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 탄트라 불교, 금강승, 라마교 등으로 불리는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와 몽골을 비롯해서 부탄, 시킴 라닥, 네팔의 쉘퍼족 등 히말라야 일대의 소왕국 및 소수 민족들에 의해 신봉되고 있다.
밀교에서는 예술이 상당히 중대한 의미와 역할을 지닌다. 단순히 법당을 장엄하거나 예배의 대상을 만드는 정도가 아니다. 밀교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진화하는 방법으로서의 학문과 수행을 모두 다섯가지 단계의 지혜로 분류한다.
1. 타릭빠(DRA RIGPA) : 언어 수사학의 지혜 (Grammer)
2. 뗀칙릭빠(TENTSIK RIGPA) : 논리학의 지혜(Logic)
3. 소와릭빠(SOWA RIGPA) : 예술의 지혜(Arts and Crafts)
4. 소릭빠(SO RIGPA) : 의학의 지혜 (Medicine)
5. 낭릭빠(NANG RIGPA) : 명상 수행의 지혜(Philosophy)
언어 수사학과 논리학은 다른 종교와의 경쟁에서 불교를 논리적이고 이상적이며 합리적인 입지를 세워 줄 수 있는 지혜이다. 예술과 의학은 사라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지혜이다. 마음을 끌어들여서 끌고 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술은 언어 수사학이나 논리학보다 더 높고 어려운 단계이며 예술가의 역할이 장인이나 기술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모든 학문과 철학을 넘어서는 차원 높은 인간 정신의 진화 방법인 것이다. 예술은 다시 3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몸의 예술 둘째, 언어의 예술 셋째, 마음의 예술이 그것이다. 마음에서 일으킨 것은 몸으로 풀어내고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몸의 예술과 언어의 예술의 근원은 마음의 예술이라고 보고 마음의 예술을 가장 높은 차원으로 여긴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모든 종류의 예술은 이 세 가지 범주에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예술을 다시 일반 예술과 성스러운 예술의 두 가지로 분류한다. 일반 예술은 아름답게 만들고 꾸미고 치장하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온갖 예술이 다 포함된다. 성스러운 예술은 영혼의 예술이며 예술의 진수라고 여긴다. 그래서 밀교 예술은 모두 6가지로 분류된다.
1. 성스러운 몸의 예술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과 부처의 마음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 부처 - 부처의 모습을 만들고 그리는 것
* 가르침 - 경전을 만들고 진언을 세기는 등 문자에 관련된 예술
* 마음 - 마음은 그대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모두 상징으로 표현된다. 불탑을 비롯해서 금강, 보검, 연꽃, 보석, 불꽃 등 헤아릴 수 없는 상징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부처의 모습과 함께 그려지거나 만다라에 그려지는 각종 동물과 식물들은 모습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어떤 정신의 상태와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다.
2. 세속적인 몸의 예술 집이며 입을 것이며 탈 것 등 세상살이에 필요한 온갖 건 아름답게 만들고 꾸미는 모든 행위
3. 성스러운 언어의 예술 설법을 하는 예술 논쟁으로 이교도를 설파해 낼 수 있는 예술 부처의 가르침을 쉽게 풀어서 해설해 내는 예술 등이 성스러운 언어의 예술에 속한다. 설법을 잘하고 논쟁을 설파해 내는 것에도 논리적인 사고력과 지성만이 아니라 예술적 감성 또한 필요한 것이다.
4.세속적인 언어의 예술 모든 음악과 무용 예술은 언어 예술로 분류되고 문학은 마음의 예술로 분류된다.
5. 성스러운 마음의 예술 성스러운 마음의 예술은 예술의 최정상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알고 나서 명상하여 부처의 마음을 체험하는 예술이다.
