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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과 자연을 존중하는 성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책이다. 성서의 저자는 다른 세계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 세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이다. 성서는 단번에 한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서 완성한 단행본이 아니다. 고대에 다양한 시대와 다른 지역들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성서 원본들이 기록되었으며,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원본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읽고 있는 성서는 수많은 필사자들이 원본 또는 사본을 손으로 베낀 수많은 사본들 중에 극소수를 선택한 모음집이다. 수백년 동안 필사자들의 필사과정에서 원본은 실종되었다.
인간이 글자를 발명하고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약 5천5백 년 전부터이다. 3천 년 전 구약 성서가 기록될 때와 2천 년 전 신약 성서가 기록될 당시의 통신수단은 대단히 원시적이었으며 오늘처럼 볼펜이나 종이에 기록하거나 컴퓨터로 기록을 남겨놓는 것이 아니라 오직 머리 속에 기억해 두는 것이 전부였다. 따라서 고대 사회의 저술형태는 문자로 기록되기 전에 가장 먼저 첫 번째 관찰과 깨달음이 있었으며, 이것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고 여과되고 첨가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발전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떠돌아 다닐때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첫 번째 문서들(성서 원본)을 기록했다.
그리고 후대에 많은 필사자들은 원본들과 다른 사본들을 필사하면서 본문의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고 자신들의 주관적인 체험과 깨달음을 첨가했다. 이렇게 고대 사본들은 북아프리카와 중근동 지방과 소아시아와 유럽에서 수많은 필사가들에 의해 수백 년에 걸쳐 개정하고 수정하고 왜곡하고 편집해서 만들어졌다. 또한 이 사본들은 다양한 지역들로 흩어졌으며 지역에 따라 지방어들로 번역되었고, 번역판들은 또다시 다른 언어들로 번역된 것이 오늘의 영어 성경이고, 이것을 번역한 것이 한국어 성서이다. 지금도 전 세계 대학 도서관들과 박물관들에는 번역되지 않은 사본들이 무수히 많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성서 기록에 사용된 고대 히브리어와 고대 그리스어는 현대어들에 비하여 극도로 제한적인 어휘들을 사용했으며 따라서 문자적인 표현 보다는 은유적인 표현이 훨씬 효과적이고 일반적인 문학형식이었다. 또한 성서 저자들은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였고, 삼층 세계관 속에서 지구가 얼마나 크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아시아 대륙이나 한반도나 북미 대륙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고대인들은 천체학, 지질학, 생물학, 의학, 유전공학, 양자물리학이나 진화론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15세기에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는 지동설을 발표하기 전까지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었으며, 코페루니쿠스가 천동설을 발표하기 전까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성서저자들은 사람들이 질병이 걸리는 병리학적 원인에 대해서도 무지했으며, 생명의 기원이 우주에 있다는 천체학적 사실도 몰랐다. 그러나 고대성서의 사본들 속에 깨달음의 참 인간이 되는 길과 예수의 정신인 우주적인 진리가 은유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에 진실한 책이다.
오늘날 불행하게도 성서근본주의에 세뇌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성서의 축자영감설과 무오설의 망상에 사로잡혀 성서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성서를 바르게 읽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성서가 마술사와 점쟁이의 책으로 전락했다.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읽기 전에 가장 먼저 고대의 기독교 문서들이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기록되었고, 그 내용들이 수백년 동안 어떻게 발전되었으며 또한 수백년에 걸쳐 어떤 과정으로 정경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서는 하늘에서 떨어진 책도 아니고 성전이나 동굴에서 단행본으로 발견된 책이 아니라, 3천 년 전부터 40여 명의 성서 저자들이 1천 년 동안 여러 지역과 시대적 상황에서 체험한 하느님과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특히 실종된 신약성서 원본이 수백 년 동안 많은 필사자들에 의해 주관적인 견해에 따라 수많은 사본들로 만들어진 이후, 2세기 중반부터 필사자들은 자신들의 사본만이 정경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대 기독교 교회는 누군가 개인적으로 주장하는 정경이 유일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계시라고 공식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으며, 정경화 논쟁 과정은 수 백년 동안 복잡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성서 66권을 정경으로 공식화하는 회의와 결정은 없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성서의 형성과 발전 배경과 정경 과정을 바르게 이해하면 성서는 문자적으로 읽고 해석하고 암기하고 무작정 믿는 경전이 될 수 없다. 축자영감설과 무오설과 문자주의을 주장하는 성서 근본주의는 원초적으로 성서 속에 담겨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과 자연의 의미를 무시하기 때문에 인류의 문제들에 진실하고 솔직하게 답할 수 없다.
