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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속으로] 04
S#1. 인하네 집
3부 연결
인하, 비참한 심정으로
웃다가 경환을 노려 본다.
경환 너, 다시 한 번 얘기해봐. 당신? 친엄마가 어쩌구 어째? 그게
지금까지 널 키워준 사람한테 할 소리야? 배은망덕한 놈.
인하 제가 틀린 말했어요?
경환 이 놈이 그래도!
인하 ...아버지도 이러시는 거 아니예요.
경환, 인하의 멱살을 잡고
부들부들 떨지만 차마 손을 대지는 못한다.
인하, 아버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노려본다.
경환, 멱살을 탁 풀어버린다.
인하, 밖으로 나간다.
경환 너, 이 자식, 거기 안 서!
인하, 움찔 섰다가 그대로 나간다.
경환, 부들부들 떨며 서 있고
왕여사, 나가는 인하를 싸늘하게
보다가 방으로 확 들어가버린다.
재숙, 엄마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S#2. 연희네 집 앞 (밤)
명하, 터덜터덜 걸어 올라오는데
고급승용차가 서 있고 벽에 수빈이 기대 서 있다.
명하, 가발을 쓰고 야한 옷을 입은
수빈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다가
마침 고개를 들던 수빈과 눈이 마주친다.
수빈 안녕하세요?
명하 연희 기다리냐?
수빈 ... 예.
명하 그래, 만나고 가라.
명하, 지나치려는데
수빈 저기요.
명하 (가다가 돌아본다)
수빈 그날은 인사도 못하고 갔어요.
명하 (픽 웃고 다시 가려는데)
수빈 저기요.
명하 (본다)
수빈 그때 그 일...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 때문에 곤욕
치뤘다구. 미안해요.
명하 미안해할 거 없어.
수빈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구요.
명하, 다시 가려는데
수빈의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심하게 난다.
명하 저녁 먹었냐?
S#3. 해장국집 (밤)
명하와 수빈, 해장국을 먹고 있다.
두사람, 잠시 말없이 밥만 먹다가
명하 너, 옷이랑 머리랑 왜 그러냐?
수빈 왜요? 이상해요?
명하 이상해.
수빈 예쁘지 않아요?
명하 이상해.
수빈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옷인데.
명하 ... 그래?
수빈 다시 봐봐요. 아직도 이상해요?
명하 ... 응.
수빈 ... 나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요?
명하 ... 대충...
수빈 대충 어디까지요?
명하 알만큼은 알아.
수빈 우리 엄마가 배우였다는 것도 알아요?
명하 ... 그래?
수빈 나 술 한 잔 해도 되요?
명하 쪼꼬만 게 맨날 술이냐?
수빈 엄마 생각만 하면 술이 먹고 싶어. 쪼꼼만 마실께요.
명하 맘대로 해.
수빈 그럼 나 이따 데려다 줘야 되요.
명하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수빈 (씩 웃는다) 나는 그 쪽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데. 군대
가기 전에 뭐했어요?
명하 알 필요 없어.
수빈 궁금해서 그래요.
명하 ... (픽 웃는다) 선반공.
수빈 선반공이 뭐예요?
명하 (짧게 한숨을 내뱉는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쇠 깍는
기술자야.
수빈 음...어렵겠다.
명하 ...
수빈 어머님은 뭐하시는 분이예요?
명하 우리엄마? 가수야.
수빈 음... 그래서 그런 옷들이 많았구나. 아버님은요?
명하 ...없어.
수빈 돌아가셨어요?
명하 아니, 처음부터 없었어.
수빈 ...
S#4. 수빈이네 집 앞 (밤)
수빈의 차, 서고 명하와 수빈, 내린다.
명하, 차에서 내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와 너무 비교되는 수빈이네 동네를 한 번
둘러보고 수빈에게 차 키를 내민다.
수빈 타고 가요.
명하 싫어. (억지로 수빈의 손에 열쇠를 쥐어준다) 잘 자라.
(돌아서는데)
수빈 저기요.
명하, 돌아보는데 수빈,
기습적으로 명하의 뺨에 뽀뽀를 한다.
수빈 안녕. (뛰어들어간다)
명하, 놀라 수빈의 뒷모습을 보다가
뺨을 한 번 슥 문지르고 돌아선다.
S#5. 수빈이네 집 (밤)
수빈,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송여사가 소파에 앉아 있자 놀란다.
수빈, 방으로 가려는데
송여사, 일어나 다가온다.
송여사 누구랑 같이 있다 오는 거냐?
수빈 ... 친구요.
송여사 친구?
수빈 ...
송여사 강회장네 아들은 전부터 알던 사이 같던데, 어디서 어떻게
만났어?
수빈 술집에서 술마시다가요.
송여사 ... 술집?
수빈, 다시 방으로 가려는데
송여사, 다짜고짜 수빈의 머리에서 가발을 홱 벗긴다.
수빈, 송여사를 노려 본다.
송여사 우리 집안 얼굴에 똥칠을 해도 분수가 있지. 거기가 어떤
자리라고, 감히 이따위 몰골을 하고 나타나.
