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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중한담(茶中閑談)10-본문과 문답편
- 박현선생님과 함께 하는 이야기마당 열 번째
(2023년 12월 31일 14:00, 지유명차 청담점)
전투복에서 유래된 현대 서양식 복장
인사 올리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입음새가 좀 철없다고 뭐라 하지 마십시오. 일요일인데요. 그리고 생각해 보면 좀 차려 입는다고 입는 그 옷의 근본을 따져보면, 근본이 다 전투복이잖아요. 옛날에 전쟁할 때 입던 영국 군인들의 옷이잖아요. 특히 한 번 나가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해군들의 옷이잖아요. 공군이 나오기 전에 옷이 가장 좋은 게 해군이었죠.
그렇게 가장 잘 만들어준, 가장 당시로서는 멋있는 옷을 입어야 그나마 전쟁에 나가서 목숨을 바칠 때 자긍심이라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전쟁이 끝나고 그 옷과 목숨의 관계는 사라지니까 전쟁에서 돌아온 그들이 입는 옷이 일반적인 양복으로 바뀐 거죠. 엄밀하게 보면 우리가 사회에서 특히 회사원들이 전투복으로 입는 그 양복은 사실 진짜 전투복에서 기인한 거죠.
지금은 멋있다고 해서 입는 더플 코트(duffle coat)라는 떡볶이 코트 있죠. 원래 더플이라는 지역에서 만든 천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더플이라는 지역은 벨기엘에 없어요. 듀펠(Duffel)이라는 지역이 있죠. 듀펠의 e가 뒤에 잘못 가면서 더플이 된 거죠. 나중에는 군대에서 쓰는 더플 백(duffle bag)의 천은 심지어 듀펠에서 나오는 그 천으로 만들지 않는 더플 백이 나오죠.
어쨌든 이제 양모를 찌고 꽉 눌러서 펠트 기지화 시켜 만들었고, 그것도 역시 영국 해군들에게 입히는 것이었죠. 해군들이 비바람도 불고 추위에 시달리니까요. 해군이 입는 옷인데, 몬티(Monty)라는 별명을 가진 몽고메리(Montgomery) 장군이 있었죠. 그 사람은 해군도 아니죠. 해군도 아닌데 해군복을 걸치고 종종 전투에 모습을 드러냈죠. 그랬을 때 수많은 해군들이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들의 이름은 간 데 없고 지금도 가장 오래된 떡볶이 코트는 몽고메리 이름을 따서, 몬티 코트(Monty coat)라는 거죠. 그렇게 이름이라는 게 상징성을 갖고 있는 거죠. 뭐든지 그런 상징성은 있는 것 같아요.
전쟁의 변화와 사람이 가려진 현대전
전쟁 얘기 나왔으니까. 2차 대전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전쟁은 일부 공군 폭격을 제외하고 나면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자기가 알아요. 보병이면 자기가 개인 화기로 누군가를 쏠 때 쏘는 사람의 얼굴까지는 못 보는 거리에 있을지라도,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요. 그러고 쏘죠. 그리고 조금 더 멀리 있어서 포를 쏜다 하더라도, 포 쏘는 지역이 엄청 먼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꿈틀거리는 사람 또는 포 맞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릴 수 있어요. 그렇게 전쟁을 하던 시대가 있었죠. 그렇게 전쟁을 하던 시대에서 특히 보병들이 사람을 살상을 하고 나면은 비록 전쟁임에도 돌아와서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후유증을 느꼈죠. 월남전에 가셨던 한국 분들도 그랬잖아요.
보병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보병이 아무리 전쟁에 나가서 많은 사람을 죽여 본들 10명 이내일 거예요. 10명을 죽이기 전에 자기가 먼저 죽은 거예요. 그리고 백병전에 가게 되면 많이 죽여야 3명이에요. 그것도 자기 앞에 상대가 만만한 사람이 다가오면 자기가 살겠지만, 앞에서 온 사람이 덩치가 막 저만한 사람이 오면 잘 안 달려든단 말이죠.
그러니까 결국 약자들이 죽어나가죠. 그 백병전 상황에서도 내가 쟤는 찔러 죽일 수 있겠다 싶은 애를 향해 돌격하지, 아무리 봐도 쟤한테 갔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은 애한테는 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한 명, 두 명을 죽이고 나면 결국 그런 애들만 남고 그런 애들 손에 가면 자기가 죽을 순서인 거죠. 그런데 백병전에서 많이 죽여봐야 2~3명이 그리고 총으로 다 은폐, 엄폐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상대방을 사격해봐야 몇 명이 죽겠어요?
전쟁에서 여러 전투를 치러도 자기가 죽는 장면을 볼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후유증을 앓고 정신적으로 극복을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런 것을 주제로 해서 영화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반면 현대전은, 아니 2차 대전 때 이미 폭격기가 나왔을 때는 저기 폭격 목격 지점이 정확히 맞았다, 안 맞았다만 보지, 그 밑에 있는 사람은 포함되지 않아요. 그냥 목표 지점 목표물이 적중했다는 것뿐이지,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요. 그냥 목표물을 타격 적중한 것뿐이죠.
현대사회는 더 그러죠. 아예 포격 사령부에 앉아서 좌표만 딱 입력해서 스위치만 누르면, 그 미사일이 날아가서 정확하게 목표물에 적중했는지 아닌지만을 알죠. 자기가 적중을 시킨 그 미사일의 낙하 지점에 대한 화면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어떤 마을을 폭격시키고 나서 비행사들이 냈던 폭격시켰다는 그 사인(sign)보다는, 본부에서 좌표를 찍어놓고 좌표에서 적중을 시켰을 때는 심지어 환호성까지 질러요. 사람을 죽였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환호성을 지를 수가 있는 상황이 오죠.
소리 나지 않는 소리가 주는 영향
이걸 굳이 제가 말씀 드리는 이유는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사람을 패요. 또는 뭔가 나쁜 말을 해요. 나쁜 행동도 하고 누군가를 해치는 행동도 해요. 그런데 진짜 더 크게 해치는 것은 손발이 아닐 수도 있어요. 손발이 아니라 마치 사령부에 앉아서 찍어준 좌표를 입력시켜서 스위치를 눌렀던 그 존재의 활약처럼 내 몸 속에서 보이지 않는, 느껴지지 않는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훨씬 더 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신독(愼獨)이란 말이, ‘홀로 있을 때 삼가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겠지만요.
그렇게 일은 보지 않는 데서 이루어지죠. 저는 그래서 “사람이 어떤 말을 하면 자기 몸에 영향 받는다”고 했을 때 질문이 이어져 나올 줄 알았어요. “말을 안 하고 속으로만 말하면 영향이 옵니까? 안 옵니까?” 하고 질문이 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역시 안 왔어요.
오늘 그냥 그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말을 뱉지 않고 속으로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했어요. 그 영향이 자기에게 올까요? 안 올까요? 와요!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마음속으로 ‘죽인다. 죽인다. 사람을 죽인다. 죽인다’가 마음속에서 일정 정도 되어지지 않는 사람이 특별하지 않는 급작스러운 상황이 아닌 데서 목적의식적으로 사람을 살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우리가 살인마라고 부르는 연쇄 살인마 또는 연쇄살인마는 아니어도 살인을 했던 사람들은 그 한 명의 살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발음 없는, 소리 없는 ‘죽인다’를 굉장히 많이 반복했을 거예요. 그렇게 영향이 꼭 소리를 낸다고 해서 오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바른 소리를 하고 해봐야 결국은 바른 소리도 바른 처신의 하나인 거고, 더 중요한 것은 바른 생각이 없으면 바른 처신으로 제대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바른 생각이라는 게, 한번 볼까요?
종교가 다양한데 그 중에 불교에 다라니라고 불리는 소위, 진언들이 있어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고!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하는 진언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 발언을 들어보면 입으로 지은 업들의 대다수가 ‘사바하’ 로 지어요. ‘마가다’로 짓는 업보다는 ‘사바하’ 로 짓는 업이 훨씬 많아요. 실제로 말이 체계적으로 다 완성됐을 때 저지를 가능성이 많아요. 정구업진언에도 역으로 ‘사바하’ 자음이 제일 많아요.
근본적으로 불교의 많은 진언들은 ‘사바하’에 해당되는 자음이 거의 없어요.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없어요. 기껏 가봐야 ‘아로게 아로가’ 그래요. 그런데 정구업진언만 유난히 ‘ㅅ’, ‘ㅂ’ ‘ㅎ’이 많아요. ‘수리 수리 사바하’ 심지어 ‘사바하’ 그대로 해요. 수수리 사바하! 뒤에 있던 ‘리’는 ‘수’의 받침이었다가 독립됐을 가능성이 많은 거죠. 그러면 결국은 사바하 밖에 없잖아요. 무언가가 연결돼 있다는 의미죠.
아무튼 과거에 쓰던 말들 중에서 종일 입에 달고 살았으면 하고 옛 사람들이 꺼내놨던 그리고 그것이 나름대로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서 유지되었던 소리들은 ‘마 가 다’ 이전이 많아요. ‘사 바 하’에 해당되는 소리들 가운데는 상대를 다치고 나를 다치게 하는 소리가 많아요. 뜻을 달리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많아요.
나무라는 소리에서 목(木)이라는 글자로 만들어지기까지
제가 최근 수요일 날 화곡동에서 이렇게 이야기 마당을 하면서, 글과 소리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데 나무 목(木)자 얘기를 한 게 있어요. 여러분 나무 목(木)자 한자로 다 아시죠? 적어도 아시아에서 20억, 거의 20억 가까운 인구는 나무 목(木)자를 알 거예요.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최소한 4분의 1이 나무 목(木)자를 알죠. 현대에 쓰이는 나무 목(木)자의 모습도 알죠. 그렇게 나무 목(木)자 가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2천 년 됐어요.
여러분들은 나무 목(木)자가 상형됐다는 것을 아시죠? 위에 나무 가지가 있고 나무에 핵심 기둥이 있고 줄기가 있고 밑에 뿌리가 있죠. 그런데 실제 나무들을 보면은 그렇게 돼 있지 않죠. 일단 그렇게 가지와 줄기, 기둥과 뿌리가 있는 것으로 상형 됐던 갑골문 또는 청동기 금문 시기에 나무 목(木)자와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쇄체로 보는 나무 목(木)자 사이에도 2천 년의 시간이 있어요. 4천 년의 시간이 흘러서 유지돼 온 거죠.
