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편소솔>
속초 여행
김 광 욱
1
가을 이른 아침, 영동선 고속버스 터미널 승강장 의자에 한 소년이 앉아 있다. 터미널 맨 끝 속초행 승강장에는 아직 버스가 들어와 있지 않다. 다른 버스들만 떠나가고 또 들어와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고속버스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고 어떤 고속버스는 한두 명 싣고 떠나기도 한다.
옆 의자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강릉행 고속버스에 승차한 뒤, 의자에 홀로 덩그마니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이 문득 쓸쓸해 보인다. 강릉행 고속버스는 7시 50분 버스였다. 소년은 8시 10분 속초행 고속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속초까지는 네 시간 이상이 걸릴 게다. 연착하지 않고 제 시간에 도착한다면 정오 무렵에 속초 해수욕장에 갈 수 있다. 눈비가 오지 않는 좋은 날씨니까 아마 정시에 도착하리라고 본다.
소년은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터미널에 들고 나는 차들을 바라보지만 시선은 어느 한 곳을 주시하지 않고 먼 허공에 있다. 속초에 가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속초에 가는 것도 아니다. 속초란 곳은 소년에게 낯선 곳이다. 그는 지금 막연히 속초란 이름을 떠올리고, 막연히 어떤 사람과 만날 계획을 세우고 새벽부터 서둘러댔다.
소년의 집에서(그가 사는 곳을 그의 집이라고 하자) 고속버스 터미널까지는 전철을 세 번 갈아타야 하는 먼 거리였다. 그러니 초행길인 속초에 가려면 새벽부터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소년이 초조해지는 건 속초가 낯선 땅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소년만이 알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발길들이 소년의 앞을 지나갔다. 옆자리에 엉덩일 붙이고 잠깐 앉았다가 훌쩍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소년의 후각에는 그 사람들의 냄새가 각각 다르게 느껴졌다. 모두 소년의 생활과는 무관한 낯선 체취들이었다. 그 바삐 움직이는 발길들이 소년을 더 외롭게 했다. 그는 사실 바쁠 것도 없고 ‘뚜렷한 용무’도 없이 두 달 동안 별러 왔던 이 여행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그것은 용무라면 용무이고 용무가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는, 극히 조그만 일이었다. 소년의 생각 여하에 달렸다는 얘기다.
허나 분명히, 그는 바닷바람을 쏘이거나 가을 해수욕을 하려고 속초에 가는 건 아니었다. 계절이 여름철이라 해도 바다에 피서를 갈 만큼 한가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지금쯤 잠에서 깨어 일터에 나가려고 준비할 시간이다. 그는 그의 또래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게 아니고 일터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하여, 살기 위해서 우선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직장이었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눈앞으로 지나가는 하얀 종아리를 바라보던 소년은, 몸을 웅크리고 그 하이힐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때 묻은 운동화 끈이 길게 늘어뜨려져 보기에 흉했다.
젊은 여자가 소년의 낡은 운동화를 흘끔거리고 지나갔다. 소년은 부끄러워서 얼른 두 발을 의자 밑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돈이 없어서 펑크난 운동화를 신은 줄 아쇼? 그렇게 측은한 눈으로 보지 말아요 누나. 우리 엄마가 사 주신 운동화라 애지중지 아낀답니다. 오늘은 먼 여행을 하기 때문에 멋있게 차리고 나온 거예요. 이래봬도요. 소년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요즘은 헤진 바지를 입어도 오히려 그걸 멋으로 아니까 걱정할 것 없고 빛바랜 티셔츠와 재킷은 소년을 더 나이들어 보이게 한다. 차림새는 허술해도 호리호리한 체격에 긴 모자 차양 밑으로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큰 눈이 가난티를 어느만큼 가려 주었다. 그러나 소녀처럼 예쁘장한 얼굴과 청년처럼 건장한 체격은 아무래도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얼굴은 아이이고 체격은 성인이란 표현이 걸맞을 것 같았다.
소년은 손에 든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흘끔 보고 나서 잠깐 의자에서 일어나서 서성거렸다. 날씨는 바람 없이 포근했다. 잠시 후에 속초행 버스가 들어왔다. 행선지 아래 8시 10분이란 출발 시간이 적혀 있었다. 그 고속버스에 가장 먼저 올라탄 사람은 소년이었다. 뒤따라 몇 명의 남녀 손님들이 승차했다. 빈 좌석이 많아서 손님들은 띄엄띄엄 떨어져 앉았다. 소년은 맨 뒷자리로 가서 홀로 편안히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고속버스는 정시에 출발했다. 8시 10분이었다.
