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比스님 번역 金剛經五家解/第十四 離相寂滅分(상을 떠나서 적멸함)(6)
何以故오 此人은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이니
所以者가 何오 我相이 卽是非相이며 人相衆生相壽者相이 卽是非相이라
何以故오 離一切諸相이 卽名諸佛이니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이 없으며 인상이 없으며 중생상이 없으며
수자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아상은 곧 이 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곧 이 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상을 떠난 것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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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誼
聞經信受를 何名第一希有오 以離四相하야 超然獨步故也니라
四相遠離가 爲難이어늘 因甚却能遠離오 以開智慧眼하야 了四相本空故也니라
了相本空하야 而能遠離를 何名第一希有오 離一切相을 卽名諸佛故也니라
설의
經을 듣고서 信受하는 것을 어찌하여 제일 희유하다 하는가.
四相을 떠나서 초연히 홀로 걷기 때문이니라.
四相을 멀리 하는 것은 어려움이 되거늘
어떻게 能히 멀리 할 수 있는가.
지혜의 눈을 떠서 四相이 본래 空함을 요달하여야 하느니라.
相이 본래 공한 줄을 요달해서 능히 멀리 떠남을
어찌 제일 희유하다 하는가.
一切相을 떠난 것을 곧 諸佛이라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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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無着이 云無我等者는 無人取我相이요
卽非相等者는 無法取요
離一切相者는 顯示諸菩薩의 隨順學相이니 諸佛世尊이 離一切相일새
是故我等도 應如是學이라하다
규봉
無着이 이르되 無我等이란 사람이 我相을 취하지 않음이고
卽非相等이란 法相을 취하지 않음이며
離一切相이란 모든 보살이 隨順하여 배우는 상을 나타낸 것이니
諸佛과 세존이 一切相을 떠났으므로 우리들도
응당 이와 같이 배운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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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須菩提가 深悟佛意하사 呈自見處하시니 業盡垢除하야
慧眼이 明徹하면 信解受持는 卽無難也니라
世尊이 在世說法之時에도 亦有無量衆生이 不能信解受持어늘 何必獨言後五百歲리오
蓋佛在之日엔 雖有下根不信과 及懷疑者라도 卽往問佛하면 佛이 卽隨宜爲說하사
無不契悟어니와 佛滅度後後五百歲엔 漸至末法이라
去聖遙遠하야 但存言敎하니 若人이 有疑면 無處諮決하야 愚迷抱執하야 不悟無生하고
着相馳求하야 輪廻諸有하리니 於此時中에 得聞深經하고 淸心敬信하야
悟無生理者는 甚爲希有일새 故로 言第一希有也니라
於如來滅後後五百歲에 若有人이 能於般若波羅蜜甚深經典에 信解受持하면
卽知此人은 無我人衆生壽者相이니 無比四相하면 是名實相이라
卽是佛心일새 故로 云離一切諸相을 卽名諸佛也라하시니라
육조
수보리가 깊이 부처님 뜻을 깨달아 自己의 見處를 드러내시니
業이 다하고 때(垢)가 없어져서 지혜의 눈이 밝게 트이면
믿고 알고 받아 지님은 어려움이 없느니라.
세존이 세상에 계시면서 설법하실 때에도 무량한 준생이
능히 信解受持 못하였거늘
하필이면 홀로 後 五百歲를 말했으리오.
대개 부처님이 계실 때에는 비록 下根機라서 믿지 않고
회의를 품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곧 부처님께 가서 물으면
부처님이 곧 마땅함을 따라서 그들을 위해 설하시어
깨닫지 못함이 없거니와, 부처님이 멸도한 후,
後 五百歲엔 점차 末法에 이르르니 聖人에 가기가
더욱 멀어져서 단지 말씀만 있으니,
만약 사람이 의심이 있으면 물어 해결할 곳이 없어서,
어리석고 迷하여 집착을 안고서 無生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相에 執着하여 치구馳求해서 六度에 윤회하리니,
이 때에 깊은 경을 얻어듣고 맑은 마음으로 공경히 믿어서,
無生의 이치를 깨닫는 자는 심히 희유함이 되므로
제일 희유라고 하시리라.
