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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 통신 222호
동남아한센봉사회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메얀청 선교 보고
□ 크신 하나님의 은혜
12월 29일 아침에 큰 일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코에서 느껴졌습니다. 코피인가 하여 손을 댔습니다. 코피였습니다. 그런데 5초 후부터 코피가 수돗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여러 방법으로 지혈을 시켜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선교사님들이 뛰어왔습니다. 간호사 출신 사모님도 응급 약품 통을 들고 뛰어왔습니다. 출혈이 점점 증가했습니다. 결국 후배 선교사님 차로 대형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의사는 갑작스런 혈압 상승이 원인이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다량의 출혈이 코로 터져서 환자가 살았다고 하면서 안에서 터졌다면 위험했다고 했습니다. 피는 지혈이 되었고,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후에 퇴원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 미얀마 메얀청으로부터 온 소식
오래 전부터 미얀마 메얀청 선교가 1월 1알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권고 때문에 미얀마로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메얀청에 전했습니다. 미얀마 전도사들은 제 건강을 더 걱정해 주었습니다. 비행기 표와 호텔 예약을 모두 취소시켰습니다.
그런데 1월 2일에 리안전도사가 수십 장의 사진들을 보내왔습니다. 12월 31일에 성탄절 예배를 뒤늦게 드리고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은 저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메얀청에서 그런 예배 장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들을 보낸 후, 제일 하단에 리안전도사가 이렇게 적었습니다. “2022년 마지막 날에 가졌던 성탄절예배는 그 어느 해보다 특별했습니다. 성탄절 예배에 약 150명이 참석했고, 예배 후에 가진 식사 자리에는 메얀청 주민 400명이 참석했습니다. 만찬을 위해서 큰 돼지 한 마리도 잡았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그 메시지를 읽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를 다급히 불렀습니다. “양곤으로 가는 항공료가 얼마가 되든 다시 표를 구입하세요. 예정했던 대로 미얀마로 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로 갈 수 없다고 강력히 반대했지만 결국 아내도 제 고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1월 5일에 미얀마 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태국을 경유해서 가는 먼 길이었습니다.
무사히 양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갑자기 제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양곤 공항을 수십 번 다녔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공항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양곤에 도착된 비행기는 제가 타고 갔던 비행기가 유일했었습니다. 입국 수속대도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중 나온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공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을 군인들이 곳곳에서 차단하고 살벌한 검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닐라를 떠나기 전에 바욱전도사에게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달라고 미리 부탁했던 일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양곤은 살벌한 도시, 유령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욱전도사는 택시를 타기 전에 저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택시 기사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택시 안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호텔 방으로 들어갔을 때 바욱은 비로서 양곤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첫째, 내일과 모레 호텔 밖으로 절대로 나오면 안 된다. 평일에는 메얀청으로는 절대 갈 수 없다. 주일에 메얀청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겠다. 둘째, 새벽 2시 혹은 3시에 군인이나 경찰이 예고 없이 호텔 방으로 갈 수 있다. 당황하지 말고 당당히 대처해야 한다. 셋째, 옛날에 사용했던 전화번호는 모두 차단되었거나 말소되었다. 새 번호가 필요한데 미얀마 사람 이름으로 등록해서 내일 가지고 오겠다. 넷째, 식사는 호텔 안에서 간단히 해결해야 한다. 절대로 밖으로 나가서 혼자 외식하지 말아야 한다. 외국인은 무조건 공격 대상이 된다.” 두려움 보다는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메얀청 성도들이 너무도 걱정되었습니다. 양곤까지 오는 길에서 쌓인 피곤함과 양곤에 도착해서 받은 긴장감이 범벅이 되면서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피곤했던지, 너무 긴장했던지 결국 새벽 4시에 코피가 터졌습니다. 옛날 전화 번호가 이미 차단되어 바욱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와이파이(WIFI)로 카톡과 같은 바이버(Viber) 계정은 살아 있어서 바이버로 바욱전도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바욱이 올 때까지 휴지로 코를 막고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마닐라에서는 누워도 피가 목구멍으로 벌컥벌컥 넘어 갔었는데 감사하게도 양곤에서는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지혈이 된 듯 했습니다. 새벽 4시에 전화를 했었는데, 바울은 오전 9시에야 호텔로 왔습니다.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욱에게 지혈이 된 것 같다고 말하고, 휴지를 뽑았을 때 다시 피가 쏟아지면 곧바로 응급실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휴지를 뺐습니다. 피가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바욱이 더 기뻐했습니다. 마닐라로 돌아갈 때까지 코피는 다시 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 메얀청으로부터 온 리안전도사
토요일 오전 리안이 메얀청으로부터 왔습니다. 옛날에는 메얀청에서 양곤으로 나오려면 오토바이를 타고 타우첸까지 와서 버스를 타고 양곤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메얀청에서부터 차를 대절해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게 되면 검문소마다 뇌물(?)를 바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고, 좋은 오토바이는 군인들에게 압수를 당한다고 했습니다. 미얀마는 무법천지였습니다. 양곤의 하루하루가 쪼이는 긴장 속에서 있었습니다.
