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든 이 시기.. 저의 이야기가 모든 분들에게 희망의 메세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부터 태종이의 초.중년기의 인생스토리를 써보려한다..
2010년 05월 02일 나는 28세 나이로 지금의 와이프와 파주 중앙예식장에서 결혼을 했다.
혼수론 미리 준비한 임신 5개월 ㅎㅎ...중요한건 임신 사실은 처갓집 식구들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게 결혼식을 성황리에 마치고 피로연을 간단하게 한후 우린 인천공항으로 출발 했다..웨딩카는 지금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 진희가 해줬다ㅠ.ㅠ
난 이미 피로연에서 술이 만땅 차이였다 ㅋㅋ
그렇게 인천공항 모텔에서 하루 투숙을 하고 아침 일찍 필리핀 최고의 휴양지인 보라카이로 출발 했다~~
5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가니 와이프가 힘들어 한다..온 몸이 퉁퉁 부었다...암튼 무사히 현지 도착해서 가이드 미팅 후 숙소에서 짐을 풀고
우린 일정 대로 움직인다...가장 기억에 남는건 신혼 여행 마지막날 가이드와 함께 클럽에가서 데킬라에 취해 현지인들과 춤을 추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정말 재미 있었던거 같다...
그렇게 신혼 여행을 무사히 갔다 오고 먼저 처갓집으로 갔다..먼저 인사를 드리고 장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고 무릎을 꾸르고 "장모님 저희 지금 임신 5개월 째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 장모님께서 "놀라시면서 내가 그럴줄 알았어" 라고 말씀을 하셨다..나는 이렇게 생각 했다..몰라~ 결혼식도 올리고 했는데 모~물리라고 하시겠어?라고
맘을 먹고 말씀을 드렸다ㅎㅎ 속이 후련했다..그동안 와이프가 입덧도 대놓고 못하고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미안했다ㅠ.ㅠ
그러고 평범한 가정 생활을 유지하면서 결혼생활을 시작 했다.그때 당시 난 덕이동에 슈즈 멀티샵을 운영하고 있었다..그렇게 5개월 뒤~~
2010년 10월 27일 드디어 우리의 백호 아들냄이 준영이가 탄생을 하게 된다. 3.71kg으로 튼실하게 세상에 나오셨다 ㅎㅎ
웃긴건 나오다 골반에 어깨가 걸려 일명 뚤어뻥같이 생긴 기계로 머리를 잡아 당겨서 나왔는데~~
나와서 보니 머리가 마치 꼬깔콘 모양 이였다ㅎㅎ 그리고 정신없이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받았다..
그런데 옆에서 장모님께서 하시는 행동을 보았다..알고 보니 귀와 손가락을 확인 하셨다...그런데 놀라운건 내 귀랑 똑같이 발랑 까져서 나온 것이다~~헉!!
다행이도 손가락은 휘어져 있진 않았다...그때 느꼈다..아무대서나 막~~뿌려 되서는 않되는 구나...씨는 못속이는 구나ㅎㅎ
그렇게 3일정도 입원 후 집으로 돌아 왔다.. 돌아오는 길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와이프한테 너무 미안했다ㅠ.ㅠ
남들 다가는 조리원을 못갔다..내가 미안해 할까봐..와이프가 먼저 집에서 몸조리 하면 된다고 말했다..그때 나의 마음이 너무 아펐다..내자신 한테도 화가 많이 났다...
그렇게 집에서 장모님께서 보필을 하시면서 장모님의 업적이 나온다 ㅎㅎ
아직 아기의 살결이 연해서 그런지 장모님께서 귀에 테이프를 붙여서 발랑 까진 귀를 정말 잘생긴 귀로 만들어 주셨다 ㅎㅎ감사합니다^^
그렇게 행복하지만 평범하게 결혼 생활을 해왔다..그렇게 한해를 마무리 하고 2011년 7월 난 하던 사업을 접는다..매출도 떨어지고 본사의 갑질이 너무나 꼴도보기가 싫었다..
그후 빠르게 무언가를 찾다가 파주 문산에 문산제일시장이 있다.. 정문 통로에 노점이 1호점 부터 6호점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다.. 3호점이 떡복이 였다..