그런데 나무를 보면서 ‘저걸 어떻게 표현하지?’라고 고민해 온 역사가 있었던 거죠. 우리는 당나라 시대 때 발음으로 나무를 ‘목’이라고 불러요. 지금의 중국어는 ‘무’라고 부르지만 ‘목’이 더 가까운 발음입니다. 조선 후기 또는 조선 전기 때도 이미 있었지만, 우리 말에 나무와 한자의 ‘목’ 발음이 결합된 게 우리가 말하는 나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합된 두 개의 소리 또는 말이 결합돼서 나무라는 한국식 말을 만들어냈죠. ‘나’자만 우리 말이고 나무의 뒤에 오는 ‘무’자는 한글이 아니에요. 옛날 사람들 혹시 전라도나 경상도의 골짜기에서 사시던 분, 여기 있네요. (웃음) 그렇지만 너무 젊어서 모르시죠. 산에 가서 나무 해온다고 하지 않고 뭐를 해온다 그랬죠? ‘뿌리 깊은 나무’라고 그러지 않았죠. ‘뿌리 깊은 남간’, 산에 가서 해오는 건 나무가 아니라 낭개 해오는 거죠.
아무튼 그 나무를 봤을 때 글자가 되지 않았을 때도 나무 목(木)이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적어도 일정 지대 한자 문화로 이어진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 때부터 쭉 그것을 ‘목’이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그런데 ‘목’이라고 부르면서 글자를 못 만든 시간을 7천 년 정도로 보는 거예요.
만 천 년 가까운 세월의 ‘목’이라는 소리에 해당되는 말의 역사가 있는 거죠. 그 중에서 글자가 4천 년을 차지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글자보다 소리로만 이루어진 역사가 거의 2배 가까이 긴 거죠. 그러면 나무를 보고 ‘목’이라고 하여 누군가에게 이걸 전달하기 위해서 글씨를, 글자를 만들려고 할 때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글자를 보면서 과거의 사상을 잡아낼 수 있다는 게 그런 거예요.
나무의 구체성을 버리고 버려 木으로 추상화한 옛사람의 생각
나무 목(木)을 암각화 같은 데 새겨야 하잖아요. 암각화에 새기면 일단은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색은 버려야죠. 그래서 색을 버려요. 색을 보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무의 모습이 달라요. 어떤 나무들은 비슷하지만 어떤 나무들은 달라요. 비슷한 나무들도 어떤 계절에는 다르고 소나무 같은 경우에는 솔방울이 열리고 솔 꽃이 열려요.
다양한 나무의 모습에서 색도 지웠지만, 계절의 다양함도 지워버린 거예요. 나무라는 게 1년만 사는 게 아니라 더 긴 시간을 산단 말이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마시는 차의 나무 가운데에서는 3,500년을 살기도 한 나무가 지금 남아 있잖아요. 그러면 그 나무가 점유해 온 그 3천 년의 세월도 지워야죠. 그 중에서 어느 부분을 채택하는 거죠. 색을 버리고 색 없음을 채택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버리고 어느 순간을 채택하고, 기나긴 나무 위에 살면서 긴 시간을 다 버리고 한 부분만 채택하죠.
그리고 나무는 기능이 많잖아요.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그리고 어쨌든 잎사귀도 있고 흙을 빨아먹기도 하고 흙에 묻혀 있죠. 그러면 그 중에서 또 뭔가를 버리는 거예요. 최대한 버리는 거예요. 하나의 글자에 하나의 소리의 뜻이 담길 만큼만 남기고 두 개의 소리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단 하나의 소리에 담을 수 있을 만큼이 될 때까지 버려가는 거예요. 그렇게 7천 년을 버리고 나서야 하나의 모습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들은 그 글자를 만들면서 무엇을 버렸던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남겨놓은 것까지, 그 이전까지 무엇을 버렸던가? 그래서 나무라는 글자가 나타난 것일까? 빛깔을 버렸죠. 계절도 버리고 겨울을 선택한 것 같죠. 긴 역사 속에서 나무가 3,500년이 된 그 무성한 모습도 버렸죠. 나무로서 막 성립됐을 때 애초의 묘목 단계에서의 모습만 당겼죠. 나무가 심겨져 있는 흙도 버렸죠. 그리고 나무에 피는 열매와 꽃들도 버려 버렸죠. 첫째, 그렇게 해서 모든 나무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며, 둘째 마침내 木이라는 하나 한 글자만 말해도 의미가 전달될 수 있는 그 일치성! 발음과 내용 함의의 일치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간 거죠.
그렇게 안 되는 흙은 별도로 다시 만들기로 하죠. 그럼 흙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많은 걸 버리고 나서야 흙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졌을까요? 모래같이 아주 잘 뭉쳐지지 않는 입자도 있고 바위도 있고 바위는 또 따로 만들겠지만, 또 자갈 같은 검은 흙도 있고 흰 흙도 있고, 잘 뭉쳐지는 흙도 있고 잘 안 뭉쳐진 흙도 있고, 다양한 흙이 있겠죠. 그 흙 중에서 무얼 선택하는가? 뭘 선택하는가? 다 버리는 거예요. 흙의 색도 버리겠죠. 그렇게 다양한 모습도 버리죠.
버려야만 형성되는 게 사상
사상이라는 것은 결국 버리는 데서 시작하거든요. 버려야만 가장 간단한 모습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무얼 버리는가의 모습을 보면 사상이 생겨요. 현대 사회에서는 왜 사상이 잘 안 나오느냐 하면 버리기보다는 모아서 표현하려고 해요. 그러면 사상이라는 것은 과거에 버리기를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서 못 벗어나고 그냥 매달려 사는 수밖에 없어요.
현대사회 1950년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과거에 불렸던 거대 사상에 준하는 사상은 나온 게 없어요. 그 사상은 마르크스주의가 끝이에요. 마르크스주의 이후로는 사상이라고 나와봐야 사실 어느 주의는 될 수 있어요. 사상과 주의는 달라요. 또 생각(thought)과 이즘(ism)은 달라요. 이즘은 한없이 많아지는데 그 이즘을 뒷받침하는 사상은 없는 시대로 우리가 온 거죠. ‘사상’은 없어요! 그러니까 사상가라는 사람은 없고 무슨 주의자는 있어요.
무언가의 다양한 모습에서 버리기를 해서 더 이상 버릴 수 없는 자기 개념을 갖춰 갔을 때에만, 그걸 조립해서 다시 사상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 사상은 비록 회색이고 비록 생명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늘 언제나 생명력이 있어요. 생명력이 있다는 건 뭐냐, 자기가 자기를 재창조한다는 거예요. 주의, 주장은 자기를 재창조하지 못해요. 변형은 될 수 있어요. 사상은 자기를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자기 안에 갖고 있는 그런 요소들이 발견될 때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상과 주의, 주장은 많이 달라요. 그러니까 불교 사상이에요. 기독교 통칭 카톨릭까지 사상이에요. 그러고 예를 들어서 헤겔! 사상이에요.
그런데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사상가에 해당되는 사람과 주의자가 되는 혼동돼 쓰이는 경우는 종종 있어요. 반면 현대에서는 혼동될 이유가 없어요. 1950년대 이후 더 이상 사상가는 없다. 왜 사상이 없으니까요. 주의, 주장만 있으니까 그럼 뭘 얘기하느냐? 사상이 있을 때와 사상에 기초해서 주의, 주장이 나왔을 때 그렇지 않고 주의, 주장이 있을 때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나요.
어떤 차이가 나느냐면 사상에 기초해서 주의, 주장이 나오면 서로 토론하고 조정해서 서로 협의와 합의와 공존하는 모습을 찾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주의, 주장끼리 부딪히면 그때는 투쟁밖에 없어요. 투쟁이 아니라면은 그냥 협상밖에 없어요. 협상해서 공존하던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주의, 주장들의 공존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의 문자에 담긴 7천 년의 고뇌
어쨌든 간에 흙도 나중에 무언가의 생명을 피워내는 것으로만 표현돼요. 가장 바닥에 있는데 뭔가 뾰쪽 올라올 수 있다! 그렇게 뾰쪽 올라올 수 있는 것만 흙이라고 불러요. 그러면 좀 애매해지긴 하죠. 그분들이 아마 고비를 못 봤을 거거든요. 사하라를 못 봤을 거거든요. 사하라는 그러면 흙일까 토일까? 사하라에도 그분들이 생각하는 생명이 올라올 수 있을까? 고비에도 올라올 수 있을까? 저는 뭐 올라온다고 봐요. 물론 잘 안 올라오는 거죠.
아무튼 흙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다 버리고 상형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상형자는 없다는 거예요. 순수한 상형자나 순수한 회의 형성자도 없다는 거예요. 엄청나게 많은 7천 년 이상의 고뇌가 겨우 한 글자를 만들었던 거예요. 사람 인(人)은요? 하고 많은 모습 중에서 사람은 왜 7천 년 동안 고민해오다가 한자에서 이렇게 표기했을까? 팔다리가 있는 것 같은데 두 개라고도 표시 안 해요. 그냥 다리도 찍 그어놓고 팔도 찍 그어놓고 머리도 제대로 그어놓지도 않아요.
중국 운남의 나시족 마을에 가면 이렇게 머리는 둥글고 팔 두 개 있고 몸통 있고 다리 있는 상형 문자를 볼 수 있죠. 그 상형 문자 같은 모습을 안고 7천 년을 끌어가지고 이 사람 인(人)자를 만든 거예요. 사람에게서 수 많은 걸 생각하다가, 팔도 2개인데 그냥 대충 뭔가를 설명할 정도로만 간단화 시켜버려요. 다리도 2개이고 발과 손, 머리도 있는데 머리는 별로 크지도 않아요. 똑같은 선으로 표현이 돼요.
직립한 모습 그거 하나만 갖고 사람이라고 불러요. 사람이 직립했다는 그 하나의 모습으로 잡아낼 때까지 7천 년의 고민이 이루어진 거예요. 물론 방만한 고민이겠죠. 다 고민했겠어요? 김선생님 고민했다고 옆에 이선생님이 고민했겠어요? 이선생님은 잤겠죠. 그런 거죠. 그럼 우리 젊은 강선생님이 고민하고 있을 때 홍박사님은 실험하고 계셨겠죠? 어쨌든 7천 년 동안 다수의 사람들이 고민을 했다는 축적물이라는 거예요.
직립 하나만 갖고 사람을 표현하는 거예요. 그 직립 하나만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고 얼마나 그 중에서는 이건 버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붙잡고 있던 걸 버렸을까요? ‘그래, 다리는 두 개지만 한 개로 써, 팔도 하나로 써’ 쉽게 어떻게 버리지 못했을 거예요. 머리가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머리도 그냥 빼버려’ 여러분! 머리 떼는 게 어려웠을까요? 팔 두 개를 하나로 하는 게 어려웠을까요? 머리 떼는 게 어려웠을 것 같죠? 머리 떼는 게 7천 년의 역사에서는 훨씬 쉬웠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아시죠? 피라미드의 용도는 다양하겠지만 이집트 피라미드는 미라를 보관하고 있는 부분이 있죠. 피라미드 안의 어딘가에는 누군가 또는 누군가들의 미라가 있죠. 미라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죠? 장기를 빼야죠. 수분을 제거해야죠. 찻잎도 수분과 엽록소의 제거 과정이 있듯이, 미라를 만들기 위해서도 각각의 장기를 제거해야죠. 장기를 제거해서 어떻게 했을까요?