6. 세속적인 마음의 예술 18가지의 철학과 문학 8가지의 철학 64가지 기예(技藝)등이 세속적인 마음의 예술이다. 박물관에 나온 작품들을 비롯해서 흔히 접하는 밀교의 미술품들은 대개가 성스러운 몸의 예술에 속한다고 할수 있겠다. 밀교의 미술품들은 너무나 방대하고 다양하며 복잡하고 어렵게 조차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8만 4천 경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상징들이기 때문이다. 밀교 미술에서는 작품의 선 하나 색 한 점 조차 의미를 품지 않는 것이 없다. 한 장의 불화는 심오한 의미와 상징으로 치밀하게 구성된 하나의 우주인 것이다. 8만 4천의 경전은 사람에게 있는 8만 4천가지 나쁜 마음을 없애고자 생겨난 것이니 밀교에 있어서 미술이란 악심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며 모든 생명들의 위없는 행복을 위해서 진화해 가는 매우 중요한 방법인 것이다. 그러니 티베트와 몽골의 선지식들의 예술론이 아니더라도 밀교의 미술품은 세속의 미술품들과 함께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밀교 미술품 보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의미들을 알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바로 궁극에는 부처에 이르는 성스러운 길로 들어선 것이니 이렇게 밀교의 예술품들을 모아서 내 보여 좋아하는 마음을 모으니 참으로 기쁘고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밀교와 미술 - 바람의 말, 룽따
바람의 말[風馬] 룽따는 룽(바람)과 따(말馬)의 합성어를 직역한 말이다. 바람은 기(氣)와 비슷한 개념이다. 룽따는 기 자체를 뜻하는 한편 기를 상징하는 말의 모습, 기를 살려 내기 위한 여러 도구들을 모두 일컫는다. 티벳 의학은 사람의 어묵동정(語默動靜)과 오감(五感)을 비롯한 모든 생명 현상은 바람의 작용이라고 여긴다. 사람의 넋은 염통 근처에 있는 차크라에 머물면서 열 가지 기본 바람의 도움으로 목숨을 이끌어간다. 넋은 다리가 없이 눈만 있고, 바람은 눈이 없고 다리만 있다고 비유한다. 그래서 바람이 넋을 태워서 나른다고 해서 바람의 말이라고 부른다.
티벳과 몽골 사람들은 기가 왕성하고 자신만만한 사람을 룽따가 큰 사람이라고 하고,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소심한 사람은 룽따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좋은 룽(바람)이 크게 일어나면 건강하고 눈은 빛나고 하는 일이 잘 풀려간다. 거꾸로, 탁한 룽이 일어나면 기운이 없고 병이 나고 사람 관계가 나빠지고 일도 잘 풀려가지 않는다.
물론 수행을 잘 하기 위해서도 룽따가 필요하다. 그래서 탁한 룽을 정화하고 좋은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을 쓴다. 특별한 향과 약풀 가루를 피워 올려 그 연기를 쏘이고 마시면서 룽을 정화시키는 만트라를 읽고, 룽따를 그리거나 룽따 판화를 찍어서 내걸기도 한다. 티벳 사람들이 사는 집 지붕 위에서 바람에 파닥거리는 오색 깃발들은 룽따의 깃발들이다. 몽골은 육십 해가 넘도록 불교가 박해를 받아 불교 전통이 많이 사라졌지만 룽따의 풍습은 끈질기게 남아 있다. 초원을 달리다 보면 전통집인 겔(파오)의 지붕 위로 바람에 파닥거리는 룽따를 흔히 볼 수 있고, 향 연기를 쏘이고 경을 읽어 룽을 정화시키는 의식도 의료 행위의 하나로 남아 있다.
룽따 목판을 찍어서 몸에 지니는 호신불도 만들고 오색 천에 여러 장을 찍어서 바람에 날려 보내기도 하고, 룽따를 일으키기 위한 불보살상이나 성물의 속을 채우는 데도 쓴다. 왼쪽 사진은 티벳의 성산 카일라스로 가는 순례길에 날리는 기도 깃발 ‘바람의 말’이다. 룽따는 버리고 떠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삶을 끌어안는 밀교의 한 특징을 보여 준다.
밀교와 미술 - 티벳 전통경전
티벳과 몽골 경전들은 책으로 묶지 않고 패엽경처럼 낱장으로 떨어지는 쪽들을 딱딱한 표지 두 장 사이에 모아 보자기로 싸서 보관하고 윗쪽으로 뒤집어 제껴가며 읽는다.