수빈, 상대하기 싫어서 다시 방으로 가려는데
송여사, 뒤에서 수빈의 옷을 힘껏 잡아챈다.
수빈, 넘어지지 않으려 버티고
그 바람에 옷이 부욱 뜯어진다.
수빈, 송여사의 행동에 놀라 돌아보는데
송여사, 수빈의 뺨을 갈긴다.
송여사 에미가 천한 화류계 출신이라는 걸 그런 자리에서까지
드러내야겠냐?
수빈 ...
송여사 둘이 썩 어울리더라. 졸업하는대로 식 올릴 거니까
요리학원에나 열심히 다녀.
송여사, 나간다.
수빈, 송여사에게 뺨을 맞고
고개가 돌아간 그 자세 그대로 서 있다가
벽에 등을 기대고 스르르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다.
S#6. 버스 안 (밤)
연희, 버스의 맨 뒷자석에 지친 얼굴로
앉아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연희의 가방에서 삐삐가 울린다.
연희, 삐삐를 꺼내 번호를 확인하고 갸우뚱 한다.
S#7. 공중전화 부스 (밤)
연희, 전화를 걸어 메세지를 확인한다.
인하 (우울한 목소리)...후...나. 인한데...지금 어디냐?...잠깐
만나주면 안될까?... 잠깐만 같이 있어줄래?...부탁이다...
연희, 기분이 이상하다.
S#8. 단란주점
연희, 두리번거리며 들어와 카운터로 가는데
와이셔츠 단추를 세 개쯤 풀어 헤치고
소매도 걷어 부치고 머리로 마구 흩트러진
인하가 담배를 꼬나 물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연희를 보고 반갑게 다가와 다짜고짜 껴안는다.
인하 아이구, 우리 연희 왔구나.
연희, 놀라며 담배 냄새와 술 냄새,
땀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몸을 빼내는데
인하, 연희의 손목을 잡아
겨드랑이에 끼우고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S#9. 룸
인하와 연희, 안으로 들어서면
친구1,2와 여자 두 명이 노래를 하며 춤을 추고 있다.
연희, 기가 막혀 돌아서려는데.
인하, 자리에 앉으며 연희를 잡아 끌어 옆에 앉힌다.
일행들, 연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음주가무를 펼치고 있다.
인하 한 잔 해라!
인하, 손으로 얼음을 집어 연희 앞에
놓인 잔에다가 넣고 양주를 콸콸 따른다.
인하 마셔! 건배!
인하, 자기 술을 막 마신다.
연희, 벌떡 일어난다.
인하, 다시 연희의 손목을 잡아 홱 끌어 앉히고
손목을 잡은채 다시 건배를 제의한다.
인하 건배!
연희 도대체 날 왜 오라 그런 거예요?
인하 (연희의 입에 귀를 가까이 대며) 뭐라구?
연희 왜 오라 그랬냐구요!
인하 (연희의 귀에 대고) 보고 싶어서.
연희 이거 놔요. 나 가게.
인하 싫어, 못 놔.
연희 이거 놔!
인하 싫어!
연희, 잔을 들어 인하의 얼굴에 확 뿌린다.
친구들과 여자들, 그 광경을 보고 깔깔거리며 계속 논다.
인하, 손으로 얼굴을 훔치고 연희를 빤히 쳐다본다.
연희, 인하의 눈을 맞받아 쏘아보는데
인하, 갑자기 연희의 뺨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키스를 한다.
연희, 인하를 힘껏 밀쳐내고 귀뺨을 갈기고 일어나 나간다.
인하, 그 자세 그대로 가만 있는다.
S#10. 술집 입구
안에서 뛰쳐 나온 연희, 불쾌감과
모욕감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입술을 박박 닦아내며 간다.
S#11. 인하방
아침 햇살이 인하의 얼굴에 비친다.
인하,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가까스로 일어나 앉아 지난밤 일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S#12. 유니온 엘리베이터
인하, 혼자 층수를 세고 있는데
일층에서 문이 열리고 오과장, 소대리가 낮은
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엘리베이터에 탄다.
인하, 뒤로 밀려난다.
소대리 아, 진짜 갑갑하게 생겼네. 그런 돌대가리하고 어떻게 예술에
대해서 논하지?
오과장 어떻게 하겠어? 회장 아들이라는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소대리 왜 하필이면 우리 회사로 온대요? 건설도 있고 유통도
있는데. 건설이 모회사니까 건설 쪽으로 가야 되는 거
아니예요?
오과장 우리한텐 더 좋을 수도 있어. 뭐가 뭔지 잘 모를 테니까
살살 달래가면서 대충 우리 뜻대로 하는 거지, 뭐.
소대리 근데, 그런 애들이 또 고집은 세잖아요? 남의 말 안 듣고. 저
밖에 모르고.
오과장 요즘은 개나 소나 죄 유학파라니까. 쎈 뽈(세인트 폴을
최대한 굴려서)?소대리, 쎈 뽈에 있었다 그랬지? 그런 애
봤어?
소대리 보긴 뭘 봐요?
