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 윤시우
오픈AI, MS,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의 핵융합 혁신기업 투자 규모는 지난 2020년 15억 달러에서 2023년 62억 달러로 4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정보통신 대기업들이 핵융합에 주목하는 이유는 당장 생성형 AI 등 첨단 기술이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2년 450테라와트 시(TWh)에서 2026년 1,000TWh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빅테크의 입장에서는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면서도 탄소중립을 지켜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삼은 것이 바로 핵융합 에너지이다.
민간 분야의 핵융합 투자 확대와 함께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국가별 투자 확대이다. ITER가 가동 시기를 연기하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동안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속도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눈에 띄는 것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해 정부 기관과 민관의 협력 및 협업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민간기업 중심으로 2030년대 핵융합을 통한 전력 생산 목표를 제시했으며, DOE(미국에너지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공·민간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040년대 핵융합 전력 생산을 목표로 하는 영국도 별도의 민·관 협력 기구를 설립해 핵융합 실증 플랜트와 산업 비즈니스 창출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경쟁하고 있는 중국의 핵융합 광폭 행보에 다른 경쟁국이 긴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중국은 대규모 핵융합 기술 캠퍼스를 완공하고 대기업이 포함된 국립 핵융합 컨소시엄을 출범시키며 관련 기술에 미국보다 더 많은 연간 약 15억 달러를 지출한다고 보도했다. 이 주요국들 외에도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민간 창업이 확대되는 등 핵융합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융합 R&D 패러다임 전환…가속화 전략 마련
이처럼 전 세계 핵융합 연구개발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에너지 패권, 기술 패권 시대가 도래하면서 핵융합에너지 경쟁이 가속화되고, 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들이 시시각각 발표되고 있다. AI와 디지털화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를 해결하는 동시에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에도 부합하는 새로운 에너지 창출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세계 8위의 에너지 소비국이면서도 에너지원의 96%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매장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기술 기반의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핵융합 연구개발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7월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안)’을 발표했다. 이번 핵융합 가속화 전략은 ‘핵융합 국제 상용화 선도 국가 실현’이라는 비전하에,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역량을 확보해 ‘탈(脫)탄소 시대 에너지 안보·주권의 핵심축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민·관 협력을 통한 핵융합 기술혁신 △핵융합에너지 산업화 기반 구축 △핵융합에너지 혁신생태계 조성 등 3대 전략을 수립하고 9개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안) 발표
첫째, 민·관 협력을 통한 핵융합 기술혁신을 위해 ‘퓨전((Fusion) 엔지니어링 혁신 과제’를 추진한다. 민간의 우수한 엔지니어링 역량과 공공의 핵융합 기술 역량을 결합하는 민·관 공동개발 방식으로, 핵융합 실증로 건설 단계에서 필요한 디버터·증식블랑켓 등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또한 민간의 창의적 연구 성과가 핵융합로 소형화 기술로 연결될 수 있도록 민·관 협력의 ‘플러그인(Plug-in)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민간 컨소시엄이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공공기관은 여기서 개발한 기술이 핵융합로에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에 우리의 우수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AI, IoT(사물인터넷) 등을 적용하는 핵융합 디지털 혁신도 추진한다.
둘째, 핵융합에너지 산업화 기반 구축을 위해 민간기업, 대학, 정부출연연 등으로 구성된 ‘핵융합 혁신 토론회’를 출범한다. 민간기업의 내수시장 활성화와 핵융합 관련 스타트업 창업 및 시장 조기 안착을 지원하는 ‘K-Fusion 스타트업 사업’을 추진하고 기술사업화를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국내 핵융합 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을 지원한다. 단기적으로는 한국형 핵융합 연구로(KSTAR)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과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등 국제협력을 통해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실증로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또한 핵융합 관련 기술의 산업적 활용을 다양화하고 관련 신산업을 창출하는 등 핵융합 연구개발 성과 활용 및 확산에 나선다.
셋째, 핵융합에너지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먼저 민·관 협력 기반의 핵융합 개방형 연구생태계를 강화한다. 대학과 기업이 KSTAR, ITER 등을 통해 축적한 핵융합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핵융합 빅데이터 센터’를 구축한다. 다음으로 핵융합 인력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 인력 확보·양성에 나선다. 이와 함께 혁신생태계 조성의 하나로 국제적 지도력을 강화하고 협치 체계를 주도하기 위한 기반도 마련한다. 원자력과 구별되는 별도의 핵융합 규제 체계 개발을 위한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국제기구 및 핵융합로 개발 국가와의 규제 협력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공공·민간 협력체 결성식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는 시대적 당위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시대적 당위이다. 지난 1995년 KSTAR 건설과 운영을 시작하며 우리는 빠른 속도로 핵융합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또한 ITER 사업 참여를 통해 대규모 핵융합로 설계·제작·운영에 필요한 기술을 축적했다.
이제 우리는 민·관 협력을 통해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조기 실현이라는 도전적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핵융합과 관련해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인공 태양이 뜨기도 전에 사그라질지 모른다’는 일각의 성급한 우려를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로 바꾸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핵융합에너지 가속화 전략(안)’은 핵융합 선도 국가 실현의 밑그림인 동시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될 것이다. 필자가 속해있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역할과 핵융합의 미래가 분명하기에 마음이 조급하다. 그 조급한 마음을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실현의 열정과 실천으로 바꿔나가려고 한다.
필자소개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 박사
(전)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