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의 특성 몇 가지
1. 줄 (묶인다)
죄는 사람을 묶는 특성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묶여서 꼼짝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그 자리를 쉽게 벗어나기 힘들게 됩니다.
반복되는 죄의 패턴은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고 당연히 행하던 일들마저 귀찮은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은혜를 순식간에 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을 묶고 있는 너무나 많은 죄의 종류...
그리스도인 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자기를 지켜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잠5:22~23)
2. 문둥병 (무감각)
문둥병의 특징은 몸에 감각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영혼의 감각을 잃게 만듭니다.
열심도, 열정도 모두 사라지게 만듭니다.
힘써 행하던 일들에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말씀에 감동이 없고, 교제가 무의미해지고, 형제자매들의 힘 있는 간증에 무덤덤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하고 부끄러워집니다.
교제 안에서 너무 자주 발견되는 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 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17~20)
3. 짐 (무겁다)
항상 마음 한편을 어둡게 하는 교제 안에서 용서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교제, 형제자매님들과의 깊은 교제를 방해하고 '이것만 없으면'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생활 속의 짐'이 있습니다.
머리속을 복잡하고 혼미하게 만드는 행동하지 못하면서 쌓여만 가는 '생각의 짐'이 있습니다.
주의 진노로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 38:3~4)
4. 누룩 (부풀고, 퍼지다)
누룩의 특징은 쉽게 부풀고 번지는 것입니다.
누룩을 넣은 빵이 몇 배로 커지듯
작은 죄는 점점 커져 영혼을 죽입니다.
물에 검정 잉크를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번져나가듯 죄는 주변에 쉽게 퍼져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누룩은 어떻게 번져 가는지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내 말이 상대방을 거쳐 어떻게 부풀려지고 퍼져갈 지 알 수 없습니다.
나의 행동이 성도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퍼져갈 지 알 수 없습니다.
앞서일하는 사람의 정직하지 못한 방법은 전체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5:6)
죄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버립니다.
죄가 내 안에 퍼지면 내 걸음은 주춤하게 됩니다.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갈 5:7~9)
인간의 죄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3:23)
-의인은 한 사람도 없으며 죄 없다 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죄 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죄는 감옥에 갈만한 큰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짓고 생각으로 짓는 모든 죄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를 비웃고 마치 죄를 인간의 위약성이나 어떤 경향으로만 간주하려 든다.
-인간들이 죄를 깨달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향하여 자비를 구한다.
-죄인이 자신의 무서운 죄를 알기 전에는 갈보리를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려 죽게 하셨다. 바로 당신의 죄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죄는 바로 자신을 위해 독생자를 주셨으나 믿지 않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요16:9)
1. 죄의 정의
-죄에 대하여 사람들이 내리는 정의가 다르다.
-죄의 사전적 의미는 범법과 인정된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법률의 위반이다.
-죄의 행동이나 상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격에 일치하기에 부족한 것을 말한 다.
-죄란 절망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영혼의 죄이다.
-죄란 옛 성품과 육신의 특성이며 매일같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죄는 곧 불법이라.(요일3:4)
① 죄는 행위이다 - 율법과 계명의 파괴는 죄이다.
② 죄는 상태이다 - 죄는 의가 없는 인간의 타락한 상태이다.
③ 죄는 성품이다 -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적대하는 타락한 인간의 성품 이다.
2. 죄의 기원
⑴ 죄는 사탄에게서 시작되었다.(사14:12-14)
사람마다 시험을 당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덫에 걸리게 됨이니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니라.(약1:14-15)
⑵ 죄는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5:12)
⑶ 인간의 타락한 사실(창3:1-6)
① 하나님을 거역하여 중상하는 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②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에 의심을 품었다.
③ 하나님께서 금기하신 것에 욕심을 품었다.
④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불복종했다.
3. 죄의 분류
원죄 :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상(아담)의 혈통으로 부터 오는 죄.