오과장 경영학? 웃기고 있네.
소대리 그런 자식들 때문에 우리 같은 정통 유학파들까지
도매금으로 욕먹는다니까요.
오과장 (소대리에게) 졸업은 했대?
인하 (불쑥 끼어 들며) 졸업도 못했대요.
일동 (돌아보며) 그래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인하,
오과장과 소대리의 뒤를 따라 내린다.
오과장 근데 누구야?
소대리 몰라요.
S#13. 강회장실
인하, 경환 앞에 경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앉아 있다.
경환, 싸늘하게 인하를 노려본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긴장이 돈다.
경환 사무실은 둘러 봤냐?
인하 ...아뇨.
경환 (인터폰 누르고) 오과장 들어오라 그래.
인하 근데 제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해요?
경환 ... 너, 할 줄 아는 거 있냐?
인하 ... 아뇨.
경환 나도 너한테 바라는 거 없으니까 그냥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해. 그러면 돼.
인하 ...
경환 너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야. 더 이상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노크소리에 이어 오과장, 들어온다.
오과장 부르셨습니까?
경환 얘가 내가 얘기한 아들놈이야.
오과장 아, 예. 안녕하십니까?
오과장, 고개를 들다가
인하를 알아보고 사색이 된다.
인하 안녕하세요. 강인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경환 사무실 준비됐지?
오과장 예. 완벽하게 꾸며놨습니다.
경환 데리고 나가서 직원들한테 소개시켜.
오과장 예. 따라 오시죠. 이 쪽으로.
오과장, 식은땀을 흘리며
정중하게 인하를 데리고 나간다.
S#14. 사무실
오과장, 사무실 직원들에게
인하를 인사시키며 설명하고 있고
소대리, 과장된 미소를 띠며 서있다.
오과장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계속 닦으며)저희
미디어 사업부는 크 게 세 부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기획,
제작, 관리. 그 중의 핵심은 바로 지금 보고 계시는
기획실입니다. 초기에는 영화와 음반 쪽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할 계획입니다만 앞으로 디지털 위성방송 쪽으로도
투자를 확대할 예정입니다. 녹음실 한 번 구경하시겠습니까?
이 쪽으로 오시죠.
인하 (소대리에게) 잘 부탁드립니다.
소대리 아, 예. 제가...
오과장, 인하를 데리고 사라진다.
소대리, 굳은 얼굴로 본다.
S#15. 인하의 사무실
오과장, 소매로 인하 의자의 먼지를 훔쳐낸다.
오과장 앉으시죠.
오과장, 책상의 명패도
괜히 다시 놓아 보고, 전화기도 들었다
놨다 해보고, 멀쩡한 전화 코드가
꼬이지나 않았나 수화기를 들어
확인해보기도 한다.
인하 나가서 일 보세요.
오과장 네. (잠시 머뭇거리다가) 뭐 필요하신 거 없으십니까?
인하 네, 없는데요.
오과장 아, 예. ...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2번을 누르시면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인하 예. 그러죠.
오과장 ...
인하 ...
오과장 ... 저... 혹시... 아까 ... 엘리베이터 ...
인하 틀린 말 하나도 없던데요.
오과장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과장, 고개를 조아리며
뒷걸음질로 밖으로 나간다.
인하, 혼자서 책상 앞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 한 대와 꺼진 컴퓨터 모니터,
빈 파일철 등을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좁은 사무실 안에서 서성거린다.
인하,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자리에 앉아 인터폰을 누른다.
인하 오과장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S#16. 유니온 사무실
오과장, 전화를 끊고 짜증을 낸다.
오과장 뭐야? 짜식이 여기가 무슨 흥신손줄 아나? 아무거나
시키랬다고 정말 아무거나 시키고 앉아있어. 아이, 짜증나.
예술하는 사람을 뭘로 아는 거야?
소대리 왜요?
오과장 야, 소대리, 니가 해!
소대리 뭔데요?
S#17. 찻집
왕여사와 송여사, 차를 마시고 있다.
왕여사 따님 눈치는 어때요?
송여사 글세요... 표현은 안 해도 싫진 않은 모양이예요. 아드님은요?
왕여사 뭐, 색시감이 속이 확 트인 거 같아서 맘에 든다
그러더라구요.
두사람, 괜히 웃는다.
송 그렇죠? 제가 봐도 걔가 내숭이 없어요. 그냥 뭐든지 너무
솔직해서 탈이라면 탈이지만 그게 흉 될 거 있나요?
아드님도 성격이 화통해 보이던데.
왕 아주 화통하죠. 남자가 모름지기 그런 면이 있어야 되지
않나요?
송 물론이죠.
왕 어차피 짝 지우기로 한 거 길게 끌 거 있나요? 일단
약혼식부터 하고 따님 졸업하는 대로 식 올려버리죠, 뭐.
송 그럼, 바깥양반들하고 같이 한 번 자리를 만들어야겠네요.
왕 참, 따님이 요새 요리학원 다닌다면서요? 우리 애도 보내야
할까 봐요.
