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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격전지.,팔미도(八尾島) 등대.|
무의도~ 팔미도
비정기 운행 도선.
소요시간은.,약 20분.
무의도는 유인도.
팔미도는 무인도.
무의도.,섬 이름은
옛날 선녀가 내려와
춤추었다하여.,舞衣島.
무의도 남쪽에
부속섬.,해녀도.
농어가 많이 잡혀
수도권 시민 바다낚시
투어관광 기폭제.,해녀도.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용유도에서 1.4 km 남서쪽.
소무의도· 실미도· 해녀도 등의 작은 도서가 부속해 있다.
소무의도와 구분할 때에는 본섬을 대무의도라고 부른다.
법정동으로 무의동(舞衣洞)이며,
행정동으로는 용유동에서 관할한다.
영종도에서 방조제로 연결된 장진항.
'잠진항 선착장 ~ 800 m 남쪽 대무의항'
30분 간격으로 운항하는 연락선이 오간다.
현재, 연도교를 대신하고 있는.,연락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서는 2017년 말 완공을 목표로
사업비 583억 원을 들여 이 섬과 영종용유도 사이를 잇는
길이 1.3 ㎞, 폭 12 m의 왕복 2차로 연도교를 건설하고 있다.
수도권 주민들의 바다여행이
지하철과 연계된 인천공항철도
서해바다열차로 한결 편리해졌다.
1·4호선은 서울역에서,
경의·중앙선은 공덕역에서,
종합운동장까지 연장된 9호선은
김포공항역에서 서해바다열차를 이용
1시간 내외면 용유임시역까지 갈 수 있다.
용유임시역에서 마시란해변
등 용유임시역 인근 바다여행과
무의도 호룡곡산 섬 산행, 실미도 탐방,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트레킹 코스 등
용유임시역 앞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선녀바위, 을왕리, 왕산 등 10여분 거리.
용유임시역행 하행열차(서울역→용유임시역)는
오전 7시 29분에 서울역을 출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후 5시 31분(막차)까지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서울역행 상행 열차(용유임시역→서울역)는
08시 47분부터 19시 25분까지 1시간 간격 운행.
'김포공항역~ 인천국제공항역'., 38분 소요.
'인천국제공항역~ 용유역' 자기부상열차 운행.
2016년 5월 현재까지 자기부상열차 요금은 무료.
.........................무의도...............................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행정동 : 용유동).,무의도.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용유도의 남서쪽에 있다.
면적 10.21 ㎢, 인구는 2015년 5월 말 기준으로 824 명.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도(舞衣島).
육지에서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배를 타야 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주변에는 실미도, 소무의도 등 섬이 있는데
과거, 무의도에서 소무의도로 작은 어선을 이용했고
현재, 연륙교(광명항선착장~소무의도)로 연결되어 있다.
도보로 10분~15분이면
소무의도에 갈 수 있다.
'큰무리선착장~광명항'
무의도 마을버스도 있다.
소무의도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무의바다누리길 8코스(1시간 도보거리)
'소무의 인도교길'과
'명사의 해변길'을 따라
서해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무의도에는 두개의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하나개 해수욕장'과 사유지 '실미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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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해수욕장에서는
썰물 때 바닷길이 열려
실미도까지 걸어갈 수 있다.
하나개해수욕장에서는 호룡곡산,
국사봉 등의 등산까지 즐길 수 있다.
..............실미해수욕장..................................
실미 해수욕장은 2km에 달하는 초승달 모양의 해변.
약 100년 아람드리 소나무 숲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썰물 때에는 실미해수욕장과 실미도 사이의 갯벌에는
낙지가 집을 짓고 민챙이, 칠게, 고동이 살아숨쉬는 갯벌.
울창한 노송 숲들을 사이에 두고 산림욕장과 텐트야영장 등.
썰물에 바다가 열렸을 때만
걸어 들어갈 수 있는.,실미도.
밀물에는 바다에 고립되기 쉽다.
............................................
........... 하나개 해수욕장...............
섬에서 가장 큰 갯벌인.,하나개해수욕장.
선착장에서 차로는 10분 정도면 도착한다.
밀가루처럼 입자가 고운 모래 갯벌
그 앞으로는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황해도 장산곶까지
보일 정도로 경관이 좋다.
바닷가에 원두막식으로 지은 방갈로.
그곳 일박은 색다른 경험이 될 듯 하다.
권상우, 최지우 주연의 '천국의 계단' 드라마.
하나개해수욕장에 설치된 천국의 계단 세트장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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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 팔미도' 일대
해역은 바다낚시의 명소.
갯바위 낚시 명소.,무의도.
