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 이상윤
어머니 무릎에 강이 흘렀다
걸음을 옮기면 강물소리가 들렸다
그 강엔,
물렁뼈에 의지한 지구의 중력과
어머니가 걸어 온 세상의 길들이 산다
오래전 샛강이었을 때
어머니는 운동화를 깁다 새벽 강을 건넜고
빈 쌀독을 다독거리다 눈 덮인 겨울 강을 건넜다
늘어나는 나의 발 치수에 맞춰
강폭은 넓어지고 수심은 더 깊어졌다
어제도 차오르는 강 수위를 낮추려
약손한의원과 샛별약국으로 가는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고 난 어머니는
광목천으로 시린 강의 마디를 여몄다
언제부턴가 내게도 강물소리가 났다
어깨에 샛강이 흘렀다
강물이 등줄기를 타고 잠자리까지 차올랐다
아침저녁 강물소리를 들으려
귀는 강의 초입에 쫑긋 서 있었다
산다는 건 몸에 강을 하나씩 들이는 것이다
저녁 바람 뒤끝이 젖었다
내일도 강물소리가 무척 요란하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군가 파스를 붙였나 보다
마을에 어머니의 강물냄새가 난다
- 2013년 <시산맥> 신인상 당선작
■ 이상윤 시인
- 1969년 경북 경산 출생
- 국민대 대학원 영어영문과 졸업
- 고등학교 영어 교사
- 2013년 <시산맥> 시 등단
-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 동시집 <아빠는 쿠쿠 기관사> 외
《 심사평 》
- 체험이나 상상력으로 부조해내는 능력
이런 시산맥의 취지를 반영하듯 이번 공모에는 평소보다 많은 70여분의 작품(평론 2편 포함)이 응모되었다. 멀리는 해외에서부터 연령별로는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작품이 응모되었는데, 응모된 작품의 질을 따지기에 앞서 응모자들의 열정에 고마움과 감동을 먼저 느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을 모두 당선작으로 할 수는 없으므로 심사위원들은 정밀한 심사에 들어갔다. 이들 작품 중 결선에 오른 작품은 평론 2편을 포함해서 10편이다. 두 분 응모자의 평론은 심사 결과 아직 전문적인 비평의식과 안목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아쉽게도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시산맥은 앞으로 단 1편의 평론이 응모되어도 글의 수준이 시산맥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이라면 기꺼이 선정할 예정이다. 평론가를 지망하는 분들의 많은 응모를 기대한다.
이번 심사는 인사동 근처에 있는 시산맥 사무실에서 결선에 오른 작품을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읽고 A,B,C로 등급을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최종 결선에 오른 시작품은 강정아, 김태인, 노현수, 박은석, 신종수, 오광석, 이상윤, 조철형 등 여덟 분의 80여 편의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등단작으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하지만 작품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1)몇 작품은 좋은데 작품의 질이 고르지 못한 경우, 2)표현이나 상상력은 좋은데 시적 울림이 약한 경우, 3)작품이 지나치게 장황하여 응집력이 떨어지는 경우, 4)한자어나 개인상징 등을 사용하여 시가 보편성을 잃고 생경하게 읽히는 경우, 5)지나치게 고전이나 소재주의에 집착하여 패러디시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 6)시적 기교가 앞서서 체험이나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 등의 지적되었다. 이러한 냉정한 평가를 뚫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작품들은 신종수의 「네버랜드에서 가져온 시간」 외 9편, 김태인의 「눈 사골국」 외 10편, 이상윤의 「라브카페」 외 9편 등이다.
먼저 신종수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일상사의 직, 간접적인 체험들을 형상화 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지만, 시의 길이에 비해서 응집력과 울림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흠이었다. 이 시인은
앞으로 시의 몸에 숨어있는 감각을 짚어내어 울림을 만들어내는 법을 터득해나갈 필요가 있다. 시의 울림이나 응집력은 체험과 상상력과 시적 언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총체적인 화음 같은 것이다.
다음으로 김태인의 작품들은 시적 대상을 관찰해서 효과적으로 운용해내는 언어표현 능력이 돋보였으나, 시인의 체험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일반론에 그치거나, 의도적인 한자어 사용으로 문맥의 흐름이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김태인의 작품들은 당선작과 끝까지 겨루어 당선의 영예는 차지하지 못했으나 낙선작 중에서 가능성을 가장 많이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을 마지막까지 고심하게 만들었다.
끝으로 이번에 시산맥 신인상 당선자로 선정된 이상윤의 작품들은 시적 주체나 대상들을 시인의 체험이나 상상력으로 부조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특히 이번에 당선작으로 선정된 「관절염」, 「직립의 숲」, 「빈 집」, 「그리운 수족관」, 「새의 독백」 등은 체험과 상상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일정한 울림을 내장하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미더웠다. 우선 어머니의 관절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 「관절염」은 “어머니의 무릎에 강이 흘렀다/ 걸음을 옮기면 강물소리가 들렸다/ 그 강엔./ 물렁뼈에 의지한 지구의 중력과/ 어머니가 걸어온 세상의 길들이 산다”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이 체험과 상상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언어표현의 묘미마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다음으로 ‘직립의 숲’으로 상징되는 문명을 비판적 안목에서 그리고 있는 「직립의 숲」은 ‘직립’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삶의 모순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 해내는 솜씨가 돋보였다. 「빈집」은 할머니가 살던 빈집을 의인화하여 과거 할머니의 구체적인 삶과 연계해서 정감 있게 표현해내는 능력이 돋보였고, 「그리운 수족관」은 마트를 동물원으로 비유해서 사랑으로 맺어진 개인사를 ‘고래밥’이라는 과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방법이 이채로운 작품이다. 끝으로 새장 속에 갇힌 새의 독백형식으로 되어있는 「새의 독백」은 비교적 일상적인 소재이지만 시인의 뛰어난관찰과 표현 능력에 의해서 현대인의 고독한 삶이 구체성을 얻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상윤 시인의 시들은 시산맥 신인상 등단작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등단작으로 선정되지 않은 「라브카페」와 같은 작품이 고흐의 삶을 울림 있게 형상화하고 있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시인의 체험과 일정한 거리감을 노정함으로써 패러디시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재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당선자에게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고 아쉽게 낙선한 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글: 박남희)
- 심사위원: 박남희, 이영식, 김광기, 나금숙, 안차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