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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여동 매거진 창간호 인터뷰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항상 멋진 여행기 잘 읽고 항상 맘으로 너무 부럽기도 하고 대체 이분은 어떤 분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이렇게 첫 중여동 매거진 인터뷰는 “탱이”님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좀 인터뷰 내용이 많아서 힘 드실 수도 있지만 최대한 정성껏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만 중여동 회원님들이 받아보게 될 매거진 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사진도 있으면 좋겠는데 혹 10장 내외로 저에게 보내주시던가 아님 제가 여행기 사진 중에 괜찮은 사진을 골라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사진을 골라야 될지 의견 주시면 의견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최소한 12월20일 전까지 보내주셔야 제가 편집을 해서 웹에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럼 건강 하시고 언제 기회 되면 만나서 따뜻한 커피 한잔하면서 많은 얘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
01.본인 소개(프로필)를 간단하게 해주세요.
단기 4292년 4월 보름에 경기도 양주고을의 중농 가정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읍니다.
02.현재 중국에서 살고 계신데 중국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이웃한 중국과 오래전부터 역사와 문화적으로 떨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해 왔음으로하여 직,간접적으로 끈끈한 고리가 형성되어 왔지요.
어려서부터 부친의 영향으로 한자에 관심이 많았으며, 초중을 다닐 때 사회선생님의 "중공 8억인구를 상대로 장사를 하면..."을 새겨 들었고, 업무차 오가던 아내를 따라서 97년 첫 방문이 본격적인 인연이 되었읍니다.
03.앞으로 언제까지 중국에서 사실 건지 궁금합니다?
소학교 1학년 때에 건너온 작은 딸이 지금 초중 1학년이니 그 아이가 고중을 졸업할 때 까지... 혹은 비행기가 뜰 수 있을 만큼의 "딸라"돈을 벌 때까지... 늙으면 고향으로 돌아가 형제자매, 친구들과 함께 살아야겠지요?
04.중여동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어떤 일로 시작되었나요?
2000년 봄. 인터넷을 처음하면서 중국여행의 정보수집차 찾아 다닐때 알게되었고, 이후 자전거 여행기와 중국 생활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엮어 올리며 오늘에 이르렀읍니다. 누가 목을 매어 잡아 끄는 것은 아니지만, 중여동에 많은 말씀들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 되었읍니다.
5.자신만의 중국생활 노하우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쉽지 않은 물음으로 현지에 맞게 현지(중국)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입니다.
06.자전거 여행 외에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이미 자전거와는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모든 생활이 자전거와 일체되어 있으며, 평시의 여가시간은 아내 안마해주기, 해가 일찍 떨어지는 요즘은 매일밤 빠쓰[巴士]정거장으로 작은딸 모시러 다니기입니다.
07.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30여년 전.
초중을 다닐때. 비포장 진흙탕길 5km를 걸어다녔지요.
그 때 자전거가 있으면 미국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이차저차 중국에 건너와 살게되었고, 소년 시절의 꿈은 늘 가슴속에 살아 있어 언젠가는 자전거 여행으로 넓은 중국땅을 돌고 싶었는데, 마침 월드컵이 고국에서 열리게 되었을 뿐만아니라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중 우호증진 등등을 함께 묵어서 중국 전역을 돌자하여 시작되었읍니다.
08.자전거 여행시 가장 힘들게 했던 일들은?
같이 간 여행자들의 의견을 맞추는 일로, 특히 4차 기행으로 중앙아시아의 우루무치로 갈 때, 3,800m의 산을 넘고,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1,500km의 사막을 자전거로 건너는 일보다 상호간에 다툼으로 의견을 통일하기가 매우 힘들었읍니다. 또 하나는 부실한 메모를 보고 짧은 문장력으로 여행기를 쓰는일입니다.
09.본인 손을 거쳐간 자전거를 소개 시켜 주세요.