인천 남항 유어부두 시간낚시배.
인천 연안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종착지 팔미도 앞바다에서.,회항 일정.
요금 1인당 4만원.
낚시대 대여료 1만원.
07:30 출항~12:50 귀항.
인천 남항 유어부두는.,시간낚시배 어항.
바다낚시를 즐기는 수도권 시민들의 낙원.
주말이면 새벽부터 찾는 강태공들로 붐빈다.
낚시배의 양쪽 가장자리 난간에
바다를 향해 나란히 드리운 낚시대.
강태공들의 희비가 시시각각 교차된다.
'어!~ 왜 난 안잡힐까?'
'아!~ 왜 난 잘 잡힐까?'
서해 팔미도.
면적 75,670㎡
북위 37° 24′ 5″
동경 126° 23′ 30″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팔미도(八尾島)
인천항 15.7㎞, 무의도에서 900m.,무인도.
1903년 한국 최초로 세운 '팔미도 등대'가 있다.
한반도 근대 현대사에서
인천이 한반도 관문이라면,
그 인천의 관문은 팔미도였다.
조선시대
지금보다
광활했을.,
인천 앞바다.
유인도 40개, 무인도 113개.
현재, 매립 또는 육지화 된.,옛 섬( - ).
...........인천앞바다 섬들.............
인천시 중구.,노랑섬· 매도 · 매도랑 ·
무의도 · 분도 · 사도 · 사렴도 · 삼목도 ·
소운염도 · 소월미도 · 신불도 · 실미도 ·
영종도 · 용유도 · 운염도 · 월미도 · 잠진도 ·
장고도 · 장기도 · 조름도 · 팔미도 · 해녀도 등.
인천시 서구., 가서도 · 거첨도 · 고무도 · 난지도 ·
대다물도 · 도도 · 매도 · 명도 · 목섬 · 문첨도 · 사도 ·
세어도 · 소문첨도 · 소염 · 소염도 · 소율도 (오류동) ·
소율도 (원창동) · 승도 · 아라빛섬 · 안암도 · 육도 ·
율도 (오류동) · 율도 (원창동) · 이도 · 일도 · 자치도 ·
장금도 · 장도 · 정도 · 청라도 · 축도 · 토도 · 호도
인천시 동구.,묘도 · 작약도.
인천시 남구.,소원도 · 원도.
인천시 남동구.,대원례도 ·
소원례도 · 장도 · 저어새섬
인천시 연수구.,소아암도 · 아암도
경기도 강화군.,강화도 · 고가도 · 괴리섬 ·
교동도 · 기장섬 · 납도 · 대섬 · 대송도 · 돌섬 ·
동검도 · 동그랑섬 · 딴납섬 · 말도 · 매음도 · 미법도 ·
볼음도 · 분지도 · 비도 · 서검도 · 석도 ·
석모도 · 소송도 · 송가도 · 수리봉 · 수섬 · 수시도 ·
아차도 · 어유정도 · 용란도 · 우도 · 주문도 · 함박도 · 황산도
웅진군 백령, 대청 연평면.,거도 · 구지도
당도 · 대연평도 · 대청도 · 모이도 · 백령도
소연평도 · 소청도 · 시루섬 · 용뒤섬 · 책도 등.
웅진군 복도면.,동만도 · 모도 · 비가지도 · 사도 ·
서만도 · 시도 · 신도 · 암서도 · 와도 · 장봉도 등.
웅진군 영흥 자월 덕지면.,가도 · 각흘도 · 갑죽도 ·
검도 · 계섬 · 관도 · 광대도 · 굴업도 · 납도 · 대이작도 ·
대초지도 · 덕적도 · 도량도 · 동백도 · 랑각흘도 · 먹도 (먹통도) ·
멍애섬 · 목덕도 (덕적면) ·
목덕도 (자월면) · 문갑도 · 뭉퉁도 ·
바지섬 · 백아도 · 벌섬 · 부도 (덕적면) ·
부도 (자월면) · 사승봉도 · 상공경도 · 상바지섬 ·
소야도 (새곶섬) · 선갑도 · 선미도 ·
선재도 (소우도) · 소가도 · 소이작도 ·
소초지도 · 소통각흘도 · 승봉도 · 어평도 ·
영흥도 · 오도 · 오섬 · 외항도 · 울도 ·
자월도 · 중바지섬 · 중통각흘도 · 지도 · 측도 ·
토끼섬 · 통각흘도 · 하바지섬 · 할미염 · 항도 등.
.................................................................
팔미도는 국내 최초로 등대가 설치된.,무인도.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사를 고스란히 지켜보았고,
인천상륙작전 신호탄 첫발이 쏘아 올려진 곳.,팔미도.
