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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 낯설고, 두렵게 진지한 그들
'징후들'이라는 코너를 만들면서 "문학의 징후는 소설에만 있지 않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니 '징후들'의 3탄(지난 호에서 '탄'이란 '彈'일 터이니 좀 섬뜩하다 했지만, 이번 호의 주인공들은 '彈'이란 비유가 제법 잘 어울리는 이들이다. 새롭게 장전된 시의 단단한 '탄알'들이니 말이다)은 시인이어야 한다고 미리부터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현은 2009년<작가세계>신인상에 'blow job'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황혜경은 2010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에 '모호한 가방'등이 당선 되어 등단하였다.
(중략)
황혜경은 심사 과정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이였다. 신인상 심사의 후일담을 잠시 이야기하면 "왜 이런 시와 시인이 이제야 나타난 것이냐?"라는 반문이 오갔고, "2000년대 시의 아이콘인 황병승에 비견된다"라는 평도 나왔다. 그만큼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신인의 미숙함과는 거리과 멀었고, 앞으로 쓰일 시에 대한 높은 기대가 시인으로서의 미래를 보장할 만한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직접 만난 그는 정말로 시에 자기 인생을 전부 건 사람이었다. 죽음에까지 이를 듯한 절망감 앞에서 자신이 두렵게 느껴진 경험을 토로했을 때, 나는 그가 묶어 보낸 시들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언어는 삶 전체를 시에 투자한 사람의 고통이 배어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실제로 대면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더니, 수줍음 때문에 얼굴을 맞대고는 잘 이야기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어울리지 않는 답 (그와 친밀한 사담을 나눠본 나는 그가 수다를 꽤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을 해와 그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징후들'은 코너의 특성상 "신인으로서의 참신함이 드러나는 답이었으면 좋겠다"는 노골적인 바람을 전하였더니, 두 사람 모두 질문자의 뜻에 차고 넘치는 답을 보내주었다.
강계숙_ 우선 근황을 물으면서 질문을 시작하자. 어떻게 지내고 있나?
황혜경_ 계간지에 신작시를 발표하면서 계절을 지나가고 있다. 이제 겨울호 마감을 끝냈다. 시와 사랑하듯이 독대(獨對)하던 때의 충만함과는 다르지만 독자들을 염두에 둔다는 것도 설렌다. 등단 전에는 1년이 계획을 굵직굵직하게 세워놓고 천천히 몰두하며 지냈는데 등단 후에는 어제는 없던 숙제가 오늘의 원고 청탁 전화 한 통으로 생겨나더라. 그러나 쫒기지 않도록 순간순간 시적 상태를 저축하듯이 잘 보관하는 일. 그렇게 마음을 관리하는 일에 신경을 쓰며 지내고 있다.
강계숙_ 습작 기간이 길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등단하기까지 길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때 바랐던 것들이 무었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나?
황혜경_ 등단 바로 전 해에는 마음을 비웠었다. 그런데 비우고 나니까 조금 더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천천히 가자. 그러면서 시에 쏟고 있는 그 간절함이 등단 후에도 계속되기를 바랐다. 나는 끝까지 시의 과정으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 시가 나를 데리고 가든 내가 시를 데리고 가든 그렇게 그 마음으로 계속 동행하길. 어디가 종착지인지는 몰라도 어느 때가 되더라도 진행중인 과정으로 읽혀지기를. 나의 속도에 지치지 않기를. 그런 생각들을 품고 살았다.
강계숙_ 혹시 '시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
황혜경_ 불면을 지나기가 조금 쉬워졌다. 짧은 잠이라도 깊다. 어떤 매듭이었는지는 몰라도 분명 스르르 풀려서 여한(餘恨)이 적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둠 속에서 숨을 몰아쉬던 신체적 증상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랫동안 내가 나를 숨겨뒀던 습성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가끔씩 만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시적으로 변화를 살펴보자면 그동안 나의 시는 대부분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출발했는데 이제 희망적인 느낌으로도 날아온다. 나는 자주 파랗다. 시 쓰는 나는 새.
강계숙_ 등단한 지 1~2년 안팎인데, 시집을 묶어도 될 만큼 발표한 작품 편수가 상당하다. 첫 시집이니 만큼 스스로 염두에 둔 시집 구상이 남다를 것 같다.