보통 목판을 파서 한지에 찍어 만들지만 한지에 감색물을 먹이고 다시 옷칠을 해서 쉽사리 삭지 않는 특수 종이를 만들고, 광이 나는 검은 바탕에 금으로 글씨를 쓴다. 또 진주,산초,비취,추비,터키석,호박 등 아홉 가지의 보석가루를 섞은 다섯 가지의 색으로 쓴 경전도 많이 있다. 다섯 가지 색은 만다라 5불의 지혜를 상징한다. 이 경전들은 아름다운 변상도와 불화들을 곁들이고 표지에도 화려한 조각을 해서 황금으로 채색 하고 수 놓은 비단 보자기로 싸서 보관한다.
많은 재물과 정성이 요구되는 경전을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물질로든 노동으로든 경전불사에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었다. 경전불사는 현세는 물론 내세까지도 무궁무진한 복을 받게 하는 복밭이라고 믿는다. 요즘은 티벳이나 몽골이나 경전 찍는 방법이 현대화 되어 편하게 양지에 찍어 경전을 많이 만들지만, 옛사람들처럼 지극한 정성을 담는 아름다운 경전들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재물과 마음을 뺏는 다른 즐거운 일들이 많아진 현대화의 탓도 있지만 공산침략이 가장 큰 원인이다. 망명한 티벳불교나 이제 추스리고 일어나는 몽골불교나, 다른 바쁜 일들이 하도 많아서 경전에다 그런 물자와 정성을 쏟을 여력이 없어 보인다.
사진설명:티벳 전통 불경. 한지에 쪽물을 들이고 옻칠을 한 뒤 금,은,터키석,산호석을 가루내어 섞어 글씨를 썼다.
밀교와 미술 - 지구생명의 해방을 위해 다시 살아나가야 할 나가(龍)
몽골과 티벳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나가 몽골과 티벳의 유목민들은 모든 자연현상을 지배하며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가에게 많은 것을 의지한다. 나가를 기쁘게 하는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고 금기들을 지켜서 안녕 되고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것이다. 호수나 강을 비롯한 큰물가나 샘터에는 나가를 모시는 작은 신당이나 표시들이 있기 마련이나 나가는 물을 더럽히는 것뿐만 아니라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몽골과 티벳 사람들은 나가들이 깃들어 사는 맑은 물을 더럽히지 않도록 대단히 조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활의 습관이다. 흙 한 삽을 뜨고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조차도 나가와 지신(地神)의 허락을 구하는 의식들을 행한다.
나가들에게 모래 만다라를 지었던 모래 한 알이 인간들의 황금 천냥만큼이나 값진 것이다. 나가들도 어쩌다 병이 드는데 이 만다라 가루가 나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골과 티벳의 스님들은 모래 만다라를 지어서 불공의식을 할 때 마지막으로 만다라를 지었던 모래가루를 항아리에 담아 불음을 연주하며 물가로 가지고 가서 염불을 하고 뿌리는 의식을 행한다.
나가가 특별히 싫어하는 피는 물론이고 흐르는 물이나 호수에는 배설물을 비롯한 어떤 더러운 것도 넣어서는 안 된다. 물을 더럽히거나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면 나가의 분노를 사서 질병이 돌고 재앙이 닥친다고 믿는다. 물고기들도 나가의 권속들이기 때문에 잡아먹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티벳이나 몽골의 물고기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물에 손을 넣어 등을 쓸어줄 수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나가신앙>때문이었다. 나가가 화가 나면 정말 무시무시하다. 몸이 10배에서 100배까지 커지고 얼굴빛이 검푸르게 변하면서 눈은 빨갛게 확장된다. 입에서는 온갖 불행과 질병이든 검은 바람과 안개를 내뿜고 천둥 번개를 치면서 폭우를 내린다. 열 손가락 끝에서는 독사들이 솟구쳐 나오고 아래쪽 항문과 성기로는 붉은 안개와 함께 독두꺼비, 지네, 거머리 등 온갖 더럽고 흉한 독충들이 쏟아져 나온다.