자 범죄 : 자신의 죄.
⑴ 범법 -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시51:1)
⑵ 부정 - 계명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거나, 금지된 행위⑶ 불의 - 의에서 떠나는 것
⑷ 죄 - 표적에서 어긋남,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치 못함(요일5:17, 롬3:23)
⑸ 죄과 - 자기 의지가 하나님의 권위의 영역 안으로 침입해 가는 것
⑹ 불법 - 영적 무질서 상태. 불법 자들과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딤전1:9)
⑺ 빚 - 의무 기피, 태만한 죄, 하지 않고 버려둔 일.
⑻ 불신 - 하나님의 거룩한 진실을 모독하는 것(히3:12)
4. 죄의 목록 (약50가지)
⑴ 출20:3~17 십계명 - 우상숭배, 저주, 안식일 위반, 부모에 불순종,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탐욕 (9가지)
⑵ 고전6:9~10 - 탐색, 남색, 술취 함, 후욕, 토색 (5가지)
⑶ 롬1:29~31- 불의, 사악, 탐욕, 악의가 가득함,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함,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모욕,교만,자랑,몰지각함,약속을 저버림, 무정함, 무자비(19가지)
⑷ 딤전1:9~11 - 불법한 자, 순종하지 않는 자, 경건치 않은 자, 거룩하지 않은 자, 망령된 자, 사람을 탈취하는 자(6가지)
⑸ 골3:5~8 - 음행, 악한 정욕, 분노, 악의, 훼방, 사욕, 입에서 나오는 추잡한 말(7가지)
⑹ 갈5:19~21 - 호색, 마술, 원수맺음, 분쟁, 시기. 분열, 분노, 이색종파, 방탕(9가지)
⑺ 막7:20~23 - 악한 생각, 악한 눈, 어리석음(3가지)
5. 죄는 숨길 수 없다.
⑴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주께 범죄 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32:23)
⑵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⑶ 죄만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죄인 또한 폭로될 것이다.
⑷ 하나님은 숨겨진 죄들을 아시며 밝히 열어 놓으셨다.
⑸ 무엇인가를 숨기려했으나 실패한 사람 (아담, 카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6. 죄의 결과
⑴ 죽음 - 표면적으로는 분리를 뜻하는 말이다.(롬6:23)
⑵ 버림받음 -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잃어버린바 되었고, 하늘나라로부터 버림받았다.
(눅15:24) 이는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또 잃어버렸다가 찾았느니라.
⑶ 심판 -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는 법률적인 용어이다(요3:18)
⑷ 정죄 - 표면적인 의미는 양심을 찌른다는 말이다(창26:10)
⑸ 멸망(지옥에 떨어짐) - 파괴와 저주를 의미하는 미래적인 말이다.(딤전6:9)
⑹ 형벌 - 형벌은 부과함을 의미하는 의식적인 말이다.(마25:46)
⑺ 영원한 불 - 형벌의 기간을 의미하는 말이다(유7)
⑻ 지옥 -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과 마귀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마25:41)
⑼ 불 못 - 둘째 죽음(계20:14)
7. 죄의 치료법
⑴ 대속과 부활의 주님만이 죄를 유일하게 치료할 수 있다.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요일3:5) 그분이 우리의 죄들을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고후5:2)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 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 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라.
(히4:15) 우리에게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시험을 받으신 분이지만 죄는 없으시니라.
(요일3:5)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벧전2:22) 그는 죄를 짓지도 아니하셨고.
⑵ 스스로 자기 죄를 정결케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욥9: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렘2:22) 주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네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⑶ 죄의 치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용서이다.
(엡1:7)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는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을 통하여 죄들의 용서 즉 구속함을 받았느니라.
(요일1:7) 그러나 그 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 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⑷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우리 모두가 다 구세주가 필요한 것이다.
(갈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려는 것이다.