2
버스에 앉으니 마음이 솜처럼 편안했다. 소년은 여행을 좋아하고 버스 여행을 좋아했다. 엄마에게서 배운 습성이었다. 소년은 손에 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너무 홀가분한 여행은 차라리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켜 들고 주무르며 거기에 시간을 소모했다. 고속버스는 서울 시가지를 벗어나 산 속 길을 달리고 있었다. 들판은 가끔 가다 조금 보이고 거의 산길이었다. 곱게 단풍 물든 숲들이 청아한 가을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어젯밤에 속초에 갈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아서 친구와 새벽 두 시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고 놀았다. 방 안에 컴퓨터가 한 대 있어서 일터에서 돌아오면 친구와 잠이 올 때까지 교대로 게임을 했다. 피곤할 때는 몸도 씻지 않고 곯아떨어져서 잤다. 소년이 하는 일은 식당의 잔일과 음식 배달이었다.
오토바이로 배달하기 때문에 날씨만 좋으면 힘들지 않았다. 소년은 일하는 걸 즐겁게 생각했다. 엄마만 살아 있다면 그는 행복할 것이다. 엄마의 죽음은 모든 행복과 꿈을 앗아가 버렸다. 돈 벌어서 엄마와 크고 넓은 집에서 재미있게 살려던 꿈을. 아직 나이 어리니까 흩어진 꿈을 또 주워 모으면 되겠지만 그러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엄마를 잃은 상처에서 헤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는 그 상처에서 속히 헤어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얼굴을 잊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어리니까 그러겠지 하고 약해지는 마음을 달래며 어서 성숙되기를 기다렸다. 그가 청년이 되면 사는 요령을 터득하여 슬픔을 이겨 내고 용감하게 살아갈 것 같았다. 그는 항상 미래의 자신을 생각했다. 미래는 현재보다 어둡지 않고 밝고 멋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미래도 현실처럼 그 누가 만들어 주지 않고 자기 스스로 개척하고 투쟁하며 헤쳐나가야 한다.
헤쳐나가는 방법은 자기를 도와 주는 사람을 찾지 않고 자신이 도와 줄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그것이 삶의 방법이었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 보통 성인들도 체험 못할 시련을 체험하고 시련에 굴하지 않고 병폐에 물들지 않고 용케 버텨 왔다. 그것은 엄마의 힘이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남에게 의지해선 안 된다. 내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그 불행이 점점 커져서 그 불행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엄마의 가르침은 소년이 허튼 짓을 하도록 용납하지 않았다. 엄마는 숨이 넘어갈 때까지 그 말씀을 하셨다. 대학을 가고 미국유학을 가도 마음이 못 되면 시골 농부만 못하다고 누누이 가르치셨다. 많이 배우지 못한 걸 한탄하지 말고 작은 배움을 오히려 귀하게 활용해라. 엄마는 소년의 선생님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먹피를 토하면서도 아들의 손을 잡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엄마. 엄마의 모든 가르침의 명언들이 소년의 혈관 속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이제 생각하니 엄마의 한마디 말씀은 모두 명언이었고 엄마의 올바른 삶은 곧 소년에게로 전이되었다. 소년은 학교에 다니지 못한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도 ‘공부’에 대한 열등감은 소년의 생활 패턴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았다.
공부는 학교가 아니고 집에서도 할 수 있었다. 소년은 일하면서 독학으로 고교 검정고시에 패스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보다 먼저 고등학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의 목표는 대입 검정고시에 패스하여 대학과정을 배우는 거지만 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엄마 간병 때문이었다.
엄마의 죽음은 소년에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할 수 있는 오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어서 함께 공부하고 기거할 수 있는 터전도 마련했다. 그 친구도 공부벌레였다. 친구는 오늘도 혼자서 일터에 나가 일하면서 틈틈이 공부할 것이다. 그 친구를 두고 떠나서 미안했다.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속초가 생활 터전으로 바뀌게 되면. 소년은 그런 미래도 가정했다.
