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풀뿌리민주주의' 훼손
“우리는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지방선거의 의미는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하여 생활정치, 지방정치를 꽃피우는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이 올바르게 주어지고 발휘되었을 때 가능한 부분이라는 사실이 이번 취재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특히나 이번 5.31 지방선거는 이러한 참정권을 가로막는 법적공휴일이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치뤄진 것 또한 여론의 도마에 올라야 했고,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 심화는 투표장으로 이어져, 건설현장, 대형백화점, 할인점, 운송업, 중소, 영세기업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투표장에는 가보지 못한 채 일을 해야 실정이었다.
▲선관위의 홍보 현수막은 노동자들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와 같은 현실은 투표장에도 그대로 나타나 유권자의 발길이 뜸해 썰렁한 곳도 있었고, 투표장을 잘못 찾은 할머니에게 엉뚱한 곳으로 안내를 해 세 군데를 다녀야 했던 한 할머니는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또한 투표장을 찾은 새내기 유권자에게 투표장을 안내하는 표시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서 인지 처음 투표에 참여한다는 올해 20살 한지숙(가명)씨는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투표하지 말란 이야기야? 이러니 누가 투표할 마음이 생기겠어!”
▲썰렁한 투표소... 투표참관 관련자들만 앉아있다.
이처럼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는 투표장을 잘 못 안내하거나 투표장소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소동을 겪어야 하는 것은 선관위의 유권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부분을 말했다.
▲인천 주안지역 모 프레스 공장 - 투표일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
"선거일에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 투표 엄두도 못내"
이와는 반대로 아예 투표장 근처도 못 가고 출근하거나 업무 특성상 지방을 다니는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우리는 투표할 권리마저 주지 않는가?” 라는 성토는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케 하는 순간이었다.
“아침 여섯 시에 눈을 떠야 밥 먹고 출발하면, 최소한 공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일곱 시 반입니다. 여기에다 작업복 갈아입고, 이것저것 채비하고 나면 일하는 시간이 여덟 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같은 날은 잔업이라도 해야 합니다. 저번부터 아내가 10년 된 냉장고 좀 바꾸자고 그렇게 난리인데 이 월급 갖고는 아무것도 못해요. 선거요? 그거 잊고 산지 오래되었습니다.”
프레스 공장에서 8년째 일하고 있다는 임모씨(37)가 “투표는 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임모씨가 일하는 프레스 공장에는 약30여명이 일하고 있는데 투표한 사람은 겨우 여섯 사람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투표일도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현실은 '풀뿌리민주주의'가 맞는 말인지 의문이 간다.
이날 찾은 프레스 공장을 비롯하여 인천 주안공단에 위치한 여러 회사를 방문취재를 하였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공장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다른 제조업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 김모씨(33)의 경우는 아이들과 부인을 동반하고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오늘이 임시공휴일로 지정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여명 넘는 직원 모두가 출근했다.”고 말하며 그는 “규모가 있는 회사이지만 정시 출근하여 4시까지 근무하고 잔업 들어가지 전 투표를 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잔업 때문에 중간에 잠시 짬을 내어 30여분 걸리는 투표소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홍보물을 자세히 볼 시간도 없었다.”며 “후보들이 걸고 나온 공약들을 성실히 이행하길 바란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나타냈다.
▲인천서구 목재단지 모 창호목재공장 -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노동자들...
이와 다른 대형할인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할인점에서 8개월 정도 근무했다는 한 여성분은 인터뷰에 꺼려하면서도 이번선거에 대한 생각과 투표에 관한 이색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 여성분은 “선거를 치르자고 말만하지 솔직히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방법도 어려워 못 배운 사람들은 투표도 못하겠다. 투표일은 법으로 정해서 일을 시키는 회사는 벌금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투표한 사람들은 투표장에서 생활쓰레기 봉투라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등 색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투표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아침에 밥하고 아이들 챙기기 바쁜데다 남편도 일 나가는데 언제 짬을 내어 투표를 하겠냐?”라고 하면서 투표할 엄두를 못 낸다고 답했다.
"우리에게도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화물운송 노동자의 경우는 이보다 더한 현실을 보여준다. 대형 화물을 운전하는 지모씨는 거주지가 천안이라고 밝히면서 “30일 날 경산에 물건을 하차하고 다시 물건을 실고 포항으로 이동하여 겨우 새벽에 올라와 투표를 했다.”고 밝혔다.
지모씨 같은 경우는 다행스럽게 시간이 맞아떨어져 투표를 한 경우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투표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운수 노동자들 대부분이 지방으로 계속 이동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투표를 할 수 있냐?”라고 물으면서 “우리에게 투표할 권리 좀 주시고, 투표를 하라고 그러세요.”라고 정부를 비꼬며 문제해결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이날 하루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는 지난 선거와 비교해 약간 올라간 투표율을 보였으나, 그럼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취재결과에서 보여주듯이 국민의 기본권이라 말하는 참정권이 제약당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동안 매 선거시기마다 투표율에 대한 고민들이 봇물 터지듯 나왔지만, 정작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되물어야 할 부분이며, 위와 같은 선거일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은 선거권을 박탈하는 처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임시공휴일로 지정된 이상 유권자로써의 권리행사를 할 수 있도록 방안이 강구 되어야 마땅 하다고 지적하고 싶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 그리고 책임 있는 정당들이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를 부활시키는 길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고 실현되는 지방정치를 열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다시 한 번 제기되는 시점이다.
- 벌판,붉은별 공동취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