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이 낳은 독립운동가이자 청포도 시인,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중략).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인 이육사(본명 이원록)는 ‘청포도(靑葡萄)’, ‘교목(喬木)’ 등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이처럼 경북 안동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17번의 옥고를 치루면서 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이육사의 고향으로 안동시에서는 이육사 문학관을 조성해 매년 육사 백일장, 전국 시 낭송 경연대회 등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인 이육사 선생을 기리고 있다. 이에 이육사 선생의 대표적 작품인 ‘청포도’를 모티브로 안동 대표의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264청포도 와인이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는 1904년 5월18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881번지에서 태어났다. 경북 안동은 1894년 갑오의병이 일어난 곳이며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이육사는 안동에서 나고 자라면서 안동의 강인한 저항 정신을 체득했다. 이육사에게 안동은 고향이자 저항정신의 근원지였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李源綠), 이원삼(李源三)이다. 호인 육사(陸史)는 대구형무소 수감번호 ‘264(二六四)’에서 딴 것이다. 1919년 도산공립보통학교 졸업, 1921년 백학학원에서 수학했다. 1923년 백학학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24년 일본 유학을 갔다.
1926년 베이징 쭝구어대학 상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1927년에 귀국,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이후 이육사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대구에 일제를 배척하는 격문이 나붙는 사건 등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여러 번 일본 경찰에 검거, 투옥되었다. 중국을 자주 내왕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3년 가을, 잠시 서울에 왔을 때 일본 관헌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송치되어 1944년 1월 베이징 감옥에서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