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귀신관
“선비님, 억울해요. 제 한을 풀어주세요.”
전설의 고향에서 가끔 듣는 귀신의 말입니다. 아마도 귀신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기절하거나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담 큰 사내들이 나타나서 귀신의 이야기를 듣고, 귀신의 한을 풀어주지요.
한국의 귀신은 자신을 꾸밀 줄 모릅니다. 피를 흘리거나, 옷이 찢긴 상태로 나타납니다. 참 희한하죠. 예의를 중시하고, 깔끔하게 지내는 생활을 이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말입니다.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나타납니다. 아마도 귀신은 증거를 없애지 않으려는가 봅니다.
그렇게 나타난 귀신은 사람을 해하지 않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위협을 가하지도 않고요. 정말 귀신은 참 희한하지요. 그리고 특정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보입니다. 아무에게나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귀신은 절대로 자신을 해친 사람에게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정말 귀신 곡할 노릇이지요. 상대가 자기보다 세면 두려운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아랑의 전설>은 귀신 이야기로 유명한데요. 밀양부사로 갔던 부사의 딸이 아랑이었지요. 아랑은 밀양의 동헌에 근무하던 이방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 나무 밑에 묻히게 됩니다. 아랑은 얼마나 한이 맺혔을까요. 딸을 잃은 아랑의 부모는 밤낮 딸을 찾다가 한양으로 갑니다. 아랑은 부모에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랑의 부모가 밀양을 떠난 후 새로운 부사가 부임합니다. 그러나 새로 온 부사는 동헌에서 첫 밤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비명횡사합니다. 그 원인은 아무도 몰랐지요. 그렇게 몇 번 밀양으로 부임한 부사가 죽어 나가자, 아무도 밀양 부사로 부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주 간담이 큰 사람이 밀양 부사를 자처합니다.
“부사님, 제 원한을 갚아주세요.”
아랑의 영혼은 죽었을 때 그 모습으로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부사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니, 넌 누구냐?”
새로 부임한 밀양 부사는 죽어 나갔던 부사들과는 달리 용감하게 물었지요. 그러자 아랑의 혼령은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다음날 조회할 때 자신을 죽인 사람 머리 위에 나비가 되어 앉겠다고 합니다. 이에 부사는 아랑을 죽인 이방을 찾아 죄를 실토하게 합니다. 아랑은 그 후 부사에게 나타나서 고마움을 표하고 저승으로 갑니다. 물론 그 후 아랑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요. 이 이야기는 훗날 <밀양아리랑>의 원천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태백시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합니다. <황효자와 느릅령 여랑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황지에 사는 황 효자는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 되어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느릅령을 넘어 도계장으로 갑니다. 느릅령은 예부터 호랑이가 출몰해서 혼자 길을 가지 않았지요. 혼자 가다 보면 십중팔구 호환에 가기 일쑤였거든요. 그런데도 황 효자는 혼자 느릅령을 넘어 밤길을 가야 했지요. 제물을 등에 지고 땀을 흘리며 부친의 기일에 맞추려고 부지런히 재를 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선비님, 제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황 효자 앞에 갑자기 웬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누, 누구시오?"
“저는 황지에 살던 김 씨 집 딸입니다. 시집도 못 가고 죽었는데 아무도 저승길로 천도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길목에 머물다가 느릅령을 넘는 사람들에게 저승으로 천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절하거나 죽었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소?"
황 효자도 한밤중에 느릅령에서 만난 귀신을 보고 벌벌 떨면서 물었지요.
“선비님, 제사만 지내주면 됩니다.”
황 효자는 아버지 기일에 쓸 제물을 꺼내 펼치고, 그 여인의 저승 천도를 바라면서 제사를 지내주었지요.
“선비님, 덕분에 저는 저승으로 갑니다. 앞으로는 어떤 이에게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이 고개를 넘는 이들을 보살펴 무사히 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그 여인은 한을 풀었고, 훗날 황 효자는 그곳에 서낭당을 짓고 마을 사람들이 매년 그 여인을 위해 제사를 올려 주었습니다. 그 후론 느릅령을 넘을 때 아무도 호환에 간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느릅령의 여귀이면서 서낭신이 된 여인은 단순히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달라는 뜻뿐이었습니다. 여귀를 사람들은 호랑이로 알았고요. 제사만 지내주면 되는데, 제사를 지내주지 않아 매번 죽음을 맞이했지요. 여귀와 사람이라는 어울릴 수 없는 상극이 제사로 인해 어울려 사는 상생이 되는 순간이었지요.
그러고 보면 밀양의 아랑이든 느릅령의 손각시[여귀를 우리 고유어로 손각시라 함]든 본래부터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생전에 맺힌 원한을 씻고자 할 따름이었지요. 원한을 푸는 일은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사만 지내주면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사는 화해의 몸짓이라고나 할까요.
한국은 <환웅신화[단군신화]>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이든, 동학[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이든 모두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한국은 사람 중심사회이기에 귀신도 사람을 위해 존재했지요. 이런 사람 중심의 세계관은 귀신에 대한 관념조차 사람을 그 중심에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한국의 귀신 이야기에는 귀신과 인간이 서로 존중하고 도움을 주는 관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시공을 넘나드는 무시무시한 귀신도 사람이 알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귀신도 그럴진대, 사람도 사람을 서로 알아주고 인정해 주면 참 좋은 세상이 열리겠지요.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2024.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