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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상남도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남전南田
<경남문학> 106호(2014. 봄호)에 발표한 회원작품입니다.
수필 사각관계 │양민주
삼각관계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드라마에서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 또는 두 남자가 사랑하면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서사로 드러난다. 사랑을 택하자니 친구가 울고, 친구를 택하자니 사랑이 우는 그런 유치찬란한(?)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울고 웃는다. 삼각관계에서 한 사람을 빼면 두 사람이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 통속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럼 삼각관계에서 한 사람을 더한 사각관계는 어떻게 나타날까? 일요일 저녁상을 물리고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내와 같이 화장품을 사러 간 고등학생 딸이 이마에 알땀을 맺고 들어와 현관문을 꽝하고 닫으며 찬바람을 일으키고 자기 방으로 모습을 감춘다. 잠시 후 헐떡거리며 따라 들어온 아내는 죄인인 양 아무 말없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 “무슨 일 있었어?”하고 물어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항상 이런 식으로 모녀는 죽고 못 살듯 친해져서 집을 나갔다가 들어올 때는 티격태격거리며 따로 들어오곤 하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모녀지간은 부자지간과는 뭔가 다른 방식으로 정을 쌓아가나 보다 하고 웃어넘기려 했으나 이번엔 좀 심각하다. 침묵 속에서 삼십 분쯤 지나자 딸아이가 방문을 열며 대뜸 “아빠! 나는 엄마가 창피해 죽겠어.” 그런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이유인즉슨 엄마가 화장품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면서 색색이 예쁘게 진열된 샘플 중에서 색상이 고운 것을 골라 입술화장품인 줄 알고 입술에 발랐는데, 가게 점원 아가씨가 그것은 눈에 바르는 화장품이라면서 짜증을 내어서 창피했단다. 또 그 가게엔 아주머니 한 분이 구경하다가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그럴 수도 있지 왜 그러냐며, 점원 아가씨를 나무라서 고마웠단다. 덧붙여 애동대동한 아가씨가 얄미워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여자가 아름다워지고 싶은 열망은 하나다. 눈과 입술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화장품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딸아이는 이 일이 무척이나 마음에 남는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나 보다. 아내 편을 드는 아주머니를 보고 고맙게 여기고 쌀쌀맞아 보이는 가게의 점원 아가씨를 보고 얄밉다고 이야기하여, 순수한 딸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한편으론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앞으로 좋은 일 험한 일을 겪으며 세상을 살아야 하기에 연민도 없지 않아 생긴다. 얼마 가지 않아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엄마의 위치에 가 있을 미래를 생각하면 엄마의 처지를 이해할 날이 곧 오리라 헤아린다. 아내, 딸아이, 아가씨와 아주머니의 관계는 세상의 평범한 구성원으로서 각자 맡은 바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우주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내가 드라마의 작가가 되어 결말을 지어보면 이러한 관계를 사각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살림하느라 세상 물정 어두운 아내, 물건을 팔아 이익을 추구하여 삶을 사는 깍쟁이 아가씨, 그 아가씨에게 창피당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생 딸과 이를 지켜보며 아내의 편을 드는 또래의 아주머니에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우주적 교감의 열망인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려는 본성의 실현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소위 사회를 이끈다는 몇 퍼센트의 정치인들보다 위대하다. 사회 분위기상 자기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남의 일인 양 바라보기만 하는 세상은 행복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관심으로 어우러질 때 사람들은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관심으로 살아서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자기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이 많을수록 밝아진다. 요즘은 드라마에서도 종종 고스톱 치는 장면을 본다. 사각의 방석 한쪽 면을 비워둔 채 세 명이 고스톱을 치는 형태는 삭막하다. 사각의 방석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네 명이 고스톱을 치면 누구 한 명은 죽을 수 있다든지 아니면 광을 팔 수 있다. 죽든 광을 팔든 간에 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봐가며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있는 고스톱판이 훨씬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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