첫 자전거는 티엔진[天津]에서 만들어 진 자전거로 회사는 첩마차업[捷馬車業]이고, 자전거 이름은 GAMMA Star이며, 앞쪽의 기어는 3단, 뒤쪽의 기어는 7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산악[山地車] 자전거 입니다. 쨔러푸[家樂福 - Carrefour]에서 698위엔을 주고 산 싸구려(?) 무쇠 자전거이며, 두번째 자전거는 2천4백위엔을 주고 짜 맞춘 차로... 미[美國], 일[日本], 중[中國], 의[意大利]...등등의 여러나라 제품을 조합한 것임. - 칭다오에는 전문점이 몇 없어 선택의 폭이 매우 좁읍니다.
10.지금까지 자전거로 돌아본 지역은?
1차 기행은 2002년 5월 9일부터 6월 1일까지 24일 동안, 2002 한일 월드컵과 한국과 중국이 함께 16강에 진출, 한중 수교 10주년,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 유치 축하를 위한 기행으로 칭다오를 출발하여 쌍하이, 난징, 쉬저우,지난, 티엔진, 베이징까지 2,397km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고...
+++ 샤좡 공장에서의 출정식에 한 말씀.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 한중 수교 십주년을 맞이하여 월드컵... +++
2차 기행은
차를 타고 칭다오를 떠나 해를 따라서 서쪽으로 이동. 싼둥의 지난[濟南], 허난의 뤄양[洛陽], 싼씨의 씨안[西安]을 지나서 깐쑤[甘肅]의 징닝[靜寧]현에 도착.
+++ 칭다오 308 국도에서 우리를 맞으러 나온 동지들과 ... - 좌로부터 후[胡] 할아버지, 위하이쵸[于海超], 위쓰쥔[于世君], 인샹메이[尹相美], 본인, 슈엔밍[修延明], ?X오씽[邢紀光], 이영철[李永哲]. +++
징닝을 출발하여 닝?X[寧夏] 회족 자치구를 거쳐, 싼씨[陝西]의 씨안에 이러 병마용 화청지를 관람하고 오악중의 서악[西岳]인 화[華]산을 올랐고, 싼씨[山西]성을 들렸고, 허난의 뤄양에 이러 백마사와 소림사를 둘러보고, 쩡저우를 거쳐 싼둥에 이르러 타이안[泰安]에서는 오악 중 제일이라는 동악 태[泰]산을 오르고, 칭다오까지 5천리길(騎行 1,950km, 왕복 3,924km)을 2002년 9월 4일 부터 동월 28일까지 25일간 달려 성공적으로 마쳤음.
이 기행 역시 부산 아시안 게임과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 개최 기원입니다.
3차 기행은
이전에 같이 자전거를 탔던 중국 친구들과 비행기를 타고 칭다오의 자매도시인 대구에 내림.
대구를 출발하여 울산, 부산, 목포, 광주, 김제, 평택, 서울[首爾]에 이르러 '서울 구경'을 하고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포천 강원도의 인제 속초에 이러 설악산을 오르고,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서 포항까지... 이후 대구까지 2,008km를 달렸읍니다.
이 기행은
대구 유니버시아드와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의 홍보및 성공 기원, 그리고 한중 우호증진을 다지는기행이었읍니다.
칭다오 조보 기자 동행 취재보도.
+++ 장정을 마치고 대구시 문화예술 회관에서... 박운상[朴雲祥], 이상용[李尙容], 위쓰쥔[于世君], 저우지엔궈[周建國], 본인, ?쳐資見?[DIAO葵玲], 위하이쵸[于海超]. +++
4차 기행은
2003년 8월 26일 칭다오에서 기차를 타고 지난, 쉬저우, 쩡저우, 씨안,란저우를 지나 칭하이[靑海]성의 씨닝[西寧]에 내려, 씨닝을 출발하여 해발 3,800m의 치렌[祁連]산맥을 넘어 실크로드[絲綢之路]를 타고 뚠황[敦煌]을 둘러 씬지앙[新疆]의 하미[哈密], 투루판[吐魯番]을 거쳐 우루무치[烏魯木齊]까지 1,916km의 여정으로 타클라마칸[Takla Makan - 塔克拉瑪干]과 고비[Gobi -戈壁灘]사막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기행으로 35일만인 9월 29일에 돌아 왔고, 기차를 탄 거리는 4,924km이며 자동차를 탄 거리는 2,299km로 9,139km의 장정이었읍니다. - 칭다오 조보 전 과정 동행 취재 보도.