송 남의 집에 보내면서 욕먹지 않을 만큼은 해서 보내야지
않겠어요? 듣자니 강회장님 식성도 참 까다로우시다던데.
왕 남자들이 그렇죠, 뭐. 한 번 오른 반찬은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니까요.
송 피곤하시겠어요.
왕 (억지로 웃는다)
송 참, 아드님이 친엄마는 만나나요?
왕 ...
송 외람된 질문이긴 하지만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거
같아서요.
왕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우리도 그런 일로 양가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봐 조심하고 있답니다.
송 네.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왕 (시계를 보며) 전 오늘 바자회가 있어서...
송 (역시 시계를 보며) 네, 저도 오늘 봉사활동 모임이 있어서...
왕 그럼 일어나셔야겠네요.
송 가시죠. 오늘 점심 잘 먹었어요.
두사람, 동시에 일어나 인사하고 나간다.
S#18. 명하네 현관
명하, 문을 열면 연희, 서 있다.
명하 들어와라.
연희 아니야, (돈봉투를 명하에게 내민다) 이거.
명하 ...
연희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돈은 받으면 안될 거 같아.
명하 왜?
연희 부담스러워.
명하 그러니까 나중에 갚으라 그랬잖아.
연희 실은 나, 휴학했어.
명하 ...(연희를 빤히 보다가) 공돌이 돈은 못 받겠다 이거냐?
연희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명하 알았다.
명하, 연희의 손에서 돈을
탁 낚아채고 문을 꽝 닫는다.
연희, 닫힌 문 앞에 한참 서 있다가 돌아선다.
S#19. 연희네 집
쫙 빼입은 만수, 거울 앞에서 폼을 살피며
지루박, 차차차, 등 여러가지 스텝을
연습하다가 카세트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데
옥분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카세트를 탁 꺼버리고
거울 앞에서 로션을 바르기 시작한다.
만수 어허, 아침부터 남자가 하는 일을.
만수,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려는데
옥분 (보지도 않고 화장을 계속하며) 누르기만 해봐. 누르기만
해봐.
만수, 손끝이 바르르 떨리지만
결국 누르지 못하고 옥분의 곁에 앉는다.
만수 여보, 내 맘 그렇게 모르겠어?
옥분 알고 싶지 않아.
만수 내가 누굴 위해서 이러겠어. 나같이 못난 놈 만나 평생을
죽어라고 일만 하는 당신, 바로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야.
당신 나 못 믿어?
옥분 당신을 어떻게 믿냐?
만수 ... (포기하지 않고) 당신이 눈 한 번만 질끈 감아주면 돼.
그러면 내가 이 한 몸 바쳐서 이 집안을 일으켜 볼 거야.
옥분 웃기지 마.
만수 당신이 이 춤의 마력을 몰라서 그래. 정신 나간 아줌마 한
명만 제대로 잡으면 우리 집은 불같이 일어선다.
옥분 헛소리 하지마.
만수, 낙담하여 고개를
떨구는데 연희 들어온다.
시간경과
연희, 이모, 이모부,
부엌에서 밥을 먹고 있다.
옥분 우리 캬바레 사장님이 사람을 하나 구하고 있는데, 너 한 번
해볼래?
만수 무슨 일인데?
옥분 당신은 몰라도 돼?
만수 (놀라며) 얘도 캬바레에서 일 시킬라구?
옥분 당신은 빠져!
만수 (버럭) 이 여편네가 미쳤나. 거기가 어떤 덴지
몰라!!!하나밖에 없는 대학생 조카를 그런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릴라 그래?
옥분 뭐? 악의 구렁텅이? 그래서 당신은 거기 못나가서 환장을
하냐? 그래, 나 거기서 주방 일한다. 연희가 왜 이렇게
됐는데? 누구 땜에 이렇게 됐는데?
만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옥분 시끄러! 밥이나 먹어.
만수 밥이나 먹어? 에잇 (옆에 있던 밥솥을 든다)
옥분 그거 안내려놔? 던지기만 해봐. (보지도 않고 계속 밥을
먹는다)
만수 (부들부들 떨다가 내려 놓는다) 에에에이...
이 때 전화벨 울리고 연희, 전화를 받는다.
연희 여보세요...네. 제가 이연흰데요...네?...그럴 리가 없는데요...네.
알았습니다.
연희, 의아한 얼굴로 전화를 끊는다.
옥분 어디야?
연희 학교.
옥분 학교에서 왜?
연희 뭐가 잘못됐나봐.
옥분 뭐가?
연희 내가 등록금을 냈대.
옥분 왜?
연희 켬퓨터가 미쳤나 보지 뭐.
옥분 어머, 잘됐다. 계속 미쳐 있었으면 좋겠다.
연희, 갸웃한다.
S#20. 수빈이네 집
수빈, 문을 열어주면 연희, 들어온다.
수빈 들어와.
연희, 수빈을 따라 거실로 들어간다.
수빈 웬일이냐? 니가? 뭐 마실래?
연희 아니. 뭐 물어볼라고 왔어.
수빈 왜 이렇게 심각해?