장기도 말려야 돼요. 말려서 항아리에 넣죠. 그냥 항아리에 넣으면 썩어요. 잘 말려 갖고 넣어야 돼요. 그런데 잘 말릴 때 항아리에 들어갈 수 있는 형태로 말려야 돼요. 그래서 심장을 말리는 항아리가 있고 그 다음에 간을 말리는 항아리가 있고 해서 5개 항아리가 있죠.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오장(五臟)을 말리는 항아리가 있죠.
그런데 뇌 말리는 항아리는 없어요. 뇌는 불순물로 생각해서 애초에 코에 갈고리를 넣어가지고 다 긁어내 버렸어요. 짓이겨서 진흙처럼 만들었어요. 그런 사고에서 봤을 때 사람 인을 만들 때 위의 대가리 떼기가 쉬웠을까요? 심장 떼기가 쉬웠을까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것과도 다른 그런 고민들이 축적됐을 거예요. 그래서 마침내 직립체 하나로서 인간을 표현했는데 그 직립에 대해서, 그냥 직립한다는 그 특징만 갖고 과연 그렇게 했을까요? 그 직립을 하는 것만으로 ‘이것도 표현할 수 있고 이것도 표현할 수 있고 이것도 표현할 수 있다. 하나 없애면서 이게 이걸 대신할 수 있다. 이게 이것을 대신할 수 있다.’ 하는 그 염원도 담긴 게 마지막 모습이라는 얘기죠.
그럼 직립체로서 사람 인(人)자 안에는 심장이 했던 역할, 간이 했던 역할, 현대인들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별볼 일 없는 뇌가 했던 역할, 그 역할들도 다 일정하게 간편화돼서 담겼을 거라는 거예요. 그거 하나로 직립을 표현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들에게 직립은 무슨 의미인가?
7천 년의 결과 후에 만들어낸, 살아 서 있는 사람의 직립은 무슨 모습일까? 무슨 의미일까? 간단하지 않고요. 어떻게 보면은 제가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은 7천 년 동안 제거했던 부분들에 대한, 제거된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말하는 입도 떼버렸어요. 눈도 떼버렸고 뭐 이걸 다 뗐으니까 다 떨어진 거죠. 서선생님처럼 머리가 큰 분이 아닌 분은 ‘이 정도만 해도 머리가 있는 거야, 그런 거야’ 하겠지만, 저 같은 사람을 모델로 했다면 머리를 확실히 뗀 거거든요.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직립의 의미는 그냥 이렉트(erect)가 아닌 거예요. 이렉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렉트를 이룬 다른 동물들과의 차이점을 단순히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이렉트로만 보지 않았던, 이렉트 안에 담긴 더 많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 이야기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니까 사람 인(人)자가 진짜 골프 치는 자세 같네요. 골프채만 주면 늙은 노자가 되는데요. (웃음)
7천 년이 담긴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
아무튼 제가 흙 토(土)와 나무 목(木)을 이야기했고 사람 인(人) 이렇게 세 글자만 얘기했지만, 한자권에 글자로서 초기에 나타난 확인 가능한 글자만 하더라도 대략 470자예요. 이 470자에 담겨 있는 의미의 평행선에서 봤을 때 700자는 됐을 것이라고 짐작이 돼요.
다만 우리가 다양한 갑골문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이 4백 몇 십 개, 500개 가까이 됐던 것이고, 나머지 실제로도 200개 정도 또는 약간은 더 있어야만 이 체계가 맞을 것이다! 그렇게 긴 고민을 통해서 하나의 문자로 안착하는 과정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 범위는 안고 거의 한꺼번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일단 700자를 봐요. 700자의 소리는 다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700자는 나무 목에 담긴 7천 년의 의미처럼, 사람 인(人)에 담긴 7천 년의 의미처럼, 흙 토(土)에 담긴 그것이 ‘터’가 됐든 ‘도’가 됐든 ‘트’가 됐든 간에, 음가는 나중에 자꾸 변하지만 그 안에 담긴 7천 년의 의미처럼, 700개의 7천 년의 고민이 담겼을 것이다! 무언가를 버려온 7천 개가 누적된 것이 초기의 1차 문자체계였을 거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의 그 700개 글자에서 7천 년의 사고를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죠.
그 이상의 지혜가 현대인들이 만든 지혜에 있는가?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4천 년 동안 글자를 단순화시켜 왔고, 마침내 이런 목(木)자를 만들어버린, 그것을 2천년 동안 써오면서 더 편하게도 막 쓰고 했던 그 4천 년, 그것을 가지고 만들었던 그 4천 년은, 이 700개의 7천 년의 고민을 이용한 주의, 주장의 탄생의 연장선에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우리가 사상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조차도 그 7천 년의 고민에 비하면 주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문제는 이 7백 개 안에는 인류가 아직 살피고 나를 이해하고, 사람이 한 글자로 돼 있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7천 년 곱하기 거기 살았던 무수한 사람들의 고민을 다 합해놓은 것만큼의 지혜가 필요한데, 그 지혜 이상으로 인간을 살펴보고 있는 현대에 남아 있는 인간론이 있을까? 저는 회의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소리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얘기를 여러분께서 들으시는 거죠. 그리고 인간이 그런 것을 디지털화 시켰다, 아날로그 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풍이나 치매나 같다는 얘기도 생전 처음 듣는 얘기잖아요.
고언어학자로서 고민
그러면 저는 뭐가 대단해가지고 그런 것을 얘기하느냐? 그 7천 년의 고민 아래 살아오는 거예요. 고언어학자라는 것은 그 7천 년의 고민 안에 살아야 되는 거예요. 어떤 고언어학자도 사상가가 되지 않으면은 고언어학을 할 수가 없어요.
그 고언어학 속에는 인간이 무엇이어야 되는가라는 사상이 담겨 있죠. 인간의 정의에 대해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라는 사람이 옛날에 『An Essay on Man』 이라는 인간론으로 번역되는 책을 썼는데, ‘상징 부호로써 이해한다! 종교라는 상징, 언어라는 상징, 뭐라는 상징’ 이렇게 해오면서 인간을 이야기 했는데, 그가 만약 언어학을 했더라면 달라졌겠죠. 그가 하고 싶었던 것도 그거였을 거예요.
우리가 a라는 글자를 만들어오잖아요. 알파벳 a를, 이 a가 현대 a처럼 되는 것은 불과 2,200년입니다. 그 이전에 한 천 몇 백 년 동안은 그것도 다르게 표기했죠. 그런데 그 표음 문자인 a라는 글자를 만드는 과정도요. 역시 7천 년의 고민이 담겨요. 7천 년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표음 문자와 표의 문자는 또 만나요. 소리가 같았던 이상은 만날 수밖에 없어요. 역시 그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7천 년의 고민 끝에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고,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표음 문자로의 7천 년의 고민의 귀결이라면, 무언가를 버리고 남은 마지막을 선택한 것이 표의 문자의 귀결이라는 거예요.
감정에서 이탈했을 때 더 많이 일어나는 생각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보이지 않는 데서 소리를 낸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감정을 경유하지 않으면은 뭔가 안 저지르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죠. 감정이 없을 때 더 많이 저질러요. 감정이 있을 때는 사실상 머물러 있어요. 생각과 즐겁든 슬프든, 노했든 기뻐 환장했든 이럴 때에는 생각이 사실은 머물러 있습니다. 머물러 있어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예요. 즐거워 가지고 부글부글 끓고 있고, 슬퍼서 부글부글 끓고 있고,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고 있고, 생각은 언제 제일 많이 진행되고 있느냐?
실제로는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을 때, 아무 감정이 없을 때, 그냥 가만히 너무 심심할 때 제일 많이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심심해가지고 막 끄적거리잖아요. 낙서하잖아요. 그때 막 생각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손이 증명해 주고 있는 거예요.
슬프면, 기쁘면, 화나면은! 그때 멈춰 있던 그 상황을 계속 고백하고 있을 뿐이에요. ‘죽여, 죽여, 죽여’, 그리고 노니까 ‘놀아, 놀아, 놀아, 놀아’ 막 반복하고 있을 뿐이지만, 거기 안에서 (죽이고 놀고) 이러고 있는 거예요. 거기서 더 못나면 이러고 있는 것뿐이에요.
실제로 생각이 감정으로부터 이탈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 생각을 우리가 몰라요. 그 생각 중에는 좌표를 입력해서 스위치만 누르면 어느 일정 지역이 초토화되는 그와 같은 생각이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무서운 거죠.
차라리 감정이 일어날 때 자기가 알아요. ‘내가 이 상태로 나가면 누구 패겠다, 내가 이 상태로 나가면 누구 옷 사주겠다, 내가 이 상태로 나가면 누구랑 밥 먹을 것 같다’고 자기가 짐작을 해요. 그래서 자기도 조심을 해요.
그런데 정말 감정 자체가 자기를 찾고 시간의 점유 상태를 맴돌게 할 때, 그때 사람 이외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안 해요. 그런데 그것을 하는 것도 결국은 언어 밖에 없어요. 언어는 그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어요. 그 순간 그런 순간에 끊임없이 작동하던 것이 어느 순간 시간의 점유가 딱 점으로 이루어질 때, 그러니까 크게 보면은 생각이 무수히 생각이 진행돼요.
그런데 이렇게 진행될 때는 (생각이) 밖으로 잘 못 나와요. 안에서 계속 진행돼요. 그러면서 어딘가의 명령어만 계속 오퍼레이팅(operating)하고 있는 거죠. 오퍼레이팅 된 것이 어딘가에 작용하고 있죠. 간이 받아서 작용하고 있고 심장이 받아서 작용하고 있고, 계속 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순환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간이 자연스럽지 않게 회오리 치거나 멈추거나 하는 상황 즉 감정이 개입된 순간, 비로소 소리로 그것이 표현이 되어 나와요. 소리로 표현해 나오는 그 소리들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을 때 한없이 내 안에서 오퍼레이팅 되고 있던 그 작용이 겨우 소리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물 흐르듯이, 감정이라든가 이런 것을 최대한 제거해버리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심심해져요. 낙서를 할 때의 상황과 무심하게 낙서를 할 때 상황과 너무 비슷한 상황이 뭐냐면 명상 상황이에요. 그렇게 되면은 이제 어느 정도 명상 상황과 심심한 상황은 차이를 보면 그런 거죠.
자기가 자기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그 중 하나는 안 보고 있을 뿐이에요. 보고 있을 때 보면 갑자기 유행가를 부르고 있고, 자기 안에서 떠도는 게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이 a인 줄 알았더니 명상을 해보니까 b가 막 자꾸 떠오르고 있고, 자기는 이 나라를 위해서 애국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한 줄 알았더니 엿장수 가위 소리가 떠 오르고 있고 이러는 거예요.
