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심은 데 꿈 난다 / 김도선미
웅변, 영어 말하기, 글쓰기, 미술 등 각종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상을 받았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걸스카우트, 연극, 독서 동아리에서 대표를 맡고, 반장과 부반장을 번갈아 하다가 고등학교 때는 전교 부회장을 했다. 그리고 노래하며 기타를 칠 수 있다. 남들이 보면 사교육 많이 받은 부잣집 딸로 자란 걸로 여길 수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모두 학교에서 했다.
인생 절반을 ‘생활 보호 대상자’로 불렸다. 사연 많은 재혼 가정의 큰딸이다.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면 친구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냐고 물었다. 허약한 체질에 운까지 없었던 아버지는 자주 아프고 다쳤다. 외할머니의 특이한 결단으로 다른 집에서 눈칫밥 먹고 자란 어머니는 학교를 못 다녔다. 나이 들어서는 먹고 살기 힘든데 눈도 급속도로 나빠져 글 익히기를 포기했다. 이런저런 액운이 겹쳐 형편은 나아지질 않았고, 우리는 학원에 다니기는커녕 문제집도 못 샀다. 그래서 친척 언니의 책과 옷을 물려받았다. 그래도 학교에서 우유를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우연히 졸업 사진을 보다가 내 모습에 놀랐다. 뭔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안경 속 눈빛은 불안과 체념이 섞였고, 어깨는 오그라 든 채로 처졌다. 입꼬리도 내려갔다. 누가 건들거나 말을 시키면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 얼굴이 울상이라니. 기분이 이상해서 갑자기 소리 내서 울어 버렸다. 그러다 배가 고파 라면을 끓였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대론 안 되겠다고. 쓰다 만 공책 앞부분을 찢어 내고 다짐을 적었다. 밝은 인상 만들기, 학교 생활 잘하기.
고맙게도 중학교 때부터 상과 장학금을 많이 받았다. 그래선지 집에서 나를 무조건 믿으셨다. 착실하게 생활하니 학교에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 선생님과 친구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교사용 책을 얻어서 공부하고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가서 상을 받았다. 덕분에 긍정적으로 살면 더 나은 상황으로 바뀌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겼다.
학창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학교가 좋다. 아이들은 언제나 예쁘고, 좋아하는 국어를 가르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급식이 맛있다. 수업 시간에 조는 애들이 있으면 시행착오를 양념처럼 풀어낸다. 혼자 앞에서 떠드는 건 나도 지친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유대인의 예시바(Yeshiva) 도서관 같은 교실을 꿈꾼다. 학생들이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게 한다. 토론 수업은 늘 반응이 좋아 자주 하려고 한다.
학교 행사에 장기자랑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한다. 아이들 기를 살리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담임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온 반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하면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튀어 나간다. 기타 연주를 하고 노래도 불렀다. 작년엔 체육대회에서 물구나무를 선보였다. 종합 성적은 뒤에서 두 번째였지만 더 값진 응원상과 상금을 받았다.
'꿈 심은 데 꿈 난다.' 올해 급훈이다. 교실 게시판에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한다. 밝은색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크게 코팅해서 붙였더니 아이들이 예쁘다고 한다. 개학 첫날 강조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아무리 바빠도 틈만 나면 서로 박수 치고, 또 받자고 했다. 그래서 종례 시간에는 한 명씩 돌아가며 ‘오늘 수고했고 내일도 건강하게 만나자. 사랑해!’를 외치고 박수로 마무리한다. 다른 반보다 살짝 늦게 끝나지만 웃고 헤어질 수 있다. 옆 반 선생님께서 8반은 맨날 좋은 일이 많냐고 하신다.
여전히 학교를 못 벗어났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아이들에게 눈빛과 몸짓으로 매일 말해야 한다. 밝고 성실하게 살자. 꿈을 꾸자. 한번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