수빈, 거실 바닥에 엎드려 보고
있던 잡지를 뒤적거린다.
연희 (의자에 앉는다) 니가 혹시 내 등록금 냈니?
수빈 아니?
연희 ...솔직히 얘기해 줘.
수빈 너, 나 몰라? 내가 그런 거 거짓말 하는 거 봤어?
연희 아니...
수빈 너, 등록 안했었어? 개강한지가 언젠데?
연희 ...
수빈 어쩜 그러면서 나한텐 한마디도 안하냐?
연희 그게 무슨 자랑이냐?
수빈 너, 번번이 그러잖아. 내가 도와주는 게 그렇게 싫어?
연희 싫어서가 아니라 니 돈도 아니고, 너도 집에다가 아쉬운
소리해야 되잖아.
수빈 너 상처 받았겠다? 내 앞에서까지 그렇게 자존심만 세우는
애가?
연희 누구지?
수빈 글쎄, 누굴까? 나도 궁금하네.
연희 갈게.
수빈 왜, 더 있다 가. 이렇게 왔는데 오늘 비디오나 빌려다 보면서
놀자.
연희 니네 집에 있으면 괜히 불편해. 성북동 아줌마 들이닥칠 거
같고.
수빈 그럼 니네 집 갈까? 그래, 그게 좋겠다. 내가 데려다 줄 겸
같이 가자.
연희 우리집?
수빈 아, 그 윗집 오빠 집에 있나 전화해봐.
연희 명하 오빠?
수빈 내가 해 볼까? 아, 혹시 너 그 사람 좋아해?
연희 (어처구니없어 하다가) 응. 좋아해.
수빈 아, 그럼 포기해야겠네. 우정이냐, 사랑이냐, 이런 거 정말
질색이거든.
연희 (웃으며) 야, 몇 번이나 봤다구?
수빈 그러게 말이야,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연희 (씩 웃으며) 그 오빠 눈 높아.
수빈 그래? 그럼 너보다 내가 가능성 있겠다. 몇 번이야,
전화번호?
연희, 쿳션으로 수빈의 머리를 내리친다.
수빈도 쿠션으로 연희를 치고,
두 사람 갑자기 엉켜 장난을 치다가
바닥에 벌렁 눕는다.
두 사람, 웃음이 흐려지며
천장을 말없이 올려다 본다.
수빈 내가 웃기는 얘기 해 줄까?
연희 ...
수빈 ...나 얼마 전에 선 봤다?
연희 선? 나이가 몇인데 벌써 선을 보냐?
수빈 그러게 말이야. 근데 더 웃긴 건, 상대가 니가 얘기했던 그
쓰레기라는 거야.
연희 누구?
수빈 재숙이 오빠.
연희 ...
수빈 ...쓰레기들끼리 잘 어울릴 것 같았나 보지. 정말 웃기지.
수빈, 돌아보는데 연희,
웃지도 못하고 얼굴이 굳어 있다.
S#21. 캬바레 사무실
낡은 철제 책상이 두어 개쯤 있고,
다 떨어진 비닐 소파 한 개와 석유난로가 있는
허름한 사무실.
연희와 이모, 소파에 앉아 있다.
이 때 춘배 들어온다.
이모 (벌떡 일어나며) 오셨어요?
춘배 이 아가씬가?
이모 예. 인사드려라. 우리 영업 부장님.
연희 (얼떨결에) 안녕하세요.
춘배 (아래 위로 훑어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줌만 나가서
일봐요.
연희 (영문을 모르겠다)
이모 그럼, 잘 좀 부탁드려요.
이모, 나가고 연희, 당황스러운데
춘배, 연희의 옆모습을 다리부터
머리까지 좌악 훑어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춘배 아가씨가 프로라면서?
연희 예?
S#22. 복도
연희, 긴장한 얼굴로 춘배의 뒤를 따라 가고 있는데
임사장의 방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남자 (소리) 으악---
연희, 깜짝 놀라 굳는다.
춘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노크한다.
임사장 (소리, 꽥) 누구야!
문이 열리고 축 늘어진 남자를 부하
둘이 양쪽에서 잡고 질질 끌고 나와
연희의 앞을 지나간다.
춘배, 먼저 들어가고
연희, 그 자리에 굳은 채
서서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머리가 약간 흐트러진 임사장,
소파에 앉아 가죽 장갑을 벗고 있다.
춘배 뭐해? 들어와.
S#23. 임사장 사무실
연희, 춘배의 뒤에 긴장한 얼굴로 서 있다.
임사장 뭐야?
춘배 말씀드린 주방 아줌마 조캅니다. 인사드려.
연희 안녕하세요?
임사장 어, 그래? 앉아.
연희, 임사장과 마주 앉는다.
춘배, 그 옆에 선다.
임사장, 장갑을 들면 춘배, 얼른 받고
임사장이 손가락을 벌리면
춘배, 얼른 담배를 끼워주고 잽싸게 불을 붙여준다.
임사장 이름이 뭐야?
연희 이연희요.
임사장 대학생이라면서?
연희 네.