그게 다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추적해서 갈 수는 없어요. 추적해 갈 방법이 없어요. 그렇게 살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한비아 선생처럼 지구를 돌면 몇 바퀴를 돌겠어요? 한비아 선생이 지구 몇 바퀴 도는데 비행기 안 타고 얼마나 돌았겠어요? 걸어서만 돌았다면 일평생을 걸어도 지구 한 바퀴를 돌기가 쉽지 않아요. 그것도 한 방향으로만 돈다면, 적도를 도는 게 제일 뚱뚱하게 도는 건데 돌 수도 없고 무수히 막혀 있어요. 바다도 막혀 있고 남극 북극으로 돌자니 둘 다 얼어버리고 그래서 만 년 후에 날씨의 지각 변동이 오면 다시 돌아야죠.
생각에 감정을 부여하다 보면 보일 것들
그래서 실제로 사람이 찾아서 뭔가를 다 하려고 하는 거는 무리에요. 결국은 생각이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무언가가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어떠한 생각에 감정을 부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역으로 감정은 필요해요. 어떠한 생각, ‘나는 이 사람을 또는 이 사회를 이렇게 생각해’라고 할 때 거기에 감정을 부여하는 수밖에 없어요.
감정을 부여하는 방법이 오히려 시간을 일정하게 멈추게, 들끓게 해서 지속되고 있지만은 약간은 멈춘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것만이 자기가 자기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그래서 그게 생각의 중심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살인할 생각 버리고, 살인할 생각에 대해서 혐오의 감정을 놓고 두려움의 감정을 놓고 함께 즐겁게 뛰노는 것에 대해서 아름다움의 감정을 부여하고, 이렇게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은 어느 순간 그런 방향으로만 생각이 만들어지고 있을 수가 있죠. 그런 생각으로 만들고 있을 때, 반복이 되고 규칙이 만들어질 때 그때 비로소 알 수가 있어요.
저희 집에 택배가 올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호모 택배인데. (웃음) 코로나 이전에는 저는 웬만하면 마트에서 직접 사기도 하고 이러는데, 코로나를 기준으로 해서 저도 다 시켜 먹어요. 여러분들이 시켜 먹는 것도 안 시켜 먹는 것도 시켜 먹고 그러겠죠. 택배를 오는데 새벽에 오는 컬리는 누가 오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얼굴을 아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어요. 우체국에서 오시는 분이에요. 우체국 택배 오시는 분은 어쩌다 보니까 보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택배 책임 누구라고 돼 있잖아요. 담당 누구, 아, 그럼 저분이 황 모 선생님인가 보다, 그러다 나중에 인사도 하고 그러죠. 매일 다른 사람이 들락날락하면 파악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규칙적으로 패턴을 갖고 그 배송지를 계속 방문하면, 어느 순간 배송하는 배송자가 누구인지 볼 기회가 생길 수가 있어요. 그렇게 했을 때 만날 수 있는 게, 나예요. 진짜 나예요. 진짜 나는 그렇게 내가 내 감정과 또 넓은 의미의 준 감정을 통틀어서 내가 그걸 정리를 해나가고, 내가 그것에 어떤 생각이든 의미를 부여해 가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예외 상황이 줄어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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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떤 경우에는 그러죠. ‘뒤지든 말든’ 그러면 뒤지는 것도 막 만들어지고 있고 마는 것도 막 만들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꽃이 피든 말든’ 그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대한 자기의 가치 부여가 필요해요. 거기에 대한 준 감정적 자기 인정이 필요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규칙화가 돼요. ‘이건 내가 원래 아름다워하던 것!’ 그런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쓰는 시는 언어의 배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이런 꽃 하나 보고도 어느 소망이 생각나는 거예요. 길 하나 보고도 막 꿈이 생각나는 거예요.
교육이라는 글자에 담긴 뜻
그렇게 길들여진 자기 안에서만 꿈이 생각하는 거죠. 그게 뭐죠? 그게 육(育)이에요. 기를 육(育)자의 육이에요. 그렇게 되는데 잘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죠. 그럴 때 패는 게 교(敎) 예요. 교는 패는 거예요. 팰 교예요. ‘말 안 듣는 녀석 팰 교’지, 요즘처럼 교육(敎育) 교자가 아니에요. 인간의 인권은 몸이 맞고 아니 맞고에 있지 않아요.
패 가지고 교육된 케이스로 치면은, 현대 사회 5,110만 명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맞고 자란 사람이 저일 거예요. 제 생일에도 하루 100대씩 맞았고요. 설날에도 100대씩 맞았어요. 한마디의 원망도 없어요. 저는 감사해요. 그래서 저를 만났으니까요.
너무 패는 것이 인권이라고 생각하는 그 인권은 이 7천 년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도 없는 일부 주의자들의 외침이에요. 그것이 많은 현대 시민들의 동의를 받은 거죠. 많은 시민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많은 사람들이 따라야 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어야 미래가 있는 민주주의죠.
하나 확실한 것은 ‘팰 교’예요. 그 敎라는 글자가, 위에 이렇게 글자가 두 개 있는데 공부예요. 공부하라는 문자예요. 밑에 작은 아이가 이렇게 있어요. 아이가 문자를 보고 있어요. 뭔가 배움의 대상이에요. 꼭 그것이 글자가 아니어도 돼요. 그럼 옆에 있는 이건 뭐냐? 이거는 사람의 손이에요. 사람의 손 옆에 있는 이거는 매예요. 매 들고 있는 거예요. 아이에게 매 들고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패면서 가르칠 ‘교’라고 하면 아마 현대 교육학에서는 그 교자를 버리고 다른 글자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겠죠.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해주는 것이 ‘육’이고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렇게 되도록 어떻게든 끌어가는 것이 ‘교’예요. 그게 ‘교육’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현재 그런 교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아이가 어떤 소리를 했는데 그 소리를 듣는 부모가 딱 보고, 이것은 어떤 것을 생산하겠구나 염려가 되면 바로 못하게 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어떤 경우에는 설득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아이에게 쓸데없이 경음화를 많이 시키고, 쓸데없이 격음화를 자꾸 시키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은 못하게 하는 거죠.
다 설명할 수 없을 때도 있어요. “이거는 안 쓰는 게 좋다.” “왜요?” “왠지 언젠가 얘기해주마. 그러나 지금 설명은 어렵다. 내가 말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올 때 분명히 얘기해주마.” 설명에 대한 약속은 미래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지금 다 안 이루어질 수도 있어요. 아무튼 현대 교육은 그런 거죠. 다르죠.
정보 교환 기능만을 지닌 오늘날의 말
아까 700개의 소리 즉 700개의 표음 문자 및 700개의 표의 문자가 초기에 등장했다고 했을 때, 그 700개는 전부 사람의 몸과 다 연결돼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몸과 연결된 소리가 순수한 정보 교환의 수단이 돼요. 순수한 정보 교환의 수단이 되는 게 언제냐? 한국의 역사를 보면 결정적인 계기가 지금으로부터 대략 126년 전이에요. 1897년 대한제국 교과서가 나와요. 그 이후로 국어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말이란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으로 바뀌어요.
예전에 우리가 시조를 쓰잖아요. 지금은 시조가 뭐냐? 음절 맞춰서 정보 교환 하기에요. 시조가 아니에요. 시라는 것도 어떤 형식에 맞춰서 한자다 그러면, 일곱 글자에 맞춰서 운 맞춰서 전달하기가 돼요. 그건 시가 아니에요. 우리는 통상 산문이라 하고 운문이라고 그러지만 운문이든 산문이든 간에 그것이 하나의 문(文) 이 되려면 그 문들에 있는 소리들은 최대한 선발돼야 돼요.
그 고민이 나와야 돼요. 그렇지 않고 의미와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표현하는 정도에서 시라고 한다면은 이태백 되기는 너무나 쉬워요. 이태백의 시는요. 술 먹고 대충 갈겨썼다고 하지만 그 시에 나오는 소리 하나하나들이 전부 그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다 심금을 울리고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대략 그 이미지가 전달이 돼요. 그게 시에요.
옛날에 무슨 책, 대책할 때 책(策) 이런 거 말고, 대부분이 옛날에 어부사(漁父詞) 이럴 때 사(詞), 시(時), 운(韻), 율(律) 이런 것들은 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마치 고전 음악에 가사가 없는 부분이 전달되어도 그 높낮이와 율을 통해서 무언가가 전달되는 것처럼, 호두까기 인형인 줄 몰라도 그 비슷한 무언가의 느낌을 받게 하는 것처럼, 그래야 클래식이에요.
트렌드와 클래식 사이
클래식 음악의 형식을 취했다고 다 클래식이 아니라 그거는 그냥 고전 음악이에요. 형식을 취했을 뿐 그런 클래식적인 기능을 못한다면은 트렌드 전통 음악이에요. 전통 음악의 장르를 빌린 트렌드예요. 현대에 그만한 작곡가가 있느냐? 그런 작곡가라면 눈멀 만 하고 귀멀 만 해요.
예를 들어서 수많은 작곡가들이 서양에 존재하죠. 스메타나(Smetana)라는 작곡가가 있어요. 스메타나는 ‘마 블라스트(Má vlast)’라고 하는 곡을 남긴 즉 나의 조국이라고 하는 곡을 남긴 체코의 작곡가죠. 그런데 그가 남긴, 첫 번째 장이 비셰흐라트(Vyehrad)죠. 비쉐(Vye)는 빛의, 흐라드(hrad)는 높은 언덕, 즉 흐라드가 성이에요. 흐라드는 성터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흐라드니까 성이고 빛을 받는 곳이 높은 곳이잖아요. 높은 성 즉 고성 (高城)이에요.
체코의 말이 제족의 말이어서 그렇게 쓰였어요. 폴란드에서도 비셰흐라트라고 하죠. 비셰흐라트를 들어보면요. 가만히 감정을 내려놓고 천천히 심심한 상태에서 들어야 돼요. 너무 들으려고 애쓰지 말고, 고전 음악 감상실에서 교양을 채우기 위해서 들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비워놓고 들으면은 그 높은 성터가 느껴져요. 그 성터 위에 흐르는 구름이 느껴지고 하늘이 느껴져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어울림이 느껴져요. 그 성터 옆을 지나가는 와일드 리버(wild river)가 느껴져요.
와일드 리버가 블타바(Vltava)죠. 와일드 리버는 그러니까 ‘빌트(Vlt) 레베(Labe)’ 죠. 레베라는 것이 강이죠. 레베를 잘못 부르는 게 엘베(Elbe)가 되죠. 엘베 강이라는 말은 레베라는 말이 음문 전환이 잘못돼서 강이 된 거예요. 우리는 엘베 강이라고 그러지만요.