(롬3:23) 이는 모든 사람이 범죄 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⑸ 기도함으로
(롬7:13) 죄가 심히 죄 된 것임을 알도록 저를 깨우쳐 주옵소서
(시97:10) 악을 미워하도록 저를 가르쳐 주옵소서
(요일1:9) 죄를 자백하도록 가르쳐 주옵시고
(잠28:13) 죄를 버리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결 론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구세주이시다.
왜냐하면 그 분 홀로 죄가 없으시며 오직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만 죄가 용서되기 때문이다.
'죄'란 무엇인가? - 타락한 인간(죄인)
롬5:12-13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죄의 기원을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기사로부터 시작하지만, 우리가 죄를 실지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죄라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죄인 것을 알게 된다.
원래 죄는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인간의 피조성이나 불완전성이 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죄의 조성 자가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보기 좋게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1. 죄의 개념
죄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구약에 자주 쓰이는 히브리어 "하타이트"(죄)은 '표적에서 빗나간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지정된 길에서 이탈'하거나 '정당한 권위에 도전하는 것' 혹은 신실 되지 않은 것을 죄라고 표현했다.
신약에서도 "하말티아"(죄)도 길에서 벗나가는 것, 목표를 맞추지 못하는 것의 의미로 많이 쓰였으며 또는 실수나 실책, 경건치 않음, 무법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용어들은 죄가 하나님의 뜻에 빗나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죄의 법아래 사로잡혀 있는 육신이 도모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죄의 기원
성경은 죄의 기원에 대해서 타락한 천사의 세계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던 선한 천사들 중에 일부가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그의 지위와 처소를 떠났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았다.
이 범죄 한 악한 천사가 에덴동산에 들어와 '뱀'으로 가장하고 세상에 죄를 불어 넣은 주인공이다. 하와는 뱀의 유혹에 대적하지 못하고 마음에 욕망과 의심이 솟아올랐다. 어떻게 선하게 창조된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하와가 교만에 빠져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수수께끼 중에 하나다.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아담이 지은 죄가 우리에게 어떻게 전가 되는가?
아담과 하와는 온 인류의 혈통상의 시조일 뿐 아니라 언약적 대표이다. 따라서 그들로 인한 죄책(죄의 형벌적 요소)이 모든 후손에게 직접적으로 전가되어 모든 인류는 나면서부터 다 죄인이 된 것이다.
즉 아담이 인류의 혈통상의 자연적 시조인 까닭에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간접적으로 혈통을 통해 옮겨졌다.“모든 사람이 죄(罪)를 범(犯)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罪)가 세상(世上)에 들어오고 죄(罪)로 말미암아 사망(死亡)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罪)를 지었으므로 사망(死亡)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즉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저주와 형벌 곧 사망을 당하게 된다(롬 5:12, 15-19).
3. 죄의 특성
1). 죄는 특별히 인간이 행한 악이다.
악(Evil)은 천재지변이나 질병과 같이 비인위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나, 죄(Sin)는 인간이 직접 책임을 지고 정죄를 받아야 할 도덕적인 성향을 내포한다.
2). 죄는 절대적 성질을 갖고 있다.
선과 악의 중간 상태는 없다. 인간은 선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악의 편에 서게 된다(마 10: 32-33 눅 11:23 약 2:10).
3). 죄는 하나님의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
죄가 외형적으로 사회적인 측면을 갖는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반항을 의미한다.
4). 죄는 죄책과 오염을 내포 한다
죄책은 죄를 지은 자의 책임, 즉 형벌을 의미하고(롬 3:23 롬5:12), 오염은 죄로 인한 마음의 부패를 가리킨다.
5). 죄의 자리는 마음이다.
마음이란 지,정,의, 전 인격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인(全人)에게 영향을 미칩니다(마 15:19).
6). 죄는 외형적 행위만은 아니다
외부적 행동과 더불어 악한 생각이나 성향 역시 죄이다(마 5:22,28 갈 5:24).