第5次 기행은
한,중,영,미 4개국의 7명으로 조직하여 2005年 6月 18日 청도에서 차를 2,692km를 달리며 지난, 쉬저우, 쩡저우, 씨안, 란저우를 지나서 칭하이[靑海]성의 씨닝[西寧]에서 내려, 그 곳에서 자전거로 출발하여 청장[靑藏]선을 타고 꺼얼무[格爾木]을 통과하고 쿤룬[崑崙],탕구라[唐古拉]산을 넘어 티벳의 라싸[拉薩]까지 1,944km. 해발 5,231m의 탕구라[唐古拉山]을 넘어 22日만인 7월 9일에 라싸[拉薩]에 닿았음. 全程 = 4,141km.
** 칭다오 5 4 광장 출발식. 왼쪽부터 李元良[中], 艾什[英], 金昭朧[韓], 金光玉[韓], 黃凱[中], 李揮雲[中], 尹相美[中], 趙乃德[美]. **
이 기행 역시 弘揚奧運精神, 傳播奧運火種으로 올림픽 정신을 전하는 기행으로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도 함께 기원하였음.
第6次 기행은
2005年 7月 17日 티벳의 라싸에서 출발하여 린즈, 뽀미, 빠수, 쫘꽁, 망캉을 거쳐 윈난의 샹그리라, 리쟝을 거쳐 따리까지 비포장 571km를 포함하여 1,994km를 달렸음. 그 과정에는 미라[米拉 海拔 5,013m]산, 써지라[色季拉], 안지우라[安久拉], 72도만[道彎]의 애라산[業拉], 비포장의 뚱따[東達], 줴빠[覺巴], 라우[拉烏], 홍라[紅拉]산, 등등... 해발 5千m 이상 2개를 비롯하여 12개의 山을 넘었음.
이 기행도 올림픽 정신을 받들어 그 불씨를 전하는(弘揚奧運精神, 傳播奧運火種) 기행으로 북경 올림픽의 성공기원입니다.
11.앞으로 계획중인 자전거 여행 지역은?
실크로드의 전 과정으로 중앙 아시아의 우루무치에서 출발하여 영국의 런던까지
또는 동남아시아의 월남에서 태국까지.. 그리고 일본. 남미의 여러국가들...
12.자전거 여행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국 공산당 통치 아래있는 티벳은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는 지역으로 특히 외국인은 전 지역을 자전거로 여행이 금지되어 있어 부득이 꺼얼무에서 부터는 불법으로 잠입을 하였읍니다.
라싸에 이르러 충분한 적응을 하고 윈난[雲南]의 쿤밍[昆明]까지 6차 기행을 떠났는데... 길은 계속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의 연속이었죠. 고도가 높아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높은 산을 넘을 때마다 밤 늦게 까지 야간주행을 많이 하였읍니다.
해발 5,013m의 미라[米拉]산은 차를 타고 넘었다가 다음날 다시 차를 타고 돌아와 출발 하였고, 산 아래 누[怒]강과 고갯마루 의 표고차가 1,700m에 이르는 애라[業拉]산도 밤이 깊은 늦은 시간까지 내려 오지 않는 우리를 기다리던, 먼저 차를 타고 넘어간 동지가 택시를 불러와서 타고 넘었다가 이튼날 다시 넘어와서 자전거를 타고 또 넘었읍니다.
라싸를 떠난지 보름째 되는 7월의 마지막날 일요일에는 두개의 산을 넘었읍니다.