한국전쟁 이후에는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차단돼 분단의 역사를
실감할 수 있는 장소로 시대의 흐름을 반영.
그러한 팔미도가 다시 새롭게 변신을 한 곳.
근 현대 역사를 보존한., 21세기 해양 문화공간.
팔미도는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3.5㎞ 떨어져 있다.
해안 근처에 모래와 자갈로 이뤄진 퇴적지.
사주에 의해 연결된 두 섬이 여덟 八자 형태.
八 자 모양 꼬리 같이 뻗어내린.,팔미도(八尾島).
조선왕조실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팔미도.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에 표기.
인천을 침탈 기점으로 삼은 일제
1901년 대한제국에 등대 건설을 강권,
1903년 6월 최초의 등대가 들어선.,팔미도.
높이 7.9m, 지름 2m 원통형 석유등대.
일본인이 설계하고 대한제국이 건설했다.
일제의 침탈을 도와준 뼈아픈 역사의 상징물.
그러나,
팔미도 운명은
50년 뒤에 뒤바뀐다.
1950년 9월,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수간만 차가 큰 인천 앞바다에서 261척의 함정과
7만5천명의 병력이 상륙작전을 펼치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작전의 성패를 쥐고 있던 것은 팔미도 등대.,'불빛'.
상륙작전을 앞두고 영흥도를 중심으로 첩보활동을 하던
캘로(KLO)부대에 등대의 불을 밝히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9월 14일 저녁 7시, 고성능 무전기에
"15일 0시에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
라는 맥아더 사령관의 암호명령이 들어왔다.
저녁 8시경 특공대 6인조는 팔미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15일 0시 12분 등대에 불이 켜지고 성조기가 게양.
인천항 외항에서 대기 중 연합군 함대에 발진명령이 떨어졌다.
1950년 9월 14일 자정
켈로 부대 특공대 요원들.
팔미도로 들어가 등대불을 밝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한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맴돌던 팔미도가
관광문화가 숨쉬는 공간으로 변신 중.
팔미도 소유주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2000년부터 향후 5~6년에 걸쳐 팔미도를
'해양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킨다.'.,플랜.
'팔미(八美)'와 신비함을 뜻하는
'원더랜드(WONDER-LAND)'를 결합.
'팔미(八美) 원더랜드(WONDER-LAND)'
2008년 9월까지 '팔미도등대 홍보관 및
야외 문화공간' 조성사업을 완료할 예정.
그후, 팔미도는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근대사' 운명를
두 번이나 뒤바꿨던.,무인도.
인천앞바다 섬 속의 섬.,팔미도.
'대한제국 개화기'의 신호탄.
인천상륙작전.,총공격 신호탄.
팔미도 등대는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상륙함대 이정표.
군사보호구역이어서 오랫동안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2009년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한지 106년만에야 개방되었다.
2002년 2월 4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
연안부두에서
팔미도 가는 길.
인천대교를 지나
송도와 LNG기지,
대부도 영흥도가
한눈에.,들어온다.
팔미도는 가까운 미래에
또 다시 변신을 할 것 같다.
'영종용유도~ 인천연안부두'
'연육교 & 지하 터널'이 개통된다면
팔미도는 '인천의 관문'이 되지 않을까?
1950년 6.25 전쟁 때 낙동강 배수진을 치고
한미 연합군이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치고 있을 때
UN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계획.
인천은 대규모 항만시설이 건설되어 있기에
적의 허리를 끊어 고립을 시킬 수 있는 최적지.
'최적 포인트' 맥아더 장군 주장에 반대한 참모들.
인천앞바다는 극심한 조수 간만의 차이.
대규모 상륙정 및 함정들이 상륙하기에는
무수한 섬과 수중 암초가 많아.,위험한 항로.
거기에 대규모 병력이 상륙하기에는
인천 앞바다 드넓은 갯밭이 부담되는 상황.
하지만, 맥아더 장군이 밀어붙인 인천상륙작전.
가장 큰 문제는 인천해안 상륙을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은.,'팔미도등대'의 불빛.
그러나, 적이 점령을 하고 있던.,팔미도 등대.
당시 인천앞바다에 집결한
함정 260여척.. 병력 7만여명.
팔미도등대가 켜지지 않는다면,
인천상륙 자체가 불가능 했던 상황.
또한 인천앞바다에 대한 정보도 부족.
항만구조, 기뢰부설 여부.수심, 조수 차이.
맥아더는 美극동사령부 첩보부에 정보수집 지시.
클라크 해군 대위를 정보수집 책임자로서 임명한다.
