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함, 더 큰 은총?
1년 9개월 전에 전립선암을 수술했다. 전립선을 아예 송두리째 들어내는 것으로 주요 장기가 하나 없는, 불구자(?)다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내는 재작년 12월에 담낭염이 심해 칼을 대었다. 적당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절제(切除) 혹은 적출(摘出)했다고 표현해 보자. 아무튼 전립선 없는 할아버지와 ‘쓸개 없는 여자’가 같이 사는 셈이다. 할머니라 하지 않는 이유는 아내가 나보다 아홉 살이나 연하라 새해가 되어 봤자 겨우 예순 넷이기 때문이다.
미루적거리던 정기 검진을 스무 날 전에 했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는데, 둘 다 그런 대로 괜찮다는 얘기다. 그런데 배꼽을 쥘 소견이 적여 있다. 전립선 비대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전립선이 없는 사람더러 전립선이 부어 있다니…….PSA라고 전립선 항원 수치도 0.003이었으니(기준 0-0420), 수술 예후가 극히 좋은데 말이다. 수술 전에는 4.020! 둘이서 몇 번이나 웃었다. 문진 때 밤에 소피를 보러 몇 번 일어난다는 고백(?)을 했으니, 검진센터 측에서는 넘겨짚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서 웃고 또 웃었다.
다른 하나는 안과 소견이다. 안저 검사 결과 좌측에 매체 혼탁이 의심된단다. 부리나케 용인 세브란스 안과로 갔다. 이런 의사가 다 있나 싶게 친절한 문종* 교수는 아내와 나를 안심시켰다. 아무 이상이 없으니 여태까지 넣고 있었던 안약을 끊어도 되겠다기에 우리가 오히려 졸라서 백내장을 지연시킨다는 큐아렌을 두 병 처방 받아 돌아 나왔다.
치명적인 시신경 함몰과 고(高) 안압, 녹내장 등이라고 진단을 했었던 의사는 부산의 김** 원장(여)이었다. 평소 친절한 그가 왜 그렇게 겁을 주었는지는 아직 수수께끼다. 의사가 70명이 달려들어도 나를 일어서게 하지 못했던 만신 질환을 앓는 중 또 다른 비수를 내 민 사람이 김** 원장이다. 물론 병원에 갔을 당시, 온몸이 쇠약할 대로 쇠약했던 것도 그런 지표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같은 죄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거의 종일 매달려서 <성경>을 필사했으니, 눈의 피로가 극심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의사의 선언이 너무 잔인했다. 실명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자기가 소개해 주는 큰 안과로 가보라며 의뢰서를 써 주었으니…….서면 클** 안과, 원장 역시 절망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시야 검사 등, 의사나 환자나 왜 그렇게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했는지 모르겠다.
서면까지 너무 멀어 가까이 있는 김** 원장에게 들를 수밖에 없어 병원에 다녔다. 몇 달 뒤, 백내장 지연 약, 안압 강하 약 등을 계속 처방해 주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째 나는 두 약을 점안(點眼)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관, 여기 와서도 4년이다. 그런데 수도권 병원의 교수가 약은 거의 필요 없다는 것!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고말고.
김** 원장 외 또 다른 김ㅇㅇ 원장을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두 김 원장은 부부지간이다. 남편인 김ㅇㅇ 장은 내과 전문의의고. 한 건물, 층에서 개업하고 있다. 묘한 우연의 일치라고 하자. 아무튼 이 세상 모든 사상(事象)이 죽음의 그림자로 보이는데, 내과 병원을 수십 번 드나들었었지만 빠뜨렸던, 김ㅇㅇ 원장에게 어찌 안 들를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는 내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의 교의(校醫)로도 일했던 전문의다. 내시경 검사를 억지로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그가 내 얼굴을 보더니 내뱉는 첫마디가 파킨슨병이라는 것이다. 아찔해서 쓰러질 뻔했다. 겨우 의자를 붙잡고 서 있다가 두말 않고 나와 버렸다. 아내도 새파랗게 얼굴이 질렸고.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파킨슨병 환자가 되다니…….
그러나 그가 경망스러웠음은 진작 밝혀졌다. 그와 친한 근처의 피부비뇨기과 원장(나화고도 친함)이 대신 내게 사과를 한 것이다. 김** 원장도 마찬가지. 물론 손은 떨렸지만, 정상적인 보행도 가능했고, 의사 표현이 자유로웠음을 그 두 의사가 알았기 때문이다. 김ㅇㅇ 원장의 오진 원인은 환자인 내가 밝혔다. 파킨슨병의 가장 큰 증상인 데드 마스크(death mask), 즉 사자(死者)처럼 굳은 얼굴을 한 나를 보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
그로부터 강산이 변할 세월에다 그 반(半)을 보탠 지금, 내 건강은 거꾸로 되돌아가고 있다. 50대 후반의 체력이라고 떠벌이고 싶기도 하다. 군(軍)을 위해서 미력을 보탠다고 누구나 큰소리친다. 하지만 실제 한번이라도 장병들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애국가나 사단가를 부른 예비역이 있으면 나와 보라! 나는 3년째 그 전우들과 부둥켜안고, 뒹굴고 있다.
새해 벽두에 복음이 날아들었다. 내가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정** 교수(전국에서 가장 오래 된 수필 부산 동인회장) 내외가 지금 교리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3월에 영세(領洗) 예정으로. 정 교수도 그렇지만, 부인 문ㅇㅇ 전 교사가 대단하다. 30여 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불굴의 의지로 그걸 이겨나가는 사람이다.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29세에 이병(罹病)하였었다. 정** 교수는 유명한 영문학자요, 그의 부인 문ㅇㅇ 전교사는 <사랑은 기적을 부르고>라는 투병 기록으로 만인의 심금을 울린 주인공이다.
나약하기만 한 내게 부부 의사는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 주었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아프면서도 무리를 했을 거고, 그 두려운 파킨슨병을 이겨내고 있는 부부의 미담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잔인함은 시련보다 더 큰 생체기를 입힌다. 그래서 더 큰 은총이 뒤따르는지 모르겠다. 절로 나오는 환호다. 야호, 아자, 만세!
*14장임
첫댓글 한동안 멍했다. 카페를 통해 글벗이 된 이원우 작가님의 통증을 읽고 있었다.
요 며칠 소식이 없더니만 아픔을 뛰어 넘은 소망을 주시다니, 역시 주님께서 여겨보고 계시는 자녀 맞아요..
저도 황반변성과 기타 등등으로 장애인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하마나 고령이니 말입니다.
용기 있는 자는 하느님께서 빗더서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건안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