중국에서도 강이라고 불리는 건 양자강(揚子江) 하나죠. 북쪽에 있는 건 하(河)라고 불리죠. 황하(黃河)라고 할 필요 없이 그냥 하죠. 장강(子江) 필요 없이 그냥 강인데요. 레베라고 불리는 것에 있었던 작은 거친 줄기, ‘와일드 리버’라는 뜻이어서, ‘빌트 레베’의 뜻에서 ‘블타바’가 된 거예요. 이거는 체코 사람들도 몰라요. 체코 대통령도 몰라요. 이럴 때 언어 학자가 잘난 척한다는 거죠. 언제 해보겠어요. 그런데 잘난 척하는 자리가 겨우 이렇게 친구들처럼 모인 자리에요.
아무튼 블타바를 흐르는 그 옆구리에 성이 느껴져요. 2장은 몰다우(Moldau)라 그러죠. 우리가 독도 창가가 있는데, 독도 창가를 서양의 또는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다케시마 창가라 불러주면 기분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안 좋죠. 스메타나는 체코 사람이고, 오스트리아 독일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몰다우라고 불러주는 것은 그들에게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러주는 거와 동일해요. 식민지 시절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블타바가 2절이죠. 블타바는 7개의 장으로 돼 있습니다. 들어보면 거기 흐르는 주제 부분만 들어봐도 이게 강이구나, 거칠게 흐르는 강이구나, 강변에 뭐가 있구나, 그 사이 사이에. 진짜로 다 느껴져요. 그게 고전이에요. 그게 음이에요. 그게 악이고요.
시대를 초월해 삶의 양식이 되는 고전(classic)
그래서 공자도 그런 얘기한 거예요. ‘마지막 악에서 완성되다(成於樂)’ 그리고 흥어시(興於詩), 시 자체가 사람의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에요. 흥어시는 시에서 일어난다! 시에서 뭔가 일어난다는 것은 진짜 시는 사람을 일으킨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것은 시가 아니라는 얘기죠. 시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주절주절이라는 이야기죠. 시에서 일어난다는 거예요.
시에서 일어나면 그것을 하나의 자기 삶의 양식으로 굳히라는 거예요. 만들어 가라는 거예요. 그게 예(禮)라는 거예요. 예라는 것은 일종의 삶의 양식이에요. 그래서 흥어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그 마음의 작용을 듣고 그리고 그러한 것에 기초해서 자기 삶의 양식을 세우고(立於禮) 그러고 나서 마침내 악에서 꽃을 피운다는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나오는 거예요. 단순하게 교양 차원에서 그냥 ‘시 공부하셔요. 예를 배우세요. 음악이 또 중요해요’ 이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들을 줄 알면은 음악이 없어도 내 안에 음악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시라는 것도 그런 것이고, 적벽부(赤壁賦) 할 때 부(賦)라는 것도 그런 것이에요. 그런 것만 살아남아서 후대에 정리가 됐던 거예요.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을 현대인이 찾아내요. 그러나 그것을 남기려고 했던 그분들의 생각으로 돌아가서 보면 무가치한 것들이에요. 시가 아니고 부가 아니고 사가 아니었던 거예요. 악(樂)도 아니었던 거예요. 악도 어떤 것만 살아남느냐? 왜 당악(唐樂) 중에서 그것만 살아남느냐?
당악은 엄밀하게 말하면 당나라가 만든 음악이지만 당나라가 다 만든 음악이 아니에요. 당나라 중 말기 때, 당나라가 지금의 운남인 대리 지역으로 30만 군을 이끌고 쳐들어갑니다. 평화롭게 지내려 하는데 굳이 뒤가 찝찝한 거죠. 왜? 고구려를 치려니까 운남이 걱정되는 거예요. 운남 대리국이 그 사이에 쳐들어올까 봐 고구려 정벌을 못 가겠는 거예요. 일단은 그래서 뭐 해놓고 보는 거예요.
그때는 이 사람들이 운남 무서운 줄 몰랐어요. 고구려 무서운 줄만 알았죠. 고구려하고 몇 번 싸워봤으니까요. 운남하고는 안 싸워봤으니까요. 공격적인 성향을 전혀 안 보이는 국가에서 공격 전쟁을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쳐들어갔던 30만 명이 싹 다 죽었어요. 한 명도 못 살아갔어요.
그러고 나서 대리국이 승자가 돼버렸죠. 승자가 된 대리국이 패자를 자처하면서 당나라에 평화 사절단을 보내요. 960명 정도 되는 사절단이 가는데, 그때 지금 당악(唐樂)의 뿌리가 되는 봉성악(奉聖樂)이 들어가요. 성인으로 봉해 올리는 음악이에요.
그때 대리 문화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게 그거예요. 그 봉성악을 듣고 당나라에도 수많은 악사들과 악인들과 이런 선비들이 있지 않았겠어요. 아무리 들어봐도 이 이상의 음악이 없는 거예요. 그대로 받아들여가지고 당나라의 국악으로 만들어요. 그 자존심 강한 당나라가 이 이상의 음악은 없다고 악인들이 인정하니까. 그래서 그것이 당나라 궁정음악이 돼요.
그 당나라 궁정음악이 오늘날 우리 한국의 아악이 되요. 박연이라는 위대한 음악가가 들어봐도 시대에 맞춰서 조금 더 고칠 뿐 근본을 고칠 방법이 없었던 거예요. 그 정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권이었다는 거예요. 무섭죠. 무섭지만 아름답죠.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새로운 세대 정치
아무튼 그런 것이 음악이에요. 우리가 하나의 음악을 향해서 사회를 끌고 가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반짝반짝 하는 아름다운 생각들을 막 내야죠. 그런데 지금도 막 싸워요. 싸워 갖고는 영혼이 자기만 아파요. 세상에 이것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싸움으로 가면 자기가 너무 아파요. 싸우는 데도 가장 효과적이지 않아요. 효과적인 것은 안 싸우고도 이루는 거죠. 싸워서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거친 바람이 벗긴 옷은 금방 다시 입혀요.
지금도 보면 그래요. 1960년 정도에 한국에서 민주화를 하자고 막 했죠. 한국은 1987년까지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에요. 왜? 정당 정치를 안 했어요. 한국의 87년까지는 얼핏 보면 정당 정치가 이루어지는 사회 같지만은 사실은 정당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공화당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자유당과 그 뒤를 이은 공화당밖에 없고, 나머지 신민당도 있고 한독당도 있고 한민당도 있고 나중에 민주당도 있고 뭐 있는데, 그 사람들은 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민주화 저항 단체일 뿐이에요. 애초에 권력에 접근할 수 없는 단위였어요. 산업화 시대였어요.
그들은 하나의 정당, 자유당과 공화당을 이끌면서 나머지 당에게는 당이라는 칭호는 가능해도 사실상 권력 잡을 기회가 가능성이 부여돼야 정당이죠. 애초에 없으니까, 정당의 탈을 쓴 정당으로 등록된 저항 단체예요. 그게 한국 현대사회의 첫 번째 시기에요. 그러면서도 그들을 정당의 타이틀만 있게 하고 실제로 정당이 아니게끔 유지시키면서 자기 사회를 마음대로 이끌어왔던 그 세대를 우리는 산업화 세대라고 그래요.
우리 사회에 나름대로 공헌을 했죠. 87년 마침내 직선제가 오면서 바로 정권이 교체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때 만들어진 87년 이후의 정당은 그 어느 당도 다 정당이에요. 권력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가졌죠. 어쩌다 분열돼가지고 87년에 기회를 못 누렸고, 그 다음에는 3당 합당 때문에 기회를 못 누렸고, 그 다음이 돼서야 권력 교체가 됐지만요. 이미 교체될 가능성은 87년 7월부터는 있었던 거예요. 그때부터는 민주화 시대에요.
그러면서 그 정당으로 만들어 놓은 또 정당으로 인정받게 한 그들이 사회를 이끌어와요. 그 세력이 누구냐? 운동권이 아니에요. 오늘날 50~60대가 되어 있는 60년대생들이 중심이에요. 쉽게 말하면 87년 6월 10일 이후에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맸든 어쨌든 간에 광화문으로 시청으로 쏟아져 나왔던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민주화 세대에요. 그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오면서 민주화를 했죠.
한 30년이 흘렀네요. 4.19로부터 30년이 지나 왔고, 그들로부터 또 30년이 지나 왔죠. 그런데 민주화는 그냥 얻었나요? 싸웠나요? 결과적으로 싸워가지고 뺏어왔죠.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는 싸워서 뺏기가 더 힘들어졌어요. 지금은 그래요. 여전히 산업화에 대한 평가를 가지고, 민주화에 대한 평가를 가지고 서로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라고 그래요.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의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다 민주화 세력이에요. 그 시대를 이끌어온 사람들의 세대예요. 다만 그들이 과거와 사회를 다르게 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들의 공통점은 전부 60년대생 그리고 대충 한 50~60대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 교육의 수준이 높았던 세대 등등이 있죠.
그러니까 70년대 이전에 이렇게 학교 다녔던 분들은 사회에 불만이 많아도 자기가 배운 게 없다 보니까 기회도 없고 해서 잘 안 덤벼들었어요. 그런데 딱 6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교육률이 엄청 높아서, 소위 가방끈이 길어요. 그들은 고통스러워요. 배운 것도 있고 고통스러운 인간들이 꼭 일을 내거든요. 그래서 87년에 터졌어요. 하지만 지금 그들은 너무 똑똑해 가지고 자리를 안 내놔요. 자리를 절대 안 비켜줘요.
지금 그 자리를 어떤 젊은이가 나와서 차지하려고 그러잖아요. 싸가지 없다 그러죠. 그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떠나서 그는 상징적으로 산업화가 있고 민주화가 됐다면 이제 나름대로 선진화되는 시대죠. 그 시대의 상징 인물이에요. 싸가지 없다고 그러는데 제가 이준석을 칭찬해 주는 거 아니에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예의 바른 친구예요. 자기가 정적으로 삼은 사람들 말고는 정말 예의 바른 사람이고, 국민들을 향해서 한 번도 함부로 말한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국민들을 향해서는 가장 예의 바른 정치인이었어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노회찬 의원에 대해서 엄청난 존경을 표해요. 송영길 씨에 대해서 존경을 표해요. 그가 욕하는 사람들은 몇 안 돼요. 예를 들어서 안철수 씨라든가 뭐 몇 안 돼요. 그래서 아저씨라 그러고 씨라 그러고, 소위 말해서 싸가지 없이 하는 대상은 몇 안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원만했으면 좋겠죠.
어쨌든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 선거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그가 제1당이 될지도 몰라요. 저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그런데 또 그래야 된다고 봐요. 이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그냥 제2, 3당 돼도 돼요. 그러다 슬그머니 군소 정당이 돼서 사라지고 오히려 미래 정당에서 또 한 번 쪼개지는 게 좋아요. 그럴 때가 됐어요.
그런데 언론을 누가 잡고 있어요? 경제를 누가 잡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나올까 봐 지금 어떻게든 막고 있는 거예요. 막는 줄도 모르고 막고 있고 그걸 막히고 있는 애들은 자기들이 그런 세대인 줄도 모르고 막히고 있는 거예요. 그게 답답하죠.