2년 만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가졌던 미팅이었습니다. 미팅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리안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목사님, 저 이혼했습니다. 목사님께 일찍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목사님께서 많이 아프시고 수술까지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차마 제 이야기를 말씀 드릴 수 없었습니다. 쿠데타가 터지자 아내는 메얀청에 있는 것이 너무 무섭다고 하면서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서 있다가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내줬는데 6개월 후에 아내는 사진 한 장과 함께 이혼을 원한다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고향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식 사진까지 보내왔습니다.” 리안은 담담히 그의 이야기를 내어놓았지만, 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리안이 메얀청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었던 일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군인들이 선교센타에 와서 학생들을 무릎 꿇게 하고, 두 손을 들게 하고, 그 학생들 앞에서 리안의 얼굴을 수차례 가격했다고 했습니다. 리안은 친(Chin) 출신이었기 때문에 군인들에게 무조건 끌려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어찌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리안은 메얀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쿠데타 기간에 동장이 바꿨습니다. 새 동장까지 군인들과 함께 와서 리안을 협박했습니다. 아내는 배신하고 떠났고, 선교지 메얀청은 갈수록 포악해졌습니다. 리안은 미얀마 최고의 명문인 양곤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여동생을 불렀습니다. 마침 여동생 듀듀(Duh Duh)는 쿠데타로 인해 공부를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듀듀 자매가 작년 8월부터 메얀청으로 들어가 선교센타 아이들의 과외 지도와 주일학교 사역을 담당해 주고 있었습니다. 리안은 그동안 듀듀에 대해서 저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리안은 참으로 입이 무거운 친구입니다. 메얀청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된 원인도 듀듀 자매의 동역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귀한 일군들이었습니다.
□ 메얀청 새생명교회 주일 예배
주일 아침 6시에 리안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오늘 메얀청으로 오실 때는 전에 다니시던 길로 오시면 안 됩니다. 어제 그 길로 오다가 검문을 4번 받았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리안은 저에게 우회 도로를 알려주었습니다. 절박한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리안의 예측대로 그가 알려준 길에는 검문소가 없었습니다.
메얀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2년 만에 만나는 교회 성도들과 아이들이었습니다. 몰라보게 자란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선교센타를 떠난 아이들도 있었고, 새로 들어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교회 주변에 심었던 나무들도 울창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성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메얀청에서 이번과 같은 예배는 처음이었습니다. 성도들과 학생들의 찬양 소리가 하늘을 가득 채웠습니다. 총 2시간 예배 중에 찬양만 무려 1시간을 했습니다. 모든 이의 얼굴에서 성령 충만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뜨거운 심정으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예배였습니다. 10년 전 메얀청에 심었던 그 작은 씨앗이 커서 그렇게 큰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 선교센타 작은 농장
선교센타 뒷마당에는 돼지우리가 3개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돼지 인플루엔자(독감)가 퍼지면서 메얀청에 있던 모든 돼지들을 매몰 시킬 때 선교센타 돼지들도 함께 매몰되었다고 했습니다. 리안은 돼지 사육은 당분간 중단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쿠데타로 인해서 쌀값이 폭등했고, 학생들이 남기는 음식도 거의 없고, 돼지 사료를 구입할 수 있는 경비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대신 야채와 과일 나무를 많이 심어서 자급자족 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센타 뒤편에는 약 1,000평의 땅이 있습니다. 그 땅에 올 해는 더 많은 과실수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 메얀청 한센선타 방문
한센센타를 방문했습니다. 120명의 한센 환우들이 있었습니다. 풍성한 간식이 들어간 특별한 선물 꾸러미를 140개 준비했습니다. 2년만에 찾은 한센센타 건물은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남자 숙소로 들어가는 순간, 제 발걸음이 자동적으로 뒤로 물러섰습니다. 살 섞는 냄새가 진동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환우들의 건강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간식을 나눠줬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환우들의 피부 상태는 당장 치료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한센센타는 한센병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의사도 없고, 간호사도 없고, 약도 없는 곳입니다. 너무 불쌍한 한센인들이었습니다.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 메얀청 동장과의 만남
토요일 양곤 미팅에서 주일 저녁에 메얀청 마을에서 큰 축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리안에게 마을 축제에 20만 잣트를 기부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센센타를 방문하고 동장과 마을 유지 대표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습니다. 새 동장이 리안을 수차례 괴롭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리안에게 그 두 사람에게 각각 10만 잣트를 줄 수 있도록 봉투를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동장 집으로 갔습니다. 5분 후에 마을 유지 대표도 도착했습니다. 그들에게 메얀청에 선교센타를 통해서 하고 있는 선교 프로그램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기부금 20만 잣트를 받았던 그들의 허리는 이미 깊이 꺾어져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봉투 2개를 제 가방에서 꺼내서 따로 따로 주었습니다. 그들은 벌떡 일어나 돈을 받은 후에, 선교 센타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장은 제가 보는 앞에서 리안과 악수를 하면서 크게 웃었습니다. 화해일까요? 돈의 힘일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셨던 일이었다고 믿었습니다. 새 동장으로 인해 메얀청 선교가 더 이상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검문소 통과