떡복이를 먹으면서 거기 사장님께 여기 노점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앞에 1호점이 가게를 내놨다고 해서 연락 해보라고 해서 점주와 통화를 하고
그 노점을 계약을 했다..그렇게 난 노점으로 다시 시작을 한다.. 기존 메뉴가 족발이여서 난 기존 메뉴를 이어서 가지고 갔다..그렇게 3개월 정도를 했나?
갑자기 매스컴에서 족발 삶는 물이 비위생적이다 이러면서 족발을 까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 이후 매출은 점점 줄어 들고 결국 족발을 접고 붕어빵으로 메뉴를 변경한다..
하루에 30~40 정도 매출이면 장난 아니게 팔았다..그렇게 열심히 붕어빵을 팔고 있는데 전직장 풋마트에서 나의 사수분이 전화가 왔다..
형이 사업을 시작 했는데 같이 일좀 하자고 해서 이틀을 고민하고 하던 붕어빵 장사는 장모님께서 맡으셨고 나는 그회사로 출근을 하게 된다..
정말 열심히 일한거 같다.. 새벽 3~4시까지 야근 하면서 일하고,, 멀티로 안하는게 없이 빡쎄게 일을 했다...그런 와중에 난 2째를 만들었고 2012년 12월 20일
4.12kg으로 지금의 민서를 출산을 한다..진짜 너무나 좋았고 행복했다..하지만 행복은 잠시 였고,,현실이 나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ㅠ.ㅠ
그래서 더 열심히 일을 하면서 출장도 다니고 일에 미쳐서 일만 한거 같았다...
그런데 나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일하는 것에 대가는 없었다..야근을 하면 야근 수당도 없고 거기다 퇴직금을 포함해서 급여를 받았고..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앞으로 비젼?
그런거 없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 2년 여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다... 쉽지 않은 결정이였다ㅠ.ㅠ
그렇게 퇴사를 하고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내인생의 한탄도 많이 했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되나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던중
문산의 보험하는 친구가 연락이 왔다.. 그전부터 같이 보험 해보자.. 하지만 그때는 내가 다니던 직장도 있었고 해서 생각 조차 하질 않았다..
그 시기에 네트워크마케팅도 하던 중이였다.. 친구 보험 사무실도 강남이고, 네트워크마케팅 사무실도 강남이라 강남에서 친구와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후 난 네트워크마케팅과 보험을 같이 하게 된다.. 그렇게 1달정도 병행을 했는데 출퇴근 문제도 그렇고 두가지를 병행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집근처 가까운데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던중 또 ㅎㅎ중학교 친구한테 연락이 온다.. 그 친구는 중국에서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그 친구도
상황이 좋게 들어온게 아니였고, 서로 힘든 시기였다..그렇게 우린 동업을 하기 시작한다..사업 아이템은 여성화 구두 였다..
내유동에 조그만한 사무실을 얻고 으쌰으쌰 화이팅 넘치게 시작을 했고, 전국을 돌면서 오프라인 영업도 다녔다..그렇게 열정적으로 일을 했는데 결과물은
좋지가 않았다.. 경기침체 영향도 있었고..여성화 시장이 포화 상태였다ㅠ.ㅠ 그렇게 우린 대책회의를 하고 사업 아이템을 변경을 한다..바로 나의 주특기인
운동화고 결정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하고 뚜껑을 열었다..왠걸? 매출이 예상외로 너무 않좋았다ㅠ.ㅠ 그렇게 3개월 가량 꾸역꾸역 쇼핑몰을 운영하다
친구와 나는 투잡거리를 찾게 된다..친구는 야간에 호프집 알바!! 나는 오후에 가락시장으로 야채 배달하는 짐발이를 병행 한다..힘들었다ㅠ.ㅠ
그러던중 친구가 호프집 사장의 제안으로 석촌동 가게를 위탁으로 운영을 하게 되어 친구가 석촌동으로 가면서 동업은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나도 짐발이 일은 여름에만 하는 일이라 그것도 그만 하게 됐다..그렇게 또!또!또! 무엇을 할까 고민 중에 장모님께서 그때까지 운영하시던 붕어빵을 팔러 다시 노점으로 간다..