소년이 찾아가서 만날 사람이 혈육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사람이면 그는 속초에 살 생각이다. 엄마가 아는 사람이 있어 찾아간다는 희망이 소년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 사람이 친구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길 바랬다. 엄마의 친구는 남자이고 속초에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부자였다. 호텔 사장이니까 나 같은 아이를 만나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3
‘대관령’이란 이정 표지판이 보였다. 고속버스는 몇 개의 터널을 지나 펑퍼짐한 준령 위를 달리고 있었다. 단풍으로 물든 그림 같은 능선들이 펼쳐지고 그 위로 구름송이가 한가로이 떠 가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대관령 고개는 한 폭의 고운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 아름다웠다. 차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스쳐오고 지나갔다.
소년은 모자 차양을 쳐들고 눈을 크게 뜨고 차창 밖으로 전개된 풍경들을 넋잃고 바라보았다. 모자 차양을 쳐드니 소년의 갸름한 얼굴이 햇빛에 뚜렷이 보였다. 귀공자처럼 잘 생긴 얼굴이었다. 어찌 보면 나약하고 어찌 보면 야무져 보이는 굳은 표정에는 알 수 없는 수심이 서려 있었다. 엄마의 친구란 낯선 사람을 만나러 가는 속초 초행길이 이토록 소년을 울적하고 초조하게 할 줄은 몰랐다.
그 호텔 사장이 아무래도 소년을 반갑게 맞이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뚜렷한 용무도 없이, 엄마의 유언을 따라 낯선 남자를 만나러 가는 이 여행이 소년에겐 달갑지 않았다. 엄마의 유언이니까 찾아가는 거다. 찾아가서 엄마의 편지를 전하고 서울로 돌아올지 속초에 머물지는 알 수 없었다. 소년이 훔쳐본 엄마의 편지에는 별다른 내용은 없고 그 남자와 두 번 만났던 이야기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헤어진 이야기와 간단한 삶의 이야기뿐이었다.
(아마 엄마의 애인일 거야.)
소년은 ‘친구’란 단어가 싱거워서 일부러 두 분이 사랑한 것처럼 사실을 침소봉대했다. 그래야 찾아가는 이유가 될 것 같았다. 엄마와 그 남자가 그냥 싱거운 지인 관계라면 엄마가 찾아가라고 유언했을 리 만무하다. 엄마의 말 속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그 속뜻은 소년도 모른다.
소년은 외롭다. 엄마가 죽고 나니 세상 벌판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친척이 있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어디에 살고 있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만나도 도움되지 않을 사람들을 굳이 아들에게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은 엄마였다. 그 엄마가 입을 연 것은 임종을 앞두고 숨이 넘어갈 때였다.
“얘야, 이 편지, 겉봉에 수취인을 써 놨으니 그 분을 찾아가 꼭 전해라.”
엄마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있단 것도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전에는 그러려니 상상만 했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모두 비밀로 했다. 엄마는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다. 엄마의 아픈 비밀을 아들에게 숨겼듯이 그 비밀을 만든 사람에게도 끝까지 숨기려고 했다.
엄마 마음이 달라진 것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 때부터였다. 엄마는 아픈 몸으로 한 장짜리 편지를 썼다. 편지는 한 장이었지만 거기에 담긴 고통은 피 한 동이 이상이었다. 몇 번 각혈을 하고 중단했다가 겨우겨우 완성한 편지였다. 아들이 써 주겠다고 해도 끝내 그녀 자신이 쓰겠다고 고집했다. 엄마는 편지 위에 엎드린 채 숨을 거두었다. 피 묻은 종이와 입술 사이로 들리지 않을 그 유언을 남긴 채.
(그분이 날 안 만나 주면 편지만 전해 주고 돌아와야지.)
초조감을 달래려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해 보았다. 어젯밤에도 잠을 설쳤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면 숲과 산과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전답들은 군데군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강원도란 곳은 산과 숲이 많고 들판 같은 평지는 드문 고장이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다. 아니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고속버스가 잠시 쉴 때 소년은 목이 말라서 포카리스웨트란 음료수 캔을 사서 마셨다. 엄마가 좋아하던 음료수였다. 엄마의 마지막 영상이 떠올라서, 마신 음료수를 모두 토해 버렸다. 휴게소 안의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차에 타서도 뱃속이 좋지 않았다.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엄마와 무관하지 않고 엄마와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다가 나 혼자란 생각을 하면 미칠 것 같았다. 그럴 땐 머리를 쥐어뜯으며 잊으려고 애썼다.
