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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환인·집안답사기①] 고구려 유적지 답사기
By 권순홍
17일 오후 3시 반.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기에 약간의 설렘과 망설임을 안고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이 답사기는 시작되었다. 부족한 능력을 높게 사주신 웹진위원장 박준형선생님 덕에 보다 밀도 있는 답사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구하기 어려운 자료도 흔쾌히 내어주신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답사일정 : 2015년 5월 1일(금요일) ~ 5월 5일(화요일), 4박 5일
답사지역 : 중국 요령성 본계, 환인, 길림성 집안
답사인원 : 이규호(답사대장, 동국대), 권순홍(성균관대), 서민수(건국대), 이여름(서울여대), 인용식(가톨릭대), 정동준(한성대), 정상희(동국대), 현영철(동국대) 이상 8명
이번 답사는 5월 1일에서 5월 5일까지 4박 5일간 고구려의 옛 중심지였던 중국 요령성의 환인과 길림성의 집안을 답사하는 일정으로 기획되었다. 4년 전 우연한 기회로 첫 만남을 가졌지만, 남자의 첫사랑이 늘 늦게 시작되듯, 그때는 이곳을 이렇게 그리게 될 줄 미처 몰랐다. 마침 고구려 초기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 학수고대하던 차에 이번 답사 소식을 듣고 신청을 미루지 않았다.
[사진1] 답사 코스 ⓒ권순홍
5월 1일 아침 6시. 하다하다 안된 몇 가지의 일을 묵혀둔 채 충혈된 눈으로 우린 인천공항에 집결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이른 시간인데도 무척이나 붐볐지만,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8시 5분. 예정된 시각에 출발해서 중국 현지시각으로 8시 50분, 심양공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높은 기온(서울 낮 기온이 20℃를 웃돌던 터라 다들 그보다는 추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심양 낮 기온이 29℃였다)에 적잖이 당황하면서 입국수속을 마친 후 현지가이드와 간단한 미팅을 하고 나니 벌써 시간이 오전 9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서둘러 4박 5일간 우리의 이동수단이자 휴식공간이 될 20인승 도요타 버스에 오르고 나니, 그제서야 답사 온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첫 행선지 본계로 가는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 기간이 중국에서도 대대적인 휴가철이라고 한다. 그 덕에 조금 길게 눈에 담을 수 있었던 창밖의 풍경은 봄이었다. 이미 여름의 초입에 이른 서울과 달리 이곳은 이제 막 봄이 찾아온 듯 했다. 사방이 연두 빛깔로 가득한 봄이었다. 오전 11시. 서울에선 지나친 봄을 버스 창밖으로 만끽하다보니 어느덧 본계박물관에 도착했다.
심양에서 환인으로 가는 대부분의 경우는 동쪽으로 혼하를 거슬러 오른 후 다시 소자하를 따라 신빈을 거쳐 환인으로 이르는 길을 택하는데, 이번에는 이규호 답사대장의 결단으로 태자하를 거슬러 환인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를 수 있었다. 본계는 심양에서 5시 방향으로 50km 남짓 떨어진 곳으로, 태자하 중상류에 위치하여 초기 고구려 관련 유적·유물이 많은 곳이다. 특히, 고구려 초기 역사에 등장하는 梁貊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여 주목할 만한 곳이기도 하다.
본계박물관은 그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태자하 유역의 초기 고구려 역사와 관련된 지도 및 그림 자료들이 상당히 많아 1시간 정도 둘러 보았다. 신석기 시대 이래 태자하의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초기 고구려와 관련하여 태자하 유역과 혼강 유역의 구분 없이 본계와 환인의 유물·유적들을 함께 소개하는 것은 현재 요령성의 본계시와 환인현이라는 행정적 구획에 따른 결과가 아닐까. 12시. 우리는 사진촬영이 너그러웠던 이곳이 그리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도록이 없다는 것에만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사진2] 본계박물관 ⓒ권순홍
점심식사 후, 오후 2시 10분. 나른한 가운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본계에서 태자하를 따라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태자성이다. 요양방면에서 환인·집안으로 가기 위한 교통로 상에 위치하여 그 전략적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동쪽과 서쪽은 지대가 그 끝으로 가파른 자연절벽이 있으며 남쪽과 북쪽은 비교적 낮은 지형을 하고 있어 마치 말안장 모양을 띤다. 지금은 온통 옥수수밭을 이루고 있는데, 밭의 경계를 이루는 돌들이 아마 성벽을 이루었던 돌이 아니었을까. 그뿐 아니라 성 남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담벼락에도 의심스러운(?) 돌들이 많았다. 성은 동쪽 고지대의 내성과 그 나머지 외성으로 구성되었는데, 내성 높은 곳에 봉화대의 흔적이 있고, 반대편 서쪽 고지대에도 봉화대의 흔적이 보인다.
[사진3] 태자성 ⓒ권순홍
성의 서남쪽에서 성벽을 타고 들어와 내성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오후 3시 10분. 우리는 다시 동쪽으로 환인을 향해 출발했다. 점점 태자하의 상류를 거슬러 올라서인지, 산이 깊어짐과 동시에 평지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두 시간 정도 달린 끝에 오후 5시경 환인 도착. 환인에서 처음 발길이 닿은 곳은 상고성자 고분군이다. 주변보다는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데,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적석총은 약 15기 정도였다. 한 변의 길이가 10m이상 되는 기단식 적석총과 무기단식 적석총이 혼재한다. 방치된 적석총과 그 사이사이의 밭,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섬뜩한 모양의 허수아비를 노을이 내리쬐니 처량함마저 느껴졌다. 동쪽의 오녀산성은 바로 보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간 비켜서야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 인상 깊다. 막연하게 오녀산성은 환인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왜일까.
[사진4] 상고성자 고분군 ⓒ권순홍
삼십분 정도 흘러 오후 5시 35분. 다시 버스에 올라 남쪽으로 향했다. 왼쪽으로 혼강을 끼고 산 하나를 넘어가니 5시 50분. 망강루 고분군에 도착했다. 개방되지 않은 곳이었지만 현지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찾을 수 있었다. 상고성자 보다는 가파르고 좁은 언덕에 위치한 그야말로 망강루였다. 무기단임에도 고분의 규모가 상당했는데, 과수원 안에 돌무더기들이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현지여행사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이곳을 주몽묘라고 판단하여 개방을 안한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사료상 주몽의 장지는 용산인데 공교롭게 망강루 북서쪽 뒷산의 모양이 용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근거이다. 누구 하나 대꾸 없이 우린 발길을 돌렸다.
[사진5] 망강루 고분군 ⓒ권순홍
6시 10분. 넘었던 산을 다시 넘자마자 혼강가의 하고성자고성에 도착했다. 동벽에는 표지석만 남아 있을 뿐 흔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마침 그 작은 마을에는 결혼식 후 작은 축제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 흥을 깨면서까지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성벽의 흔적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 남은 일은 우리의 축제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출처: 한국역사연구회 http://www.koreanhistor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