임사장 무슨 일인지 알아?
연희 자서전 대필해 줄 사람을 찾으신다고 들었어요...
임사장 음... 난다 긴다하는 놈들 몇 명 써 봤는데 영 마음에 안들어.
대필 전문가라고?
연희 그게 아니구요,
임사장 (춘배에게) 갖고 와.
춘배, 테이블 밑에서 그동안
녹음한 테이프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는다.
임사장 내가 출소한 뒤로 틈틈이 녹음해 놓은 거야. 갖고 가서 한
번 시작해 봐. (일어나려는데)
연희 저...못하겠어요.
임사장, 연희를 빤히 보며 다시 앉는다.
춘배, 긴장한다.
연희 죄송합니다.
임사장 내가 이런 데 몸 담고 있다고 그러나?
연희 그게 아니구요.
임사장 (끊으며) 아, 말 안 해도 알아. 제일 중요한 얘길 빠뜨렸군.
돈 말이지? 내가 프로의 자존심을 건드렸군. 얼마면 되겠어?
임사장,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10만원권 몇 장을 세어준다.
연희, 세는 동안 눈이 점점 커지고
춘배, 임사장과 연희를 번갈아 본다.
임사장 착수금이야. (녹음 테잎 위에 올려놓는다)
연희 (돈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만) 저...돈이 문제가 아니라요,
임사장 자존심이 쎈 친구로구만. (다시 돈을 꺼내 돈 위에 얹어
놓는다)
연희 ...
임사장 더 이상은 못 줘.
연희 ... 저, 그러면 일단 써보겠습니다.
임사장, 눈을 가늘게 뜨고 연희를 본다.
S#24. 유니온 인하의 사무실
인하, 오과장에게 보고를 받고 있다.
오과장 에...말씀하신 캬바레는 이 사람 명의로 돼 있구요, 실질적인
사장은 임복돌이라고 한 때 잘나가던 건달 소유랍니다.
그리고 출연진 명단을 구하긴 구했는데요, 다 예명이라
자기들끼리도 본명은 잘 모르던데요? 저도 이런 업무는
처음이라서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빨라질
겁니다.
인하 아, 수고하셨습니다.
고차장 예...저...심심하진 않으세요?
인하 예?
고차장 아니, 저...혹시 심심하시면 기획실에 영화 시나리오가 많이
쌓여있거든요. 시간 때우기 좋습니다.
인하 예. 참고하겠습니다.
고차장 그럼, 저 또 시키실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2번을 눌러만
주시면...
인하 나가 보세요.
고차장 예.
고차장, 나간다.
인하, 종이를 내려다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인하 네. 강인합니다.
인하, 얼굴 굳는다.
S#25. 커피숍
연희, 굳은 얼굴로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앉아있다.
인하, 안으로 들어와
연희를 발견하고 앞에 와 앉는다.
연희, 인하가 앞에 앉자
인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인하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다) 니 전화 받을 줄은 몰랐다.
연희, 말없이 가방에서
돈을 꺼내 인하 앞에 놓는다.
인하 뭐야?
연희 몰라서 물어?
인하 하,
연희 내가 언제 너한테 등록금 내달라 그랬어?
인하 하,
연희 나, 거지 아니야. 그리고 돈으로 사람을...
인하 뭘, 오해하나본데 내 본심은 그런 게 아니었어.
연희 오해?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인하 (기분 나쁘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연희 화낼 일이냐고? 너같은 놈들한텐 아무 일도 아니겠지. 돈이
좀 모자랄 거야. 나머지는 내가 일 끝나는대로 갚을게.
연희, 벌떡 일어나 나간다.
인하, 왜 이렇게 꼬이나 싶다.
S#26. 캬바레 분장실
은옥, 화장 케이스를 들고 안으로 들어온다.
은옥 안녕!
은옥, 자리에 앉아 평상시처럼
화장을 시작하려다가
분장실의 분위기가 웬지 이상하여
거울로 다른 출연자들의 얼굴을 살핀다.
사람들, 은옥의 눈길을 피한다.
은옥 왜들 그래? 무슨 일 있어?
여가수 저기요, 부장님이 찾던데...
은옥 날? 왜?
S#27. 홀
종업원들, 불을 환하게
켜놓고 청소를 하고 있다.
춘배, 홀 가운데 앉아 방금 청소
한 자리에 담배꽁초를 버린다.
종업원 한 명 잽싸게 다가와 치운다.
이 때 은옥, 화난 얼굴로 춘배에게 다가온다.
은옥 야, 니가 뭔데 내 스테이지 짤라.
춘배 (기가 막힌 얼굴로 은옥을 빤히 보다가) 야?
은옥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춘배 지금 야라 그랬어요?
은옥 (약간 기가 죽는다) 이거 봐, 춘배. 내가 춘배한테 섭섭하게
한 거 있어?
춘배 그렇게 결정됐으니까 더 이상 얘기하지 맙시다.
은옥 (앞에 앉는다) 이거 봐, 김부장...우리 명하를 봐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춘배 명하를 봐서 그동안 많이 참은 겁니다.