몽골사람들은 지금도 빨래를 강이나 냇물 등에 직접 넣어서 빨지 않는다. 반드시 떠내어서 최대한 적은 물을 이용하여 빨거나 씻는다. 노인들은 여름날 시내나 호수에서 노는 개구쟁이들이 물고기를 잡거나 놀래키지 않도록 조심시키고 단속한다. 물고기를 함부로 잡으면 나가의 분노를 사서 가축이 눈병이 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과 가축의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다양한 나가신앙의 주술과 의식들이 여전히 큰 효력을 내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소위 현대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나가에 관련된 이 모든 신앙적 행위들을 개화가 덜된 사람들의 어리석은 미신으로 평가하거나 집단 무의식이니 뭐니 하는 현학적인 분석을 거창 하게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촌스럽고 무식한 여자라고 비난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유스팅의 온천에 있는 쓰러져 가는 오두막 법당으로 들어가서 부처님 약사불 등과 함께 모셔진 나가 앞에 버터등잔을 밝히고 준비해간 공양물들과 향과 푸른 카닥(비단수건)을 정성스럽게 올리고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간절하게 오랫동안 기도를 하는 수밖에는...
나가(龍)를 상실하면서 한국이 잃어버린 것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도 예전엔 모든 사람들이 몽골의 나가에 해당하는 용(龍)이 자연에 깃들어 산다고 믿었다. 지방마다 마을마다 용을 섬기는 여러 가지 민속과 행사와 금기들이 있었고 용에 관련된 수많은 전설과 집들과 성지와 문화재들이 풍성하였다. 그러나 현대화라는 이름의 서구문화와 종교가 범람해 들어오면서 그 오래된 민속과 문화들이 비과학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어리석은 미신이라고 멸시 당하면서 이러한 것들은 한국이 이룬 현대화의 속도만큼이나 급속히 사라져 갔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풍습과 문화재들을 자료로서조차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이 경외하는 신당과 숭배물들을 용감하게 불지르고 파괴하면서 “예수님이 미신인 용 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서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용은 뱀의 족속인 사탄이라고 한다. 사탄을 쳐부수고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되고 행복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 한국사람들은 지금 몽골 사람들이 부러워 할만큼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되었다. 잘산다는 건 서구식으로 산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서양 사람만큼 잘살지는 못하기 때문에 서양을 너무 부러워하다! 보니 자긍심과 주체성이 없다. 자긍심과 주체성을 상실하면서까지 서양과 비슷하게 살게 된 대가로 한국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을 잃어버렸다. 수천년을 전해 내려온 전통과 정신문화를 잃어버렸으니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몰라서 한국인들은 불안하고 괴롭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용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 우리 한국인들이 발전해서 잘살아보려고 자연을 너무나 함부로 파괴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아름답던 한국의 금수강산은 지금 여기 몽골처럼 하늘은 푸르고 물이 맑은 나라였다. 그런데 이제는 시골 구석구석, 심지어는 지하까지 오염된 물이 흐르고 쓰레기로 덮여서 마음놓고 물 한 모금을 마실 수가 없다. 기형아의 출산이나 중금속의 중독이 무서워서 수돗물을 마시지 못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플라스틱 병에 든 물을 사서 마신다. 부자들은 한국에서 파는 물은 믿지 못한다고 굉장히 비싼 외국의 물을 사다가 마신다.
병든 지구를 위해서 다시 살아나야 할 나가(龍)신앙 오래 살다보니 갈수록 몽골을 나의 조국처럼 사랑하게 된다. 오염되지 않은 이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과 찌들지 않은 몽골사람들의 넓은 마음을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몽골을 사랑하는 그만큼 불안해지는 마음으로 나는 서구화를 서두르는 요즘의 몽골을 바라보고 있다. 러시아가 버리고 간 험상궂은 시설 폐기물들, 아무 땅이나 파 헤집으며 늘어가는 광산들, 흉칙한 시멘트 건물들, 쓰레기들, 갈수록 짙어지는 도시의 매연 속에 포르노를 비롯한 각종의 저질성 대중문화!