4. 죄의 결과
죄로 인해서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흙을 먹게 되며(창 3:14), 하와는 해산의 고통을 더하게 되었고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창3:16), 아담은 땅에 가시덤불이 나는 땅을 경작하는 수고를 하여야 식물을 먹고, 육체의 죽음을 맛보며,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창 3:17-19,25).
이러한 외적인 저주 외에도 중요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거닐며 교제를 나누던 인간은 수치와 두려움으로 떨게 되고, 하나님과 그는 분리 단절되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인 온 인류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아담의 후손 각 개인은 그 심령 전체가 부패하였고(부패의 전체성) 그 범위는 전 인류에 이른다(부패의 보편성),
따라서 전 인류는(롬 3:10-12 시 14:2-3) 전적으로 부패하여 영적 진리를 분별하였거나, 영적 선을 행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창 6:5 렘 7:9,10 렘3:3-15).
죄의 결과로 인간의 관계성이 단절되었다.
첫째, 자아와의 관계 면에서, 죄는 죄를 범하게 하는 사람 자신에게 수치감을 안겨 준다(창 3:7).
이 수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아름다움을 망각하게 된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 면에서, 죄는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만든다(창 3:8).
빛이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대신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도망치려 한다. 죄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의 틀을 크게 훼손시킨다. 인간의 신 의식을 무디게 만들고, 양심을 어둡게 하며, 생각을 허망하게 한다(롬 1:21).
셋째, 죄는 기능적 측면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한다(롬 1:25).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딤후 3:2, 4). [개역(혼용)]딤후 3:4 배반(背叛)하여 팔며 조급(躁急)하며 자고(自高)하며 쾌락(快樂)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넷째, 이웃과의 관계에서, 죄는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게 만들고(창 3:12),착취하고 탄압하는 일을 하게 된다.
다섯째, 자연환경과의 관계 면에서 볼 때, 죄를 범함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엉겅퀴가 나고 황폐하게 된다(창 3:17-18).
5. 죄의 구분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생긴 원죄(原罪)와 인간 각자가 범하는 자 범죄(自犯罪)가 있다.
1) 원죄와 자 범죄의 구별
자손 대대로 유전되는 원죄와 각 개인의 내적, 외적 범죄인 자 범죄는 다음과 같은 성격상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의로운 상태를 앗아가게 한 원죄는 모든 자 범죄의 원인이다. 즉 원죄의 죄책과 오염이 본죄를 저지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 원죄의 유무에 대하여는 논쟁이 많으나 자 범죄는 모든 사람이 인정한다.
㉢ 자 범죄는 개인의 의식적이며 자발적인 행동이므로 원죄보다 죄책이 더 무거워진다.
㉣ 원죄는 하나이나 자 범죄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2) 자 범죄의 종류
죄는 그 종류에 따라 죄책의 크기가 달라진다(눅 12:47,48). 성경에 묘사된 자 범죄는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구분된다.
㉠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지은 죄 -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알고 범죄 한 자는, 모르고 범죄 한 자보다 더 큰 벌을 받는다(눅 12:47,48 롬 2:12).
㉡ 과실죄와 고범죄 - 인간이 고의로 짓는 죄는 실수로 짓는 죄보다 죄책이 크다(민 5:26-31).
㉢ 용서받지 못할 죄 - 일반적인 모든 죄는 회개를 통하여 사함을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훼방한 죄는 용서의 방법까지 무시한 것이므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마 12:31,32 요일 5:16).