황혜경_ 내가 갖고 있는 '황혜경 詩集'은 다섯 권이다. ( 이 문장을 쓰고 보니 그당시 종종걸음 치던 내 마음을 다 텉어놓는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나는 한 번씩 좌절될 때마다 그 해에 쓴 40~50편의 시들을 엮었다. (원고를 모아 묶는 수준이었지만) 그렇게 시집을 엮는 행위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다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위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의 기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심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이렇다. '지금 내게 지면 한 장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오늘도 쓰고 있고 계속 쓸 것이고 언젠가 세상이 나의 페이지를 펼쳐보려고 할 때, 그때 보여줄 것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나는 극히 개인적으로 시집을 엮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세상에 내놓을 첫 시집을 준비하려고 한다. 나의 시간들 중에서 어떤 시간을 선택하여 담을 것인가, 또는 순차적으로 할 것인가 역순으로 할 것인가. 우선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강계숙_당선자의 약력을 물었더니 길고 긴 프로필을 적어 보내온 것을 지금도 잊지 않는다. 그때 어떤 마음으로 그런 긴 '내력'을 적은 것인지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황혜경_ 책상 앞에서 거의 똑같은 생활패턴으로 살던 나는 데자뷰를 자주 겪었다. 지금 나는 몇 년도를 살고 있나? 오늘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도 작년의 일 같기도 했고 자꾸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으며 오늘 쓰고 있는 시를 혹시 전에 쓴 게 아니었을까 작년의 파일을 찾아보기도 했다. 오늘의 시간을 어제의 것과는 다르게 느낄 만한 전환점이 없었던 것이다. (여자의 경우 결혼이나 출산의 시점부터 시간 감각이 조금 달라지고 명확해진다고 하더라.) 시를 붙들고 살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나는 삶의 여러 면들을 유보한 채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드라마 극본, 뮤지컬 대본, 책 프로그램 대본, 라디오 원고를 쓰며 살았다. 그런데 시를 쓰겠다고 돌아앉고 보니 시간은 흐르는데 여전히 이쪽도 저쪽도 아닌 채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더라. 그 긴 프로필은 내가 쓸모 있는 존재인가, 결국 소용없는 인간은 아닐까, 한없이 초라해지고 불안해질 때 하나씩 적어놓았던 삶의 이력. 당선통보를 받고 프로필을 보내달라는 말에 '나는 누구인가?' 난감한 질문이 도착한 것만 같았다. 그날 나는 출생지와 출신학교 등 그렇게 단 몇 줄로 황혜경을 말할 수 없었다. 충족되지 않는 텅 빈 존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계숙_ 농익을 대로 농익은 '2000년대 젊은 시의 정점'이라는 평은 황혜경 시인의 시가 속칭 '미래파'라는 명명으로부터 우선 이해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혹시 불만은 없나?
황혜경_ 심사평을 기억한다. '2000년대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단점과 아쉬움을 한 단계 극복하면서 그만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지않은가'라는 감사한 평이었다. '복수(複數)의 시점'과 '중언부언을 중요한 발화의 방식'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나의 시들이 '미래파라는 명명으로부터 우선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읽으면 미래파에 닿아 있는 것 같아도 다시 한 번 읽으면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젓는 이들도 많다. 불만이라기보다는 스타카토처럼 살아 있는 그들의 생생한 시적 에너지와 나의 것은 빛깔이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꿍, 끙, 한번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채로 오래도록 하나를 바라본다.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진다. 시의 에너지도 마찬가지. 나는 이미지보다 심정(心情)에 더 골몰한다. 상상보다 시의 몸은 훨씬 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시에 대한 믿음이다. 계속 나는 쓸 것이고 당신들은 읽을 것이다. 분류할 경우 같은 쪽에 모일 수는 있겠지만 의도를 갖고 어디에 배치하든 분류는 당신들의 몫. 나는 파(派)의 둘레 안에 비슷한 포즈로 거(居)하기 보다는 독립적인 '하나'가 되고 싶다.
강계숙_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이 무엇인가?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통상의 문법 구조를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으로 어긋나게 하면서 하나의 어구, 문장도 여러 뜻으로 읽히게끔 만드는 수고를 공들여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황혜경_ 못을 네 개 박고 지을 것을 어떤 날은 여섯 개를 박고 어떤 날은 벽돌집이라서 못을 박지 않는다. 이런 비유라면 내가 좀 이해가 될까. 나는 규정되기를 싫어한다. 나는 오묘한 언어의 속살을 들춰보는 게 재미있다. 하나를 벗겨보면 한 겹 밑에 또 미세한 결을 이루는 몸들이 꿈틑거리며 숨 쉬고 있다. 때로는 언어의 틈과 틈을 벌려놓거나 틈과 틈을 좁히기도 한다. 구조라는 것이 하나의 틀이 아니기를 나는 나의 시에게 바라고 있다. 같은 단어를 몇개씩 똑같이 나눠주고 문장을 완성해보라고 하면 저마다 다른 조합으로 다른 표현이 가능한 것처럼 내게 언어의 질료들은 그런 것이다. 수고를 공들여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들 때문인지 문장을 완성할 때 처음의 뜻으로 써놓고 보면 언어들은 곧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그것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고 살려내려는 작업을 하게 된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단어는 없다. 모든 시인은 공평하게 기본 단어들을 갖고 쓴다. 누구의 은밀한 주머니에 더 특별한 단어가 몇 개 더 감춰진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는 같은 단어로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같은 단어로 비슷한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들을 더 세밀하게, 각 시인의 고유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하는 게 아닐까. 그것을 위해 오늘도 여러 시인들이 언어의 숲으로 가시덤불을 헤치며 걷고 있을 것이다.