빈곤으로 인한 고단함을 몽골사람들과 함께 체험하고 있는 나로서는 몽골인들이 풍족하고 편안하게 잘 살기를 어떤 외국인보다도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서둘지 말기를 바란다. 제발이지 몽골이 한국의 과오를 따라서 반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몽골 사람들이 조금만 더 침착하게 인내심을 가진다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자연과 사람의 심성이 파괴하지 않고도 발전해서 잘 살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제 지구상에는 이렇게 파괴되지 않은 자연이 아주 조금 밖에 남아있지 않다. 몽골이 파괴 되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의 맑고 넉넉한 심성을 이렇게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그 혹독한 공산주의도 근절할 수 없었던 <나가신앙>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나가신앙>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모든 생명과 더불어서 함께 살도록 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의 가슴에 <나가신앙>이 더욱 힘차게 살아나서 파괴되지 않은 이 자연을 오래도록 지킬 수만 있다면 앞으로 몽골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된 민족의 하나로 살수가 있다.
그리고 <나가신앙>은 몽골사람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든 지구와 인간을 살려내기 위해서 성성하게 살아나야 한다. 나가가 성성해 질수록 사람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이 고통에서 더 많이 벗어날 수가 있다.
밀교와 미술 - 불법의 수호신 설사자
부처님이 앉으시는 좌대를 사자좌獅子座라고 한다. 밀교미술에서는 조각이든 그림이든 부처님이 앉아 계신 좌대를 살펴보면 반드시 하얀 사자가 사방팔방에서 좌대를 받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녹색 갈기털을 휘날리는 눈부신 빛깔의 하얀 사자는 부처님의 좌대뿐만 아니라 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나 법당의 문도 지킨다. 이 사자를 설산에 사는 사자라고 해서 서양인들은 ‘눈사자(Snow lion)’라고 번역하였다. 밀교에서 눈사자들이 부처님의 좌대를 떠받들고 가람과 법당을 지키게 된 유래가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온다.
부처님 계시던 마을에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 부처님을 만나게 되면 생업인 사냥을 하지 말라고 하실 것 같아서 늘 부처님을 피해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숨을 곳도 없는 좁다란 외길에서 부처님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부처님의 위용에 압도되어 땅에 엎드린 사냥꾼에게 부처님은 사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3가지 부탁을 하시는 것이었다.
“사냥꾼이여, 전단나무에 구운 흰 사자의 고기를 먹지 않고, 북쪽을 향해서 뚫린 굴에는 들어가지 않고, 공주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겠는가?”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냥꾼으로서 본 적도 없는 흰 사자 고기를 안 먹겠다는 약속은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 모두 지키겠다고 대답하자 부처님은 사냥꾼을 축복하고 떠나셨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는데 왕이 매우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주가 죽을 병이 들었다. 오직 하얀 사자의 젖만이 이 젊은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은 누구든지 흰 사자의 젖을 구해서 공주를 살려 내는 사람이 있으면 사위를 삼겠다고 하였다. 나라 안의 많은 사냥꾼들이 흰 사자를 찾아서 떠났다. 그 사냥꾼도 흰 사자를 찾아 히말라야로 떠나는 어느 사냥단에 끼게 되었다. 설산으로 깊이깊이 들어간 사냥꾼들은 길을 잃고 먹을 것이 떨어져 여러 날이 지났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 지경인데 북쪽으로 난 어느 굴 속에서 하얀 사자 새끼 6마리를 발견하였다. 굶주린 사냥꾼들은 크게 기뻐하며 우선 새끼들부터 잡아먹기로 하였다. 주변에 단 한그루의 나무로 서있던 전단나무를 태워서 고기를 굽는데 사냥꾼은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하였다.