여래 滅後 후 오백세에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반야바라밀의 심히 깊은 경전을
信解受持하면, 곧 알라.
이 사람은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이 없음이니
이 네 가지 相이 없어지면 이것을 이름하여 實相이라.
이는 곧 佛心일새, 그러므로 일체 모든 相을 떠난 것을
곧 이름하여 諸佛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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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使
空生이 聞妙理여 如蓬植在麻라 凡流가 信此法하면 同火出蓮華로다
恐人生斷見하야 大聖이 預開遮하시니 如能離諸相하면 定入法王家니라
부대사
空生이 妙理를 들음이여,
쑥을 삼밭에 심음과 같도다.
범부의 무리가 이 法을 믿으면
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도다.
사람들이 斷見을 낼까 두려워하여
큰 聖人이 미리 열고 막으시니(開遮)
만약 능히 모든 상을 떠나면
결정코 法王의 집에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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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心不負人이면 面無慙色이로다
說誼
佛有三身하시니 是法身耶아 報身耶아 化身耶아
看彼毘盧老漢의 住處하라
非三非一이로대 而三而一이니 若使文殊로 不來途中하고
普賢으로 忘却靑山이면 早已辜負毘盧老漢이라
辜負毘盧則心有歉然하야 面有慙色이어니와 如今不然하야 寒山은 忘却來時路하고
拾得은 相將携手歸라 所以로 心無歉然하야 面無慙色이로다
야부
마음에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色이 없을 것이로다.
설의
부처님께는 三身(세 가지 몸)이 있으니
이것이 法身이냐 報身이냐 化身이냐.
저 毘盧遮那佛의 주한 곳을 보아라,
三도 아니고 一도 아니지만 능히 三도 되고 一도 되니
만약 文殊로 하여금
도중에 오지 않고 普賢으로 하여금 靑山을 忘却케
한다면 벌써 毘盧遮那佛을 저버리는 것이리라.
비로자나불을 저버린즉 마음에 겸연함이 있어서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있거니와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寒山은 올 때의 길을 잊어버리고 拾得은 서로 손을 잡고서
돌아오는지라 그러므로 마음에 겸연함이 없어서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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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舊竹에 生新筍하고 新花가 長舊枝로다 雨催行客路요 風送片帆歸로다
竹密에 不妨流水過요 山高에 豈礙白雲飛리오
說誼
本始雙成하야 父子가 同業이라 旣然同業인댄 莫戀家裏事하고
好作途中客하며
亦莫戀途中하고 却向家裏歸어다
雖然如是나 途中이 不碍家裏事요 家裏가 不碍途中事로다
看看하라 文殊普賢이 左旋右轉하니 毘盧滿面笑春風이로다
야부
묵은 대에서 새순이 나고
새꽃은 새 가지에서 자라도다.
비는 나그네 길을 재촉하고
바람은 조각배를 돌아가게 하도다.
대나무 빽빽해도 물 흘러감을 방해치 않고
산이 높다 한들 흰구름 흘러감을 어찌 막으리오.
설의
本覺과 始覺을 雙으로 이루어서 父子가 同業이라.
이미 業이 같다면 집안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좋게
途中에 客을 지을 것이며
또한 途中일은 생각지 말고 도리어 집을 향해 들어갈지어다.
비록 이와 같으나 途中일은 집안 일에 걸리지 않고
집안 일은 途中事에 걸리지 않음이로다. 잘 보아라.
文殊 普賢이 左로 돌고 右로 도니 비로자나佛의
얼굴에 春風의 미소가 가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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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三은 如來印定이라
규봉
㉹三. 如來께서 印定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