이 날의 여정은 해발 3,345m의 덩빠[登巴]촌을 출발하여 표고 3,908m의 줴빠[覺巴]산을 넘고, 해발 2,595m인 루메이[如美]진까지 내려가 메콩[湄公 Mekong 江]강의 상류인 란창[瀾滄]강을 건너, 두 번째 고개인 해발 4,338m의 라우[拉烏]산을 넘어 망캉[芒康]현에 이르는 87.81km였읍니다.
비를 맞으면서 춥고 배고픈 가운데 라오산을 넘는데 고갯마루에 이르니 밤 11시 11분.
그 때 공안차가 우리앞에 나타났을 때.
불법으로 잠입한 우리를 잡으러 왔나?
무슨일이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쬐끔" 떨었읍니다.
알고 보니... 먼저 버스를 타고 넘은 동지에게 오늘은 데리러 오지말라면서 밤이 아무리 늦어도 도착할 터이니 기다리라했는데... 그녀가 110(중국공안)으로 전화를 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이었읍니다. 그 공안차의 도움으로 "쌍라이트" 불빛을 받으면서 쏜 살 같이 내리 달려 망캉에 이른 추억이...
또한, 중국 어느지역을 가든 후원차는 떼를 써서라도 도로 통행료 면제를 받았고... 우리들은 명승고적지와 풍경구에서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 갔으며, 중국 전역의 숙박비는 한가지 가격 "1인당 10위엔"이라고 우기는 일. 등등이 자전거 여행자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닐지요.
13.자전거 여행시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던 때는 언제 인가요?
자전거 위에 앉아 있으면 행복합니다. 체력이 달려서 힘든 기억은 없지요.
5차 여행을 할 때에 티벳의 칭하이호[湖]에서 고산병이 생겨 결국 탕구라 산은 차를 타고 넘었지만, 언제나 자전거 타는 것은 즐거우나 그 외의 문제들은 사람의 숫자에 비례하여 늘어납니다.
입이 열이면 말도 열이고, 더구나 극히 개인주의적인 현지인들의 의견을 모으는 일이 가장 힘드는 일입니다.
역시 4차 실크로드를 달리 때로, 먹고 자는 문제, 목적지 도착 문제 등등으로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서 쟈위??에 닿았을 때에 흩어져서 각자 가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14.자전거 여행 외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무엇 인가요?
자전거 여행이 전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구 한 바퀴"
올림픽 맞이[弘揚奧運精神, 傳播奧運火種]라는 대명제 아래 앞에는 태극기, 뒤에는 올림픽기를 달고 지구촌을 한바퀴 돌자! 입니다.
그리고 남북 통일이되면 북한지역을 마음대로 지나 중국은 물론 동남아도 가고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오가는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생길 것이고 그 친구들을 위하여 고향 근처 서울 북쪽에 "자전거 여행자의 집"을 열고, 최고의 박물관은 아니더라도 자료, 물품, 정보 등등 많은 것을 준비 해 놓고, 매일매일 그 들과 더불어 살면 최고의 행복이겠읍니다.
15.자전거 여행 팀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 지고 어떤 조건으로 선택하는가요?
올림픽 맞이 자전거 여행에 동조하는 전세계인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으며, 칭다오 조보의 협조를 얻어 보도하여 찾거나 평소의 자전거 활동에 참여 하는 친구와 나의 홈을 찾는이 중에서 만났읍니다.
16.지금까지 기록한 여행기가 무척 많은데 나중에 책이나 다른 편집물로 출판해 볼 생각은 없는지요?
