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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말씀에 대한 놀라운 계시!
(2)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믿음을 불러일으켜 걷게 한 바울의 설교 역시 복음 설교였다. 가서 사도행전 14장을 확인해보라!'
이것이 성령께서 다음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확인했습니다. 진짜였습니다!
사도행전 14:8-10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바울이 이때 무엇을 설교하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5-7절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이처럼 복음을 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막16:20).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티 엘 오스본의 글을 인용했는데, 그분이 설교하는 도중 엄청난 기적들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늘 복음의 진리를 가르친다. ...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1:16). ... 그래서 우리가 가르치는 동안 악한 영들이 희생자들에게서 떠나는 일이 수천 번 일어났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한 사실들을 선포한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그 진리의 사실들을 믿고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말씀들을 확증하셔서 사람들이 구원받고 치료받는다. ... 보통,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는 동안에 귀신들이 사람들에게서 달아난다. 우리가 목격한 대부분의 큰 기적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동안에 일어났다."
이처럼 티 엘 오스본의 성회에서 기적이 일어난 이유는 복음을 성경 그대로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할 때도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보면 "할렐루야! 위암과 대장암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라는 간증이 올려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의 간증인데, 이분은 위암이 대장까지 전이되고, 피고름이 다리 여러 곳에 있어서 몸이 전부 뒤틀려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6년 전에 오셨고 발병한 것은 2년 전이었습니다. 음식을 못 드셨기 때문에 몸은 점점 말라가고 기도를 받아도 뒤틀려진 몸이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복음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구원과 치유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죄에 대해 죽었고, 예수님의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 살아나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을 믿으면 실제로 죄에서 구원받는 것처럼, 치유도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았나니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구원도 치유도 똑같이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말이 마음에 확 다가왔습니다. 순간 '아~ 구원도, 치유도 이렇게 쉽게 받는 것이구나'라고 깨달아지면서 믿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음식이 들어가고 다시 살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암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중요한 것을 한 가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울이 치유의 은사로 혹은 그의 믿음으로 고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단지 복음을 전했을 뿐이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에게 치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적인 참 복음에 대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김세윤 교수님이 쓴 『칭의와 성화』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나오는 복음에 대한 설명은 심히 탁월하고 보배롭습니다. 권연경 교수님의 『행위 없는 구원?』이라는 책에 나오는 복음과 믿음에 대한 설명 역시 지극히 탁월하고 보배롭습니다. 저는 그 책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두 책을 매우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책에 빠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은 치유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물론 로마서를 중심으로 한 그 책들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 중에 다수가 치유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노파심에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적인 참 복음 즉 바울이 전한 복음은 치유를 포함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사도행전 14장 9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치유받을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그는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음으로써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4:9을 보십시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 '
바울이 무엇을 말했습니까? '거기서 복음을 전했다'(7)고 했습니다. 바울이 구원받는 믿음을 전하였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치유받을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이 치유받을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일 성경에서 복음이라 부르는 것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역시 치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치유는 복음의 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치유를 포함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그냥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 육신의 치유는 복음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날 치유의 복음이 없다면 우리 중 누구도 전도를 위한 성경적인 구원의 복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치유는 예수님의 속죄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사53:4-5)."
잘 알려진 저자는 아니지만, 톰 브라운 역시 그의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다음 사건은 복음이 타협 없이 전파될 때 사람들이 치유되리라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바울과 바나바)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행14:7-10)'.
앉은뱅이는 무엇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가?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 즉 '치유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다는 데 주목하라. 이 사람은 치유받을 만한 믿음을 어디서 얻었는가?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바울에게서였다. 믿음은 복음을 듣는 데서 온다. 치유의 믿음은 치유의 복음을 듣는 데서 온다.
바울이 다음과 같은 전통적이며, 인간이 만든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죄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치유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면 때때로 치유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무엇을 하실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병을 통해 당신에게 벌을 주고 계실 것입니다. 그분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릅니다.'
앉은뱅이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치유받을 만한 믿음'을 결코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이런 말을 듣는다. 이들이 성경에 나오는 이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전통적 가르침은 너무나 많이 받았지만 정작 성경의 가르침은 충분히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경적인 복음을 타협 없이 전하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신 후 우리에게 표적을 행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한 이유입니다.
마가복음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믿는 자'는 당연히 그가 전파해야 할 치유를 포함한 성경적인 복음을 믿는 자입니다. 복음은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에게 믿음을 줍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가복음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령님의 분명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나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그리고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 너희를 따르리라!"