비울 것을 비우고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아무튼 우리가 모르고 하는 일이 참 많아요. 내 안에서도 내 삶에서도 모르고 하는 일이 있는 것보다는 알고 하는 일이 좋겠지만요. 그렇지 않을지라도 바람 불듯이 자기를 조금만 더 바라보면, 습(習)을 들여서 詩를 들을 수 있는 내가 되면,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가 되면! 그러려면 귀가 어떻게 해요? 역삼각형! 눈이 어떻게 해요? 삼각형! 눈은 피라미드고 귀는 피라미드를 뒤집어 놓고, 그렇게 보고 들으면은 빛이 하나 달라진다고 말씀 드렸죠.
귀의 소리에는요. 여러분들 혹시 ‘짐승 친구’들이랑 웹툰 아시는 분 계세요? 나만 그런 웹툰 보나요? 거기 말을 안 하고 이렇게 팻말을 들고서 휙 쓰는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시바견이에요. 그 다음에 약간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애는 말끝마다 땅땅 해가지고 별명이 땅땅이고, 그 다음에 실험실에서 구조되어 나온 쥐가 한 마리 있고요. 애는 말끝마다 슘댱슘댱해 슘댱이고, 그 다음에 길 가다 떨어진 비둘기 한 마리 있고요. 그들이 주인공이고 그들과 함께 사는 인간이 한 명 있어요. 그 짐승들은 거기서는 무슨 세계관인지 주인 카드도 막 훔쳐다 쓰고 막 긁기도 하고 하는, 그런 이상한 세계관으로 무장된 웹툰이 하나 있어요.
그런데 그 고양이가 욕쟁이 고양이에요. 툭 하면 짧은 팔을 뻗으며 찌발놈! 막 그러는데 그럼 주인이 화나겠죠? 그런데 그 장면 웹툰 중에 주인이 너무 잠이 안 오는 장면이 있어요. 뭐가 몸이 잘못된 거죠. 고양이가 나중에 해결책을 내요. “재워드릴까요? ASMR로 재워드릴까요?” “뭘로?” 그러니까 똑같은 욕인데 “찌~발~놈” 이러는 거예요. 잘 잤어요. 그러니까 욕이지만 그게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가니까 듣는 사람에게는 그게 음악이 된 거예요.
문제는 정보가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사회를 보는데, 이 사람은 나이 든 자기보다 몇 살 더 많은 사람한테 반말 툭 해버리고, 뭐 옆에 와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기 일쑤고 그러는데, 미움을 안 받더라고요. 왜? 말 안에 그게 없는 거예요 욕을 안 해도 부드러운 말만 해도 경계심을 세우는 사람이 있어요. 경계심을 세우게 하는 말을 하는 거죠. 욕을 하는데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말이 있어요. 소리의 힘이 달라요.
그런 소리가 들려요. 바람 속에서도 그 느낌이 와요. 그 바람을 들으면 이 바람이 곧 태풍이 될지, 미풍이 될지도 알아요. 그렇게 들리는 새 소리도 알아요. 새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무엇인가의 범위를 전달하려고 하는지도 알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내가 하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느끼고 보고 있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려면 아까 흥어시라 그랬잖아요. 입어례(立於禮)라 그랬잖아요. 예(禮) 가운데서 우리가 흔히 예의(禮儀)할 때 예를 생각하지만요. 예의 禮자의 글자도 한자지만 그 뜻을 한번 볼게요. 예의 예자 옆에 있는 示는 정신이죠. 보일 시(示)자가 정신이죠. 그런데 옆에 있는 것이 굽을 곡(曲)자예요. 굽을 곡자가 하나 있어요. 굽을 곡자는 지명이에요.
여러분 농사 농(農)자 아시죠? 농사(農事) 농(農)자 위에 굽을 곡(曲)자가 있죠. 그것도 지명이에요. 곡 땅이라는 지명이고, 이곳은 오늘날의 산둥성(山东省) 곡부(曲阜) 지역의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에요. 그리고 그 곡 땅의 또 다른 이름이 ‘앗땅’이에요. 소위 말해 아사달이에요. 앗땅에서 농사 농자 밑에 별 진(辰)자가 들어가죠. 별 진자는 별이라는 뜻이 아니라 누에의 뜻이에요. 곡 땅에서 처음으로 누에를 쳤던 사람에게 붙여준 이름이에요.
그의 이름이 농이에요. 바로 신농씨(神農氏)예요. 용(龍)자도 역시 용으로 가는 상형이 아니에요. 그것도 누에의 그림이에요. 농사와 신농은 같은 이름이에요. 신은 그냥 존경해서 붙여준 거고 그의 이름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농씨의 이름이 그냥 농사 농자, 농씨예요. 동일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의 지역 출신을 가리키는 곡 땅이 있는데, 거기에 곡 밑에 콩 두(豆)가 있죠. 이 콩 두는 콩 두의 뜻이 아니라 제기(祭器)의 뜻이에요. 제기인데 우리가 생각할 때 祗가 아니고 祭예요. 시골에 자기 조상 모시러 가는 건 ‘지사’ 지내러 간다고 해야 되는 게 맞다 그랬죠. 제사(祭事)라 그러면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제사는 우리 공동체의 축제예요. 공동체가 땅과 하늘과 소통하는 자리예요. 공동체 성원들끼리 소통하는 자리예요.
그래서 하늘에 “우리들이 이렇게 살고 있어요. 잘 보이십니까? 우리가 사는 모습이 아름다우십니까? 우리에게 더 하실 말씀은 없나요?” 그리고 “우리들끼리도 같이들 이렇게 그 뜻이라 생각하고 우리 받아들이자 오케이?” “오케이!” “그럼 내년까지는 이렇게 살자” 이렇게 소통하잖아요. 그런 것이 이른바 이제 ‘맞츠리’이죠. 이른바 제사죠. 그게 이제 이른바 우리 말로 남은 게 차례죠.
송구영신 새해 인사
새 것으로 채우고 남긴 것을 비워내고 그때가 바로 새해죠. 송구영신 하는 때가 새해죠. 우리가 매해 새해맞이마다 지금도 송구영신 인사하는 게 그 습성이 남아 있는 거예요. 새해라는 것은 비울 건 비우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는 그 자리고 그 행사를 하는 데 쓰이는 제기가 콩 두(豆)의 글자예요. 원래 콩 두(豆)는 콩을 가리키는 상형 문자에서 온 게 아니고 제기를 상형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곡 땅에서 축제를 벌이고 하늘과 이야기를 나누며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때에 있었던 여러 모습들, 그 양식들, 그 양식에 담긴 삶의 방식을 예라고 했던 거예요. 예라는 것은 모럴(moral), 에티켓(etiquette) 이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것을 하나의 형식으로 발견해 낸 게 뭐냐? 우리가 예의(禮儀) 할 때 의(儀)예요. 형식이죠. “옷은 이렇게 입어”, “사람들 앞에 갈 때 후디 같은 거 입고 나가지 마” 그러면 의에요.
공자가 그러죠. “난 예는 지켜도 옛 것을 버리고 지금의 것을 채택하겠다.“ 어쨌든 간에 儀는 계속 바뀌어가는 거지만 예는 그런 것 중에서 조금 큰 범위예요. 엄밀하게 보면 자연을 대하는 것도 예가 필요해요. 예의 예가 아니라 정말 예가 필요해요.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근본 예가 필요해요. 더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대하는 데도 예가 필요해요.
그 예를 표하는 것으로서 앞으로 조금 남은 시간 채우고요. 한 두 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1~2월 쉬고, 3월에 한번 뵈려고 합니다. 앞으로 한 두 번 하고 이제 끊을까 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 있다가 끊을게요. 고맙습니다.
문답편
지난주에 말씀하셨을 때 우리 사람은 흙을 먹는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소금도 먹고 이렇게 하는데 솔직히 요즘 같은 흙이 정말 탁해지고 이상해지고 있고 또 하나는 흙을 먹어야 하지만 약간의 이상한 방식으로 생산되는 것이 있는데 그거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것도 흙이죠.
그것도 흙이라고 그러면 수경 재배도 흙이라고 생각하고 먹어야 하는 건가요?
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를 보면 하루 한 끼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때는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안 나왔어요. 90년대 들어가니까, 이제 이 사회에서 허기는 어느 정도 사라졌어요. 물론 그 상황에서도 지금 오늘도 못 먹는 분들께서 계시지만, 그래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먹을 게 풍부해졌어요. 드디어 호사를 부리는 거예요. 웰빙이 나온 거예요.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선택을 한 거예요.
90년대 들어오면서는 영양 성분 뭐 이런 거, 몸에 좋은 음식을 잘 모르면 교양 없는 사람이 돼버렸어요. 그렇죠? 그러다가 몸을 싹 다 버렸잖아요. 웰빙(well-being)하다 다 버린 거예요. 그러더니 그 다음에 어떻게 하죠? 다친 몸을 치료해야죠? 힐링(healing)의 시대가 딱 온 거죠.
힐링의 시대가 왔던 걸 저는 기자촌 살면서 어떻게 알았느냐. 90년대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2천 년이 넘어가면서부터 정말 힐링의 시대인가 보다 했어요. 등산을 하는데 그 이전까지는요, 그냥 슬리퍼도 신고 가고 운동화도 신고 가고, 그냥 이렇게도 가고 했어요. 이젠 더 이상 등산복 안 입은 사람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아니, 골프장 가도 전부 골프복을 입고 온단 말이에요. 골프복 아니면 골프 못 쳐요? 심지어 트래킹복은 따로 있어요. 또 트레킹화도 따로 있어요. 동네 둘레길 걷는데 뭐가 필요해요? 그게 힐링의 부작용이죠. 옛날 골프, 트위드 자켓 입고 그냥 헌트 캡 쓰고 니코보코 바지 입고 그냥 풀밭에 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은 전문화됐어요. 힐링의 시대에 왔구나! 우리가 과거에는 엥겔지수만 갖고 그 사회의 수준을 따졌잖아요. 90년대까지는 통했어요. 2천년대 오면서는 엥겔지수 아무 의미가 없어요. 엥겔지수가 아니라 신(新) 엥겔지수가 필요했던 거예요. 힐링비에 들어가는 것이 계산돼 들어가야 돼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그게 너무 커버리는 거예요. 결국은 80년대 전보다도 더 못 사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개인적으로 오는 거예요. 자꾸 쪼들리는 거예요. 쪼들리는데 보면 볼수록 남들은 더욱더 힐링에 맞는 것들을 해 오잖아요.
결국은 ‘이제는 이것도 아니다 다 접자!’ 젊은 아이들이 외칩니다. 새로운 세대가 외칩니다. 생존하자! 서바이벌의 세대는, 치고 빠지는 기성 세대가 마지막 수익을 위해서 외치는 소리도 되지만, 20대 30대 MZ세대가 앞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다 치고 빠지면서 쓰고 갔던 그 웰빙의 시대와 힐링의 시대에 대해 과감히 폐기한다는 선언이기도 해요.