붕어빵을 팔면서 진짜 그일이 너무 하기가 싫었다..그렇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을때 와이프 오빠가 고양동에 북경깐풍기라는 호프집을 오픈을 하게 되어
2014년 11월 10일 부터 일을 시작한다.. 그냥 마음 비우고 일을 하면서 월급 200만원 받으면서 하는데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투잡거리를 찾던중 가장동 삼거리에
나이스스크린 골프장에 면접을 보게 된다. 나는 그냥 골프장에서 일을 하는 것인지 알고 면접을 봤는데 그게 아니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고 골프장 직원은
채용을 하질 않았다.. 그리고 이틀 후 였나 나는 호프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면접을본 나이스스크린 골프장에서 연락이 왔다..알바 아주머니가 집안 사정 때문에 일을
못할거 같다고 나보고 일할 수 있냐고 물었다..난~ 바로 내일부터 출근 한다고 얘기를 하고 그 다음날 부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골프장 알바..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호프집 알바를 병행 한다..힘들었지만 나를 다시보게 되었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지난 1년간의 시작하고,접고 또시작하고 또접고 이러기를 반복하면서 생활비를 거의 카드로 연연하다가 드디어 자금줄이 끊어져서
문제가 터졌다..카드값을 못내면서 난 채무자가 되버렸고 그때부터 하루 일과를 빛 독촉의 전화로 시작을 했다..너무나 짜증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상황에 골프장에서 일한지 3일 정도 되었나?스트레스좀 풀어 볼까해서 골프장 내에 레슨 선생님께 골프 좀 알려 달라고 했더니
선생님 왈~~? "내가 왜? 이런 식이였다.. 내가 꽁짜로 알려 주면 넌 모해줄건데ㅠ.ㅠ
알고 봤더니 철저하게 give & take를 좋아하시는 분이였다..그리고 지금 나를 골프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것을 알려 주는 나의 멘토이자 스승님인 "골프의 신 때갱이"님 이였다..
그 후 이틀 뒤에 난 기본 적인 자세와 용어를 간단하게 배운 후 골프채란 것을 처음으로 잡는다.어색했다. 그런데 드라이버를 처음 처봤는데 비거리가 180미터가 넘게
나간 것이다..그때 당시에는 이게 많이 나간건가 하고 담담 하게 생각 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처음 치는 쌩초보가 처음에 그정도 치면 골프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고 말이다..
그렇게 몇시간 골프를 쳤는데 그때만은 너무나 재미있었고 힘든 일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골프를 치기 시작했고, 지속적인 레슨을 받으면서 게임도 하게 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처음엔 140타~150타 왔다 갔다 한거 같다. 그래도 구력 1달도 되지 않은 사람이 그정도 치면 잘하는 거다 라고 얘기를 듣고 탄력을 받아서 레슨도 더 열심히 받았고
열심이 골프를 치게 됐다..그러던 어느날 골프친지 한~~1달 조금 넘은거 같다..혼자 게임을 쳤는데 스코어가? 스코어가? 85타라는 점수로 게임을 마무리를 하고
기뿐 마음에 사진을 찍어서 "골프의 신 때갱이" 스승님께 보냈다..그러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축하한다고 그니깐 지금 집으로 오라고~~그러고 전화를 끊고
바로 달려 갔다..그렇게 난 스승님과 심오하게 대화를 했다..대화의 주제는 투어프로라는 주제였다..내가?내가 골프선수?ㅎㅎ
지금 부터 투어프로로 목표를 삼고 골프를 치자고 말씀을 하셨다..넌 골프를 쳐야 하는 사람이라고ㅎㅎ 쑥쓰러웠지만 한편으론 나도 잘하는게 있구나 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이후 난 북경깐풍기 호프집 알바를 그만두고 현재는 골프장에서 골프에만 전념을 하면서 맹연습을 하고 있다..하루에 골프공을 1300여개 정도 치고
웻지 S,A,P로 5,10,15,20,25,30,35,40, 미터 등등 연속으로 12개를 쳐야하고 퍼터로 5,10미터를 연속으로 12개를 치는 테스트를 현재도 하고 있다..