이미 1,2차 기행은 출판사 '화서당'의 요구로 "자전거 탄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어 고료를 받아 여행 경비로 썼고, 1차부터 6차 까지 모두 나의 왕짠[網站-Home page]에 기록을 남겼으며, 아시다시피 "중국여행 동호회"를 비롯한 여러 까페에 올리고 있으며, 또한 책으로 엮지 못한 부분은 프린트하여 여행 기록책을 만들어 가지고 있읍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고 애호가 여러명이 모여 지역과 국가를 나누어서 각 나라의 역사, 풍습, 기온, 거리와 숙박 등의 여행 정보가 총 망라 된 (티벳등의 고원이라면 고도 표시까지) 지구 전체를 달린 기록이 책으로 역어 나온다면 좋겠읍니다.
17.여행 중 기록은 어떤 방법, 방식으로 남기는지요?
수시로 자전거를 세우고 수첩을 꺼내어 메모를 하고, 자료가 될만하면 사진을 찍어 돌아와서 여행일기로 작성합니다.
18.지금까지 한 자전거 여행을 돌아 보았을 때 느낌(감회)은?
중국 천하를 누비면서 세상의 한 귀퉁이를 보았는데, 자전거 여행이 남겨 준 의미를 굳이 헤아려보자면...
하나는
첫번째는 싼둥 쟝쑤 허베이성의 끝 없이 이어지는 평원을 달렸고, 두 번째는 깐쑤와 싼씨성의 계속 오르내리는 황토고원을 탔으며, 세 번째는 고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두루 누볐고, 네번째는 타클라마 칸과 고비 사막을 달렸고, 5,6차에는 티벳 고원지대의 한 없이 펼쳐지는 고원의 푸른초원을 보고 돌아왔는데, 세상에는 볼 것이 많아 아직도 보고 싶은 곳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너른 땅에 흩어져 있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 농부, 운전사, 할머니, 할아버지, 처녀, 아줌마, 어린이.....
양복을 입은 농사꾼,
누더기를 걸친 촌사람,
손톱 밑에 까맣게 때가 낀 자전거 수리공,
머리가 헝클어진 사람.
냄비 때우는 아저씨, 고기 파는 아줌마,
참외장사 아가씨, 시든 수박을 파는 할아버지....
내가 한국인라고 하자 외국인한테는 돈을 않받겠다며 고구마를 싸 주던 순박한 농부,
순진한(?) 나를 감쪽 같이 속이고 가짜 꿀을 판 깐쑤[甘肅]성에서 만난 쩌지앙[浙江]성에서 온 아줌마...
심한 사투리로 뭐라고 ?X라[說了]대는지 알아 듣지 못해 애를 태웠던 목재소 인부들과의 만남.
힘드는데 왜? 돈까지 들이면서 고생을 하느냐고, 혀를 차던 뤄양[洛陽]에서 만난 할머니들...
술이 많이 취해서 냄새를 진동시키며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던 아저씨.
푸통[普通-표준]화를 못하는 소수민족들...
등등 만났는데.... 이 것이 사람을 만남이요.
돌아온 후에는 자전거 청도 협회장, 수리점 사장들, 취미생활자들 등등... 뿐만아니라, 각종 신문과 잡지에서도 자전거 여행과 관련해서 나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으니, 이 또한 즐거운 삶이 아닌가? 합니다.
또 하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여행담으로 수다(?)를 떨다가 보니, 일취월장 중국어가 쑤욱~쑥 늘어가니 이 또한 사는 재미를 더함이요.
또 하나는
중국 지도를 보면서 이리로 저리로 이렇게 저렇게 여정을 짜다가 보니, 중국의 지리를 조금 더 알게 되어, 어디가 어딘지 알게 되었고.... 22 개성[省]+ 대만, 5 개 자치구[自治區], 4 개 직할시[直割市], 2 개 특별행정구[特別行政區]= 총 34개 성을 입으로 줄줄 외우는, 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어딘지?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너른 중국땅이 내 손바닥이 되었으며...
또 하나는
여정을 짜고,이 곳 저 곳에 협조 공문을 띄우고 하는 과정에 어려운 한자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으니, 이 것도 덤으로 얻은 큰 소득중에 하나일 것이요. - 특히 지도에서 보는 지명용자[地名用字]는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자들이 많음.