그들은 기존의 힐링을 하고 웰빙을 하면서 만들어 놨던 몸에 좋은 음식 뭐, 이런 음식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아요. 힐링을 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걸 하다 보니까 힐링의 끝은 어디로 가죠? 명품으로 가죠. 힐링의 끝이 명품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명품의 소비를 완벽하게 대중화, 사회화시킨 건 힐링의 시대예요. 처음에는 그냥 대충 동네에 있는 몽벨를 입고 산에 갔더니 전부 보니까 아크테릭스(Arc'teryx) 입고 오네. 그래서 아크테릭스 할 형편은 안 되고 어떻게 옆에 가가지고 한 10%나 싼 몽츠라스 입고 가야죠. 그런데 좀 싸게 들어서 가지고 싸게 사서 같은 몽츠라스 줄 알고 봤더니 메이드 인 차이나네. 그러한 소비에 대해서도 거부하고 쏟아 붓는 것이 바로 이 세대의 소비 흐름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아직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일어나요. 유감스럽게도 상당수 여성들은 아직까지 힐링 시대의 소비의 끝 세대가 되고 있는 현실이 좀 강해요. 그래서 그런 것을 깨고 난 여자들이 뭐라 그러느냐? ‘요즘 여자들 옷 입을 게 없다!’고 하죠. 여자들도 빨리 깼으면 그런 요즘 시대에 맞는 예쁜 옷이 많이 나왔을 텐데, 남자들이 먼저 깨다 보니까 남자들한테 맞는 옷들이 많이 나오죠. 음식도 먹는 방향이 달라져요.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것도 있죠.
아무튼 젊은 사람들이 기지개를 켰다는 거예요. 웰빙의 시대를 이끌었던 것은 여기 계신 분들이 아니에요. 여기 계신다면, 여기 민 선생님을 빼고 나서 세 분의 세대 이상이 몰라요. 갑자기 눈이 번쩍하는 걸 봤어요. (웃음) 왜냐하면 웰빙의 시대는 먹고 사는 것에 힘들면서 기회를 봐서 사회적으로 성장해 왔던, 지금 현재의 이 사회를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붐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이 대부분은 집에서 자기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몸에 좋은 음식을 외는 것을 겪었을 거예요. “이거 몸에 좋아, 이거 먹어야 돼, 이거 먹어야 힘나” 그런 것을 강요 받으면서 드셔보신 피(被) 웰빙 시대 분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럼 그 피웰빙 세대가 누구냐? 바로 힐링 세대의 주인공들이에요. 여기 계시는 몇 분들을 빼고 나서 대부분들이 힐링 시대의 주역인 세대들이에요.
아무튼 바뀌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언어를 갖고 몸을 갖고 차를 갖고 또 이렇게 여러분 만났습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글귀를 어떤 차통에서 봤는데 그 뜻을 좀 알고 싶습니다.
그 말을 처음 썼던 분은 라다크(Ladakh)를 여행했던 어떤 서양 분께서 쓰신 이름이죠. 그분의 어떤 오래됐다는 것은 우리 현대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오래됨의 기준이었겠죠. 제가 생각하는 오래됐다는 것은 4천 년 이전 이후가 아닌, 그 이전 7천 년을 생각하는 흐름이에요.
우리가 우리라고 하는 모습의 여러 표현 가운데 언어도 있고 옷도 있고 먹는 것도 있죠. 그것 속에서 엄청나게 오래된 것이 있을 텐데요. 고려시대 때 고려 국민들이 뭘 덮고 잤을까요? 다 이불 덮고 잤겠죠. 그런데 솜은 당연히 없죠. 목화가 안 들어왔으니까. 비단 없죠. 그러면 뭐 덮었을까요? 진짜 이불 덮었던 거예요. 풀을 이어놓은 것이죠.
풀을 멍석처럼 이으면 못 덮어지지만 도롱이처럼, 비 올 때 옛날에 썼던 도롱이 있잖아요. 그렇게 여러 겹 이으면은 덮을 수 있잖아요. 그것도 상당히 따뜻했을 거예요. 나름대로 천연 덕(duck)이잖아요. 천연 다운(down)이잖아요. 그렇게 덮었어요. 고려시대까지 그렇게 덮었어요. 우리가 지금 덮고 있는 이불은 풀을 이은 것이 아니라, 이어진 풀이 아니라 천 덮개죠. 천 덮개 이름을 이불이라고 그러죠. 사실상 우리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 양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 중에 상당수는 최근에 이루어진 게 많아요.
그리고 이불 덮개 안에 뭘 넣었을까요? 겨울에 천만 두껍게 하면 그거 덮다가 다음 날 아침에 압사당해요. 광목을 갖고 했다고 쳐요. 또는 베를 갖고 추위를 가릴 만큼 두껍게 해봐요. 베를 두껍게 해가지고 이만큼 두께 있잖아요. 그러면 그 덮는 순간에 숨이 콱 막히면서 가슴뼈가 으스러질 수도 있는 정도로 무게감이 있어요. 저는 어릴 때 한 7살 때까지 베 옷만 입고 살았거든요.
무거워요. 저처럼 지금도 웬만큼 몇 kg 나가는 옷 입어도 무게를 못 느끼는데도, 베옷을 겨울에 겹쳐 입잖아요, 저도 무거웠어요. 활기 왕성한 저도 무거웠어요. 이불로써 역할 할 만큼 덮었다 가는 정말 압사해요. 농담이 아니에요. 그럼 뭘 넣었을까요? 원래 덮었던 걸 안에 넣은 거예요. 천으로 감싼 거예요. 단 그냥 이렇게 짚 같은 거 넣으면 다 흩어지니까, 다 엮고 그 중에서도 보드라운 것만 해가지고 이불로 감싸서 1년 덮고 다음에 봄 돼가지고 뜯어가지고 털어버리고 그리고 이제 봄 됐으니까 그냥 홑겹만 덮고 자도 되죠. 홑겹을 덮고 자도 될 때가 와서 이불청을 뜯어가지고 안에 있던 이 짚 같은 걸 털어내고 또 가을까지 덮다가 살랑해서 상강((霜降)이 되고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또 이제 농사지었던 짚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고운 걸 골라가지고 넣고 그리고 다시 꿰매가지고 이제 겨울 나고 그렇게 했던 거죠. 조선시대 초기까지 그렇게 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불을 덮은 건, 한국 사회에서 불과 300년 밖에 안 돼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생활의 표준을 언제 ‘오래로’ 잡느냐 하는 건 다른데요. 저는 일단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서 써왔던 말, 말이 하나의 체계로서 정착되기 그 이전 단계에 고민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끊임없이 쳐다봤던 하늘, 쳐다봤던 삶! 그게 딱 되면서 인간의 선택은 두 가지로 이어져요. 꿈과 전쟁! 두 가지로 이어져요. 극단적인 양 선택이 역사를 갈라요.
우리가 청동기면 지금으로부터 한 서기 전 1,300년 전 경이라고 그러잖아요. 한국에서 원래 청동기는 그보다 한참 앞섭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한 4천 년 전에 무려 5천 명이 동시에 사망한 전쟁도 있었어요. 유적 발굴을 통해서 확인했죠. 문제는 그게 인류 최대의 사실상 세계대전이에요. 유럽을 가르는 세계대전이에요.
그러한 전쟁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전쟁으로 몰려갔어요. 전쟁으로 몰려가는 전쟁의 언어가 있고 꿈의 언어가 있어요. 저는 전쟁의 언어를 없애고 싶어요. 아예 딜레이트(delete)를 시키고 싶어요. 꿈의 언어가 꽃처럼 피어났으면 싶어요. 아마 그게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수많은 분들의 소망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 말이 안 되는 미신적인 차원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싶어요. 그거는 옛날에 7천 년 동안 고민해 왔던 분들에 대한 모독이에요. 부적이 어쩌고, 뭐가 어쩌고 이런 건 모독이에요. 얼마든지 가능한 설명들이 있는 지혜를 갖고 있는 시대거든요.
그래서 설명 안 되는 것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반대예요. 그런 말들은 결국은 전쟁 언어에 기초하고 있거든요. 무슨 대왕을 불러다가 무슨 귀신 척살하고, 전쟁 아닙니까? 그리고 무슨 귀신 어디다 밥 주고 그러죠. 왜 밥 주겠어요? 써먹으려고 밥 주겠지. 그거 다 전쟁언어예요. 부적도 전쟁 선전 포고문인 경문의 한 일종이에요. 저는 그런 거 전면적으로 반대합니다. 오직 전쟁을 떠난 꿈의 언어만 바랍니다.
저는 관심 있는 게 마음 세계 안에 무아(無我)인데 무아에 대해 어떻게 정리하고 계신지요?
무아를 왜 얘기할까요? 사람들이 ‘아(我)’가 있으니까 얘기하는 거죠. 그때 ‘아’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하는 거예요. 무아를 얘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무(無)라는 말 즉 아니다, 없다라는 말 뒤에 있는 ‘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아’를 뭐로 봤냐는 거예요. ‘아’를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봤기 때문에 무아가 나온 거예요.
‘아’ 가 과연 부정적이어야 될까요? ‘아’가 정말 없어야 되는 나일까요? 자기가 없어야 되는 나를 자기가 만들어 놓고 또 없애겠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저는 그래요. 무아가 아니라 아름다운 ‘아’를 만들자! 내 안에 있는 아름다운 ‘아’를 찾자! 그 ‘아’를 버려놓고 내가 저질러 놓은 것들을 청소한다는 의미에서 부활을 하면은 뭔 의미가 있을까? 이미 ‘아’라는 것 자체에 자기의 선입견이 들어가 있다는 거죠. 노자가 했든, 누가 했든 간에 ‘아’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애야 될 대상으로 존재했다는 거예요.
노자는 긴 세월 많은 분들에게 영향을 줬지만 종교로까지는 성립 안 된 것 같아요. 불교에서는 대아(大我)라 그러고, 진아(眞我)라 그러죠. 진짜 나와 무아는 얼핏 보면 비슷할 수 있지만 아니에요. 이렇게 물어요. “홍선생님 오늘 뭐 어디 조금 전에 소변 보고 오셨어요?” 그러면 “아닌데요.” 그러면 뭐 어쨌다는 거예요? 그림이 안 그려지는 거예요. 그렇죠 소변 보는 걸 그리고 나서 지웠더니 그 자리에 딴 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 “소변 보고 오셨어요?” “아니요. 대변 보고 왔습니다.” 그럼 그림이 그려져요.