클라크는 맥아더 지시를 받자 마자.. 일본으로 날라가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첩보대 구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한민국 해군대위 연정 씨를 필두로
켈로부대를 창설하여 인천 정보를 수집.
팔미도에 잠입하여 등대 구조 등을 파악.
D- day 9월 15일 0시 30분.
팔미도등대 탈환작전.,개시.
적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전투 속에서
한시간에 몇번씩 점령하고 빼앗기는 전투.
계획보다 두시간 늦은 새벽 두시경 등대 탈환.
260척에 달하는 군함은
'팔미도등대' 불빛을 따라
인천항으로 진격하게 된 것.
당시 한반도에 대한 지형정보는
전부 일본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일본지도에는 인천을 진센이라 표기.
팔미도 등대는 그렇게 불을 밝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게 하였고
대한민국의 오늘날을 있게 한.,주역.
팔미도 등대
켈로부대 용맹
UN연합군 참전용사.
'인천상륙작전'.,3 주역.
미해병 1사단
국군 보병 7사단.
미 10군단 & 카츄사 7천.
조국을 구한 재일동포 650명.
"친구여!~"
"동포여!~"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에 무리 쫓고도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처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
..........................
그당시 팔미도 등대를 지켰던
켈로부대 연정대위 & 클라크 대위.
한국전쟁 동안 150여명의 대원을 이끌고
서해안 중심으로 유격 및 첩보 활동을 지속 수행.
이후, 중공군 남하 징후를 가장 먼저 포착.
지휘부에 보고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으며
클라크 대위는 중령 예편 1998년 86세로 타계.
사후 유족들에 의해 인천 팔미도등대 수기 발견.
'인천의 비밀' 책으로 발간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연정 대위는 한국전 이후 해군에서 복무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건강하게 생존.( 2008년 2월).
옛 팔미도등대 또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등대체험 및 섬탐방.,프로그램.
초등학생들의 단골 방학 숙제감.
“인천상륙작전”
한국영화, 장르 : 전쟁드리마 개봉:2016.07.27.
감독:이재한, 관객:7,044,216명(2016.09.08.현재)
제작:태원엔터테인먼트, 주연:이정재,이범수,리암니슨,진세연.
해군정보국 산하 첩보부대가 인천 영흥도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하여.,맥아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할 수 있도록
사전정보를 취득하는 비밀작전이.,국군의 대북첩보작전 “X-RAY"
당시 한반도는 낙동강전선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이미 북한군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1950년 8월12일, UN군은 낙동강전선을 교두보로
인천을 가로 지르면서 북한군의 허리를 관통하려는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을 계획.
동경에 위치한 극동군사령부는 초기에
미군첩보부대 투입계획을 추진하였으나
언어장벽과 함께 현지 지리에 익숙하지 못해
한국군 해군 정보국에 임무를 위임한 것이었다.
1950년 8월20일 해군 총참모장 손원일 제독은
해군 정보국장인 함명수 소령을 포함하여 김순기,
장정택, 임병래 중위 등 정보장교와 김남규, 정성원,
박원풍, 차성환, 한유만, 홍시욱 등 정보국 소속 병사,
그리고 7명 민간인으로 구성된 비밀조직을 인천에 파병.
1950년 8월17일 부산항을 출발한 첩보부대는
영흥도에 상륙하여 북한군 배치현황, 보급선 현황,
기뢰매설여부, 상륙지점 지형도, 인천항 안벽높이,
북한군 방어진지 등 인천과 월미도를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진행하였다.
김순기,임병래 중위팀은 인천시내로 잠입해 정보수집.
월미도의 해안방어정보를 취득하기 위해.,어부로 가장.
목숨을 담보로 하는 첩보작전은 영흥도에 체류중인
미 극동군사령부 정보국 클라크 해군대위가 취합
이 정보들은 동경 극동군 사령부로 송신되었다
1950년 9월14일, 인천상륙작전 준비를 완료한
극동군 사령부는 첩보부대의 철수를 지시했으나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 기습공격 정보를 취득하고
임병래 중위를 비롯한 첩보부대와 해군의용대 39명이
북한군 1개 대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그 숫자는 너무 미약.
결국, 그들 모두는 포위될 위기 속에서
인천상륙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것을 우려.
나머지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자살한다.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지켜내기 위한.,최후의 선택.
실화를 배경으로 영화.,"인천상륙작전."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라는
인천상륙작전을 역사 속에서 재현한 첩보영화.
7만5천 UN군과 261척 함정이 투입된 대규모 작전.
'좁은 수로와 조수간만의 차'라는 최악의 조건이 단서.
미 국방부는., '성공확률 5,000대 1' 무모한 계획이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신념을 가지고
120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