강계숙_ 작고하신 오규원 선생님과의 인연을 간곡한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의 시에 미친 영향도 있나?
황혜경_ "내 마음이 아무것도 안 가진 채,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그득하다면 시가 아무것도 말 안하고 그냥 그득한, 모든 걸 말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오규원. 날이미지와 시. 문학과지성사,2005) 내가 너무 차고 넘칠 때 비워야 할 때 이 문장들을 발음하곤 했다. 자주 반성했다. 선생님의 안경 너머의 눈빛은 관조(觀照)였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혜경이는 내가 보기에 집 밖으로도 잘 안 나가고 안에 있을 때가 많을 것 같다"고. 그러나 "한 컷이라도 보고 와야 그것이 시가 된다"고 해주신 말씀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고요를 위해서 나를 스스로 유배시켜놓은 것처럼 지냈지만 내 속은 고요하지 못했다. 안에 있었지만 시끄러웠다. 그럴 때면 <날이미지와 시>를 읽었다. 문장도 마음도 장황할 때 그럴 때 반드시 덜어내고 비워야 한다는 자각. 과감히 비워야 다시 차오른다는 것도 나는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진정한 고요에 이르게 될 때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 아직 쉽지는 않지만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날이 오기를.
강계숙_ 최근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개인적으로 나누었던 동병상련의 수다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그런데 정작 시에서는 그러한 감정의 파고가 놀라울 만큼 건조하게 표백되어 있다. 그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황혜경_"결국 고독한 종들은 말이 과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황혜경,'느낌氏가 오고 있다'중) 한동안 누군가를 만나면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내는 나에게 놀라곤 했다. 감정도 축축했다. 오랫동안 말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렇게 말을 쏟아내고 나면 반드시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들키고 말았다는 후회. 마음도 무거웠다. 그러나 시를 쓸 때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축축한 것들을 걸러내고자 한다. 실컷 엄살을 떨다가도 시 앞에 앉으면 허허, 조금씩 정리가 되곤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운다고 당신들도 덩달아 울지는 않는다는 것. 배우가 저 혼자 펑펑 눈물을 쏟으며 우는 연기를 한다고 해서 감정이 이입되지는 않는 것처럼 시마다 감정의 적정선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시를 쓸 때 기본적으로 다 들키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깔고 있다. 바위 뒤에 최소한의 나를 숨겨두고 나를 더 읽어보려고 관심 있게 들여다볼 때 비로소 보이도록 하고 싶은 것. 그런 것 하나쯤 남겨두고 싶다는 바람.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숨은 그림들도 결국에는 누구에 의해서든 발견되기 마련이다. 아직 내 시의 감정선이 어떠한지 판단하기에는 좀 이르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겪고 있고 그것은 풍랑(風浪)이다. 그것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강계숙_ 그 누구도 아닌 '황혜경만의 시'는 무엇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나?
황혜경_ 나는 나를 모멸(侮蔑)하도록 나에게 허락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로부터 모멸감을 느낀다. 나는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로부터 느끼는 모멸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모멸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의 효과는 훨씬 탁월하다. 나의 시는 그 안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나는 환멸(幻滅)의 기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붙잡는다. 삶의 신호는 그럴 때 더 잘 들려온다.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아름답지 못한 것들로부터 아름다운 방향으로 조금씩 몸을 틀어보려는 의지. 그러므로 기대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던 날들의 다음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시가 그랬으면 좋겠다. 무릎을 꿇고 어긋난 기대들을 떠올리고 부끄러운 순간들을 기억하다 보면 다시 앞으로 몇 걸음 더 걸어가볼 용기가 생기는 것. 머뭇거림과 웅얼거림. 그러면서 조심스럽지만 절박하게 다시 길을 찾으려 움직이는 것.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그런 공통의 것을 맞장구치며 나눠 갖게 되기를. 나의 시가 그것들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2011 <문학과 사회> 겨울호 '징후들' 인터뷰 중에서
첫댓글 황혜경의 약력이 말해주듯... 그녀에게서 감지되는 글쓰기의 치열함이 무섭다. 시쳇말로 죽을 만큼, 죽기직전까지 자신의 내부를 몰고 들어가는 그 에너지가 부럽고 그냥 대충 편하게 쓰며 살고 있는 자신이 초라하다.
말 잘 하는 시인이 글도 잘쓸까요? 달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