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
누렇게 빛이 바랜 육십 오년 전 사진 속에, 새색시가 홀로 서 있다. 양쪽 장롱 지게 가운데로 꽃가마가 놓여 있다. 어머니가 시집가는 길이다. 새색시는 머리에 족두리를 썼고, 두 손은 흰 천으로 가려 길게 늘어뜨렸다. 먼 길을 가는 꽃가마가 재를 넘으며 잠시 쉬고 있는 모양이다. 가마에서 나온 색시는 수줍은 듯 두 눈을 내리고 서 있다. 어릴 적, 몰래 문틈으로 숨어서보며 가슴 조리던 오라버니의 친구에게 시집을 간다.
어느덧 십일월 말이다. 뒹구는 낙엽을 보니 쓸쓸함이 몰려온다. 때마침 어머니를 뵈러 가자는 여동생의 말에 두말 않고 그러마했다.
구순의 어머니는 밀차에 불편한 몸을 의지하신다. 그래도 기분이 좋으신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걸으신다. 상기된 어머니는 다리에 힘을 주며 빨리 걸어야 건강에 좋다고 걸음을 재촉하신다. 낙엽이 뒹구는 늦가을 거리를 걷는다. ”하나 둘 하나둘~“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어머닌 쉴 곳을 찾으신다. 잠시 숨을 돌리자 다시 걷자고 하신다. 발아래 차이는 낙엽들을 세듯 밟으며, 어머닌 여동생의 도움으로 앞서 걸으신다. 뒤를 따라 걸으며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본다. 모녀의 머리위로 낙엽이 날린다.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 그리고 주황색 잎들도 내려앉는다. 벌레가 먹어 상처 입은 낙엽도 고운 빛으로 발아래 뒹군다. 지나칠 수 없어 하나 주워들고는 낙엽과 함께 어우러지는 그들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어머니가 계신 평촌에는 중앙공원이 있다. 교우분들과 그곳에서 만나 해바라기를 하신다지만, 20여년이 되도록 차로만 지나 다녔지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곁으로 늘 지나다니며 그저 넓은 숲이려니 생각만 하였다. 여름이면 손자들이 모여 물놀이를 하곤 했다는 말씀에도 그러냐고 맞장구 했을 뿐이다. 그런데 공원을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가 사는 목동의 파리공원에 비하면 족히 3배는 되고, 물놀이장은 물론 운동장과 야외 공연장까지도 있다. 막연하게 별것 아닐 것이라 여긴 것이 얼마나 섣부른 생각이었던가. 그간 어머님을 대했던 나의 마음이 그 모양새는 아니었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 댁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무에 그리 급하신지, 작은 보퉁이 몇 개를 주섬주섬 꺼내놓는다. 의복류와 아끼시던 물건들이다. 늘 어머닌, 당신의 어머니와 언니가 모두 이른 춘삼월에 돌아가셨다곤 하셨다. 그래서일까. 어머닌 내년 봄 즈음을 마음에 품고 갈무리를 하시는 모양이다. 나는 낯익은 금반지 하나를 골라 손에 끼고, 지쳐 누우신 어머니를 향해 들어보였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어머니께 주셨다는 그 반지다. 두 분의 정표이니 소중하게 간직하겠다는 마음에서다. 어머니는 힘없이 웃으신다. 그리고 초래 청에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쓴 부모님의 결혼식사진도 들어 보였다. 게다가 옛 외할머니의 빛바랜 모습과 우리 가족의 사진도 적지 않게 챙겼다. 어머니가 늘 머리맡에 두고 보시던 사진들이라 하셨다. 그래도 어머닌 허리를 펴지 못하신 채, 사진 속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다시 읽으신다. 아쉬운 듯 눈가를 조이며 한참을 보고 또 보시더니, “난 우리어머니가 보고 싶다. 요즘 부쩍...”하신다. 몹시 피곤하신가보다. 누우신 어머니를 뒤로하고 살그머니 문을 나선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만나 행복했느냐고 어머니에게 혼잣말로 가만히 물어본다.
집으로 향하는 길. 낮에 걷던 공원 거리에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실눈으로 차창을 본다. 세 모녀의 모습이 얼비쳐 너울너울 낙엽처럼 사라져 간다. 울컥 다시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집에 도착하니, 작은 아들내외가 뒤따라 들어온다. 잠시 후, 탁상 머리에 놓아둔 사진뭉치를 본 며느리가 흑백사진부터 들여다본다. 며느리는 사뭇 신기한 듯 집안에 관하여 자세히 묻고 또 묻는다. 이제야 우리 집 식구가 되는가 싶다. 그녀의 모습이 한여름 풋풋한 잎새를 닮았다. “와우~아버님 어머님 젊으셨을 때 정말 멋지셨네요.”하며 나를 보고 생끗 웃는다. 순간 마주하는 나의 눈빛이 사르르 떨린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오색낙엽으로 사분사분 내려앉는다. 그저 미소로 화답하는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마음 안에 조심스레 의문의 파도가 인다. 며느리는 이런 내 모습에서 어떤 색의 낙엽을 보고 있을까. 몹시 궁금해진다. 그리고 또 어떤 모습으로 갈무리되길 내게 원하고 있을까. 어느새 속마음을 헤아리는 긴장감이, 단풍이 아름다운 빛으로 내 안을 살포시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