6. 죄의 치유책
죄에는 형벌적 요소인 죄책과 도덕적 요소인 오염이 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에 대한 위반이기 때문에 죄인에게 죄책을 가져다준다(레 6:4, 민 5:6, 약 2:10). 그 죄책으로 말미암아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를 받게 된다(갈 3:10).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는 죄의 형벌적 요소인 죄책을 용서받기 때문에 심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게 되고(롬 8:1), 어떤 상황에서도 심령에 평화를 누리게 된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를 믿어 죄책이 사라졌지만 성도가 계속해서 죄를 범하며 이로 인하여 회개해야하는 이유는, 죄의 도덕적 윤리적 요소인 오염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의 부패한 성품을 혈통을 통하여 물려받은 인류는 그 마음이 전적으로 부패하여 졌고(전적 부패, 렘 17:9, 요 5:42), 영적으로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어졌다(전적 무능력, 롬 8:7-8; 요 15:4-5). 이러한 본성의 부패가 중생한 성도들 안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죄의 두 가지 요소를 구별하여 알아두면 칭의와 성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죄책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인하여 제거된다. 그리고 죄의 오염적 요소는 성령과 말씀으로 회개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씻어내야 한다.
전적 부패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인간은 성부께서 주신 율법과 양심을 통하여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십자가를 통한 성자의 속죄 사역을 성령의 역사로 믿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도말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죄책과 심판에서 놓임을 받았으며,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게 되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죄란 무엇인가?
누군가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자 인식은 죄인 입니다. 내가 죄인이 아니라면 나는 의인이기 때문에, 구원도 필요가 없고 회개도 필요가 없고, 예수님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과 말씀을 나눠보면, 기독교인이던 다른 종교인이던 무신론 자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를 하십니다. 일부 어린 친구들만이 이 세상에 객관적인 도덕이란 없으며 그렇기에 나는 죄인일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죠. 하지만 그들과 더 깊게 얘기를 나눠 보면 그들 안에도 죄의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본인이 죄인이라고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경이 얘기하는 죄의 근원을 아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성경을 읽어도 깊게 묵상하거나 탁월한 설교가의 해석을 듣지 않는 한, 죄가 무엇인지를 알기는 쉽지 않고,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성경을 보시며 저에게 성경을 보는 눈을 많이 열어 주셨던 한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바탕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원합니다.
로마서 1장 후반부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죄목들을 하나하나 나열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동성애에 대한 구절을 적어 봅니다.
동성애가 죄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역행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성애만이 죄가 아닌 이유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역행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는 것을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이 불 일 듯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 속에 받았느니라.
<로마서 1:26~1:27>
최근 사회에 커다란 변화로 인해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자, 그들의 결혼을 합법화 하자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죄로 규정합니다. 오늘 제가 살펴보고 싶은 것은 "죄란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왜' 죄냐?"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죄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
동성애는 왜 죄인가요? 로마서 1장에서 동성애가 죄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우선 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단어 하타아(חַטָּאָה)는 "표적을 빗나간" 이라는 의미 입니다. 즉 죄란 하나님이 만드신 그 창조의 위치와 순리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 하셨을 때, 그의 선하심과 지혜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목적을 부여 하셨고 위치를 부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동물에게 성(sex)을 선물하시면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 둘이 하나가 되도록 창조 하셨습니다. 그런데 동성애는 그 창조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죄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죄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창조 목적을 알아야 할 것 입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 되었나이다, 하더라. <요한 계시록 4:1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 전서 10:31>
곧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라.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7>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어 졌음을 얘기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를 데려다가 에덴의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셨더라. <창세기 2:15>
또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되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또 짐승들에게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창조 목적,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못하는 것 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가 됩니다.
그렇다면 죄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창세기를 가 봅시다.
죄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것
모두가 알다시피,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아담에게 주시며 단 한가지의 도덕을 제시하십니다. 그리고 그 위반에 대한 형벌이 사형임을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2:17>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얘기를 더 신뢰했으며 그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 사탄의 꼬임이 시작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창세기 3:4~3:5>
사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정반대의 얘기를 합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사탄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누구의 말을 더 신뢰 할까요? 이 신뢰가 죄의 시작 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수많은 이론과 사상과 말들이 주어집니다. 기독교인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죄는 누구의 말을 더 신뢰 하느냐 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누구의 말을 더 신뢰했나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얘기에 더 귀를 기울였고, 결국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었습니다. 왜 사탄의 말을 더 신뢰했을까요? 사탄의 어떠한 말이 선악과를 먹고 싶어 했을까요?