메얀청 선교를 마치고 양곤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리안이 알려주었던 동일한 길로 돌아가는데, 아침에 없었던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차량이 긴 대기 줄 위에 걸려 있었습니다. 기도하면서 마음을 단단하게 준비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저를 보더니 쉬지 않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적이 어디냐? 여권과 입국 허가증을 보여 달라. 직업이 무엇이냐? 왜 미얀마에 왔느냐? 어디를 갔었느냐? 왜 갔었느냐? 지금은 어디로 가는 중이냐? 등등. 검문에 걸릴 것을 대비해서 마닐라에서 미리 준비해 온 특별 명함이 여권과 함께 제시했습니다. 그 명함에 동남아한센선교회(Asia Leprosy Mission) 로고와 함께 Dr. Joshua H. Yang이라고 인쇄했고, 미얀마 전화번호만을 넣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당당한 음성으로 “나는 박사다. 지금 메얀청에 있는 한센 환자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라고 말하고, 조금 전에 한센센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박사 명함과 한센센타 사진들을 자세히 보더니 그들은 의심하지 않고 저에게 경례를 붙이고 “통과”라고 했습니다. 다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호텔로 향했습니다. 미얀마는 아직까지 외국인에게는 위험한 나라였습니다. 곳곳에 지뢰(검문소)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 전도사 세미나
월요일과 화요일에 양곤에서 바욱과 리안만을 놓고 목회자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을 위한 선교 플랜을 함께 의논했습니다. 가장 큰 결정은 메얀청에 세웠던 [생명의 양식 제빵소] 선교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양곤에도 전력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하루에 6시간만 전기를 받았습니다. 메얀청은 하루에 3시간만 준다고 했습니다. 그 제한되고 약한 전력을 가지고 빵을 구울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밀가루, 식용유, 우유, 설탕, 버터 등등의 재료들을 구입할 수 없었고, 폭등한 물가를 감당할 만한 선교비가 없었습니다. 쿠데타 전에 식용유 한 병 가격은 1,200잣트였는데 지금은 8,000잣트였고, 쌀 40kg 한 포대 가격은 전에는 24,000잣트였는데 지금은 65,000잣트였습니다. 그래서 제빵 기계들을 양곤에 있는 바욱전도사 집으로 옮겨서 소량으로 빵을 구워서 판매하고, 그 수입금의 20%를 선교비로 기부하라고 했습니다. 바욱전도사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 마닐라로 돌아옴
양곤 공항을 이륙하면서 수십 번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오기를 참 잘 했다.” 이번 선교통신은 마닐라에서 양곤으로 가는 방향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메얀청에서 저를 맞이했던 성도들과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선교는 너무도 달라보였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미얀마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얀마 사람이었던 리안전도사도 여러 검문소를 통과해서 양곤으로 나와서 저를 만났습니다. 돌아갈 때도 다시 수차례 검문을 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검문소에서 뇌물을 주고 통과했다고 했습니다. 외국인에게는 몇 배 더 어렵고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저의 메얀청 방문이 메얀청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었던 것은 그 길이 단순히 차로 2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 아니라, 지뢰밭과 같은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리안전도사는 메얀청으로 들어오는 저를 위해서 모든 교인들과 학생들이 매일 저녁에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 오전에 저를 만났을 때 그들은 그처럼 뛰면서 저를 붙잡고 기뻐해 주었던 것입니다. 리안과 바욱전도사는 저에게 수차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체포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메얀청으로 들어오신 목사님을 보면서, 목사님이 저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한 일을 자랑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미얀마 상황을 사실대로 전하기 위해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저 역시 매월 수백만 원의 선교비를 보내는 일보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 선교지로 들어가 고난 받는 성도들을 안아주는 일은 그 어떤 물질과 비교할 수 없는 선교라고 믿었기에 목숨을 걸고 메얀청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십 번 “오기를 참 잘했다.”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양곤에 도착해서 양곤을 떠날 때까지 하루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 한 시간이 아니라, 1초 1초가 긴장 속에 있었습니다. 새벽 2시 혹은 3시에도 군인들이 불시에 호텔로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에 매일 잠을 편히 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교 일정을 마치고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쌓였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제 입에서 자동적으로 흘러 나왔던 말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꿈인가!” 그런데 꿈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저의 작은 생명을 [생명보자기]로 싸매 주셨습니다. 코피가 터졌지만 호텔 방에서 지혈이 되었습니다. 군인들의 검문에 걸렸지만 무사통과되었습니다. 선교의 최종 목적이었던 메얀청 성도들과 감격적인 재회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혼이라는 배신과 상처를 당했지만 메얀청 선교를 끝까지 지켜주고 있는 리안전도사와 듀듀자매의 헌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켜주심과 능력주심으로 이루어진 기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우리는 다시 승리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