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림수인 '너덧'과 '네댓'에 대해 제가 목포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님이신 김웅배 교수님께 질문한 내용과 그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 글입니다. 원래 '어림수'란 게 '수를 어림잡아 말하는 것'이다 보니 의미에 있어 좀 확실하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웅배 교수님의 홈페이지(http://dorim.mokpo.ac.kr/~kll/우리말교실/)의 '묻고 답하기'에 들어가보시면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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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글>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님의 홈페이지에 자주 들러 공부하고 가는 문하생(?)입니다. ' 우리말 바로쓰기'라는 모임에서 '자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구요.
수를 어림잡아 말할 때 쓰는 말인 '어림수' 중 넷 또는 다섯을 어림잡을 때 쓰는 말인 '네댓'이라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MBC의 4월 20일 '우리말 나들이'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네댓'을 '너댓'이라 하는데, '너댓'은 틀린 말이라더군요. 생각해보니 우리말을 잘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저도 '너댓'이라고 말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어 문법/철자 검사기'에 '너댓'이라는 말을 입력하고 검사를 해봤더니 [`너댓'은 `너덧' 혹은 `네댓'의 오용어입니다. `넷 가량'의 의미로는 '너덧'을 쓰고, `넷이나 다섯 가량'의 의미로는 `네댓'을 씁니다]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덧'은 '넷 가량'의 의미이며, '네댓'은 '넷이나 다섯 가량'의 의미라는 것... 그런데 국립 국어연구원에 계시는 분께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하여 말씀하시길 '너덧'과 '네댓'은 둘 다 '넷이나 다섯 가량'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1. 과연 '너덧'과 '네댓'은 같은 뜻의 말일까요?
2.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너댓'은 정말 틀린 말일까요?
확실히 알 수 없어 질문의 글을 올립니다. ' 우리말 바로쓰기'에 가보시면 4월 23일에 올라온 글 중 '너덧'과 '너댓'에 대한 논쟁(?)의 글이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보시고 답변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 공부하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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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글>
진지한 질문과 국어에 대한 깊은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나는 국어의 수사를 보면서 매우 자랑스럽게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온'과 '즈믄'이 잘 쓰이지 않지만 하나부터 즈믄까지 우리 고유어로 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국어의 수사를 기수사와 서수사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에 관수사를 더 넣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는 기수사, '첫째'는 서수사, '한'은 관수사입니다. 그러나 '한'의 경우는 관형어로만 쓰이므로 관형사로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수사는 둘이나 셋이 결합하여 부정적 의미를 지닌 복합수사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둘, 서넛, 한두째, 서너째' 등이 그 예입니다('두서너'는 세 개가 결합된 것임). 문제는 수사가 복합하여 부정적 수사를 만드는 경우 원래의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다소 변질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두어'는 '둘+서'가 '두 '를 거쳐 변천된 어형입니다. '두어 개'라고 했을 때 '두어'의 어원이 '둘과 셋'이므로 '둘이나 셋'으로 쓰인 경우도 있겠고, '둘쯤 되는 수'로 쓰이기도 합니다. 근래에 와서는 앞의 경우보다 뒤의 경우로 쓰인 것이 더 일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너덧'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국어의 수사는 분포 환경에 따라 꼴을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에 너, 네, 댓, 덧 등이 다 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너덧'과 '네댓'은 어원적으로 동일합니다. 실제로 중세국어나 근세국어에서 '너덧'이 四五의 뜻으로 자주 쓰입니다. 물론 '네다 '(네다섯)도 쓰입니다.
현대에는 '너덧'과 '네댓'이 다 쓰입니다. 비록 어원이 같더라도 어형이 달라지면 그것에 따라 의미 또한 바뀔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용례입니다. 뜻이 먼저 있고 그 뜻에 맞게 우리가 낱말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쓰이고 있는 많은 용례를 추상하여 뜻을 만들어 냅니다. 쓰임과 뜻 가운데서 쓰임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편찬자들은 그 어원과 중세국어나 근세국어의 용례에 너무 집착하여 '너덧'과 '네댓'을 같은 뜻으로 해석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의 상당수의 사전이나 북한의 조선어사전에도 '너덧'은 '넷 가량'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언어직관도 '너덧'은 '네댓'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두어'가 '둘이나 셋 가량'이라는 뜻보다도 '둘 가량'으로 쓰이듯이 '너덧'도 '넷 가량'으로 쓰고 '네댓'은 '넷이나 다섯 가량'으로 구분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사전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용례가 없는 사전은 사전으로서 그 가치나 신뢰성이 반감됩니다. 프랑스에서 완벽한 프랑스어 사전을 만들어 놓고 서문을 썼는데 그 서문에 쓰인 단어 하나가 그 사전에 실리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귀하와 같은 진지한 탐구가 이런 잘못들을 고칠 수 있고 국어를 가꾸고 일구는 큰 일을 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답변 받으셨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회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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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수님이 쓰신 글이 인터넷상에 뜰 때에는 위와 같이 고어 표기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한글 화일을 저에게 보내주셨는데 자료실에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 자료 제목 : 어림수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