고속도로 오른쪽으로 바다가 나타나고 눈빛 파도가 보였다. 하얀 눈을 해변에 부어 놓은 것 같았다. 차창에 막혀 파도소리는 들리지 않고 파도의 하얀 율동만 보였다. 엄마가 바다를 좋아해서 몇 번 인천 부두와 송도 해수욕장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비수기 때여서 사람은 없고 백사장은 쓸쓸해 보였다.
엄마는 백사장에 누군가의 얼굴을 그렸다. 파도가 밀려와서 얼굴을 지우면 장소를 옮겨서 또 그렸다. 그 사람이 속초에 사는 그 사장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때의 엄마는 아름답고 건강했다. 엄마는 미인이었다. 가끔 남자들이 집에 찾아오면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닫아걸고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남자의 유혹은 엄마에게 있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 같았다.
엄마는 그 고통을 바다로 가지고 가서 모두 버렸다. 파도소리와 물새의 울음소리, 칼날 같은 바람의 울부짖음. 그 가없는 광막함 속에 부질없는 욕망과 함께 모두 내던져 버린 것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가는 날은 잔칫날처럼 마음이 들뜨고, 바다에서 돌아온 며칠 동안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마의 그리운 체취와 이상과 희망이 바다의 출렁임 속에 있었다. 바다는 서해 바다나 동해 바다나 똑같았다. 그 빛깔이 그 빛깔이었다. 소년은 지금 그 바다를 찾아가고 있다. 속초에 가서 실망만 하고 돌아올 것 같아 수십 번 망설이다가 바다를 생각하고, 거기에 가면 엄마의 체취가 있을지 몰라 용기를 내어 속초행을 결심했었다. 그 사장이란 분을 통해 엄마의 체취를 찾고 싶었다. 속초는 엄마가 그리워한 바다이기도 했다.
고속버스는 한 시간 반 가량 더 달려 속초 터미널에 도착했다. 속이 비어 창자가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 정신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차멀미가 가라앉았다. 소년은 의자에서 일어서서 어디로 갈지 방향을 찾아보았다. 속초 시내로 들어올 때 오른쪽으로 보이던 드넓은 백사장이 생각나서 그쪽으로 걸었다. 그곳이 해수욕장일 거라고 추측했다.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도로를 따라 조금 걸으니 바다로 가는 해변도로가 나타났다. 예측대로 그곳이 속초 해수욕장이었다.
4
해변도로의 끝이 해수욕장이었다. 버스에서 보았던 바다의 수평선이 보이고 웅장한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백사장에는 주말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나와서 놀고 있었다. 비수기인데 해수욕장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속초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넓고 길며 아름다운 송림과 섬이 있었다. 동해안의 해수욕장에 섬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조그만 섬은 바다 한가운데 조용히 떠서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바다는 청자색이었다.
서쪽으로 기운 해가 모래사장을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오후 1시였다. 기온이 높아져서 수영팬티를 입고 물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파도에 묻혔다가 한참 후에 나타났다. 푸른 바다를 보자 소년은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고픈 충동을 느꼈다. 바다를 좋아하던 엄마가 또 생각났다.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꼭 이런 비수기에 바닷가를 찾았다. 엄마와의 추억은 북적거리는 해수욕장이 아니고 텅 빈 해변과 밀려오는 파도소리뿐이었다. 엄마가 병으로 쓰러지기 전까진 주말이면 바닷가를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먹고 사는 문제 외에 엄마에겐 필요한 게 있었다. 그것이 바다였다. 바다에 와서 철없이 소리치며 뛰어놀던 엄마. 엄마에게 바다는 유일한 친구이고 대화의 창구이고 스트레스의 출구였다. 엄마는 바다와 무슨 얘긴가를 끝없이 속삭였다. 어린 아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이었다.
엄마가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만 있다면, 엄마라고 부를 사람이 있다면 마음껏 소리치며 백사장 끝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엄마와 손잡고 파도에 몸을 맡기거나 모래 위에 뒹굴고 싶었다. 장난을 좋아하고 명랑하던 엄마였다. 남자를 싫어하고 남자가 접근하면 비명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던 사나운 야수이기도 했다.
