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 / 정선례
해마다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면 문학관에서 가방을 나눠줬다. 면 100% 친환경 소재. 나는 차분한 색상의 진한 회색 가방을 받았다. 3년째 문학반 수업을 함께 받아 친해진 해남 사는 친구가 받은 가방은 진한 감색이다. 이것도 내가 좋아하는 색상이다. 욕심을 냈더니 가지란다. 어깨끈이 천이라 멜 때 부드럽고 흘러내리지 않아 편하다. 다 나눠주고도 몇 개 남은 게 보인다. “아야, 너 저 직원하고 친하던데 지인 찬스 써봐라.” 등떠밀었더니 착하고 나를 좋아하는 연주는 두말하지 않고 일어나 가더니 개나리꽃보다도 더 노랑 색깔의 가방을 받아와 건네준다. 미안해서 “너도 하나 가져” 다시 건네니 집에 있다며 그 가방을 가로세로 접더니 내 가방에 넣는다. 에코백(eco bag) 사랑은 지인들은 다 안다. 산 허리 흐드러지게 피어난 진달래 꽃인양 화사하게 웃는 연주의 미소가 소담하다.
“고마워, 항상 네 옆에 앉아야겠어.” “그래라 그래”
에코백(eco bag)은 천으로 만든 친환경 가방이다. 환경보호를 생각해서 만들어서 썩으면 분해된다. 2007년에 영국의 디자이너 안냐 힌드마치가 환경자선단체와 손잡고 세상에 선보인 친환경 제품이다. 일회용품 비닐이나 종이가방 사용을 줄이기 위해 1980년대에는 1990년대에 여러 번 다시 사용하도록 만든 제품이다. 주로 수공예로 만들었다. 가격도 1만 원 내외로 경제적이다. 처음에는 자투리 천을 이용 수공예로 가방을 만들었다. 이 가방을 언제부터 좋아했더라? 그것은 아마도 공간이 넓어서 물건이 많이 들어가는 아이들 기저귀 가방으로 사용할때부터였으니 오랜 기간 나와 함께 했다. 이가방은 안의 크기가 넓어 활용도가 높다. 도서관에서 책을 여러 권 빌려 넣을 수 있고 우산이나 보온 보랭이 가능한 물병도 냉장고속의 김치처럼 항상 담겨 있다. 단점은 칸이 나눠져 있지 않아 물건이 섞이고 가운데 똑딱이나 지퍼가 없어 소지품이 자칫 쏟아지기까지 한다.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려왔다. 상견례 날짜를 잡았다. 친구와 그날 입고 갈 옷차림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방은 뭣을 들고 갈 거냐고 묻는다.
“가방?”
“그래, 아들 얼굴 체면이 있는데 설마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가방 메고 나가지는 않을 거지?“
벽에 걸린 가방을 보니 전부 에코백(eco bag)이다. 이를 어쩐다, 그날 하루 쓰려고 가방을 새로 사기도 뭣하고. 며칠 후 친구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아직 사지 않았으면 자기 가방 가지고 나가란다. 감자 심느라 바쁜 데다 거리가 있어 미처 못 갔더니 오지랖 넓은 내 친구 기어이 자신이 아끼던 검은색 구찌백을 갖고 왔다. 어떤 옷차림에도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 고급스러운 가방이다. “머리도 미용실에서 만지고 불편해도 운동화 신지 말고 구두 신고 나가라.” 미덥지 않은지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 그래 알았어. 다녀와서 보고하마”
21세기는 친환경시대라고 흔히 말한다. 시골에서 살다 보니 어떤 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 자연스레 친환경적인 주부가 되었다. 농사도 수확이 덜 나고 품질이 떨어져도 가능한 농약이나 비료를 덜 치고 생산한다. 자급자족이라서 가능한 농사법이다. 그 밖에도 집에 새로운 물건을 들일 때는 친환경으로 만든 제품인지 살펴본다. 얼마 전에도 딸이 에어프라이어 사준다고 회사별로 추천한 상품을 보여주며 고르란다.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 물건이 없어도 크게 불편 없이 살아왔는데 좀 더 편리해지려고 또 산다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게 친환경 여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물건을 집에 쌓아두고 산다. 가방도 종류별로 예닐곱은 갖고 있다. 정해진 공간을 물건으로 꽉 채운 집을 방문하게 되면 부럽다기보다 답답하게 보였다. 어떤 이들은 고가의 신상 가방이 나오면 사야 직성이 풀린다고 들었다. 그네들의 부를 축적한 경제적인 여유가 부럽다. 그렇지만 명품 가방에 향수가 아닌 에코백에 책을 넣고 다니는 지금의 내 모습도 과히 나쁘지 않다. 부족함 속의 충만이랄까. 이 글을 읽은 이들은 내게 천 가방이 여러 개 있어 번갈아가며 들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두 서너개밖에 없다. 누가 집에 와서 가방을 가리키며 이쁘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건네서 들어온 만큼 금세 나가고 없다. 예전의 나도 그랬으니까.
첫댓글 그러게요. 환경을 생각한다면 천 가방을 사용해야지요.
정 선생님의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자신에게 어울리고 실용적인 가방이 최고지요.
저도 매일매일 똑같은 크로스백만 가지고 다니는데. 가방을 안 사니 환경파괴를 많이 하는 건 아니겠죠? 하하.
봄이 왔으니 가방도 하나 장만하고 싶네요. 너무 비싸지 않는 중저가 예쁜 걸로요.
그러니까요. 친환경해야 하는데.
저는 생각없이 살거든요. 반성합니다.
아무튼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환경을 지키며 살기 어렵지만 노력해야겠죠.
저도 도서관 갈 때는 에코백을 들고 다닙니다만 선생님의 에코백 사랑에는 따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친환경 여인' 잘 살고 있다고 인정 받은 영광스런 별명이네요.
큰딸이 13년간 서울살이를 끝내고 이사왔는데 가방이 저보다 더 많더라고요.
덕분에 이런저런 천가방이 많이 생겨서 저도 즐겨 들지요.
무엇보다 가벼워서요.
'친환경 여인'님,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