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의 매직이 사라지고 있다. 아직도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어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도 통하지 않는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누그러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 처서가 지나면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에 벌초한다. 음력 8월 초부터 추석 전까지의 주말과 휴일의 도로는 벌초를 위한 차량으로 북적거린다.
“요즘 시대에 무슨 벌초냐!”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벌초한다.
벌초는 조상의 묘지와 주변에 자란 풀을 베고 다듬으며 잔디를 정리하는 것이다. 벌초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유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유교가 보급된 조선시대에는 조상의 묘에 잡풀이 무성하면 불효라고 했다.
장손인 나는 지금까지 공적인 업무나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벌초에 빠진 적이 없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상의 묘를 돌며 벌초하기 시작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들의 손을 잡고 다녔고 지금은 아내와 함께한다.
문중 묘는 경주 남산의 남쪽 자락에 있는 ‘백운대 큰자리’에 있다. 9대조부터 시작하여 7대조까지가 나의 직계이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음력 팔월 초에 벌초 날을 정하여 18촌까지 모여 벌초했다. 문중 논을 경작하는 친척이 윗대를 벌초하고 8촌 단위로 모여서 직계 조상의 묘를 벌초했다. 벌초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고 길도 없는 숲속의 묘를 찾아 벌초하는 것은 중노동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촌수별, 형제 별로 나누어 벌초하고 있다. 내가 고조부모 묘를 벌초하고 증조부모 6촌, 조부모 4촌, 부모님 묘는 동생들이 한다.
고조부 묘는 남산의 동쪽 자락인 오가리에 있다. 마을에서 묘까지 걸어서 한 시간 이상 걸렸는데 오래전에 임도가 생겨 차로 편하게 갈 수 있다.
어느 추석 전날이었다. 동생과 조카들, 아들과 함께 고조부 묘에 벌초하러 갔다. 고조부 묘는 봉분이 거의 없어 벌초할 것이 별로 없다. 어른들은 벌초하고 아이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놀고 있었다.
갑자기 “앗 따거!” 하는 울산 동생의 외침과 함께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동생과 아이들은 차가 있는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고 땅벌 때가 그 뒤를 날아가고 있었다. 나도 놀라 반대쪽으로 도망갔다가 땅벌이 사라지고 난 뒤 차에 갔다. 차 안으로 피신해 울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카락과 옷 속에는 땅벌이 들어 있었고 머리와 얼굴, 팔다리는 붉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불국사에 있는 약국에서 응급처치했다. 퉁퉁 부어있는 얼굴과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실실 웃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그전에도 사촌 동생과 벌초하다 말벌에게 심하게 당한 경험이 있어 단단히 각오하고 이듬해 봄 땅벌 집을 찾아 없앴다. 그리고 몇 년 뒤에 가보니 묘의 한가운데에 밤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없애버리려다 신기하기도 하고 봉분도 없는 묘보다는 밤나무가 있는 묘가 좋을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지금은 많이 자라 밤이 열린다.
자연에서 생긴 것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고조부 묘의 밤나무도 크게 자라 산의 일부가 되었으면 한다.
벌초가 미풍양속이라는 시대는 지났다. 벌초를 대행하는 업체가 생기고 콘크리트와 돌로 장식된 묘지도 있다.
매장보다는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조상 묘는 파묘 하여 문중이나 가족 단위로 모아서 관리하는 것이 대세이다.
벌초도 마찬가지다. 벌초의 의미를 알고 조상 묘의 위치를 아는 우리 세대가 사라지면 벌초라는 문화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는 우리와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는 부모님 산소를 찾아 막걸리 한잔 올리고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마음이 풀린다. 부모는 죽어서도 부모 역할을 하나 보다. 산소에 앉아 동쪽을 보면 내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이 보이고 남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주말이면 쉬어가는 쉼터가 보인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고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벌초에 대해 설왕설래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미래는 아이들의 것이니까.
2024.9.7. 김주희
첫댓글 지금의 벌초.제사문화는 점점 변화가 오고있는것같습니다~급격하게변하고 있는 시대흐름에 따라가야겠지요
수고하셨군요. 벌초는 조만간 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상 묘를 중시하는 문화는 당분간 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