많은 사람이 많지도 않은 고기를 조금 먹어봤자 배는 다시 고플 것이며 이 깊은 설산을 살아서 나가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다른 사냥꾼들이 허겁지겁 새끼들을 먹고 있는데 무시무시한 굉음과 바람을 일으키며 부모 사자들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놀란 사냥꾼들은 두려움에 정신을 잃고 굴속으로 피해 들어갔다.
그 사냥꾼은 굴 속으로 숨어봐야 성난 사자를 피할 수는 없고,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부처님과의 약속이나 지키며 죽겠다고 결심했다. 부모 사자들은 굴 속으로 쫓아 들어가 모든 사람을 갈기갈기 물어서 찢어 죽였다. 그런데 혼자서 밖에 서 있는 그 사냥꾼에게선 새끼들을 해친 흔적이며 냄새가 나지 않았다. 흰 사자들이 물었다. “왜 너만 혼자 새끼들을 잡아먹지 않은 거지?” “부처님께 드린 약속 때문에...” “부처님이 누구야?” “그분은 모든 걸 다 아시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분이야.” “네 말이 정말이라면, 죽은 우리 새끼들도 살려낼 수 있겠구나?”
부처님이 정말로 죽은 사자새끼들까지 살려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 무서웠던 사냥꾼은 살릴 수 있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자 흰 사자들은 사냥꾼을 등에 태우고 바람처럼 달려서 설산을 내려와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는 사냥꾼이 흰 사자를 타고 달려온 모든 사정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보리씨 여섯 개를 집어 김을 불어넣고 사자들을 향해서 던졌다. 보리씨는 여섯 마리의 죽은 새끼들로 살아나 부모 사자들의 품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죽은 새끼들을 다시 찾은 흰 사자들의 놀라움과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사자들은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맹세하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8마리 사자는 부처님을 수호하겠습니다. 부처님이 가시는 모든 곳에 우리가 가고 언제라도 부처님의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그리고 사냥꾼은 흰 사자의 젖을 얻어 공주의 병을 낫게 하였지만 공주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자 모두들 이상히 여겨서 이유를 물었다. ‘부처님과의 약속’ 때문이라고 대답하는데 바로 그 순간 사냥꾼은 모든 업장이 사라지고 대오 각성하여 아라한과를 얻고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눈사자가 살고 있다는 설산은 드높고 청정하되 어떤 생명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만년설에 덮힌 그런 히말라야나 몽골의 설산에 과연 지금도 눈사자가 살고 있을까? 눈사자가 실재한다는 여러 가지 자료를 잔뜩 모아서 눈사자를 추적하러 나선 야심에 찬 학자나 기자 등 서양인의 무리를 인도와 네팔, 이곳 몽골에서도 종종 만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눈사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아직도 듣지 못했다. 눈사자는 그렇고 사람은 어떤가? 모든 것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그곳에 가서 머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음식이 아닌 공기로 에너지를 흡입하고 단전 속에 잠자고 있는 두메의 불씨를 살려낸 성취자들, 요기와 요기니만이 세상 속에 존재하되 세상을 떠난 그 높고 청정한 곳에 머물 수 있다.
밀교에서 눈사자는 설산에서 심오한 명상에 잠기는 경지 높은 수행자들을 상징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보살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좌대를 받치고 문을 지키는 8마리 사자는 부처님이 나시는 곳에 언제나 함께 나신다는 觀音菩薩, 地藏菩薩, 大勢至菩薩, 文殊菩薩, 普賢菩薩, 金剛藏菩薩, 彌勒菩薩, 除障碍菩薩의 八大보살을 상징한다. 몽골 사람들이나 티벳 사람들에게 눈사자가 아직도 존재하는가 아닌가는 확인하러 찾아 나설 만큼 중요한 의문이 되지 못한다. 눈사자로 상징되는 보살들의 존재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음식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고도 생명을 유지하며 두메의 불꽃을 살려서 어떤 추위도 이겨낼 수 있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수행방법들이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능력을 성취해낸 수행자들의 존재가 그토록 놀라운 기적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째서 여러 동물 중에 사자로서 부처님을 수호하게 하였으며, 보살의 상징으로 삼았을까? 왜 부처와 보살의 가르침을 사자후獅子吼라고 하는가? 그것은 사자의 성품이 보살과 같기 때문이라고 경전들은 가르친다. 사자는 모든 동물을 이겨낸 동물의 왕이다. 숲 속의 모든 동물이 사자를 두려워할망정 사자가 두려워하는 동물은 없다. 두려움이 없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두려움이 없는 사자가 왕처럼 위엄 있게 숲을 거닐듯이, 나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며 마음 속의 모든 악을 이겨낸 보살은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보살행菩薩行을 펼친다. 사자가 포효하면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두려움에 떨고 부처와 보살이 진리를 설하면 마음 속의 악이 맥을 못 추고 사그라진다.