한편, 이 점에 있어서 장로교나 감리교보다 성결교와 순복음 교단이 옳습니다. 성결교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 4중 복음을 주장합니다. 순복음은 여기에 하나를 더해서 5중 복음을 주장합니다. 5중 복음에 제가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복음에 신유를 포함시킨 것은 옳았습니다. 복음에는 치유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치유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은 복음전파가 어떠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복음전파는, 물론 그분들의 열심은 귀하지만 CCC나 네비게이토나 전도폭발 같은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16장에서 말씀한 대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15-18, 행1:8). 즉 능력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고전2:1-5).
이제 정리해보면, 바울이 전한 '믿음의 말씀'은 치유를 포함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치유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10장 8절과 17절을 모든 설교의 시금석으로 삼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즉 복음이 아닌 다른 주제의 설교를 할 때 믿음이 안 생긴다 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설교할 때마다 회중들에게 치유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항상 단지 믿음의 말씀(복음)만 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디모데뿐 아니라 바울도 믿음의 말씀뿐 아니라 그 외 다른 교훈들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서신 전체가 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자가 믿음의 말씀만 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설교가 믿음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로마서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성경에는 복음(믿음의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교훈을 위한 많은 말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다음 구절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게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믿음의 말씀'인 복음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것은 믿음의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위한 말씀들입니다. 게다가 히브리서 기자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히브리서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말씀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믿음의 말씀만 전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교계를 보면 균형을 잃고 믿음의 말씀에만 심취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 W. 케년, 티 엘 오스본, 케네스 코플랜드, 프레드릭 프라이스, 찰스 캡스가 그럼 분들이요, 『당신의 산을 향해 말하라』라는 책을 쓴 크리스틴 다르그, 『당신이 말한 대로 얻게 됩니다』라는 책을 쓴 돈 고셋, 『당신은 이미 가졌습니다』라는 책을 쓴 앤드류 워맥도 같은 부류일 수 있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들을 전문적으로 번역해주어서 감사하긴 하나, 모 출판사를 만든 목사님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저는 그분이 믿음의 말씀을 좋아하면서도 해긴 목사님이 받은 가장 중요한 계시 중 하나인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믿지 않는 다는 말을 듣고 참으로 경악했습니다.
저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분의 이름을 뺐습니다. 특히 해긴 목사님의 경우, 그분이 주님께 받은 사명이 믿음을 가르치라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해긴 목사님이 구원론을 등한히 한 것은 옥의 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가르치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마5:19). 지금 시대에 율법을 세세하게 가르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완성된 의미로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또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마28:20). 그런데 해긴 목사님만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해긴 목사님이 사명 따라 믿음의 말씀에 집중한 것은 옳은 것이지만, 다른 진리를 다소 소홀히 한 것은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물로 해긴 목사님은 다양한 많은 진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론이나 견인의 교리의 경우 충분히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케네스 해긴이나 티 엘 오스본 같은 최고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직업적인 이단사냥꾼이나 미국의 이단사냥꾼 행크 헤네그라프처럼, 그리고 분별력 없이 그들에게 놀아나는 일부 학자나 목사들처럼 어줍지 않은 지식으로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분들을 존경하고 장점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론이 진리의 기초이듯(딤후3:15-17, 히6:1-2) '믿음의 말씀'이 진리와 설교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회자가 항상 '믿음의 말씀'만 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성도들에게 심어주어야 하고 자신도 그런 믿음을 가져야 진짜 성공적이고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형제님, 정말 놀라운 내용입니다. 이보다 정곡을 찌르는 설교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복음(믿음의 말씀) 통한 구원(치유, 축복) 아니면 십자가를 통한 자아부인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뉘어져 서로 복음을 잘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고, 또 대부분이 성도들도 이쪽과 저쪽을 왔다갔다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변승우 목사님의 '믿음의 말씀'(복음)과 다른 목적(교훈과 경계)으로 주어진 말씀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저에게는 다이아몬드와도 같은 가치가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누리기 위한 믿음의 말씀(복음)도 중요하고, 성장하기 위한 진리(교훈)의 말씀도 중요하네요. 역할이 다르니 둘다 취하고 적용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가장 큰 고민 중에 한 가지가 해결됐습니다. 아, 형제님이 때맞춰 올려준 글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의 서신서가 너무나 현실적이며 우리가 꼭 적용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말씀들이었어요! 충돌하는 것만 같았던 말씀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해주신 형제님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