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아오리)가 요즘 한창이다.
풋사과를 쓰가루로 둔갑시켜 파는게 아니라면,
쓰가루의 '새콤'+'달콤' 정체성은 가히 으뜸일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그 많은 과일 중에, 아니,
사과 중에도 왜 하필 '초록'사과를 얼굴로 했을까?
대개 난색의 과일에 더 유혹되지만
경험치에 의해 색깔=맛이 아니란걸 안다.
쓰가루(아오리) 같은 초록색 과일은
최초엔 풋과일로 의심받다 시식 후 인정됐을터다.
그렇듯 추측되는 맛과 실제 맛이 다른 점이
보이는 부분과 숨겨진 부분,
그리고 그 숨겨진 부분을 향한
인간의 호기심을 표현하려는 르네에게 영감이 되어
초록사과를 택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The Son of Man
( 인간의 아들, Le fils de l'homme ), 1964
René Magritte(1898~1967), 초현실주의,
외투를 입고 중절모를 쓴 남자가
바다와 흐린 하늘이 보이는 담 앞에 서 있다.
남자의 얼굴 대부분은 사과로 가려졌지만
눈만은 살려 놓았다. 왜?
무엇을 보기 위한 것일까?
사과는 얼굴에 붙은 듯 하다.
아니 얼굴로 둔갑한 주객전도 양상이다.
가려진 얼굴에서도 눈 만큼은 힘이 바짝 들었고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거 같다.
야누스의 얼굴은 좌우로 분포되어
정면에서 보면(직시하면) 두 얼굴로 보인다.
양면성(이중성)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의미 이겠다.
그러나 ' The son of Man'은
사과 얼굴과 가려진 얼굴로 두개인데
정면이지만 사과얼굴만 보여 경악스럽다.
(데페이즈망 기법)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의도적으로
다른 뭔가를 숨기고 있고, 즉 이면을 갖고 있어
우리는 보이는 대상의 숨겨진 것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과 사이로 눈만은 살려 놓은게 아닌지?
세상은 반대 가치의 긴장구도시스템이 작동한다.
숨겨진 것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유발되는데
팽팽한 긴장감이거나 갈등이 그것의 본질일 수도...
빙산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물속에 몇 배의 거대한 덩어리를 숨기고 있듯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으니
보이는 걸로만 판단해서는 안되고
숨겨진 것/이면(진실)을 봐야한다고,
저 눈빛이 강렬하게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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