기독교 성서는 인류 사회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렇다고 성서가 역사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구약 성서는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가 변천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생존한 체험적인 이야기들이며, 신약 성서는 로마제국의 잔혹한 통치시대에 기독교 공동체들이 용감하게 예수의 정신에 따라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한 이야기들이다. 신구약 성서는 천여 년의 시대적 간격을 두고 발전한 두 공동체가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느끼고 깨닫고, 인간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실제(實際 Reality)를 인식하고, 하느님의 의미를 살아낸 신앙 고백서이다. 성서는 하느님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 즉 하느님의 작품이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에 대해 깨달은 인간의 작품이다. 인간의 작품으로서의 성서는 절대적인 계시가 아니라 많은 계시들 중에 하나이며, 인간이 다양한 시대와 환경 속에서 ‘하느님이 함께 있음’을 체험함으로써 하느님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성서는 고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환경 속에서 하느님과 인간과 세상을 체험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성서는 인간성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성서는 기록될 당시의 문화들의 언어와 개념들과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성서는 하느님이 기록한 책도 아니고 문자적으로 믿어야 하는 교리책도 아니다. 성서에 대해서 이렇게 접근하면 성서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이 해소된다. 즉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들과 과학 사이의 충돌은 사라진다. 또한 고대 성서의 율법들은 모든 시대와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율법이 아니라, 고대 팔레스타인의 신앙 공동체들의 주관적인 율법과 윤리적 가르침들이다. 성서는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을 위해 기록된 책이지 전 세계 인류가 반드시 믿어야 하는 유일한 경전이 아니다.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도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이해하는 하느님의 영감은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이 평범한 삶 속에서 내면적으로 하느님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이 체험은 경이롭고 신비스럽고 특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영감이란 하느님은 외부에 분리되어 있는 타자(他者)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내 자신을 통해 하느님이 드러난다는 비상한 체험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영감은 성서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전적으로 무시한체 하느님이 불러주는대로 받아썼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이런 책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현대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불러주는대로 받아썼다는 문자(소위 하느님의 말씀)를 믿기 보다는 하느님을 살아내고 하느님을 드러내는 사람을 주목해야 한다. 성서 저자들은 자신들의 시대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하느님이 함께 있음을 느끼고 깨달은 것을 하느님의 영감으로 기록했다고 고백했다. 성서는 인간들이 하느님의 의미를 살아내는 삶의 비전과 방식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또한 하느님의 영감으로 썼다는 말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절대적인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아니다. 성서는 인간의 작품이기 때문에 모순과 오류투성이다. 그러나 성서는 깨달음의 참 인간성과 하느님의 궁극적인 진리가 보이지 않게 담겨져 있기 때문에 진실한 책이다.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 성서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서 본문의 온전한 의미와 뉘앙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대 언어들을 이해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는 글자가 없는 아람어로 말했다. 예수가 아람어로 가르친 진리들이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지 40여 년 후에 마가가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최초의 복음서를 기록했다. 예수의 아람어가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성서 원본을 수많은 필사자들이 수 백년 동안 베낀 수많은 사본들이 얼마나 정확한지 파악하기도 어렵고, 고대어를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현대 기독교인들이 고대 성서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현존하지 않는 성서 원본의 히브리어 구약 성서 사본과 그리스어 신약 성서 사본을 라틴어와 영어와 한국어로 번역한 현대 성서들도 원초적인 성서 본문의 뜻을 완벽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또한 축자영감설의 성서가 일점일획의 오류가 없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계시라면 하느님은 성서 원본을 보존했어야 하고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수준 높은 지적 능력이나 고대어를 배우지 않고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록했어야 한다. 고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어휘의 숫자가 대단히 제한적이어서 한 단어가 다양한 의미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대 문서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이 영감을 불어넣어 오류가 하나도 없는 고대 성서 원본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현대어로 번역된 성서가 문자적으로 오류가 하나도 없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성서 근본주의는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가 사회에서 신뢰와 존경을 잃고 쇠퇴해가는 가장 큰 원인은 성서의 축자영감설과 무오설을 주장하는 근본주의에 있다. 특히 현대 과학의 교육을 받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존의 종교체제를 거부하고 떠났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교회를 떠나 교회 동창회(Church Alumni)를 이루는 사람들은 성서의 절대적인 권위를 이해하지 못해서 떠났다. 기독교인들은 성서 근본주의에서 해방되어야 새로운 하느님, 새로운 예수, 새로운 인간을 깨닫고 참 인간으로 살 수 있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더 읽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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