예를 들어서 무언가 없다고 하는 것은 있는 그림이에요. 그 그림은 미리 ‘아’를 그린 거예요. 그리고 나서 와장창 깬 거예요. 부정어를 갖다 붙인 거예요. 그래서 부정어가 있기 때문에 무아라 그러는 것이죠. 무위(無爲)라는 말은 있을 수 있죠. 爲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있을 수 있지만요.
무아라는 말 자체에는 이미 선입견을 본인이 만들어놓고 본인이 깨려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애초에 선입견을 만든 나로 돌아가서 선입견을 만들지 말자! 선입견 없는 내가 되면 된다! 나라고 하는 말은 그 어떤 생각에서라도, 없앨 내가 아니다! 노자도 2,400년 전에 나온 사람이죠. 노자에게 말하고 싶어요. 7천 년의 고민을 생각해 봤는가? 나를 찾아 본, 나를 찾아 헤맨 7천 년의 그 앞의 고민을 생각해 봤는가? 그런데 무아라는 말은 노자가 한 말 아니에요.
그 ‘아’를 찾아온 속에서 부정적인 모습도 있죠. 그래서 어떤 때는 헤드 카피(head copy)로는 쓸 수 있어요. 그러나 나를 정립시키는 데, 나 아(我)라고 하는, 아라고 하면서 나를 세우는 데 걸린 그 7천 년의 고민에 대해서 노자는 이해했는가? 노자는 이해 못했다고 생각해요. 노자는 그 정도 현인은 아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노자의 도덕경을 아무리 읽어봐도 노자는 그렇게 현인은 아니라고 생각 들어요. 예수님이나 공자님이나 싯다르타 같은 분에 비하면 한참 좀 더 흘러가는 바람 소리를 좀 더 들었으면 싶은, 노자야말로 정말 후대 사람들이 키워놓은 영웅이에요.
그가 살았을 때 그의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시골에 사는 글줄이나 아는 평범한 한 노인이었어요. 그가 역사 즉 춘추전국 시대에서 너무 커버린 거예요. 그 커버린 것 자체를 또 인정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줄을 붙여요. 왕필이 줄을 붙이고, 누군가 줄을 붙이고, 장자는 노자를 좋아한 적도 없는데 장자를 노자 라인으로 만들어 놓고 그랬죠. 또 현대 석학 김용옥 같은 사람이 대단하게 써놓고 했죠. 그런데 노자는 그럴 만한 사람인가? 왜 우리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봐야 되죠? 그의 말에 그만한 포스티잇을 붙일 만한 이상의 뭐를 줘야 되죠. 오히려 그 구절보다는 그렇게 부정으로 되었던 나를 조금만 더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그래 생각합니다.
차를 이제 정말 길게 마시지 않았지만, 차를 마시는 동안 웰빙을 느끼고 힐링을 느끼고 그러는데요.
그런데 뭔가 이상했거든요.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 그 이상이 있죠.
차에 만약에 꿈의 언어가 담겨 있다면 그 꿈의 언어에 좀 더 다가가는 게 뭐일지, 제 나름대로는 생각하는 게 있는데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듣고 싶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이런 표현이 있어요. 선선이유지 그러니까 뭐든지 이 세상에 있는 것들 있잖아요. 저는 웰빙을 아까 뭐라고 했잖아요. 힐링 뭐라고 했잖아요. 저도 웰빙을 이용해요. 힐링을 이용해요. 힐링을 통해서 더 나갈 수 있다고, 웰빙을 통해서 더 나갈 수 있다고, 서바이벌를 통해서 더 나갈 수 있다고, 더 나갈 수 있는데 기댈 언덕이, 내가 넘어설 언덕에서 기대기를 거부하면 선선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구름을 넘어야 산이 있고 또 작은 개울을 건너야 큰 강이 나오고 하듯이, 웰빙에서 시작하면 어때요? 웰빙에서 안 멈추면 되죠. 차라는 물건이 웰빙에서 사람을 멈추게 할 만큼 작은 물건이라 생각 안 해요. 사람을 힐링에만 멈추게 할 만한 작은 물건이라고 생각 안 해요.
언젠가는 바람이 들리는 곳으로 선선하게 웃으면서 데려갈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웰빙으로 차를 마시는 분도 환영하고 힐링으로 마시는 분도 환영하고, 그 이상을 찾는 분도 환영을 하고 웰빙에만 머물려는 분들도 환영해요. 왜 절대 못 머무르게 하는 것이 차니까.
선생님 평소에 궁금했던 건데요. 음악을 들으면서 처음 듣는 음악인데 좋은 게 있고 특히 신(新)음악이 있고 저만 느끼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그런 걸 느껴요.
그럼요.
그런 거는 어째서 그런 건지?
음악이 율(律)이라 그러잖아요. 율이라 그러는데 음악에는 엄밀하게 말하면 음(音)과 조(調)가 있잖아요. 각 음이라는 것도 우리가 인위적으로 나눠놓은 거잖아요. 7개의 음으로 보든, 5음으로 보든 더 중요한 것은 그 5음은 표준이고 결국은 소리라는 건 옮겨가잖아요.
예를 들어서 1번의 음에서 2번의 음으로 옮겨가도 옮겨가는 과정이 있잖아요. 2번의 음에서 3번의 음으로 가더라도 옮겨가는 과정이 있잖아요. 1에서 3으로 가더라도 1에서 4로 가더라도 1에서 5로 가더라도 옮겨가는 과정들에 의해서 하나의 결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데 그 결과 맞는 소리가 나올 때 듣기 좋아지고 그 결과 맞지 않는 소리가 나오면 안 맞아지는 거죠. 안 즐거운 거죠. 그런데 어떤 분은 어떻게 옮겨가는 데 어울리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고 어떤 것에는 어떻게 어울려 가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만 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는 목소리 자체에 화음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도미솔의 화음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고 이렇게 도파라의 화음을 갖고 있는, 저절로 갖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도파라의 화음을 주로 갖고 계시는 분이 도미솔의 화음에 해당되는 노래를 자꾸 부르시잖아요. 불편한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의 소리에 맞는 율, 찾아가는 율을, 조를 맞아야 되는데 어떤 것은 어떤 분이 부르면 참 아름다운데 ‘저분이 저렇게 노래를 잘 불렀어? 저렇게 듣기 좋은 노래를 불렀어?’ 이런 느낌을 주죠.
그런데 어떤 분은 평상시에 노래를 참 잘 부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노래를 시키니까 이상하고 듣기 싫은 거예요. 저분이 오늘 컨디션이 안 좋나? 왜 잘 부르는 분인 걸 아니까. 그런데 안 맞는 거죠. 각자에게는, 각 음악에는 각 음악에 맞는 소리가 있고 각 소리에 맞는 조율이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걸 못 맞추면 대중화가 될 수 없죠.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어느 시대 어느 조건에서라도 그 율이 (어떤 율이냐의 문제를 떠나서) 현재 권장할 만한 율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율에 맞는 목소리가 있죠. 그 율에 맞는 목소리가 나오면 그는 인기를 끌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겠죠.
또 반대로 그렇게 평균적으로 느끼지만 내가 현재 그런 율, 그런 소리를 받아들일 몸이 아니에요. 그러면 평균적으로는 저런 소리 저런 율이면은 편하게 잘 들릴 텐데, 나에게는 안 그럴 수가 있죠. 그래서 내가 편하다고 해서 옆에 있는 분이 다 편하지는 않죠. 그래서 어떤 분은 가수로 치면 팬클럽을 엄청 끌고 다니는데 어떤 분은 혐오하는 분도 있거든요. 그 가수의 인성 때문도 아니고 선입견 때문도 아니고 소리 자체가 싫다는 거예요. 그게 다 맞으려면은 대리남조국이 당나라에 보냈던 봉성악 정도는 돼야 되는 거죠.
그래서 얼마나 그 음이 어려우면, 악이 어려우면, 공자가 그러잖아요. 옛날 요임금 때 만들었던 그 소(韶)를 듣고는 3개월 동안 육미(肉味)를, 고기 맛이 생각 안 났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진선진미(盡善盡美)하다고! 진정으로 탁 들어붙어 있고 사람 몸에 착할 선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고자 하는 생각이 쫙 붙어 있는 걸 말하거든요. 착 붙을 선(善)이거든요. 착할 선이라는 게 착 붙는 거예요.
그런데 또 너무 아름답다, 원래 존재 아름답다, 알이 움을 키우듯이 아름답다! 우임금의 음악을 듣고 나서는 아름답긴 한데 착한지 모르겠다! 아무튼 악에서 완성된다는 거! 자기 자신이 하나의 악이 돼가는 과정에서도 걸리는 게 있죠. 평화로운 음률이 흐르잖아요. 그 사람이 그것을 자기 마음 속에서 왜곡, 재해석하지 않는 이상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내일 가서 우리 윤봉길 선생이 홍콩공원에서 도시락을 던져야 되잖아요. 그 전날 꽃피는 음악이 당신에게는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눈물을 흘리게 할 수는 있으나 아름다울 수는 없어요.
반대로 너무너무 그렇게 아름답게 시골에서 원앙 소리 들으면서 사실 분이 뭐 이렇게 승리의 행진곡 같은 걸 듣잖아요. 부담스러워요. 부담스럽고 아무것도 안 들려요. 그냥 잡소리로 들려요. 사람의 자기 상황에 따라서도 객관적으로 부르거나 연주하는 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소리는 관현악단 전체가 연주하는 것보다 챔버(chamber) 연주단이 연주하는데 누군가가 부르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어요. 어떤 소리는 챔버만 하면, 관이 없으면, 뚝딱거려주는 거나 윙하는 게 없으면 소리가 허전할 수도 있어요. 다 맞는 거죠. 그런 걸 생각해서 결국은 인스트루먼트(Instrument)를 배치하는 거고 또 그런 걸 잘하는 사람들이 대중의 흐름을 잘 읽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BTS도 만드는 거죠.
그 음악의 권장성 여부는 다 떠나서요. 안 어울릴 수도 있어요. 집에서 같이 계시는 분도 다를 수 있어요. 옆에 친구분과도 다를 수 있고요. 그런데 탓하면 안 되죠. ‘너하고 나하고 이렇게 다르구나 존중하자!’
어느 분이 인터넷 페이스북에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우리 집 젊은이라고 하면서 그 젊은이는 그분의 딸이에요. 그분은 65년생의 여성이에요. 페이스북에 “우리 집 젊은이랑 얘기를 하는데 이선균 씨가 죽어서 불쌍하다고 했더니 뭐라 그러냐 하면, 슬픈 건 맞는데 불쌍한 것까지 모르겠다”고 “불쌍한 건 그 집 애들이, 남은 식구들이 불쌍하지, 자신은 잘못도 많이 하지 않았냐”고 그러면서 그러더라고요.
그럼 결론이 뭐냐면 ‘젊은 사람하고 싸우지 말자. 사이 좋게 지내자. 어차피 잘 안 통하는데’ 서로 다른 게 있을수록 잘 지내야 되는 그 결론은 아름다운 결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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