또 하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면서 신체 단련을 넘어 나의 건강을 체크했으니, 이는 무료 종합 건강검진이요. - 한 번에 5천리 기행은 곧 한계의 도전으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또 하나는
여행을 마치고 나도 다른 이들은 없는데, 나만은 유일하게 1,2,3,4,5,6차 각각 160여장의 기록 앨범을 만들었으니, 이는 대를 물려갈 우리집의 보물일 것이요.
또 하나는
기행기록을 보는 이마다 "쩐웨이따[眞偉大]!"라고 나를 추켜 세우니, 이는 나의 자랑스러운 이력을 만듬이요.
또 하나는
비록 수준미달의 글 일망정 열심히 기행문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다 보니 이름있는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가 들어와 출판을 하기에 이르니... 이 또한 내 자신의 더 할 나위 없는 영광이요.
또 하나는
죽어도 끊지 못 할 것 같은, 담배를 1차 장정을 떠나던 2002년 5월 9일 청도의 5 4 광장에서 딸 앞의 선서 이후에는 지금까지 못(?)피우고 있으니, 이 것도 장정이 내게 남긴 값진 보람이 아닐까? 하며....
또 하나는
처음부터 티?歌? 실크로드를 꼭 간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이전의 경험이 초석이 되어 그 두 곳을 두루 다녀왔으니 꿈(?)을 이룸이요.
또 있으니
늘 여행의 설레임에 부풀어 즐거웁게 산다는 것이니, 이는 계획을 짤 때에 책이나 인터-넷을 접속하여 자료를 수집하느라고 미리 가보고. 지도를 보고 여정을 짜면서 가보고, 돌아와서 사진을 보고는 감상에 빠지기도 하고, 만들어놓은 여행 기록을 보면서 빠져들기도 하고, 손님이나 친구들에게 앨범(기행기록)을 보여주고 설명을 할 때도 그 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난 그 곳에 다시 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늘 자전거 여행에 뭍혀서 행복한 세상을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더 있으니
정치적인 목적이 배제된 중국에서의 자전거 여행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 것으로 인하여 바로 대화가 트이고, 쉽게 사람을 사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인생에 더함이 아니겠는가!
더 있으니
만인에게 성공적인 자전거 여행을 이루어 보여준 것은, 딸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빠로 아내에게는 멋있는 남편이 되었음이요.
더 있으니
수 없이 많은 수비참[收費站:국도요금 징수소]과 전국 각지에 널린 풍경, 명승구[국립공원과 고적지]를 모두 면비[무료]로 통과하고 입장을 하였으니, 이렇게 중국에서 대접 받음도 가슴이 짜릿하고 뭉쿨한 흐믓함이요
더 있으니
중국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중국 천하를 누볐으니 이는 대~한민국의 국위를 드높이는 나라 사랑일 것이요 !
더 남은 것은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갖자 했는데, 자전거를 탈 때에 머리를 숙이고 쉬지 않고 돌리면서 끝 없이 도[道]를 구하고자 했는데.... 주위의 사람들 이야기가 자전거를 타면서 부드러운 남자가 ?榮? 하니, 이 또한 자전거가 내게 남겨준 유산이 아닐까 하며....
끝으로
이제서야 아내가 옆에 있음이 무엇인가? 를 어렴풋이 느끼고, 가족의 중요성과 인생이 무엇인가?도 어렴풋이 깨달음이 있으니 이 또한 자전거 여행이 남겨준 유산이 아닐까 하노라!
19. 앞으로 중국 자전거 여행을 희망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
아는만큼 본다고 준비한 만큼 즐겁고 편안한 여행이 되므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 지리는 당연히 학습하고 언어까지 준비한다면 보람이 배가 될 것입니다.
20. 중여동 회원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주제를 가지고 떠나는 여행" 돌아온 후에는 "기록을 남기는 여행"을 하시기를...
2005년 12월 13일 칭다오에서 이엉가암태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