성경은 얘기합니다.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므로... <창세기 3:7>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인간의 교만
하와는 사탄이 저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신들처럼 될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고, 우리를 신들처럼 지혜롭게 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선악과를 먹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실제로 인간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피조물로써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는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으로 선악과를 먹었으며, 그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악을 분별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지은 창조주까지도 악한 신이라고 정죄할 만큼 타락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죄란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는 것이며, 처음 지어진 인간의 자기 자리를 이탈해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의도 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나만을 위해 삽니다.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하나님입니다. 나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며 내가 가장 소중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며 옳은 판단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처럼 되어버린 인간은 내가 피조물이며 다른 존재를 위해 지어진 엑스트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불쾌해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죄” 란 무엇일까요?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합니까? 사람들은 아프면 의사를 찾아갑니다. 의사에게 간다는 것은 무언가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무슨 문제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그때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무슨 병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치료가 가능합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무엇이라고 진단하고 정의하는 데에 따라서 우리의 복음과 신앙과 믿는 바가 달라집니다.
제1부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 다른 종류의 복음은 다 “죄”에 대한 다른 정의와 이해 때문에 생기게 된 것입니다. 죄에 대한 두 가지 정의에 대하여 연구해 보도록 합시다.
1. 죄의 정의
원죄설 : “죄는 본성이다”라는 정의
첫 번째 죄에 대한 정의는 원죄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바로 죄라는 가르침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정의는 우리가 태어날 때에 이미 우리는 잃어버린바 되고 정죄 받은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곧, 우리는 지옥으로 갈 본성으로 태어났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잘못된 본성이 있는 그 자체가 죄라고 믿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원죄설”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거의 모든 개신교인이 믿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선택 : “죄는 우리의 선택이다”라는 정의
첫 번째 원죄설의 정의는 “우리는 잘못된 본성으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히 잘못된 행동을 한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의 정의는 다릅니다. 우리가 잘못된 본성을 유전적으로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기를, “하나님, 나는 내 뜻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주님 뜻대로 하기를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뜻(계명)을 어기고 자기 뜻대로 한다면, 그것이 자기가 한 선택이고, 그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죄의 정의”인 “죄는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2. 선택으로서의 죄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독교 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복음은 죄에 대한 두 가지 정의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선택으로서의 죄”를 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한 예증을 들어 봅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와서 털을 비비며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주인을 따라 문을 나설 때 갑자기 이상한 성격을 나타냅니다. 수염과 꼬리를 바짝 세우고 날카로운 동물로 변합니다. 왜 그럴까요?
고양이는 본성적으로 자기보다 큰 것이 오면 무조건 도망가고 자기보다 작은 것은 무조건 잡기 때문에, 밖을 나가면 본성대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밖에서 작은 생쥐를 잡으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그는 생쥐를 금방 죽이지 않고 놓아 주었다 다시 잡았다 하는 반복을 계속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쥐를 잡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물은 다른 창조물(생쥐) 에게 죽기까지 형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가 새 땅에 가면 그런 것은 없을 것입니다.
고양이가 다시 주인에게 올 때 어떻게 합니까? 콧수염을 바싹 세우고 자기가 생쥐를 잡은 것에 대해 주인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옵니다. 그때 주인은 어떻게 합니까? 만일 당신이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양이를 정죄할 것입니까? 아니면 죄가 없는 것인가 라고 갈등할 것입니까? 아마 여러분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잘했다고 말하며 다시 그 살인자를 집으로 들여보낼 것입니다.
