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7 주님수난 성금요일 – 꽃아그배나무꽃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이사 53,5).
가만가만 사흘째 비가 내린다.
사제관 창하(窓下)에 꽃아그배나무[1] 꽃봉오리가 또랑또랑해졌다.
모가지가 긴 사슴처럼 꽃자루가 손가락 두 마디나 되는 꽃봉오리가 외로워 보인다.
오후에 가보니, 가랑비를 맞으며 수줍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빽빽한 가지에 듬성듬성 박힌 굵은 가시가 십자가 못처럼 내 손을 무찔렀다.
해마다 늦가을이나 초봄에 가지치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손등을 찔리곤 한다.
성금요일 오후,
딱새나 박새나 참새들이 그 속에서 요리요리 가지를 타며 바람을 일으킨다
새들은 ─ 자유로운 영혼들은 악마와 세상이 둘러친 가시숲을 바람처럼 빠져나가 하늘로 간다.
‘너의 죄를 대신하여 내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이사 53,8).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는 너를 위하여 나를 버릴 것이다.’(이사 53,12).
‘너는 바람이 되어, 너는 빛이 되어 가시나무숲을 나처럼 훨훨 빠져나가 저 하늘로 가거라.’[2]
[1] 꽃아그배나무 : 중국 중서부 내륙이 원산지라서 ‘서부해당화(西府海棠花), 꽃자루가 길게 실같이 드리워져 꽃핀다 하여 ‘수사해당화(垂絲海棠花)’라고 한다.
[2] 이 모습은 갈매못성지 성당 제대 뒷벽 유리화에서 볼 수 있다. 제대 뒷벽 통창 유리화는 촘촘한 가시나무숲을 경계로 성당 안(세상)에는 우리가 있고, 성당 바깥 바다(하늘)에는 바람처럼, 빛처럼 빠져나간 갈매못 순교성인 5位를 이미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