춘배, 벌떡 일어난다.
은옥, 춘배를 다급하게 잡는다.
은옥 이거봐, 춘배, 아니, 김부장, 부장님.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춘배 이거 놔요.
은옥 내가 레파토리도 바꿔보고 화장도 더 젊게해 보구, 의상도
신경 좀 쓸께요... 사실 내가 그동안 의상에 신경을 못썼어요.
그건 사실이야. 그건 인정해요.
춘배 하, 차.
은옥 나, 알잖아. 한다면 하는 거. 내가 화끈하게 변신할께.
춘배, 은옥을 확 밀치듯 떼어낸다.
은옥,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춘배 야! 빨리 끝내고 영업 시작해라.
춘배, 가버린다.
S#28. 주방
주방장과 보조가 부지런히 안주를 만들고 있고
옥분, 홀에서 들어온 쟁반을 정리하고 있다.
은옥,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한쪽 귀퉁이에 있는 술 박스에서 맥주를 집다가
다시 놓고 양주를 꺼내 뚜껑을 연다.
은옥 개자식! (벌컥벌컥 마신다)
옥분 (놀란다) 언니, 왜 이래, 왜이래. (술병을 뺏는다)
은옥 내 놔.
옥분 왜 이래, 무슨 일이야?
은옥 (다시 옥분의 손에서 술을 빼앗아 마신다)
옥분 미쳤어. 죽을라고 환장했어?
옥분, 술병을 빼앗으려는데
은옥, 이리저리 피하며 술을 마신다.
은옥 내가 평생을 바쳐서 노랠했어. 사장이 몇 번씩 바뀌고 아들
같은 놈들이 영업부장이랍시고 껍죽대도 자존심 다 죽이고
무대에 청춘을 바쳤어. 그런데 나를 짤라? 그래, 내가
그만둔다.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꼬와서 그만 둔다고. 그만
두면 될 거 아니야!
은옥, 술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밖으로 홱 나간다.
주방장과, 보조, 저 아줌마가 미쳤나하는 얼굴로 본다.
옥분 언니! 언니!
S#29. 홀
손님들이 두어 테이블 앉아 있고
아직은 한가한 홀 안.
은옥, 주방에서 뛰쳐나와 두리번거리다가
안에서 나와 바쁘게 입구 쪽으로 가는
춘배를 발견한다.
은옥, 주변을 둘러보는데
구석에 세워진 대걸레가 보인다.
S#30. 입구
임사장, 부하들을
거느리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은옥, 입구 안 쪽에 서 있는
춘배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은옥의 눈에는 춘배 말고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은옥, 달려와 기합소리와 함께
춘배의 머리를 향해 대걸레 자루를 내리치는 순간
춘배, 임사장에게 꾸벅 인사한다.
은옥 이야아아압!
춘배 오셨습니까, 회장님.
임사장 억!
임사장, 이마에 정통으로 맞고 뒤로 쓰러지고
부하들, 얼른 뒤에서 부축한다.
S#31. 임사장의 사무실
임사장,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의자에 앉아 있고
춘배, 그 앞에 서서 혼나고 있다.
임사장 누가 니 맘대로 사람 짜르라 그랬어?
춘배 ...
임사장 니가 여기 사장이야?
춘배 죄송합니다, 회장님.
임사장 오바야. 알아?
춘배 죄송합니다, 회장님.
임사장 한여사, 내 차로 모셨지?
춘배 예. 회장님.
임사장 한여사 술 깨시면 찾아 뵙고 정중하게 사과드려.
춘배 ... 저 ... 한은옥씨를 특별히 챙기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임사장 ... 너, 건방져졌다?
춘배 죄송합니다, 회장님.
임사장 오바하지마. 알았어?
춘배 예, 회장님.
임사장 나가.
춘배, 인사하고 나간다.
임사장, 잠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녹음을 시작한다.
임사장 (소리) 일천 구백 칠십 구년 가을. 배신자의 칼에 우리의
영원한 큰 형님이 갑자기 운명을 달리하시자 조직은
사분오열, 풍전등화, 등화관제의 위기를 맞았다. 그 때
혜성같이 나타난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임, 복, 돌!
으아!!
S#32. 복도
춘배, 임사장 방문을 노려
보다가 복도를 따라 밖으로 나가는데
부하, 한 명이 급히 달려와
춘배에게 귓속말을 한다.
춘배 카센타? (픽 비웃는다)
S#33. 카센타
변두리에 있는 조그맣고 허름한 카쎈타.
명하, 차 밑바닥에 누워 일을 하다가
기어 나오는데 여자의 다리가 보인다.
명하가 차 밑에서 나올수록 다리부터
위 쪽으로 점점 여자의 전신이 드러난다.
수빈이다.
수빈 안녕.
명하, 아는 척도 않고 일어나 공구를 챙긴다.
수빈 나한테 화났어요?
명하 ...
수빈 내가 귀찮아요?
명하 나, 일하는 거 안보여?
수빈 언제 끝나요?
명하 (일을 멈추고 수빈을 빤히 보다가) 가.