자, 여기서 악한 것과 죄에 대한 책임의 차이를 알아봅시다. 이 고양이가 한 일은 악한 짓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너는 죄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이 고양이의 작은 두뇌 속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없고, 옳고 그름의 차이 또한 없습니다. 그는 그저 타락한 본성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타락한 본성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본성이 말하는 것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났을 때, 우리에게 타락된 본성은 악하게 있지만, 아직 죄의 책임은 없습니다. 죄를 짓기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스스로가 짓기로 선택해야 죄가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올바른 죄의 정의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20).
3. 결과와 죄의 형벌로서의 죽음
창세기 2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창조 받은 인간들에게 처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선악과를 먹었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그날 바로 죽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열매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아담의 사형 집행이 즉각 시행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대속의 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사람의 죄를 몸소 지시고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죄 값을 지불하기를 자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절의 전단에 중점을 두겠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영어 성경의 번역을 보면, “창세전부터 죽음을 당해 오신 어린양”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창세 이후로 4000년이 지난 이후에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이 타락할 경우를 대비해 창세전부터 구속의 계획을 마련해 놓으신 것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했을 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로 그 형벌을 받게 해 주소서. 제가 사람의 자리에 서겠습니다. 사람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즉시로 예수님께서 중재자로 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려면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을 아셨지만 인간을 대신하기로 하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자마자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가지셨던 동일한 능력으로 범죄자에게 선고된 운명을 막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인간의 구원을 위한 담보물로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정의로서의 “원죄설”은 성경의 구속의 계획과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에덴동산에서 어떻게 하셨는지 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은 여전히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는 멸망당하고 정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갚으셨을 때는, 그것은 완전히 갚으신 것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갚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절했을 때에 그들은 멸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지나쳐야 지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는 그들의 길에 주님의 십자가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기들은 지옥으로 미끄러지는 길 위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옥으로 가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짓밟고 지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4. 죄에 대한 예수님의 정의
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 지에 대해 한번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9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걸어가시는데, 눈이 먼 맹인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2절,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그들은 이 사람이 “죄인”입니까?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의 눈을 좀 봐, 그는 자기의 죄 때문에 심판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한 뜻은, “그는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알기 원하는 것은, “그의 부모 들이 뭔가 잘못을 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부모들의 죄 때문에 그는 정죄를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가 엄마 뱃속에서 죄를 지은 것입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눈이 먼 사실과 죄와 혼동 하지 말아라. 눈이 먼 것은 악한 것에 속하지만은, 그러나 그것은 죄와 동일한 것은 아니 다”라고 하시며, 계속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마귀의 역사만 볼 수 있지만, 너희는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마귀가 역사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아무나 다 태어나면서 장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소경됨을 어떻게 취급하셨습니까? “내가 너의 눈을 용서한다.”라고 하셨습니까? 절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의 눈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의 눈을 다시 재 창조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의 죄악들을 취급하시는 것입니다.
“죄란 무엇인가?” 이제 다음 기사에서는 죄와 죄책감, 그리고 유혹과 죄의 차이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합니다. 자칫 무거워 보이는 신학적인 논제 같지만, 진실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주제이고, 또 이것에 대해 확실한 이해가 생길 때 승리하는 신앙생활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열심히 함께 연구하여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5. 죄악과 죄책감
아담과 하와가 이 세상에 가지고 온 죄에는 두 가지 문제가 따릅니다. 한 가지는 죄악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죄책감입니다. 악은 모든 인간의 본성과 동물들에게 있고, 또 이로 인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야기됩니다. 또한 다른 문제는 죄책감입니다. 우리는 죄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죄 받은 죄인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 두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그분은 우리의 죄책감을 용서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죄책감을 대신 질 터이니 너희는 자유롭게 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책감이 없어질 때, 우리에게 지옥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두 번째 죽음이라는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과 죄 됨은 언제 없어지는 것일까요? 우리의 본성 가운데 있는 죄된 본성과 죄악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야 없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것을 없애실까요? 주님께서 그것을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이 세상과 우리의 본성을 재창조하심으로 없애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1) 바리새인들은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러분이 정말 모른다면, 정말 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알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남아 있습니다. “빛”은 우리의 죄악들을 깨닫게 하고, 이것이 우리의 죄책감으로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빛의 지식이 우리에게 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순종하기로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의 본성 가운데 있는 죄악이 죄책감이 되는 것입니다.