절 입구와 법당 문을 지키는 한 쌍의 사자는 더 심오하고 초과학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문의 오른쪽은 숫사자가, 왼쪽은 암사자가 지킨다. 여기서 암수는 음과 양을 상징하고 다시, 암사자는 대열락大悅樂을 숫사자는 공성空性을 상징한다. 음과 양이, 대열락과 공空이 둘이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 모든 생명의 궁극적 지향이다. 숫사자가 밟고 있는 둥근 보석공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이신노부’라는 보석을 상징한다. 이 보석공은 홍옥紅玉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홍옥은 모든 빛을 하나로 모으고 증폭시키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물리학은 루비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레이저 광선을 만들었다). 즉 루비로 된 보석공은 모든 에너지를 모으고 증폭시켜서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보살의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암사자는 새끼 사자를 데리고 있다. 이 새끼 사자는 모든 생명을 상징한다. 어머니가 독생자를 사랑하듯이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보살의 자비를 상징한다.
중국에 갔더니 밀교의 절뿐만 아니라 궁전의 입구에도 돌이나 철로 만든 눈사자를 세워서 지키게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암사자가 거느린 새끼는 생략되더라도 숫사자는 반드시 보석 공을 지닌 모습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성문과 궁문을 지키는 해태도 다름 아닌 이 눈사자가 아닐까 한다.
“경복궁에 화재가 잦은 것은 마주보는 관악산의 화기火氣가 치성熾盛한 탓이라 그 화기를 누르기 위하여 한 쌍의 해태를 조성해 관악산을 향해 광화문을 지키게 하였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매우 밀교적인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광화문의 해태도 보석 공을 지니고 있다. 조각에서는 표현을 생략하지만 경전에서 설하는 눈사자의 보석공은 루비로 된 붉은색 공이다. 공의 모습인 구형球形은 밀교에서 물을 상징하는 도형(밀교에서 사대四大를 상징하는 도형들 地 - 황색의 정육면체, 水 - 청색의 구형, 火 - 적색의 3각 4면체, 風 - 녹색의 반구형)이다. 물은 청색의 구형으로 상징하는데 눈사자가 지닌 보석공이 붉은색 구형이 된 것은 그냥 물이 아니라 상극인 불을 극복한 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테라바다 불교를 신봉하는 미얀마와 태국에서도 절이나 대탑 등 성지의 입구를 사자들이 지키게 한다. 특히 미얀마에서는 모든 사원과 수행처, 탑과 성지의 입구를 거대한 한 쌍의 흰 사자들이 지키고 있다. 지금은 테라바다 불교지만 딴뜨라 불교시대를 거친 미얀마의 흰 사자도 설산의 눈사자를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남방에서도 절의 입구를 사자가 지키는 것은 밀교 경전에서 보이는 다음과 같은 기록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랜 옛날에 숲 속에서 수행자들이 수행을 할 때 각종 동물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수행처에 돌, 흙, 나무 등으로 사자의 모습을 만들어 세웠다. 참새를 막기 위해 허수아비를 세우는 것처럼... 숲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런 사자의 모습을 발견하면 거기 수행자가 거居하는 줄로 알고 수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피해 가거나 찾아가 공양을 올리고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다가 수행자들이 가르침을 펴기 위해 마을로 내려오면서 이 사자의 모습도 따라 내려와 수행자가 거하는 곳의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