수빈, 약간 기분이 상하고
명하, 다시 차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명하의 시선으로 보이는 수빈의 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또각또각
발소리를 남기며 사라진다.
잠시후 누군가 명하의 발바닥을 구둣발로 툭툭 찬다.
명하 (수빈인줄 알고) 아, 참, 가라 그랬잖아.
남자1 야, 야!
명하, 남자의 목소리에
기어 나와 남자를 올려다본다.
남자1 야, 내 차 오일 좀 갈아라.
명하 잠깐만 기다리세요. (다시 기어 들어가는데)
남자1 (다시 발로 툭툭 치며) 우리 바빠, 임마.
명하, 할 수 없이 다시 차 밑에서
기어 나와 검은 차로 간다.
남자2, 운전석 문에
기대서서 비켜주지 않는다.
명하 본넷 좀 열어야 되는데요?
남자2 니가 열어, 임마.
명하 그럼 좀 비켜주시겠어요?
남자2 싫어. 임마.
명하, 뭔가 느낌이
이상하여 남자2를 노려본다.
남자2 어쭈 얘 봐라? 보는데? (명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뭘 봐,
임마?
명하, 남자의 손을 탁 쳐낸다.
남자2 어? 쳤어? 이 자식이 사람 치네?
남자들, 어느새 공장에서 파이프 같은
것들을 하나씩 집어들고 자기 손바닥을 탁탁
내리치며 명하 주위로 몰려든다.
시간경과
수빈, 음료수와 먹을 것을 사들고
안으로 들어오다 깜짝 놀란다.
카센타 안이 난장판이 되어 있고
구석에 명하가 피를 흘리며 앉아있다.
수빈, 들고 있던 봉지를 팽개치고 명하에게 달려간다.
수빈 무슨 일이예요?
수빈,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아준다.
명하, 수빈의 손을 탁 치우고
비틀 일어나서 몇 걸음 걷다가 푹 고꾸라진다.
S#34. 병원 응급실 앞
수빈, 대기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고 있다.
명하, 머리에 붕대를 감고
걸어 나오다 그런 수빈을 본다.
수빈, 자기 앞에 누군가
서자 손을 떼고 올려다 본다.
수빈, 울었는지 얼굴이 엉망이다.
수빈 (울먹이며) ...죽는줄 알았잖아요...
수빈, 명하의 다리에 얼굴을
묻고 갑자기 소리내서 엉엉 운다.
명하, 당황스럽다.
S#35. 연희네 집 앞 (밤)
수빈의 차가 선다.
수빈의 차안.
수빈, 명하를 돌아보는데 눈가에
마스카라 얼룩이 그대로 남아있다.
수빈 몸 조심해요.
명하 (내리려다가 수빈을 돌아본다)...고맙다.
명하, 씩 웃고 내리면 수빈도 웃어준다.
S#36. 명하네 집 (밤)
명하,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은옥,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씽크대에 기대 두 다리를 쭉 뻗고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다.
은옥의 다리 사이에 소주 한 병이 놓여있다.
명하, 엄마를 잠깐 내려다 보다가 엄
마 앞에 있는 소주병을 집는데 은옥, 탁 잡는다.
은옥, 명하의 손등에 까진
자국과 핏자국을 보고 픽 웃는다.
은옥 잘 되가는 집안이다.
명하 (다시 힘껏 소주병을 집어 올리며) 술 좀 그만 마셔.
은옥 또 싸웠냐? 너 정말 뭐가 될라 그래?
명하 (방으로 들어가는데)
은옥 에미 말이 말같지 않아? 너도 내가 우스워 보이냐?
명하 얼마나 마셨길래 그렇게 취한 거야.
은옥 그래, 나 취했다. 세상이 엿같아서 취했다. 왜? 그래서 너도
나 무시하냐? 춘밴지, 뭔지하는 새끼처럼 나 무시하냐고?
내가 너만 아니었으면 벌써 때려쳤어. 그런 새끼들한테
부장님, 부장님 해가면서 거기 안 붙어 있는다고. 내가 누구
땜에 이러고 사는데, 너도 내가 밉지? 뻑하면 술주정이나
하고 뻑하면 남자나 바꾸고, 어쩌다 저런 여자가 우리
엄마가 됐을까? 하필이면 이런 집구석에 태어났을까? 세상이
원망스럽지? 야, 웃기지 마. 나도 너 싫어. 잘난 거 하나없이
맨날 주먹질이나 하고 세상 사람 다 무시하는 니가 싫어.
너만 아니었어도, 너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갑갑하진 않았다. 내가 널 떼려고 병원엘 몇 번을 갔는 줄
아냐? 내가 널 낳아 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냐? 니 인생은
잘돼봐야 공돌이고 못되면 깡패새끼야. 너, 너 왜 그런
저주받은 팔자로 태어나서 내 인생까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내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는 거야? 불쌍한 새끼...
애비도 모르는 불쌍한 새끼 ...
은옥, 참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S#37. 명하 방
명하, 벽에 기댄 채 서서
엄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명하의 뺨에 한줄기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