 보여
교실안이 따뜻한 바람이
휘이익~지나가는 상상이 되어지네요.
이렇게라도 나누는 연습을 해봅니다. 저도 사실 잘 안됩니다 ㅎㅎ
다양하게 나누어준 숫자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10=0+0+10 은 어떤이야기였을지 궁금해지네요...^^
"불공평해보이는 상황이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수 있는 기회" 되새겨봅니다...
10개를 손님에게 다 주겠다는 건데요, 다 줄 수도 있다고 상상하며 재밌어 하더랍니다 ^^; ㅎㅎ
수와 셈을 이렇게 사랑스럽게 가르칠 수도 있네요. 아이들의 세상 속 이야기가 녹아있는 셈하기라니:)
나중에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셈하기를 가르치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봄날같네요.
자신의 몫을 정확히 하기 위해 셈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이와 함께 할 수 있을까를 셈하는...
저 역시 앞으로 아이들이 마주할 세상이 봄날 같기를 바라봅니다^^
다시봐도 부럽다, 2학년!
유단이를 키울 때 본 육아서에 형제자매의 의미를 짚은 대목이 있었어요. 형제 자매가 있는 아이들은 치고박고 싸우면서라도 나누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는데 외동은 다행이 배울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외동을 키우는 저로서는 큰 과제를 안았다 싶더라고요.
근데 요즘 부모들은 형제끼리 자매끼리 싸우는 것이 보기싫어 뭐든 똑같은 걸 하나씩 사서 앵겨주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공평'이라는 이름으로요. 사실 하나를 가지고 치고박고 싸우면서 어떻게 나누어 쓸 것이냐 생각을 하며 머리를 쓰고, 기다림도 배우고, 형님에 대한 예우나 동생에 대한 동정심 등을 배울텐데요. 외동키우는 부모라서 안타까운 마음에 좀 깠습니다. 이게 다는 아니겠지만요.
요즘 목요공부의 주제이기도 한 도덕심에 대해
우리가 기계적인 평등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 아닌가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해요.^^
네 그러네요. 저도 어릴적에 동생과 먹을 것으로 치열(치졸)하게 싸웠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 이기적인 내 모습과 관계 속에서의 많은 상황들을 겪어보면서,
차차 스스로 성숙한 모습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의 안내가 필요하겠습니다..^^
안먹고 놔둘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새로운 생각을 해봐요~~~^^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