연속으로 11개를 치고 12번째에 기준에 벗어나면 불합격이다..쉽지는 않다..하지만 내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이정도도 못하면 어떻게 투어프로가 될수 있냐?
남들 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만큼 강도 높은 테스트와 연습을 해야만이 투어프로의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여지껏 목표와 꿈이 없던 나에게 목표와 꿈을 가질수 있었던 것에는 "골프의 신 때갱이"님이 있어서다..
참 독특한 분이다ㅎㅎ 일반 사람이랑은 거리가 아주~~~먼 분이다 ㅎㅎ
어떻게 골프의 신이 되셨는지 내가 알고 있는 사실만 적어 본다..
그 분은 골프를 미친 듯이 하루에 돈으론 10만원, 시간으론 10여시간 이라는 것을 투자를 하면서
4개월 동안 골프만 치신 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골프를 못치신다ㅠ.ㅠ
4개월 동안 너무 심하게 골프를 쳐서 양쪽 팔을 수술을 하고 현재는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면서 레슨을 시작했고, 전국에 제자가 103여명이 그분의 손길을 거쳐 갔다. 나도 그중의 한명이다.
근데 여기서 사람들이 의구심을 많이 갖는다? 어떻게 골프를 4개월만 치고 레슨을 하고 그것도 하루만에 알려주는 원데이 레슨을 하느냐고?
그럼 나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얘기를 한다.
그럼 미쳤다고 지방에서 비싼 비행기 타고 오고 4~5시간 걸려서 차를 끌고 오느냐고? 현직 프로로 활동하는 사람도 레슨을 왜 받고?
구력 20년 이상 되는 사람은 왜 레슨을 받으로 오냐구 말이다..의구심은 본인들이 받아보면 말끔하게 살아질것다...
골프의 신 때갱이 원데이 레슨은 이렇다..막상 외부에서 레슨을 받으면 일명 똑딱이만 3개월을 한다..어떻게? 선생님이 "회원님 똑딱이 하고 계세요~~그러고 자기는 다른 볼일을
본다..일부~선생님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이 거의 그렇다...골프의 신 때갱이 님은 교육 현장을 떠나질 않는다.
그 현장에서 교육생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자세가 틀린점,공이 왜 안맞는지? 잘못된 습관 등등등 그부분에 대해서 바로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이게 포인트다..
나는 "골프의 신 때갱이" 스승님이 있어 든든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 감사함을 어떻게 보답할지 생각을 해봤지만 나의 현 상황에서는
골프로 성공을 해서 보답하는 것 밖에는 답이 않나온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골프를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하는 목적이다..
앞으로 투어프로로 가는 길은 험난 하고 힘들고, 자신과의 싸움이 커질 것이고, 외부적이 환경 때문에 힘들 것이고 등등 여러가지로 힘들거라 생각한다..
나 자신한테 물어본다..지금의 힘든것이 힘든거냐고?힘들진 않지만 내자신한테 짜증이 나고, 내가족한테 너무나 미안하다ㅠ.ㅠ.
내가 힘이들면 내가족도 힘이 든다..멘탈이 약해지면 이런생각도 한다. 이길이 내가족을 위해 맞는 길인지? 하지만 지금 당장 300만원 500만원을 고정 수입을 벌어서 그수준의
생활을 평생 산다? 당장은 편하지만 평생을 그러고 살기는 싫다..내가 이기적인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난 더 낳은 삶을 위해 골프에 도전을 했고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꼭 이룰것이고 꼭 결과물을 보여 줄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여기까지 나의 결혼부터 현재까지의 인생 스토리를 글로써 끄적여 봤는데 이 짧은 글에서도 많은걸 느낀다 "아~내가 그때는 왜그랬을까?
지금 이였으면 그렇게 행동을 않했을 건데"등등 모~이런저런 참 별짓을 다했구나 ㅎㅎ라고 생각이 많이 들고 앞으로 남은 30대는 골프로 꼭 성공을 하게끔 해야 하고~~
다음 글을 쓰는 시점은 내가 골프치는 모습을 TV 재방송을 보면서 글을 끄적이고 싶다 ㅎㅎ
골프홀릭 때종이 그날이 올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쭈~~욱 화이팅 하자^^
골프의 신 때갱이~ 나의 스승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