“승주야, 엄마가 왜 남자를 싫어하는지 아니? 남자들은 음흉하기 때문이야. 넌 절대로 음흉한 남자가 되지 마. 여자에게 무례히 굴지 않는 남자가 신사인 거야.”
엄마가 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엄마에겐 사귀는 남자가 없었다. 엄마는 일부러 멋을 부리지 않고 털털한 차림으로 뼈빠지게 일만 했다. 주로 밤과 새벽에 하는 먹거리 장사였다. 그렇게 해야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승주는 성장할 때까지 엄마가 한 번도 어떤 남자와 함께 있거나 웃고 까부는 걸 보지 못했다. 엄마가 웃고 까부는 건 아들과 함께 있을 때였다.
엄마를 끊임없이 찾아와서 시집가라고 들볶던 노파가 어느 날 승주에게 이상한 질문을 했다.
“야, 니 엄마, 여자가 맞긴 맞냐?”
그러면서 엄마가 소변 볼 때 어떻게 누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런 걸 어린애에게 물었다고 노파와 대판 싸웠다. 사람들은 엄마가 이혼한 줄 알고 있었다. 엄마가 힘들게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 준다고 해도 가지 않았다.
엄마는 남에게 예속되기 싫어하고 자유롭게 혼자 장사하는 걸 좋아했다. 남에게 예속되면 정조까지 예속될까 두려워했다. 엄마는 정조 관념이 투철한 여자였다. 남편도 없으면서 왜 인생을 엔조이할 줄 모르냐고 사람들이 놀려도 들은 척 만 척이었다. 엄마에겐 엔조이란 단어가 통하지 않았다.
승주는 철이 들면서 엄마가 왜 그토록 이성을 멀리하는지 알았다. 엄마에겐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는 엄마의 꿈속에서 존재하는 신 같은 존재였다. 이따금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그 남자를 많이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승주는 그 남자가 아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빠에 대해 한마디도 들려주지 않았지만 엄마에겐 그 남자밖에 다른 남자가 없었다.
아니면, 승주의 아빠란 사람에게 데어서 남자라면 이가 갈리고, 그래서 이성과 벽을 쌓는 건지. 엄마가 생각하는 미지의 남자가 어쩌면 아빠와는 전혀 다른 멋쟁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승주의 상상이었다. 어쨌든 엄마에겐 신처럼 생각하는 남자가, 마음 속으로 흠모하는 특별한 인물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 남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엄마 앞에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엄마의 사후에야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지금 그 남자를 찾아가면서 그가 어떻게 생겼을까 몹시 궁금했다. 산적처럼 무섭게 생기지 않고 너무 핸섬하지도 말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부드러운 인상이었으면 했다. 승주의 목적은 그 남자에게 피 묻은 엄마의 편지를 전하는 일이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면 엄마의 친구인 그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서울이든 속초이든 지역의 차이뿐, 일해서 먹고 살 길은 똑같을 것 같았다. 어디서든 일하고 책을 볼 수 있는 곳이면 승주의 고향이 된다. 그는 웬지 속초란 그 이름이 좋았다.
5
승주는 긴 백사장을 걸어 송림 끝에 있는 큰 호텔을 향해 걸었다. 속초에선 제일 크다는 일류 호텔이었다. 멀리서도 ‘선화호텔’이란 한글 간판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은 몰랐다고 속으로 기뻐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사각사각 모래 밟히는 소리가 간지럽게 들렸다. 초조감이 사라지고 이상한 흥분에 호흡이 가빠졌다. ‘선화호텔’은 해변 도로 가에 다른 화려 모텔들을 위압할 듯 큰 그늘을 드리우고 우뚝 서 있었다.
승주가 호텔의 높은 창들을 쳐다보며 머뭇거리고 서 있노라니까, 백사장 위에 좌판을 차려 놓고 신수와 점을 보는 점쟁이 할아범이 손짓으로 승주를 불렀다. 승주는 끌리듯 할아범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를 따라 점을 보던 생각이 나서 무심코 그쪽으로 간 건데 할아범은 승주의 손을 놓지 않고 꽉 붙잡았다.
“점값은 조금만 줘도 좋으니까 이럴 때 자기 사주팔자를 알아 두는 것도 좋아.”
승주는 할아범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할아범은 묻지도 않은 말을 척척 알아맞췄다.