◈ 이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서 분명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 야고보서 4장 17절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가 여기에 있는 차이를 이해해야 됩니다. 우리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알아야 죄가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올바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럴 때에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고양이나 어린 아기한테는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 야고보서 1장 14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여기에 “자기 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의 죄 된 본성과 그 힘에 의하여 우리가 유혹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6. 유혹과 죄의 차이
1. 유혹
유혹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밖에서 무엇인가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보는 것, 혹은 듣는 것 등. 그래서 우리의 내적인 것이 그것에 유혹을 받아서 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내적으로 끌리는 것이 없으면 거기에는 유혹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야고보서 1장 14절에서 읽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유혹을 받고 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은 “끌리는 자체”가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할지라도 우리가 그런 자극에 끌리는 자체가 죄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믿기를 이 죄된 자체가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본성이 죄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본성 자체가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끌리는 것은 “유혹”이라 말합니다.
2. 죄
그렇다면 “죄”란 무엇인가? 죄는 유혹 뒤에 옵니다. 죄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곧, 유혹을 계속 품어야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이 성경 절을 보면 죄가 성립 되는 데는 단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험담하는 죄는 악한 생각을 품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궤휼”은 온갖 형태의 불순을 포함합니다. 불순한 생각이 용납되면 부정한 욕망을 품게 되고, 그 욕망으로 마음이 더럽혀지면 그 정직성도 손상됩니다. 불순한 생각은 죄 된 것입니다. 그것은 더럽혀지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이것을 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불순한 생각이 죄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일을 더 해야 합니다. 그것을 품어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의 생각으로 품어야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죄가 성립되는 4단계
01 우리가 우리의 본성에 의해서 그 어떤 것에 끌리는 단계
02 우리가 그것에 매력을 느끼는 단계 (여기까지는 죄가 아니고 유혹이다)
03 우리가 그 유혹을 마음속에 품는 단계 (유혹을 하나님의 은혜로 물리치지 않고 계속 품는다)
04 죄가 성립된다.
야고보서 1장 14, 15절은 죄가 되는 단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처음에 유혹을 받고, 그 욕심을 계속 품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혹을 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됨과 죄의 책임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첫 번째 단계(끌리는 단계)가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3번째 단계를 죄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 하느냐에 따라서, 두 가지 다른 복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죄의 대한 정의(원죄설)는,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우리의 본성 자체가 죄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과 늘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것은 할 수 없고 그냥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정의를 가진 사람에게 복음은 항상 “용서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항상 용서만 받고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성경과 맞지 않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죄가 우리 마음의 선택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거절할 수도 있고, 또 그분을 거절함으로 인해 치료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시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용서도 받고 치료함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도덕적 완전함의 유일하고 진정한 표준입니다.
그 율법은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서 실증되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노라”(요 15:10)고 하십니다.
이런 순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응할 수 없습니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우리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라는 보증을 가졌다고 해서이 일을 행할 수 없다고 항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거울 곧 하나님의 율법을 들여다볼 때에 놀랄 만한 죄의 깊이와, 범죄자로서의 자신들의 타락한 상태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분의 계명을 능히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거한다고 말하는 자는,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자기도 그와 같이 행해야 할지니라.
형제들아, 내가 지금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졌던 옛 계명이니, 그 옛 계명은 처음부터 너희가 들어온 그 말씀이니라.
(요일 2:6,7)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