“속초에 놀러온 게 아니고 누굴 만나러 왔구만. 그 사람이 문전박대할까 봐서 걱정했지? 그 사람은 정이 있는 사람이니까 자네를 박대하지 않을 거라고 자네 관상에 써 있네.”
“정말예요, 할아버지?”
소년은 믿지 않으면서 기뻐하는 척했다.
“관상은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지. 나는 그 관상을 보고 말하는 게 아니고 자네 사주와 신수를 조합해서 보고 말하는 거야. 용기를 내서 목표를 향해 도전해 봐. 그러면 꼭 좋은 결과가 생길 테니까. 천성이 부지런해서 어디 가나 일자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저는 일자리를 찾는 게 아닌데요.”
“그 사람과 만나는 게 자네 일자리와 연결되지. 나는 이 자리에서 이십 년 동안 사주와 점을 봤는데 내 점괘가 틀린 적이 한 번도 없네. 틀린다면 이 노릇을 해먹을 수 없지. 이만원만 주게.”
“너무 비싸요, 할아버지.”
“그럼 만 오천원만 내소. 아주 싸게 받는 거야.”
“할아버지는 돈밖에 모르셔. 제가 봐 달라고 하지도 않은 사주를 봐 주고선, 쳇!”
승주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만원짜리를 꺼내어 할아범에게 내밀었다.
“이것밖에 없어요 할아버지. 서울 돌아갈 차비도 없다니까요.”
“나보다 한수 더 뜨는군. 그 사람 만나서 일이 잘 되면 꼭 나한테 와. 술 한 잔만 사 주면 돼.”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소. 젠장!”
“이건 돈으로 계산할 일이 아니야.”
노인은 웃고 나서 만원짜리를 좍 펴서 지갑에 집어넣었다. 노인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승주는 기분이 좋았다. 숲을 지나 도로 쪽으로 걸어가면서 돌아보니 노인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도는 소리치며 밀려오고 섬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떠 있었다.
승주는 호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식당 안을 기웃거렸다. 호텔 일층은 큰 식당이었다. 한 청년이 식당 앞 의자에 앉아서 승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승주는 청년 앞으로 걸어가서 물었다.
“이 호텔 사장님이 신규호 씨인가요?”
“호텔 사장님이 두 분인데 신규호 씨는 남자 사장이지. 어디서 왔니?”
“서울에서 온 김승주라고 해요. 사장님을 좀 뵈러 왔는데 지금 계실까요?”
“무슨 용무인지 말해 봐.”
청년은 퉁명스럽게 내뱉고 나서 어서 꺼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말씀해 주셔야죠. 저는 놀러 온 게 아닙니다.”
“놀러 온 게 아니면 뭐냐? 네까짓 놈이 사장님을 만나서 뭘 하려고? 사장님이 너 같은 애숭이와 상대할 만큼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바닷가에 왔으면 갯바람이나 들이키면서 좋게 놀다 가 임마.”
“놀러 온 게 아니라니까요. 긴한 용무가 있어서 왔단 말예요. 사장님을 꼭 봬야 해요.”
“사장님 지금 안 계시고, 계서도 만나지 못해. 알았거든 가라. 좋은 말로 할 때.”
“안 계시면 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어요.”
“어허 참 귀찮게 구네!”
청년이 눈을 부라리며 소년을 한 대 쥐어박을 순간 승용차 한 대가 호텔 앞으로 달려와서 멎었다. 차에서 두 남녀가 내리고 청년은 그들에게 깎듯이 절을 했다. 그들이 사장이었다. 청년의 태도로 보아 사장일 거라고 승주는 판단했다.
사장과 여자는 차에서 내릴 때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게 언쟁을 했다. 두 사람은 승주 앞을 지나 호텔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승주는 달려가서 남자 사장에게 곱게 인사했다. 사장은 건성으로 인사를 받고 지나가려다 승주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 아이는 누구지?”
사장이 청년에게 물었다.
“글쎄, 서울에서 사장님을 뵈러 왔다면서 이렇게 떼를 쓰네요. 죄송합니다.”
“차비나 좀 줘서 보내게.”
“예, 알겠습니다.”
청년은 승주를 끌고 가고 두 사장님은 호텔 계단으로 올라갔다.
“취직 부탁하러 온 게 아니예요!”
하는 승주의 울음 섞인 외침을 듣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